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천재소년'으로 세간에 잘 알려졌던 송유근(20)씨가 결국 군입대를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기사] 송유근씨는 2018년 6월 소속 학교인 UST에서 박사학위 최종심사를 받았으나 질문에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등의 사유로 불합격하고, 졸업연한을 초과하여 결국 학위를 따지 못한 채 학교를 나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워낙 유명한 인물이기도 했고, 3년 전 논문 표절 사건으로 크게 시끄럽기도 했던 터라 언론 기사를 비롯하여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는 모양입니다.


 사실 송유근씨는 논문 표절 사건으로 사실상 학자로서의 커리어는 끝난 것이나 다름없고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이 사람을 과연 '천재'라고 부를 수 있을지조차 매우 의심스럽기에 크게 신경쓸 일은 없어야 하겠지만, 여전히 이 사람을 천재로 떠받드는 사회 일반의 여론이 적지 않은 것 같아 이런저런 고민을 하게 됩니다. 도대체 송유근씨는 어떻게 천재가 '되었고' 어떻게 망가졌을까요? 한때 천재라 불리던 소년의 인생을 말아먹은 모든 사태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요?


[송유근]




1. 이것부터 고민해 보자 : 도대체 천재란 게 뭔데?


 다른 나라는 모르겠고,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 천재라는 말은 상당히 남용되고 있는 단어입니다. 이 글을 읽는 분 중에 어릴 적 천재 소리 한 번 들어보지 못한 분 계신가요? ㅡㅡ; 물론 그 용례 중 대부분은 그리 진지하지 않은 의미로 하는 말이겠지만, 자기 자식을 천재라고 철석같이 믿으며 과도한 기대로 자녀를 짓누르는 부모들이 한둘이 아닌 것을 생각하면 이 단어가 어느 정도 잘못 인식되고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그럼 과연 어떤 사람이 '천재'일까요? 임마누엘 칸트는 "예술에 규칙을 부여하는 능력"이 곧 천재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물론 이는 기본적으로 순수예술에 관한 말이지만, 어쩌면 당연하게도 이 말은 인간이 수행하는 모든 일에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블로거가 철학에 조예가 없으므로 더 이상은 깊이 들어가지 않겠지만 ㅡㅡ; 분명한 것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해내고, 이를 정리하여 규칙으로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바로 '천재'라는 것입니다.


[임마누엘 칸트. 따지고 보면 이 사람도 천재]


 칸트의 설명을 따른다면, 천재로 불리기 위해 요구되는 가장 핵심적인 능력은 상상력과 창의력이 될 것입니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머릿속으로 생각해 내고, 이를 완성된 형태로 표현해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흔히 천재라고 부르는 사람들에 대하여도 다른 평가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어린 나이에 아주 어려운 미적분 문제를 풀어내고, 남들이 1문제를 풀 시간에 서너 문제를 쉽게 풀어내는 사람을 과연 천재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 중에서도 칸트의 정의에 부합하는 천재는 당연히 있겠지만, 단순히 '언젠가 할 것을 조금 일찍 하는' 것을 칸트가 정의하는 '천재'라고 보기는 어려울 겁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역사적인 천재들을 생각해 봅시다. 아리스토텔레스, 뉴턴, 가우스, 모차르트, 피카소, 아인슈타인 등등 자기 분야에서 시대를 초월하는 천재로 평가되는 사람들은 모두 새로운 사조나 법칙을 창조하고 이를 후대에까지 관철시킨 인물들입니다. 물론 이들 중 많은 수가 남들보다 빨리 성장했고 우리의 고정관념 속 '천재'의 성향을 가지고 있었음은 엄연한 사실이지만, 단순히 그것 때문에 천재 소리를 듣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개발한 컴퓨터보다 더 빠른 속도로 계산을 했다는 폰노이만 쯤 되면야 인정해 드리지요. 물론 그 역시 매우 다양한 분야에 걸쳐 수많은 업적들을 남겼으니 칸트의 정의에 따른 천재인 것 맞습니다]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사람들에게 천재 소리를 듣는 수많은 어린이들이 성인이 되어서는 그런 사람이 있었는지도 모르게 묻혀버리곤 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사람들이 언젠가 도달할 경지에 아주 이른 나이에 도달했지만, 결국 그 경지를 뛰어넘지 못하고 시간이 지나면 결국 남들도 다 그만큼(혹은 그보다 더 높은)의 경지에 도착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순간 그들은 기껏해야 남들만큼 잘하는 평범한 재능의 소유자로 전락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천재에 대한 정의를 나름대로 해 보았습니다. 그러면 과연 어릴 적부터 천재로 불리던 송유근씨는 어떨까요? 과연 그는 천재가 맞았는지, 그렇게 승승장구하던 사람이 어쩌다 급전직하하고 말았는지 짧게나마 살펴봅시다.




