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송유근은 왜 이렇게 되었나 : 육성전략의 대실패


 우선 송유근씨가 어릴 적 우리에게 보여준 것들에 대하여 고민해 봅시다. 송씨가 처음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6세 때 정보처리기능사 자격증 시험에 합격하면서부터입니다. '정보처리기능사' 자격증은 정보기술 분야의 가장 기초적인 자격증 중 하나로, 2017년경 시험 난이도가 상승하여 요즘엔 조금 다르지만 그 이전에는 합격하기 정말 쉬운 시험이었다고 합니다. 관련 전공자는 공부가 거의 필요 없을 수준에, 비전공자라도 짧으면 며칠 준비해서 붙을 수도 있는 시험이라고 하는군요.


 특히 문항이 문제은행식으로 출제되고, 2016년 이전에는 실기시험도 객관식(!)으로 출제될 정도였다고 하니 그 난이도를 짐작할 만 합니다. 이러다 보니 군인들이 포상휴가를 노리고 상당히 많이 준비하는 자격증이기도 하고(준비에 드는 노력이 적기 때문에), 나이 어린 사람들이 도전하여 합격하는 사례도 종종 있는 모양입니다. 당장 송씨가 합격한 그 해에 7세 아동이 이 시험에 합격한 다른 사례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기사]


[정보처리기사 자격증 필기시험 문제 예시]


 난이도보다 주목할 지점은 그 공부 방식인데, 블로거가 찾아본 바 이 시험은 기출문제를 열심히 풀어보는 데서 상당 부분 성패가 갈립니다. 즉 기출문제를 최대한 많이 암기하는 능력이 중요한 시험이라는 겁니다. 이것이 송씨가 가진 '재능'의 실체를 파악하는 중요한 키워드가 됩니다. 송유근씨는 뛰어난 '암기력'을 어릴 적부터 소유하고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훗날 사람들에 의하여 분석된 그의 어릴 적 모습을 보면 실제로 그렇습니다. 송씨가 방송에 나와서 어려운 미적분이나 물리학 법칙을 술술 풀어내는 모습은 얼핏 보면 대단해 보이지만, 사실 이는 그 수식이나 법칙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암기'해서 칠판에 베껴 쓰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즉 그는 발군의 암기력을 소유하고 있었지만, 과학적 사고에 필요한 이해력이나 창의력 등에 있어서는 다른 어린이들보다 딱히 나을 것도 없었다는 해석이 가능합니다(물론 또래 평균보다는 높았을 가능성이 높지만요).


 여기서 비극이 시작됩니다. 사실 뛰어난 암기능력은 오히려 한국의 제도권 교육에서 더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아마 송씨가 초등학교에 제대로 입학하여 정상적인 교육과정을 모두 밟았다면 시험점수가 매우 우수한 '우등생'이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엘리트 영재들이 밟는 과정까지는 몰라도 상당히 순탄한 코스를 밟아 소위 명문대 진학은 무난하게 했을 겁니다. 물론 그래서야 지금처럼 유명인사가 될 일 따위는 없었겠지만, 사태가 이 지경이 되고서야 차라리 이런 평범한 삶이 낫지 않았을까요?


[앞에서 언급했듯이 저 '발명품'은 한 기업의 제품을 그냥 가져온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송씨는 저 기계의 작동 원리를 이해는 하고 있었을지]


 송씨에게 닥친 비극은 바로 주변 사람들(특히 그의 부모)이 송씨의 '재능'을 잘못 분석했다는 데 있습니다. 아마 그들은 수식을 잘 외우고 주어진 문제를 잘 푸는 능력이 위대한 과학자의 덕목이라고 착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송씨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정상적인 경로를 거부하고, 자꾸만 송씨에게 부재한 '창의적 사고'를 요구하는 길로 그를 몰아갔던 것입니다. 그 길에 그런 능력이 요구된다는 것을 몰랐던 건 물론이고 말입니다.


