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is Moreau Gottschalk (1829-1869)

<Souvenir de Porto Rico>



[루이스 모로 고트샬크]


 - 고트샬크는 미국 출신의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로, 미국 출신으로는 거의 최초로 국제적 명성을 얻은 음악가이기도 합니다. 그는 뉴올리언스에서 출생하였는데 아버지는 영국 출신의 유대인 기업가였고, 어머니는 이 지역 출신 크리올(아메리카에서 태어나 자란 스페인계 백인)이었다고 합니다. 훗날 재즈의 발상지가 되었던 데서 알 수 있듯이 뉴올리언스는 다양한 음악적 문화가 공존하는 곳이었고, 고트샬크는 이런 분위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 그는 이미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에 특출난 재능을 보인 것으로 보입니다. 1840년 11세 때 뉴올리언스에서 피아니스트로 데뷔한 고트샬크는 2년 후 유럽으로 유학하여 파리음악학교에 입학하려고 했지만 그의 국적을 이유로 입학을 거절당했습니다(요즘 기준으로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당시 미국은 문화적으로는 유럽에게 개무시를 당했다고). 그래도 여기서 그는 베를리오즈에게 음악을 배우고 쇼팽, 리스트, 알캉 등 당대 굴지의 음악가들과 교류할 수 있었습니다.


 - 실제로 그는 위의 거장들에게 매우 높은 평가를 받았던 것으로 보이는데, 일례로 쇼팽은 그의 재능을 두고 "피아노의 왕이 될 것이다"라는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는군요. 유럽에서 활동하던 그는 1853년 미국으로 돌아왔고, 이후 신대륙을 대표하는 피아노 연주자로 전 대륙을 떠돌며 활동하였습니다.


 - 그의 재능은 누구나 인정할 만한 것이었지만 그의 인생은 내내 떠돌이로 점철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1865년에는 오클랜드 여성신학교의 학생과 스캔들을 내고 아예 미국을 떠나버리는 등 사생활도 썩 깔끔하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을 떠난 고트샬크는 주로 중남미 쪽에서 활동하였는데 이 때 중남미 특유의 음악 경향을 받아들여 자신의 음악세계를 더욱 발전시켜 나가기도 하였습니다.


 - 그렇게 떠돌이 인생을 살던 고트샬크는 1869년 브라질에서 활동하던 도중 황열병에 감염되고, 얼마 뒤 사망하였는데 키니네(퀴닌) 과다 복용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푸에르토리코의 추억>은 1857년 작곡되었으며, 그가 카리브 해의 섬들을 돌아다니며 활동하던 시기에 들은 음악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시편 12편 (개신교 개역개정판) : 


 -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여덟째 줄에 맞춘 노래 -

1. 여호와여 도우소서 경건한 자가 끊어지며 충실한 자들이 인생 중에 없어지나이다

2. 그들이 이웃에게 각기 거짓을 말함이여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으로 말하는도다

3. 여호와께서 모든 아첨하는 입술과 자랑하는 혀를 끊으시리니

4.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의 혀가 이기리라 우리 입술은 우리 것이니 우리를 주관할 자 누구리요 함이로다

5. 여호와의 말씀에 가련한 자들의 눌림과 궁핍한 자들의 탄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제 일어나 그를 그가 원하는 안전한 지대에 두리라 하시도다

6.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기나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

7. 여호와여 그들을 지키사 이 세대로부터 영원까지 보존하시리이다

8. 비열함이 인생 중에 높임을 받는 때에 악인들이 곳곳에서 날뛰는도다



한국어판 가사 (<칼빈의 시편찬송가> 시편찬송가 편찬위원회, 진리의깃발, 2009) :


1. 여호와 주여 도와주옵소서 / 경건한 자 끊어지리이다

충실한 자들 없어지나이다 / 인생 중에 없어지나이다


2. 그 이웃에게 아첨하는 입술 / 두 맘으로 거짓을 말하니

주께서 모든 아첨하는 입술 / 자랑하는 혀 끊으시리다


3. 우리의 혀가 이기리라 말해 / 우리 입술 우리의 것이니

우리를 주관할 자 누구리요 / 주관할 자 누구요 함이라


4. 여호와 말씀 가련한 자들의 / 그 눌림과 궁핍한 자들의

그 탄식 인해 내가 일어나서 / 그 안전한 지대에 두리라


5. 여호와 말씀 순결하심이여 / 흙 도가니 일곱 번 단련한

은과도 같네 은과 같으리다 / 그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네


6. 여호와 그들 지켜주시어서 / 지금부터 영원히 보존해

비열한 자들 높임 받는 때에 / 악인들이 곳곳에 날뛰네


(가사 출처 : http://blog.daum.net/hwang6710/)




