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베트남 전쟁 : 끝없는 수렁에 빠지다
- 베트남 개입 확대에 반대하던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이 피살당하고, 얼떨결에 대통령에 취임한 린든 존슨(민주당)은 베트남전 확전을 결정하고, 1964년 통킹 만 사건(하노이 앞바다의 통킹 만에서 미국 함선이 공격당한 사건으로, 현재는 이 사건 자체가 조작 혹은 왜곡일 것으로 간주되고 있음)을 빌미로 베트남에 대규모 병력을 파견, 우리가 알고 있는 베트남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공군기지 방어를 위해 상륙한 미국 해병대]
- 미국은 처음에는 남베트남군까지 포함한 압도적 전력차이를 가지고 단기간에 전쟁을 끝낼 생각이었고, 북베트남에 대한 대규모 폭격이 이루어지는 등 처음에는 미국의 계획대로 되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곧 미국의 예상이 틀렸다는 것이 밝혀집니다. 특히 전쟁을 끝없는 수렁으로 만들었던 것은 바로 남베트남 내에서 게릴라전을 펼치는 베트콩이었습니다.
- 베트콩은 무성한 정글과 여기저기 파놓은 땅굴 등, 지리적 이점을 총동원하여 미군(과 기타 동맹군)을 괴롭혔습니다. 더구나 이들은 남베트남 민중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고, 북베트남에서 인적, 물적 지원도 받고 있었던지라 이들을 상대하는 미군과 남베트남군, 동맹군(이하 '미군'으로 통칭) 입장에서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습니다. 미군은 고엽제를 대량 살포하여 정글을 초토화하고, 농촌 마을을 폭격하는 등 무리수까지 두었지만 전황은 악화되기만 했습니다.
[베트남 전쟁의 참상을 알리는 유명한 사진 <소녀의 절규>. 사진 가운데의 판티킴푹(1963-)의 마을은 미국 공군의 네이팜탄 폭격으로 불탔으며, 판티킴푹은 이후 여러 차례의 대수술로 생존한 후 현재는
- 가장 큰 문제는 '명분'이었습니다. 애초에 미국과 남베트남은 제네바 합의에서 약속한 '2년 후 총선거'를 거부함으로써, 명분에 있어서 북베트남에 크게 밀리는 상태였습니다. 거기에 미국이 극도의 부정부패에 시달리던 남베트남 정부를 도와 전쟁에 개입하고, 남베트남 민중과도 적대하게 되면서 베트남의 민심은 갈수록 베트콩과 북베트남 쪽으로 쏠릴 수밖에 없었던 것.
- 부족한 명분은 미군의 전쟁 수행에 큰 제약을 가했습니다. 일단 육군은 소수 특수부대를 제외하면 북베트남으로 진격할 수 없었고(소련과 중국의 눈치를 봐야 했던 것), 북베트남이 베트콩을 지원하기 위해 라오스와 캄보디아 정글에 만든 '호치민 루트' 또한 제대로 견제할 수 없었습니다. 미국은 정치공작을 통하여 호치민 루트를 묵인하는 캄보디아 왕정을 무너뜨렸지만, 정작 혼란을 틈타 공산주의 반군(크메르 루주)이 세력을 확대하면서 일이 더 꼬여버렸습니다.
[크메르 루주는 1975년 캄보디아 전역을 장악한 후 캄보디아를 지옥으로 만들었습니다.]
- 이 때 남베트남군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쿠데타가 횡행한 이야기는 앞에서 했고, 대규모 징병을 통해 겉으로는 100만 대군을 구성하고 있었지만 그 속은 시커멓게 썩어 있었습니다. 미국이 지원한 무기들을 남베트남의 장교들은 뒤에서 몰래 팔아먹었고, 나중에는 이러한 무기를 베트콩이 사들였기 때문에 베트콩과 남베트남군이 사이좋게(?) 미국 무기를 들고 서로 싸우는 촌극까지 벌어졌습니다. ㅡㅡ;
8. 미국의 GG선언, 모래성처럼 무너진 남베트남
- 더 무너질 것조차 없던 남베트남군은 그렇다 치고, 명분 없는 전쟁이 계속되면서 미군 역시 속에서부터 썩어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탈영이나 군무이탈 같은 문제는 일도 아니었고, 곳곳에서 병사가 상관을 공격(하극상)하는 사건이 빈발하였습니다. 오죽하면 베트남 전쟁을 계기로 '프래깅(본 의미는 수류탄을 터뜨려 사고사로 위장한 상관 살해. 흔히 상관 살해를 통칭하는 말로 쓰임)'이라는 신조어가 생겼을 정도.
- 그래도 미국은 대외적(특히 미국 내부적)으로는 자신들이 곧 승리하고 전쟁이 끝날 것이라 선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의 선전을 무력화하고, 결국 전쟁 전체의 향방을 결정짓는 사태가 터지니 바로 1968년 초의 '테트(설날) 공세'였습니다. 본래 베트남도 나름 중국문화권이기 때문에 설날을 명절로 치르고, 전쟁이 계속되는 중에도 설날(베트남어로 '테트') 전후에는 (남베트남군 한정으로) 암묵적 휴전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테트 공세 때, 공격을 개시하는 베트콩 부대]
- 북베트남과 베트콩은 테트 시기의 풀어진 분위기를 역이용하여, 남베트남 전역의 주요 도시에 베트콩 부대를 침투시켜 대공세를 가하기로 계획합니다. 1968년 1월 30일 새벽, 명절 폭죽놀이를 신호로 베트콩 침투부대는 일제히 공격을 개시하였습니다. 남베트남은 순식간에 혼란의 도가니가 되었고, 길게는 일주일 이상 치열한 전투가 계속됩니다. 하지만 원래 예정된 북베트남군의 지원이 실현되지 않았고, 결국 베트콩은 거의 모든 도시에서 섬멸당하고 말았습니다.
