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is Pasternak (1890-1960)

Piano Sonata in b minor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는 <닥터 지바고>로 유명한 소설가이자 시인으로, 195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한때 음악가 지망생이었고 심지어 꽤 재능도 인정받았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요. 철학자, 대통령, 왕을 언급하였으니 이번에는 대문호의 음악세계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파스테르나크는 1890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출생하였는데, 그의 아버지 레오니트 파스테르나크(1862-1945)는 유대계 출신으로 톨스토이와 레닌의 초상화를 그린 적이 있을 만큼 러시아에서 꽤 저명한 화가였으며 어머니는 역시 유대계 피아니스트 로자 카우프만(1867-1939)였습니다. 부모의 영향으로 그의 집안은 상당히 문화적 분위기 속에서 살았는데 그의 부모는 일찍이 톨스토이의 사상운동에 동조하였고, 그의 집에는 톨스토이 뿐 아니라 릴케, 라흐마니노프 등 당대를 대표하는 예술가들이 자주 드나들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성장 환경 속에서 파스테르나크는 자연스럽게 예술가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가 처음 지망했던 길은 문학이 아닌 음악이었는데, 이는 물론 어머니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그의 이웃에 살았던 알렉산드르 스크리아빈의 영향 역시 컸던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재능도 있었던지 그는 1904년 모스크바 음악원에 입학하여 약 6년 정도 음악을 전공하였고 이 때 스크리아빈을 사사하였습니다(여담으로 그의 아버지는 스크리아빈의 초상을 그려 준 적도 있다고 하네요).

 

 그런데 1910년 그는 돌연 모스크바 음악원을 자퇴하였고, 이후 다시는 음악가로 활동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왜 갑자기 음악을 그만두었는지는 불분명한데 아마도 소심한 그의 성격과 연관이 있었지 않나 추측됩니다. 파스테르나크의 자전적 에세이에 따르면 그는 자신의 자작곡을 스승 스크리아빈에게 들려주는 것도 어려워하였으며 스승이 보기에 별 쓰잘 데 없는 부분까지 고민하고 걱정하곤 하였다고 합니다. 거기에 당시 그는 스크리아빈의 영향으로 신비주의 사상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런 여러 요소들이 결합하여 점차 그의 자신감을 잃게 만들지 않았겠느냐는 것입니다.

 

 어쨌거나 음악을 그만둔 파스테르나크는 철학으로 전공을 바꾸어 모스크바 대학교에서 수학하고, 1912년에는 독일 마르부르크 대학으로 유학하여 헤르만 코헨(1842-1918) 등에게서 신칸트주의 철학을 배웠습니다. 처음에는 철학자가 되기 위해 유학을 한 것이었지만 그는 결국 그것마저 포기하고 이듬해 귀국,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이후 그가 혁명과 두 차례의 세계대전, 숱한 정치적 논란과 압박 속에서 세계적인 대문호로 인정받게 된 것은 익히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스크리아빈을 사사하였고, 당시 사상적으로도 큰 영향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겠지만 음악을 공부하던 시기에 만들어진 그의 음악 작품들은 전반적으로 스크리아빈의 그것과 비슷한 신비주의적 색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특징은 1909년 만들어진 피아노 소나타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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