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edrich Nietzsche (1844-1900)

<Hymnus an das Leben>


 - 프리드리히 니체는 현대 철학의 문을 연 역사적인 철학자로 기억되지만, 그의 삶은 음악과도 깊은 연관이 있었으며 실제로 어느 부분에서는 음악가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니체는 전문적 음악교육을 받은 적은 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어릴 적부터 음악적 재능을 보여 왔으며 10대 때의 짧은 시기동안이나마 여러 작품을 작곡하기도 했습니다. 청년기 이후로는 철학 연구에 집중하느라 작곡에서는 멀어졌지만, 이후로도 음악은 그의 삶이나 사상에서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 니체는 1869년 스위스 바젤 대학교의 교수로 채용되었고, 이 무렵 스위스에 머물며 작곡활동을 하던 리하르트 바그너를 만나게 됩니다. 니체는 음악적으로나 사상적으로 완숙기에 접어들고 있었던 바그너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고, 여러 해 바그너와 깊은 교우관계를 유지하면서 자신의 사상에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음악적으로도 새로운 자극을 받았는지, 중단했던 작곡 활동에 다시 손을 대어 몇 개의 작품을 작곡하기도 했습니다.


 - 다만 시간이 지나며 니체는 바그너를 차츰 멀리하게 되었는데, 이는 바그너의 사상에서 기독교나 반유대주의 등 니체가 받아들일 수 없는 요소들이 강해졌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웃기게도 그의 사상은 사후 자신의 후처 코지마와 나치의 합작으로 반유대주의 사상인 것처럼 왜곡되었고, 이러한 오해는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1880년대가 되면 니체는 역설적으로 격렬한 바그너 반대자가 되었고, <바그너의 경우>, <니체 대 바그너> 등의 저술을 통하여 바그너를 비판하게 됩니다.


 - 1882년경 니체는 작가이자 정신분석학자인 루 살로메(1861-1937)과 친교를 맺게 되었고, 살로메가 자신의 철학세계를 이해하는 데 반한 니체는 그에게 청혼을 하지만 곧바로 차이고 말았습니다. ㅡㅡ; 살로메의 회고에 따르면, 철학적으로야 깊은 교감을 나눌 수 있었지만, 자신보다 17세나 연상인데다 이미 이런저런 지병(매독, 사시, 치질 등)으로 건강이 악화되어가던 니체는 육체적으로는 도무지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 다만 두 사람은 철학적으로는 깊은 교감을 나누었고 이후 살로메의 동료인 파울 레에(1849-1901)와 함께 '철학적 교류만이 개재된' 3인 동거 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런데 니체는 살로메에 대해 미련을 버리지 못했고, 결국 얼마 뒤 두 번째로 청혼했다가 다시 거절당했으며 결국 동거 생활은 파탄나게 됩니다. ㅡㅡ; <삶을 위한 찬가>는 살로메의 시를 바탕으로 오케스트라 반주를 붙여 작곡한 합창곡으로 1887년 완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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