시편 11편 (개신교 개역개정판) : 


 -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

1. 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 너희가 내 영혼에게 새 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 함은 어찌함인가

2. 악인이 활을 당기고 화살을 시위에 먹임이여 마음이 바른 자를 어두운 데서 쏘려 하는도다

3.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하랴

4. 여호와께서는 그의 성전에 계시고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의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의 안목이 그들을 감찰하시도다

5. 여호와는 의인을 감찰하시고 악인과 폭력을 좋아하는 자를 마음에 미워하시도다

6. 악인에게 그물을 던지시리니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이 그들의 잔의 소득이 되리로다

7. 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의 얼굴을 뵈오리로다



한국어판 가사 (<칼빈의 시편찬송가> 시편찬송가 편찬위원회, 진리의깃발, 2009) :


1. 여호와 주께 내가 피하였네 / 너희가 내 영혼에 말하길 / 그들의 산에 도망하라 하네

악인이 화살 당겨 쏘기를 / 마음이 바른 자를 쏘려 하네

어두운 데서 쏘려고 하네 / 터 무너지면 의인 무엇하랴


2. 여호와 주는 성전 안에 계셔 / 여호와 보좌 하늘에 있네 / 여호와 눈이 인생을 통촉해

여호와 안목 그들 감찰해 / 여호와 의인 감찰하시오며

악인과 폭력 좋아하는 자 / 마음에 미워하시옵나이다


3. 주께서 악인에게 그물 던져 / 유황과 불과 태우는 바람 / 그들의 잔의 소득이 되리라

여호와 주는 의로우시사 /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주의 얼굴을 / 여호와 주의 얼굴 뵈오리다


(가사 출처 : http://blog.daum.net/hwang6710/)




Dieterich Buxtehude (1637?-1707)

Passacaglia in d minor, BuxWV 161



[비올을 연주하는 북스테후데. 생전의 그를 그린 유일한 그림]


 - 북스테후데는 17세기 북부 독일을 대표하는 음악가로, 특히 오르간 연주자와 작곡가로 이름이 높았습니다. 그의 초년에 대하여는 기록이 부족한데(그래서 출생년도가 불분명) 일단 출생지는 스웨덴(당시에는 덴마크령)의 헬싱보리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아버지가 교회 오르간 연주자였기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오르간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 아버지의 뒤를 이어 헬싱보리 성 마리아 교회의 오르간 연주자로 일하던 북스테후데는 1668년 뤼베크로 이주하여 성 마리아 교회의 오르간 연주자로 일하게 되었는데, 이 교회는 당시 크고 아름다운 대형 오르간과 소형 오르간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프란츠 툰더(1614-1667)의 후임자로 부임한 그는 툰더 시절에 시작된 '저녁 음악회(Abendmusik)'를 발전시켜 큰 인기를 끌었고, 오르간 연주자로도 전 유럽에 명성을 떨쳤습니다.


 - 그런데 이 자리는 한 가지 관습이 있었으니 전임자의 딸과 결혼을 해야 했습니다. ㅡㅡ; 북스테후데 역시 부임 이후 툰더의 딸과 결혼하였는데, 7명의 딸을 낳았다니 금슬은 좋았던 모양입니다. 이후 북스테후데는 남은 평생을 뤼베크에서 활동하며 많은 작품을 남겼고, 많은 제자를 두어 후학 양성에도 힘썼습니다. 그리고 당대의 유명 음악가들과도 교류하였는데 그 중에는 요한 파헬벨(1653-1706, 카논 변주곡의 원작자)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 수십 년이 지나 그가 노년이 되자 후임자 선정이 이슈가 되었는데, 이 무렵 헨델(마테존과 함께)과 바흐가 각각 1703년과 1705년에 그를 방문한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특히 바흐는 자신이 일하던 아른슈타트의 교회에서 4주간 휴가를 얻어 400km나 떨어진 뤼베크로 왔는데, 북스테후데의 연주에 큰 감명을 받았는지 복귀를 늦추고 4달 동안이나 머무르며 그와 교류하였습니다.


