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khosru Shapurji Sorabji (1892-1988)

<Opus Clavicembalisticum>





 카이코스루 소랍지는 영국 출신의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로, 음악평론가로도 활동하였습니다. 런던 근교에서 출생하였는데, 그의 아버지는 인도계로 뭄바이 파르시(조로아스터교도 공동체)의 후예이고, 어머니는 스페인계 시칠리아인으로 오페라 가수 출신입니다. 그의 본명은 '레온 더들리 소랍지'였지만 후에 개명하였는데, 자신이 파르시의 후예임을 드러내기 위한 것입니다. 아버지는 소랍지가 음악을 배우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였으며, 소랍지의 어머니가 음악을 그만둔 것이 아버지 때문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소랍지는 어머니에 의해 피아노를 처음 배우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되며, 청소년기까지 주로 독학과 개인교습으로 음악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의 인생에 큰 영향을 준 첫 번째 인물은 작곡가 겸 음악평론가 피터 월록(1894-1930)으로, 그와의 친교를 통해 소랍지는 작곡과 음악평론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페루치오 부조니(1866-1924)의 도움으로 음악계에 데뷔하면서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소랍지의 음악세계에 영향을 준 것은 쇤베르크, 스크랴빈, 말러, 드뷔시 등 시대 전환기에 등장한 작곡가들의 독특한 음악, 그리고 자신의 출신에서 비롯한 인도 음악이었습니다. 그의 음악은 점차 '난해하고 길며 어려운' 성향을 띠게 되었는데, 이를 상징하는 작품이 바로 1930년에 완성한 <오푸스 클라비쳄발리스티쿰>입니다. 이 작품은 총 12곡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곡 연주에 4시간 이상이 걸리는 엄청난 규모를 자랑합니다. 물론 이후의 작품 중에는 연주 시간이 훨씬 더 걸리는 것들도 있습니다. ㅡㅡ;


 곡이 연주하기 너무 어려운데다 소랍지 자신이 지나치게 높은 완성도를 요구하면서 이런저런 갈등이 생겼고, 결국 소랍지는 타인이 자신의 곡을 연주하는 것을 수십 년간이나 금지하고 악보 출판도 하지 않게 됩니다. 또한 1951년에는 런던을 떠나 이주하였고 사실상 은둔 생활을 하였습니다. 소랍지는 자신의 작품을 녹음하는 것도 매우 싫어했는데, 그나마 주변 사람들의 제안으로 간간이 녹음이나 보존 작업이 이루어져 왔습니다.


 자신의 작품에 대한 금령(禁令)은 1970년대 중반 마이클 하버만(1950-)과 욘티 솔로몬(1937-2008)에게 자기 작품의 연주를 허용하면서비로소 풀리게 되었습니다. 이후 1982년에는 존 오그돈(1937-1989)이 <오푸스 클라비쳄발리스티쿰>을 런던에서 공개 연주한 사례가 있습니다. 90세를 넘어서까지 건강을 잃지 않았고, 1988년 사망하였습니다.


 소랍지의 작품은 대부분 피아노곡이며, 연주 난이도가 높고 연주 기법도 상당히 독특(혹은 이상)한 것이 많은데다 대체로 연주 시간도 장난 아니게 길어서 연주 자체가 쉽지 않습니다. 그의 사후에는 봉인 해제 많은 피아니스트가 도전하지만, 일단 정상급 기교에 체력을 겸비하지 않으면 곡을 제대로 소화하는 것 자체가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라 자주 연주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나마 앞서 언급한 존 오그돈 등의 몇몇 연주자들이 음반을 녹음하는 등의 노력을 해 오고 있습니다.

 

[2018. 5. 2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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