 그 결과 송씨는 정상적 교육과정을 통하여 일반적 능력을 기를 기회를 싸그리 날려먹었고, 그렇다고 진정한 창의적 사고력을 기를 기회조차 제대로 가지지 못했습니다. 결국 2018년 '성인'이 된 송씨는 사회인이 가져야 할 사고능력과 덕목을 하나도 제대로 키우지 못한 채, 그저 온갖 지식의 파편들만 녹음기마냥 읊어대는 깡통으로 자라났던 것입니다.




5. 송유근을 둘러싼 여론과 언론의 뒤틀린 시선


 여기서 단순히 '영재가 될 수도 있었던 한 어린이를 잘못 육성'한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면 그냥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고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송유근이라는 개인의 문제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를 대하는 사회의 자세가 심하게 뒤틀려 있(었)고 거기에는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가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블로거가 글을 쓰게 만든 결정적인 계기가 이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먼저 짚고 싶은 문제는 그를 일종의 '연예인'으로 만든 언론의 작태입니다. 송씨가 처음 정보 관련 자격증을 획득하고 그 부모가 자식을 초등학교에 보내지 않겠다고 설치던 때는 2004년 무렵이지만 이 시기에는 그냥 '그런 아이가 있다' 정도로만 가볍게 언급되곤 했습니다. 그러던 송씨가 갑자기 전국민의 관심을 받고 천재소년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 것은 2005년 <인간극장> 출연이었습니다. 당시 방송 제작진은 실제로는 별 것 없던 송씨를 무지막지하게 '포장'하여 '천재소년'이라는 하나의 '상품'으로 둔갑시켰습니다.


[방송에서 송씨를 어떻게 포장했는지 잘 보여 주는 사진 하나. 사진에서 등장하는 수식은 이차방정식 x^2-12x+36=0 인데, 생판 틀린 풀이법으로 문제를 풀고 있습니다]


 이후 송씨는 이곳저곳 방송에 불려다니며 유명인이 되었습니다. 방송국과 언론사는 그에게 쏠린 대중의 시선을 통하여 쏠쏠하게 돈을 벌었겠지요? 사실 언론의 입장에서는 송씨가 진짜 천재인지 아닌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마치 연예인들의 이미지와 실제 삶이 어떻게 다른지 상관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즉 송씨는 철저하게 '천재 이미지를 가진 연예인'으로 만들어졌던 것입니다. 부모는 이를 인지하고 이용하려고 했을까요? 아니면 정말 자기 아들이 천재라고 생각했을까요? 아마 둘 모두가 아니었을까 조심스레 추측해 봅니다.


 그럼 이를 접하는 대중은 왜 그에게 열광하고 맹목적인 지지를 보냈을까요? 사실 송씨가 방송에 나온 것과 같은 '천재'가 아니라는 것은 학계나 교육계에서는 꽤 많이 언급되어왔고, 그가 통상적 교육과정을 계속 건너뛰는 것에 대하여도 많은 우려가 제기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우려가 대중에게 전달되지도 않았을 뿐더러, 이를 접해봐야 대중은 "제도권 교육이 천재를 죽이려 든다"라며 기존 교육계에 비난을 퍼붓기 일쑤였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한국의 교육에 대해 사람들이 가진 뿌리깊은 불신 때문일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국의 교육과정을 성인이 되기까지 밟아왔지만 정작 그 교육과정과 체제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이것에 대하여 분석하려면 글이 하나 더 필요하겠지만 - 여기서 주목할 지점은 한국의 교육체제가 마치 절대악인 것마냥 취급하는 사고가 알게 모르게 사회에 만연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송씨에 대한 기존 교육계의 우려가 '꼰대들의 꼰대질' 이상으로 인식되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이는 이러한 인식을 지금껏 해소하지 못한 교육계에도 책임이 있겠지만, 그와 별개로 교육계의 지적이 합리적인 것이었음을 생각하면 송씨 문제에 있어서는 사태를 악화시키는 데 큰 기여를 하고 말았다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는 송씨가 군입대를 하게 된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아직도 송씨를 천재소년으로 떠받드는 사람들이 적지 않지요.