 - 북스테후데는 헨델과 바흐의 재능을 알아봤는지 후임자 자리와 함께 자신의 큰딸과 결혼할 것을 제안했는데, 큰딸을 본 두 사람은 하나같이 제안을 거절하고 도망쳐 버렸다고 합니다. ㅡㅡ; 음...... 결국 그는 큰딸의 혼사를 보지 못하고 사망하였고, 얼마 뒤 요한 쉬페르데커(1679-1732)가 큰딸과 결혼하면서 그의 자리를 물려받는 것으로 정리되었습니다.


 - 당시의 음악가들이 으레 그렇듯이 북스테후데 역시 다양한 장르에 수많은 곡을 썼는데, 그가 쓴 것으로 알려진 작품은 300여 곡 정도가 있지만 현재 남아 있는 것은 250곡 정도입니다. 그나마 후대의 작곡가들(바흐 등)이 그의 작품의 필사본을 많이 만들어 놓아서 이 정도라도 전해질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의 작품은 대체로 종교 음악이며 초기 바로크에 가까운 간결한 형식이 특징입니다. 파사칼리아 d단조는 그가 쓴 유일한 파사칼리아입니다.



롤러코스터 타이쿤 : 루피 랜드스케이프 - (18) Thunder Rocks


 "놀이공원의 기초가 될 두 개의 커다란 바위가 사막의 모래 위에 솟아 있습니다."

 목표 : 관람객 1500명 (3년) / 놀이공원 등급 600



 - 어딘가 익숙하지요? 오리지날 마지막 시나리오였던 Thunder Rock의 공원에서, 뒤편에 새로운 바위산 하나를 덧붙인 모양입니다. 오리지날 때처럼 앞의 바위만 개발하는 방법이 있고, 과감하게 양쪽을 다 함께 개발하는 방법이 있는데 블로거는 단계적 개발 모델을 선택하기로 하였습니다.



 - 두 바위 사이에는 마치 운송수단처럼 만들어진 버티컬 코스터가 있습니다. 다만 실제로 관람객들이 이걸 운송수단으로 취급하지는 않기 때문에, 뒤쪽 바위에 사람들이 갇히는 꼴을 방지하려면 이것 외에 다른 연결수단을 설치해야 합니다. 일단 한쪽만 개발할 것이기 때문에 반대편 바위에 있는 정거장은 철거하기로 하였습니다.



 - 일단 개발은 입구쪽 바위부터 하기로 합니다. 여담으로 블로거는 입구 바깥쪽 도로와 같은 색깔의 도로를 사용하는 것을 선호합니다.



 - 전반적인 개발 방법은 오리지날 때와 유사합니다. 입구와 체어리프트 주변부터 소소한 놀이기구를 채워 나갑니다.



 - 바위 위쪽에는 우선 짧은 트랙의 롤러코스터를 하나 설치하기로 합니다. 스틸 미니 코스터를 역방향 셔틀 모드로 지어 보았습니다.



 - 자 물론 블로거는 한쪽 바위만 개발할 생각은 없기 때문에(그럼 오리지날 시나리오와 다를 게 없으니까요) 반대편 바위 쪽으로 넘어가는 도로를 조금씩 건설하기로 합니다. 높은 곳에서 내려가는 도로를 건설해야 해서 지형 건드리는 비용이 많이 깨졌습니다.



 - 그래도 양 바위 사이에는 건설권이 꽤 넓게 설정되어 있습니다. 이곳에 도로를 지어 양쪽을 연결하면 될 것 같습니다.



 - 이런 짓들을 하다 보니 어느 새 돈이 부족해졌습니다. 일단 급한 대로 반대편 바위에 남아 있는 도로를 뜯어서 돈을 보충합니다.



 - 지하에는 역시 탄광 코스터가 어울릴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여기는 사막 주제에 비가 은근히 자주 내립니다. ㅡㅡ;



 - 바위 주변으로 도로를 연장하여 놀이기구를 짓는 것도 오리지날 때와 유사합니다.



