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f Strauss (1827-1870)

Polka <Ohne Sorgen> Op.271


 - 요제프 슈트라우스는 요한 슈트라우스 1세의 차남으로, 형인 요한 슈트라우스 2세와 비슷하게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음악가의 길을 걸어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아버지는 그를 군인으로 키우려고 하였지만 군사훈련을 버티기에는 그리 강건하지 못하여, 전공을 수학과 공학 쪽으로 바꾸었고 수학 참고서를 낼 정도로 나름의 입지를 확보하였습니다.


 - 음악가 데뷔는 상당히 얼떨결에 이루어졌는데, 1853년 요한 2세가 건강 문제로 잠시 활동을 중단하자 요제프에게 땜빵(?) 지휘를 부탁한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형과 마찬가지로 몰래 음악 교육을 계속해왔던 그는 이를 수락하였는데, 데뷔 무대가 의외의 호평을 받으면서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 슈트라우스 일가의 일원답게 요제프 역시 왈츠 등의 경음악 분야에서 맹활약하였는데, 요한 2세가 "형제 중 최고의 재능은 요제프다"라는 말을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공계 쪽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다보니 공과대학이나 산업체 등의 행사에서 많은 음악을 의뢰받았고, 특히 젊은 세대에게 인기가 많았는데 상대적으로 서정적인 음악 스타일 때문이었다는군요.


 - 워낙 인기가 많았다보니 슈트라우스 일가는 모두 과로에 시달려야 했는데, 요제프 역시 과로로 건강을 많이 해쳤고 1870년 폴란드 공연 중 무대에서 갑자기 쓰러져 그 길로 사망했습니다. 워낙 갑작스러운 일이라 세간에서는 그의 사인에 대해 온갖 소문이 돌았는데(심지어 러시아 군인의 폭행으로 사망했다는 설까지 있었다고), 장례와 매장에 관여한 사람들의 증언으로 일단은 과로사라는 결론이 났습니다.


 - 283곡의 자작곡 뿐 아니라 편곡한 작품 또한 굉장히 많았는데, 막내동생인 에두아르트 슈트라우스(1835-1916)이 형들의 사후 악단을 해체하면서 요제프의 악보 상당수를 폐기해 버려, 현재 남아 있는 작품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에두아르트 역시 음악가였지만 형들의 명성에 묻히는 경향이 있었고(심지어 자신이 받아야 할 스포트라이트를 빼앗기는 경우도 있었다고), 여기에 큰 불만을 가졌던 것이 하나의 원인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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