2. 송유근 인생 초기 : 그는 과연 '천재'였는가?


 이젠 이것도 과거형으로 불러야 하겠지요. 어린 시절의 송유근씨는 과연 우리가 말했던 그 말대로 '천재'였을까요? 그가 천재 소리를 듣게 된 것은 대여섯 살 무렵의 어린 나이에 정보처리기사 시험에 최연소로 합격한다거나, 고등학생~대학생이나 손댈 법한 어려운 수학 문제들을 척척 풀어내는 능력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그의 이야기가 TV 등 언론을 타면서(블로거가 검색하기로는 <인생극장>이라고 합니다. 분명 블로거가 봤던 것 같은데 오래되어 기억이 잘) 그는 전국민적 관심을 받는 '천재소년'이 되었습니다.


[저게 무슨 소리인지 이해는 하고 쓴 걸까요?]


 실제로 그는 초등학교를 초고속으로 졸업하고(6세 때 행정소송까지 하며 6학년으로 입학, 졸업) 중졸, 고졸 검정고시를 몇 달만에 광속 패스, 2005년에는 열 살도 안 된 나이에 인하대학교 자연과학대학에 특별전형으로 합격합니다. 1학년 1학기 때 평점 3.8/4.5를 받는 등 블로거가 딱 한 번 받아본 점수를 대학교에서도 준수한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얼마 뒤 "획일적이고 주입식인 대학교육에 흥미를 잃었다"며 학교를 자퇴하고 독자연구를 하겠다는 발표를 하게 됩니다.


 이후 2008년 3월 서울시립대학교 양자컴퓨팅 분야 연구조교로 선임되고, 12월에는 UST(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 석박사 통합 과정에 입학 허가를 받았습니다. 잠깐, 그러면 학사 학위는? 2009년 초에 학점은행제로 땄다고 하네요. 아무튼 11세 때 학사 학위를 따고 대학원까지 들어갔으니 정말 '천재적'인 소년으로 보일 법 합니다. 그러면 그는 과연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천재였던 걸까요?


[형들은_이런_거_있어?.jpgee 그래 있다. 그것도 두 개나]


 우선 한 가지 생각해 볼 지점은 송유근씨가 과학영재들이 일반적으로 거치는 교육과정을 거의 하나도 밟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송씨는 영재올림피아드를 비롯하여 이 땅의 영재들이 경쟁하는 다양한 대회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고, 일반적인 교육기관은 커녕 과학고 등 과학영재를 위한 전문적 교육기관조차 거치지 않았습니다. 대학교 역시 조금 다니다가 자퇴하였으며 앞에 언급한 학점조차 다른 학생들과 별개로 평가를 한 결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송유근씨와 그의 부모가 계속 주장한 대로 한국의 제도권 교육은 과학적 창의력을 길러주는 데 많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주장은 한국의 교육과정을 충실히 거치고 다양한 학문적 업적들을 남긴 수많은 영재들의 존재를 무시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한국 출신의 인물 중 과학분야 노벨상에 가장 근접했던 벤자민 휘소 리(이휘소, 1935-1977)는 당시 제도권 교육의 정점인 경기중학교(현재의 중고등학교 통합)와 서울대 공대(물리학과 전과가 불가능하여 중퇴)를 나왔습니다. 심지어 제도권에 영재교육 개념 자체가 없던 1950년대에!


[이휘소]


 또한 송씨가 주목받던 어린 시절에도 그의 천재성(?)에 의문을 제기할 기회들은 있었으니, 그가 대학교에 입학할 때 자신의 발명품이라고 소개한 물건이 사실 부모가 빌려 온 한 중소기업의 장비였던 것으로 밝혀져 논란을 빚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기사] 모든 일이 마무리된 지금 보자면 "그렇다면 지금껏 보여 온 천재의 이미지도 부모가 만들어 온 허상이 아니었을까?"라는 의문을 제기했어야 하지 않을까 싶지만, 신기하게도 이 사건은 별 반향 없이 묻혔고 송씨는 계속 천재 이미지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과학계에서는 송씨에 대해 우려의 시선들이 있었지만 '국민 천재소년'으로 추앙받고 있던 그에 대하여 대놓고 문제제기를 하기는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언론과 부모가 계속 '천재성을 죽이는 제도권 교육' 프레임을 쌓아가는 마당에 제도권 학계에서 그에 대한 비판은 곧 제도권의 천재 죽이기로 비추일 수밖에 없었겠지요. 그래서 학계 사람들은 대체로 그냥 입을 닫고 "논문 나올 때 두고보자"라는 입장을 취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3. 천재의 몰락 : 알고보니 껍데기였을 뿐


 결국 우려했던 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2015년 송씨가 Astrophysical Journal(ApJ)에 투고한 논문이 표절 판정을 받고 게재 취소 처분된 것입니다. 이 과정을 다 쓰려면 글이 너무 길어지기도 하고 블로거가 상세한 사정을 알지 못하는 부분도 많이 있으니 [링크]를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흥미로운 점이라면 과거 황우석 연구조작 사건과 진행과정이 조금 비슷한데 디시인사이드 과학 관련 갤러리에서 논란이 불거진 점(물론 이 사건은 일베저장소에서 처음 말이 나왔다고는 합니다만), 문제를 제기하는 쪽이 여론의 뭇매를 맞다가 한 방에 사태가 반전되었다는 점 등등.