 - 이것도 마찬가지. 오리지날 때도 바위 위에 리버 래피드나 후룸라이드를 지었던가요 아마?



 - 이제 조금씩 반대쪽으로 건너갈 준비를 시작합니다. 바위 위쪽으로 연결하는 길만으로는 부족하니 바위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지하도를 건설하였습니다.



 - 이 번지드롭(런치드 프리폴)은 아래 지름길에 이어지도록 만들었는데, 그렇게 해 놓으니 위쪽에 평소처럼 도로를 덮을 수가 없습니다. ㅡㅡ;(도로 역시 높이 제한이 있습니다)



 -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조경을 활용하여 대충 덮어주기로 합니다.



 - 드디어 반대편 바위로 건너왔습니다. 언덕 위쪽으로 올라가는 도로를 이어 줍니다(이것도 일입니다).



 - 아니 여기서 제트스키를 도대체 어디에 지으라고 ㅡㅡ;



 - ATM 코스터는 단순히 돈벌이 뿐 아니라 관람객을 모으는 데도 도움을 줍니다. 순환률도 빠르고, 이러나 저러나 롤러코스터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좋아하거든요. 버티컬 코스터 역시 원래대로 정거장을 재건해 줍니다.



 - 도로가 복잡해질 수밖에 없는데다 이쪽 바위는 입구와 거리도 멀기 때문에, 도로를 최대한 다양한 방향으로 지어 줄 필요가 있습니다. 반대편에 내려가는 길도 하나 짓습니다.



 - 물론 첫 번째 바위 역시 버려두지는 않습니다. 아직 개발할 공간이 좀 있으니 잡다한 놀이기구를 설치해 주기로 합니다.



 - 물론 반대편 바위는 계속 개발 중. 어울릴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예쁘게 꾸며도 봅니다.



 - 우든 트위스터 코스터가 개발되었습니다. 반대편 작은 바위에 우겨넣을 수 있을까요?



 - 다행이 성공적으로 건설이 되었습니다.



 - 건설에 정신 팔리다 보니 관람객 수가 적은 것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아무래도 지금부터는 광고를 계속 돌려 주어야겠군요.



 - 도로가 길다 보니 필연적으로 상점이 부족해 보이게 됩니다.



 - 반대편 바위 위쪽도 어느 정도 개발이 되어 갑니다.



 - 양쪽 바위를 이어 주는 운송수단을 하나 깔아야 할 것 같은데, 저 높이에 건설할 수 있는 건 사실상 체어리프트 정도밖에 없습니다. ㅡㅡ; 그래도 이런 상황에는 체어리프트가 상당한 위력을 발휘합니다.



 - 역시 마케팅의 힘은 대단합니다.



 - 이제는 빈 공간을 찾아 놀이기구를 마저 채워주다 보면 시간이 다 될 것 같습니다.



 - 그렇게 뭔가 멋있(?)어 보이는 공원이 만들어졌습니다. 다음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롤러코스터 타이쿤 : 루피 랜드스케이프 - (17) Frightmare Hills


 "거대한 중앙 장식 코스터가 있는 무시무시한 공원"

 목표 : 관람객 1500명 (3년) / 놀이공원 등급 600



 - 인버트 코스터 하나가 주어져 있는 공포 분위기의 공원입니다.



 - 주어진 롤러코스터의 등급은 이렇습니다. 격렬도가 말 그대로 공포스럽네요. 격렬도가 10이 되는 순간 흥미도가 추락하니 아슬아슬합니다.



 - 일단 도로 중간에 조그만 상점가들을 설치해 줍니다.



 - 그리고 입구 쪽으로부터 도로를 연장해줍니다. 인버트 코스터가 있는 중앙부를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공원이 넓고 빈 공간도 많습니다.



 - 전반적으로 공원 조경은 칙칙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깨끗해 보이나 봅니다.



 - 보트 놀이기구를 설치해 줍니다. 하나는 물 위로, 하나는 산 위로 올라갔습니다(?).



 - 그렇게 기반을 대강 잡은 후 우든 트위스터 코스터를 근사하게 하나 지어 보았......는데 흥미도가 좀 불만스럽습니다. 고민 끝에 그냥 쓰기로 합니다.



