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이 밝고, 사람들과 헤어져 길을 떠납니다. 오늘은 그럭저럭 평탄한 여행이 될 예정이라 목표를 조금 길게 잡았습니다. 다리가 계속 아프기는 한데 이젠 적응이 되었는지 그럭저럭 달릴 만 합니다. 수고해주고 있는 자전거를 사진에 담아 보았습니다(이름을 '고물카'라고 지었습니다. ㅡㅡ;).



 - 해안도로를 달립니다. 제주도의 해안도로는 저렇게 돌을 세워 가드레일(?)을 삼아놓는 경우가 많습니다.



 - 한동안은 딱히 붙일 말이 없을 정도로 평탄하네요. 해안도로와 일주도로를 오가며 달리다 보면 어느새 남원읍을 지나 표선면으로 들어섭니다. 표선면은 조선시대 정의군(郡)의 중심지였고, 중산간 쪽의 성읍마을에는 당시의 읍성도 남아 있습니다만 역시 자전거를 타고 들어가기엔 난이도가 높으니 다음을 기약하기로.



 - 해안도로의 끄트머리에 표선해변과 제주민속촌박물관이 있습니다. 표선해변은 백사장이 상당히 넓습니다.



 - 그리고 바로 이웃의 제주민속촌박물관으로 들어가려는데 입구 바로 근처쯤에 4.3 유적지가 나타납니다. 생각해보니 그동안 4.3 사건에 대해 너무 신경을 쓰지 않고 돌아다녔네요. 박물관에 들어가기 전에 잠시 길을 멈춥니다.



 - 그리고 오늘의 1차 목적지, 제주민속촌박물관으로 갑니다. 용인 한국민속촌과 비슷하게 사설 박물관이라 입장료가 제법 되는 편이지만(그래도 한국민속촌보단 저렴합니다), 몇 가지 아쉬운 느낌을 빼면 입장료만큼의 가치는 충분히 하는 곳입니다. 입장료를 끊고 남은 돈을 헤아려보니 이젠 돈을 조금 아낄 필요가 있겠군요. ㅡㅡ;



 - 처음 들어가면 한켠에 제주 전통 어선 '테우'가 손님들을 반깁니다. 이런 뗏목 수준의 어선을 이용했던 것은 조선시대 제주도 주민에게 출륙(出陸) 금지령이 내려져 번듯한 선박의 제조가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멀쩡한 선박을 만들 수 없으니 안전성이 떨어지는 테우를 이용하여 물고기를 잡고, 그러다가 폭풍이라도 불면 어민들은 불귀의 객이 되기 일쑤였고, 이것이 반복되면서 제주도는 여자가 많은 섬이 되었다......라는, 아픈 역사의 페이지가 서려 있는 배이기도 합니다.



 - 박물관 곳곳에 제주 전통 가옥들이 복원되어 있습니다. 여러 가지 주제로 다양한 형태의 집들이 있어서 볼 거리가 많은데 이쯤 되면 박물관이 너무 넓다라는 문제점에 직면하게 됩니다. ㅡㅡ; 자전거 여행 중이라 다리도 아픈데, 결국 중간부터 관람열차를 이용하기로 합니다. 관람열차는 중간중간 있는 정거장에서 탈 수 있는데, 그리 자주 다니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 어째 탑승하지 말라는 투 같습니다. ㅡㅡ; 어쨌든 관람열차로 상당한 거리를 이동한 후 다시 내려서 마저 관람을 계속합니다. 중간을 빼먹고 나서도 볼 거리들은 군데군데 있는데, 제주 양식으로 낮은 돌담을 두른(방목하는 가축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라고) 묘지의 모형이 인상적입니다. 특이하게도 4.3 사건을 비롯하여 제 명에 죽지 못한 이들을 위한 작은 위령비가 함께 서 있습니다.


 

 - 그렇게 한 바퀴를 돌고 나면 다시 박물관의 출입구가 나옵니다. 민속촌 내에 주막 스타일의 식당가가 있긴 한데, 그냥 표선면으로 나가서 점심을 때우기로 합니다. 냉면으로 간단히 요기를 하고 다시 출발.



 - 성산읍 구내로 들어갈 때쯤 바닷가를 따라 웬 돌더미들이 쭉 나타납니다. 자연적으로 쌓인 건 아니고, 고려~조선시대 유적인 환해장성(環海長城)입니다. 삼별초 전쟁 시기에 처음 쌓기 시작하여 조선시대까지 걸쳐 오랜 기간동안 제주도 해안을 둘러 건축한 성인데, 지금은 이 곳을 비롯하여 몇 군데에만 남아 있습니다. 저렇게 돌더미 수준인 경우도 있고, 비교적 온전한 형태로 남아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 해안도로를 계속 달리다가, 온평리쯤에서 방향을 내륙쪽으로 틀었습니다. 일주도로를 건너 조금 더 들어가면 탐라 건국 신화에 등장하는 혼인지(婚姻池)와 신방굴(神房窟)을 만날 수 있습니다. 고을나, 양을나, 부을나의 세 신인이 벽랑국에서 건너온 공주들과 혼인하기 위해 목욕재계한 곳이 혼인지, 혼례 후 신방을 차린 곳이 신방굴이라고 하지요. 신방굴은 작은 용암동굴인데, 특이하게도 내부가 세 갈래로 나뉘어 있습니다.



 - 온 길을 돌아가 다시 해안도로를 달립니다. 조금 더 가면 섭지코지가 나옵니다. '코지'는 곶(串)의 제주어 발음이라고 하지요. 요즘은 한가운데 큰 리조트가 들어서고 유명세 때문에 사람이 너무 많아져서 기대만큼의 공간은 아니었습니다. 주차장에서 더 들어가려다가 자전거나 짐가방을 보관할 곳이 마땅치 않아 그냥 그 주변 경치만 보고 발길을 돌립니다.



  - 그리고 좀 더 북쪽으로 올라가면 오늘의 목적지인 성산포입니다. 성산포로 들어가면서 잠깐 짚고 넘어갈 곳이 하나 있는데......



 - 성산포 터진목은 화산폭발로 성산일출봉이 형성된 이후 바닷물의 퇴적 작용으로 모래가 쌓여 만들어진 사주(沙洲)입니다. 제주도 본섬과 성산포를 연결하고 있으며, 20세기 현대적인 도로가 가설되기 이전에는 밀물 때 바닷물에 잠기기도 하여, 완전히 막힌 곳이 아니라는 의미로 '터진목'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는군요. 이것도 중요하지만, 이 곳의 해변은 4.3 당시 이웃 고성리와 오조리 일대 주민 100여 명이 끌려와 학살당한 곳이기도 합니다.



 - 사진의 장소에는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르 클레지오(1940-)가 쓴 제주 기행문의 한 부분이 새겨진 추모비가 있습니다. 


#6일차 게스트하우스 : 산토리니 게스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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