[황우석씨는 과학에 대한 사람들의 무지와 비뚤어진 애국심을 교묘히 활용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언급할 것은 대중의 무지와 비뚤어진 애국심입니다. 대중은 송씨에 대한 언론의 '허술한' 포장조차 제대로 걸러내지 못하였습니다. 슈뢰딩거 방정식이니 상대성 이론이니 하는, '뭔 소리인지 모르지만 하여튼 어려워 보이는' 소리들에 대하여 사람들은 자신이 모르는 것에 대해 아무 말이나 떠드니 똑똑한 사람일 것이라고 지레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상술했듯이 사람들이 그의 허상을 파악할 수 있는 식자(識者)들을 무턱대고 배척한 것에는, 어려운 이야기에 대한 막연한 공포 또한 어느 정도 작용했습니다.


 그리고 송씨를 민족의 영웅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비뚤어진 애국심(?) 또한 무시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의 열광에는 그가 세상을 호령하는 천재가 되어 사회와 그 구성원들을 잘 먹고 잘 살게 만들어 주기를 바라는 '위인전 감성'이 숨어 있습니다. 차라리 종교에 가까운 이 심리 때문에, 여론은 송씨를 비판하거나 걱정하는 목소리를 마치 반사회적 망동인 것처럼 취급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그가 '뜨던' 시기 한국 사회를 들끓게 한 황우석 사태와도 통하는 바가 많습니다. 글쎄, 10년 넘게 지난 지금은 뭔가 좀 다를까요?




6. 정리 : 다시는 이런 사람이 나타나지 말아야 한다


 우선 '송유근 사태'의 최대 피해자는 누가 뭐래도 송유근씨 본인입니다. 사회에 도움이 될 유능한 인재가 될 수도 있었을 가능성이 주변 사람들과 대중의 비뚤어진 의도와 욕심 때문에 자라나지 못했고, 마치 그것이 당연한 것인 양 인식하며 성장할 수밖에 없었으니 이제는 자신에게 뭐가 문제인지도 모르게 되어 버렸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이미지 메이킹은 그가 어렸을 때는 통했을지 모르지만 진정한 지적 능력이 필요한 대학원 단계에서는 더 이상 통하지 않았고, 결국 뭐든지 빨랐던 그는 남들보다도 더 시간을 소모하고도 박사학위 하나 따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삶은 우리 사회 전체에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위에 언급하였듯이 이 사태에는 자극적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으려는 언론의 돈벌이 전략과 거기에 무비판적으로 낚이는 대중들, 사회 전반에 만연한 과학에 대한 무지, 지성에 대한 반감, 그리고 비뚤어진 애국심까지 온갖 다양한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습니다. 그래서 송유근씨의 문제는 그 개인의 문제를 넘어 우리 사회의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이는 어쩌면 전세계적인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유럽에서는 극단주의 정당이 세를 불리고 있으며, 도날드 트럼프는 미국 대중의 반지성주의를 잘 이용하여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그 자신이 어떤지는 차치하고 말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송유근씨와 같은 '만들어진 천재'들은 다시는 나와서는 안 되며 이러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사회 전체의 반성이 필요하다 하겠습니다. 이처럼 천재를 '만들고' '소비하는' 행태는 사회 전반에 반(反)지성주의를 뿌리깊게 만들고, 이는 한 사회의 과학적 역량을 고갈시킬 뿐 아니라 인문학적 사고 또한 부진하게 만듭니다. 이미 문제는 현실화되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공계 대학원이 텅텅 비어가고 인문학적 사유 또한 하지 않는 사회, 어쩌면 지금 우리 자신들의 모습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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