 - 공원이 넓으니 도로 연장을 부지런히 해 줍시다.



 - 이런 컨셉에는 역시 유령의 집을 지어야겠지요. 식품 상점 중에는 도넛 가게 뿐 아니라 칰느님도 선택할 수 있습니다.



 - 마우스 코스터를 지어 보았습니다. 등급도 그냥저냥이고 소인승 코스터의 특성상 순환률이 좀 떨어지는 편이니



 - 돈벌이용으로 발진 코스터도 하나 지어 줍니다.



 - 우든 코스터 건너편으로 넘어갔습니다. 피자같이 생긴 엔터프라이즈와 등대같이 생긴 미끄럼틀을 짓습니다.



 - 그리고 오랜만에 유령 기차를 한 번 지어봅니다. 유령 기차는 롤러코스터 마냥 내리막에서 속도가 빨라지고, 속도를 줄이지 않으면 커브에서 튕겨나가기 때문에 반드시 브레이크를 적절한 곳에 설치해야 합니다.



 - 아니 이런, 신경을 못 쓰는 사이에 깡패질을 하는 관람객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바로 찾아보았지만 범인을 잡지는 못했습니다.



 - 자이로드롭을 지은 후 그 위쪽을 상점가와 휴식장소로 꾸며 줍니다.



 - 다른 쪽에 있는 런치드 프리폴 역시 비슷한 구도로 만들었습니다.



 - 1년 남았는데 벌써 관람객이 이만큼 모였습니다. 사실 정신줄만 놓지 않는다면 3년에 1500명 모으는 건 일반적인 시나리오에서는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 이번에 지은 것은 서스펜드 루핑 코스터입니다. 어디선가 본 바로는 이 녀석과 인버트 코스터는 그냥 만든 회사만 다른 수준의 차이라고 하던데 실제로도 모양만 살짝 다르고 전반적으로 큰 차이는 없습니다(인버트 코스터 쪽의 특수 트랙이 좀 더 화려하긴 합니다).



 - 공원 등급이 좀 낮아져서 관람객의 반응을 살펴보았습니다. 전반적으로 상점이 좀 부족하지 않나 싶습니다.



 - 리버스 프리폴 코스터입니다. 루피랜드스케이프의 시나리오들은 공원 크기가 큰 경우가 많아서 이런 형태의 롤러코스터를 짓기 좋지요. 그나저나 이런 롤러코스터가 한국에도 있다면 한 번 타 보고 싶긴 합니다.



 - 관람차를 건설하고 그 주변을 나무로 꾸며 줍니다. 이렇게 해야 관람차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건 다들 아시지요?



 - 아까는 여유 있다고 좋아했는데 관람객이 1400명에서 늘지를 않고 있습니다. ㅡㅡ; 어쩔 수 없이 광고를 열심히 때리기로 합니다.



 - 플라잉 코스터는 트랙을 적어도 한 번 이상은 뒤집어 줄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도 한국에 있다면 한 번 타 보고 싶은데요.



 - 남은 시간에 건설할 마지막 롤러코스터로 측면 마찰 코스터를 선택해 보았습니다. 노력 끝에 이번에는 꽤 크고 아름다운 트랙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렇게 해도 흥미도 올리는 건 쉽지 않습니다. ㅡㅡ;



 - 사실 이 녀석도 건설해 보고 싶었는데...... 시간이 어느 새 다 되어 그냥 포기하기로.



 - 그렇게 클리어. 다음 시나리오로 넘어가겠습니다.




Alexander Nikolayevich Scriabin, Алекса́ндр Никола́евич Скря́бин (1872-1915)

Symphonic Poem(Symphony No. 4) <The Poem of Ecstasy> Op. 54



[알렉산드르 스크랴빈]


 - 스크랴빈은 러시아 모스크바 출신의 작곡가 겸 피아노 연주자입니다. 어머니 또한 피아노 연주자였는데 스크랴빈을 낳고 얼마 뒤 사망하였고, 어린 시절에는 할머니와 숙모에게 양육되었습니다. 숙모 또한 아마추어 연주자였으며 그는 숙모를 통해 음악을 처음 접할 수 있었습니다. 1882년 10대에 접어든 스크랴빈은 군사유년학교에 입학하여 1889년까지 군사교육을 받았지만, 몸이 작고 약했기 때문에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합니다.


