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 : 비엔나 심포니 오케스트라, 1998. 지휘 : 블라디미르 페도세예프


Franz Lehar (1870-1948)

Waltz <Gold und Silber> Op. 79


 - 프란츠 레하르는 오스트리아에서 활동한 헝가리계 작곡가로, 헝가리식 이름은 '레하르 페렌츠(Lehár Ferenc)'입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코마롬에서 출생하였고, 헝가리계인 아버지는 군악대에서 지휘자로 근무했습니다. 프라하 음악원에서 안토닌 베네비츠(1833-1926)에게 바이올린을 배웠고, 이 때 안토닌 드보르자크를 만나 작곡에 도전해 볼 것을 권유받았지만 당시 음악원 규정상 연주와 작곡을 함께 전공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는 규정에 따르면서 작곡을 독학해야 했습니다.


 - 1888년 음악원 졸업 후 레하르는 아버지의 악단에 부지휘자로 합류하여 음악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2년 후에는 최연소로 정식 밴드마스터가 되었습니다. 처음에 육군 쪽에서 활동하던 그는 중간에 잠시 해군으로 옮겼고, 이 때 첫 번째 오페라를 발표하였습니다. 이후 그는 다시 육군으로 옮겨 활동을 계속하였습니다.


 - 1905년 초연한 오페레타 <메리 위도우(유쾌한 미망인)>가 큰 호평을 받으며 레하르는 인기 작곡가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이후 그는 비엔나로 거처를 옮겼고, 오페레타 작곡 활동에 전념하게 됩니다. 레하르는 20세기 초를 대표하는 비엔나의 오페레타 작곡가로 입지를 굳혔고, 큰 명성과 그에 걸맞는 부를 함께 거머쥐게 됩니다. 이 시기 그는 오페레타 뿐 아니라 왈츠, 교향곡 등의 기악곡 또한 다수 작곡하였습니다.


 - 승승장구하던 레하르도 1930~40년대를 풍미한 나치의 격동기를 피해갈 수는 없었습니다. 출신이 헝가리계였고 심지어 부인은 개종한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나치의 핍박을 받을 처지였지만, 히틀러가 그의 작품을 매우 좋아했기 때문에 ㅡㅡ; 그는 일단 나치의 탄압에서는 자유로울 수 있었습니다. 물론 어느 정도 나치에 협력하는 모습은 보여야 했기 때문에 그는 히틀러 50세 생일 기념 음악회를 주도한다거나 하는 활동을 하였습니다.


 - 그 와중에 그는 자기 주변에 있던 유대계 인사들을 인종청소로부터 보호하고자 노력했지만 뜻대로 되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나치의 인종청소가 강화되자 그는 자기 아내와 함께 스위스로 망명, 취리히에 머물게 됩니다. 그는 금방 비엔나로 돌아가리라고 생각했지만 망명지에서 자기 아내가 사망하고 유대계 친구들이 학살당한 사실을 알게 되자, 비엔나 복귀를 포기하고 종전 후 잘츠부르크로 이주하여 여생을 보냈습니다.


 - <금과 은>은 1902년 작곡되었으며, 메테르니히 공주가 주최한 '금과 은' 무도회의 음악으로 위촉받아 만들었습니다. 요한 슈트라우스 일족의 전통을 따르라는 주문에 레하르는 자기 고유의 색깔을 더해 작품을 썼고, 많은 인기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여담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말년의 레하르는 "새로 왈츠를 쓰게 된다면 '금과 은' 정도는 어림도 없으니 <우라늄과 원자폭탄> 이라고 이름을 붙여 볼까?"라는 개드립 농담을 한 적이 있다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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