 아무튼 이 사건으로 송씨는 천재소년으로 불리던 그간의 명성에 치명타를 입었고, 이 논문을 바탕으로 취득하려던 박사 학위도 받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황우석 때와 달리 이 사건은 논란이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할 무렵 신속하게 사태가 종료되어 황우석 사건처럼 사회가 분열되어 개싸움을 한다거나 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렇다 보니 역으로 이 사건의 경과나 그 의미가 잘 알려지지 않아서 아직도 그를 천재소년으로만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기는 합니다. ㅡㅡ;


[응 학위 못 준다]


 문제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는데, 2016년 arXiv(코넬대학교에서 운영하는, 출판 전 논문 등을 자유롭게 공유할 수 있는 사이트)에 송씨가 올린 논문이 또다시 표절 논란에 휩싸인 것입니다. [기사] [최초 문제제기] 뿐만 아니라 송씨와 관련된 연구보고서에 뜬금없이 그의 부모가 연구원으로 등재되어 있다거나, 보고서들이 온통 Ctrl+CV로 점철되어 있다거나[참조] 하는 등 이후로도 그에 대한 논란은 계속됐습니다. 아마 송씨는 물갤을 철천지원수로 여길 듯하다


 기껏 게재한 논문이 잇따라 표절로 드러나고 그 여파로 모든 지도교수가 날아가는 등등, 연구자로서 그는 그야말로 추락에 추락을 거듭하게 됩니다. 그나마 SCI급이나 그에 준하는 학술지에 어찌어찌 논문을 내긴 했던 모양이지만, UST에서 받은 논문 심사에서 심사관의 질문에 대답조차 못 하는 등 기본조차 안 된 모습을 보이며 결국 박사학위를 받을 마지막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 누구보다 빠르게 대학교와 대학원에 들어간 사람이 결국 기한초과로 학위 취득에 실패하다니, 어딘가 의미심장하지 않나요?


[졸업한다고는_하지_않았다.fact]


 박사 학위는 기본적으로 자기 분야에서 자신만의 새로운 학설을 만들 능력을 가진 사람에게 부여됩니다. 그러니 (다른 논문도 물론 마찬가지지만) 박사학위 논문을 베낀다는 건 그야말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인 겁니다. 물론 한국의 대학원에서는 그 상상도 못할 일이 꽤 흔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 안타까운 사실이긴 합니다만 문도리코라든지 문도리코라든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전국민의 주목을 받아온 학생이 철저한 검증의 대상이 될 논문을 그렇게 복붙 수준으로 베껴서 냈다? 이걸 도대체 어떻게 해석하면 되겠습니까. 


 이쯤 되고 나서는 그가 어린 시절에 TV에서 보여준 문제풀이나 공식 유도같은 자료들도 죄다 분석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대체로 '저건 식 자체를 외워서 외운 그대로 쓴 것이지 문제를 이해하고 푼 것이 전혀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송씨는 어린 시절에도 뭔가를 기억하는 암기력만 뛰어났지, 그게 뭔 소리인지 이해하는 능력은 전혀 없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슈뢰딩거 방정식을 모르는 블로거가 보기에도 저건 그냥 여러 변수들을 무의미하게 이리저리 돌려가며 장난친 것으로 보입니다. 블로거가 예전에 저러다가 문제 많이 틀렸는데]


 결국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그가 TV같은 데 나와서 어려운 수학 문제 몇 개쯤 베껴쓰는 푸는 것, 그리고 지도교수 논문을 그대로 오려붙여서 논문이랍시고 내는 것 외에는 무언가 결과를 남긴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여기까지 와서 보면 송씨가 과연 자신의 노력으로 무언가를 완료할 역량과 의지가 있기는 한가 싶기까지 합니다. 학자 인생에 평생 따라다닐 학위논문조차 지도교수의 것을 복붙하는 지경이래서야, 어디 그가 자기 머리로 논문은 커녕 번듯한 레포트 한 장이라도 제대로 쓸 능력이 있을지 의문입니다. 그래도 천재 소리 듣던 사람이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된 걸까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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