 - 일단 유년학교 시절에도 스크랴빈은 음악교육을 계속하였는데, 특히 피아노 연주에서 발군의 실력을 드러내어 모스크바 음악원에 입학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음악원 연주회에 참여할 정도였다는군요. 결국 그는 군사유년학교를 그만두고 1888년 음악원에 정식 입학하여 세르게이 타네예프(1856-1915), 바실리 사포노프(1852-1918), 안톤 알렌스키(1861-1906)에게 작곡과 피아노를 배웠습니다.


 - 스크랴빈은 피아노 연주자로 상당한 주목을 받았는데, 음악원 시절 라이벌인 요제프 레빈(1874-1944)을 의식한 나머지 과도한 연습을 하다가 오른손에 큰 부상을 입기도 했다고 합니다(다행히 회복됨). 1892년 피아노과 졸업 학위를 딴 그는 작곡과 학위도 따려고 했지만 작곡 스승인 알렌스키와 작품 스타일 관련 문제로 갈등하였고 결국 학위를 받지 못하고 졸업하게 됩니다.


 - 1894년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피아노 연주자로 데뷔하였고, 얼마 뒤 음악 관련 기획자인 미트로판 벨랴예프(1836-1903)을 만나 그의 지원 하에 러시아와 유럽 각지를 돌며 작곡가와 피아니스트로 명성을 쌓았습니다. 1897년에는 동료 피아니스트인 베라 이사코비치와 결혼하였고, 이듬해에는 모스크바에 다시 정착하여 모스크바 음악원의 피아노 교수가 되었습니다.


 - 모스크바에서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던 스크랴빈은 1904년 교수직을 사임하고 스위스로 이주하여 활동하였는데, 하필 이 때 타티아나 슐뢰저라는 사람과 바람이 나서 스캔들이 나는 바람에 아내와는 이혼하고 <법열의 시> 뉴욕 초연이 취소되는 등의 곤욕을 치르기도 하였습니다. 이후 그는 파리와 브뤼셀을 오가며 작곡 활동에 전념하였고, 1909년 다시 러시아로 돌아왔습니다.


 - 그의 작품은 초기에는 쇼팽 등의 낭만파 경향을 이어받았지만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급속히 변화하여, 다분히 철학적이고 신비주의적인 성향을 띠게 됩니다. 실제로 그의 후기 음악은 불협화음을 과감히 활용하는 등 아주 몽환적인 모습을 띠고 있으며, 후년에는 음악과 색채의 결합을 시도하여 1910년 교향곡 5번 <프로메테우스> 초연 때는 아예 '색광(色光) 피아노'라는 특수한 장치를 동원하기도 하였습니다.


 - 이후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많은 지역을 돌며 연주와 작곡을 계속하던 스크랴빈은, 1915년 어느 날 윗입술에 생긴 작은 종기(혹은 뾰루지)를 잘못 건드린 것이 세균에 감염되어 패혈증으로 번져 ㅡㅡ;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법열의 시>는 1907~1908년 사이 작곡되었고, 간혹 교향곡(4번)으로 분류되기도 합니다. 대체로 그의 작품이 신비주의로 완전히 넘어가는 과도기의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작곡가는 같은 제목으로 신비주의적 내용의 긴 시를 쓰기도 했다고 전해집니다.



롤러코스터 타이쿤 : 루피 랜드스케이프 - (16) Sunny Swamps


 "잘 구성된 놀이공원은 이미 몇 개의 코스터가 있습니다. 하지만 확장을 위한 공간은 충분합니다."

 목표 : 관람객 1600명 (3년) / 놀이공원 등급 600



 - 시간제한 + 관람객 수라는 고전적인 목표를 가진 시나리오. 공원 지형도 대체로 평탄하고, 확장할 공간도 많아서 평이한 진행이 예상됩니다.



 - 일부분이 이미 개발되어 있는데, 도로가 은근히 복잡하게 깔려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조경은 탑 테마로 되어 있는데, 여기서 탑이라는 건 일본식 탑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일본의 절에 있을 것 같은 풍경들이 많지요.



