- 오키나와 지역은 1972년 다시 일본 영토로 바뀌어 현재에 이릅니다. 그리고 40년이 지난 현재, 오키나와는 순조롭게 일본의 일부로 녹아들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글쎄, 2010년대에 와서도 오키나와 현이 일본의 많은 도도부현 중에서 가장 가난하고, 실업률도 가장 높은 지역으로 남아 있으며, 주일미군 문제에 있어서 오키나와 섬이 계속 독박을 쓰고 있는 상황임을 생각하면 딱히 나아진 것이 있는가 싶기도 합니다.


 - 오키나와 인의 자기 정체성은 상당히 미묘합니다. 현재 시점에서 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이 일본인임을 인정하지만(그러면서 동시에 자신이 오키나와인이기도 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또한 상당수), 오키나와 출신의 가수들은 방송에서 기미가요(일본의 국가(國歌))를 부르지 않으며 간혹 부르는 사람은 오키나와 내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곤 합니다. 오키나와를 방문한 황태자(現 히로히토 천황)에 대한 테러사건이 일어난 적도 있습니다. 이곳에는 (비록 당세는 크지 않지만) '류큐 독립당'이 활동하고 있으며 상당수의 주민이 오키나와 독립을 지지하고 있기도 합니다.


 - 일본 반환 이후 오키나와 지역의 핵심 과제는 미군기지의 이전 문제입니다. 오키나와 주민들은 현 전체 면적의 19%를 차지하는 미군기지를 현 밖으로 이전할 것을 꾸준히 요구해 왔고, 일본 정부는 이를 묵살하다가 민주당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야 간신히 이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정권은 다시 자민당에게 넘어갔고, 모든 것은 다시 원위치로......


 - 결국 자민당 소속인 현지사(한국으로 치면 도지사)가 일본 정부의 압력에 굴복하여 기지를 현 내부로 이전할 것을 추진하자, 오키나와 주민들은 2014년의 지사 선거에서 반대파인 오나가 다케시(翁長雄志) 후보를 상당히 큰 표차로 선출하기에 이릅니다. 다만 이 문제는 현지사에게 그리 큰 권한이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아직도 문제는 해결되지 못한 상태로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 중.


 - 미군 기지가 현내로 이전할 경우 후보지는 오키나와 섬 중부의 헤노코 해변인데, 이 곳에서는 기지 이전 반대시위가 20년(!!) 가까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시위측에서는 아예 반대시위를 관광상품(!!!)으로 만들어서, '헤노코 시위현장 방문 코스'라든지 '반대구호 부착을 조건으로 한 무료 카누 체험'이라든지 하는 아이디어를 내고 있다고...... 헤노코의 투쟁은 현재 제주도 강정마을에서 진행되고 있는 해군기지 반대 투쟁에도 참고가 되고 있다는 뒷이야기 또한 있습니다.


 - 흥미롭게도 정치적 여론이나 지형에 있어서 오키나와 현 내에서도 오키나와 본섬과 주변 섬 지역간의 차이는 상당히 큽니다. 앞에서 말한 '인두세' 등의 역사적 문제, 그리고 오키나와 전투에서 본섬 외에는 대량학살이 발생한 곳이 없었다는 사정이 더해져 두 지역간의 정치적 차이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본섬을 제외한 곳에서는 현재도 자민당이 강세이며, 오키나와 전투에 대하여도 일본 본토에 상당히 우호적인 해석을 내리고 있는 경향을 보입니다. 심지어 <새역모>의 극우 성향 교과서를 채택한 곳이 있을 정도.


 - 이것만 해도 오키나와의 사정은 상당히 복잡한데, 최근에는 조어도(센카쿠 열도) 문제와 관련하여 난데없이 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고 나서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물론 중국의 주장은 오키나와 주민들조차도 철저히 무시할 정도로 언어도단이긴 하지만, 중국이 내세우는 이유라는 게 류큐 왕국이 중국에 조공을 바치는 번속국(藩屬國)이었다는 것이니 오키나와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오히려 살펴볼 필요가 있는 주장이기는 합니다. 이 논리가 발전하면 과거 중국과 조공무역을 하던 주변의 모든 국가에 대한 정치적 압력 행사로 이어질 여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 오키나와의 역사는 그곳에 사람이 사는 이상 계속 이어질 겁니다. 하지만 오키나와의 역사에 주민들이 그토록 원하는 '평화'라는 두 글자가 새겨질 날은 과연 언제쯤에나 찾아올까요. 그들의 역사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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