 - 그리고 시작 시 건설되어 있는 놀이기구는 워터 코스터와 래프트입니다. 래프트는 지금까지 한 번도 건설해보지 않은 것으로 기억하는데, 높낮이 조절이 불가능(!)한 수상 트랙 놀이기구입니다.



 - 일단 공원 입구에서 들어오는 길목에 상점가를 작게 짓습니다. 이번 공원은 시작부터 치느님을 판매할 수 있습니다.



 -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놀이기구 쪽에도 하나 지어줍니다. 여기에서는 촉수(오징어다리)를 팝니다.



 - 롤러코스터와 래프트가 하나씩 있긴 하지만, 빠른 돈벌이를 위하여 ATM 트랙 코스터를 하나 짓고 시작하겠습니다. 스틸 코스터를 지을 수 있습니다. 공원 컨셉이 탑 테마이니 놀이기구 출입구도 탑 모양으로 바꾸어 줍시다.



 - 그렇게 해서 돈이 좀 모여서 우든 코스터를 건설해 보았습니다. 루프 트랙과 물 튀김이 인상적이군요.



 - 개발은 순조로운 편입니다. 기존 개발지 반대편에 있는 공터는 어느새 이 정도까지 개발이 되었습니다.



 - 개발할 수 있는 공간이 꽤 넓습니다. 워터 코스터 너머 쪽으로도 도로를 확장하고 놀이기구를 짓습니다. 360도 바이킹은 무슨 상어대가리같이 생기지 않았나요?



 - '가장 경제적인 공원'이라는 타이틀은 놀이기구 탑승료가 그만큼 저렴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걸 보고 탑승료를 올려받을까 하는 것은 플레이어의 자유(블로거는 귀찮아서 하지 않음).



 - 스틸 미니 코스터를 지어 보았습니다. 열차는 로그 카로 정했습니다. 여담으로 저렇게 트랙에 뱅킹을 하나라도 넣으면 스핀 카는 선택할 수가 없습니다.



 - 뭔가 공원 이름부터가 수상 놀이기구를 많이 건설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인데, 아래 호수에는 제트스키를 넣을 수 있습니다.



 - 이번에는 테마와 왠지 어울릴 것 같은 측면 마찰 코스터입니다. 조금만 잘못 지어도 열차가 공중부양을 해버리니 조심해야 하는 건 다들 아시지요?



 - 아직도 갈 길이 멉니다. 새로운 구역으로 도로를 확장합니다.



 - 그렇게 확장한 구역에 놀이기구를 짓기 시작. 당연히 관람객의 편의를 위해 상점가도 건설해 줍니다.



 - 블로거는 받침대의 압박 때문에 목조 롤러코스터를 썩 좋아하지 않는데, 이번 공원에서는 이런 녀석들도 뭔가 주변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 가운데에 전망대를 짓고 조경을 때려박습니다. 저렇게 주변에 볼 게 많아야 흥미도가 제대로 나온다는 것을 잊지 맙시다.



 - 공원이 넓으니 이런 녀석도 충분히 크게 지을 수 있습니다. 트랙을 길게 지으니 최고 속도가 131km/h 까지 나오네요.



 - 리버스 프리폴 코스터의 정거장 주변 풍경. 



 - 모션 시뮬레이터는 여러 개를 지어도 상영 영화를 다른 것으로 해 주면 뭔가 다른 놀이기구 취급을 해도 될 것 같습니다(실제로 흥미도 등의 수치가 조금씩 다름).



 - 지속적인 개발의 결과 관람객 수는 순조롭게 증가하고 있지만, 2개월 남은 상황에서 살짝 불안하니 광고를 한 번만 합시다.



 - 큰 규모의 공원에는 역시 수송수단이 있는 게 좋겠습니다. 공원을 한 바퀴 도는 모노레일입니다.



 -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지만 놀이기구를 더 짓기로 합니다. 이 공원의 후룸라이드는 처음에 지어져 있던 래프트와 대비되는 컨셉입니다(Crazy한 래프트)



 - 마지막 놀이기구로는 자이로드롭을 지어 보았습니다.



 - 이 정도면 클리어에는 무난할 것 같습니다.



 - 이번 공원은 전체적으로 무난했던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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