- 이 공세를 통하여 남베트남의 베트콩 세력이 사실상 일망타진되었으니, 전술적으로는 북베트남의 완패였습니다. 하지만 구정 공세는 북베트남이 건재함을 세계, 특히 미국인들에게 각인시켰고, 참혹한 전투가 TV 등을 통하여 그대로 미국인들에게 전해지면서 미국 내 반전여론이 대폭발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한 베트콩 부대원이 남베트남군 장교에게 즉결처형당하는 사진이 전세계에 알려지면서, 반전여론에 더욱 불을 지폈습니다.
[문제의 그 사진. 왼쪽은 사이공 경찰서장 응우옌응옥루안(1930-1998), 오른쪽은 베트콩 암살부대 소대장 응우옌반럼]
- 결국 베트남 전쟁 확전을 주도한 존슨은 1968년 대통령 선거를 낙선도 아니고 불출마(첫 번째 후보 경선에서 탈탈 털리고 GG)하게 되었고, 본선에서도 '베트남 개입 중단'을 내건 리처드 닉슨(공화당)이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닉슨은 1969년부터 베트남 파병군의 단계적 철군을 선언하기에 이릅니다. 이후의 전쟁은 말 그대로 아무 의미 없는 '버티기'에 불과했고, 1973년 미국은 북베트남과 파리평화협정을 체결, 휴전을 약속하고 완전 철군하였습니다(대한민국 국군도 이 때 함께 철군).
- 이후의 남베트남 상황은 안 봐도 비디오...... 북베트남군은 미군이 사라지자마자 휴전 약속에 "ㅗ"를 날리고 총공세를 시작, 남베트남군은 미국에게서 무기 지원은 받았지만 탄약 등 물자 지원을 받지 못하는 등 ㅡㅡ; 지리멸렬을 거듭하였습니다. 응우옌반티에우는 전황이 결정적으로 악화되자 미국을 맹비난하면서 야반도주, 이 와중에도 쿠데타는 계속되었고, 최후의 순간에 다시 대통령직에 오른 즈엉반민은 북베트남군에 무조건 항복하면서 결국 남베트남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게 됩니다.
[사이공 대통령궁으로 밀고 들어오는 북베트남군 전차]
9. 결론 : 남베트남은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하는가
- 남베트남의 패망 자체는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당연하게도 한국 역시 분단 상태이기 때문이겠죠. 오랫동안 한국 정부에서는, 남베트남의 패망을 두고 "전국민이 일치단결하고 반공정신으로 무장하여 공산주의와 싸우지 않으면 남베트남처럼 패망한다"라고 프로파간다를 하였고, 이는 독재정권 시기 민주화운동을 탄압하는 훌륭한(?) 명분이 되기도 했습니다.
- 하지만 블로거는 여기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남베트남이 패망한 것은 남베트남 국민의 잘못입니까, 아니면 남베트남 권력자들의 잘못입니까? 남베트남의 다수 민중이 베트콩 게릴라를 지지했던 것은 남베트남 정부가 너무나도 썩었고, 국민의 기본권을 돌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전국이 전쟁으로 황폐화되는 때에 권력층은 내부에서 권력투쟁에만 몰두했고, 결국 미국까지 등에 업고도 사태를 전혀 해결하지 못하는 무능력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블로거는 농지개혁법이야말로 이승만 최대의 업적이라 감히 단언합니다.]
- 남베트남의 사례는 오히려 '남한은 왜 북한에 패배하지 않았는가'에 대한 좋은 반례이기도 합니다. 남한은 한국전쟁 발발 직전에 농지개혁을 비교적 성공적(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토지를 농민들에게 골고루 분배한 것' 자체가 충분히 성공)으로 수행하였고, 새로 토지를 갖게 된 대다수 농민들은 남한 정부에 충성을 다하여 북한과 싸웠던 것. 국민의 '일치단결'이 중요하다면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그 열쇠는 오히려 권력 스스로가 쥐고 있는 셈입니다.
- 블로거는 남베트남 패망의 교훈으로 한 가지를 제시하고자 합니다. 민주적이지도 않고 국민의 기본권을 돌보지도 않는, 부패하고 무능한 권력은 반드시 패망합니다. 일치단결을 핑계로 국민을 탄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고 이것을 경청하는 민주적인 권력이야말로 건강하게 영속할 수 있다는 것을 남베트남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참고 :
한글 위키백과, 나무위키
http://travel.tourism.vn:808/main/publish/view.jsp?menuID=002001002017&type=P (베트남 독립운동)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nec1963&logNo=220521897627 (응오딘지엠)
http://gesomoon.com/Ver2/board/view.php?tableName=comm_discuss&bIdx=408793 (틱광둑 소신공양과 쩐레수언)
http://ppss.kr/archives/22141 (베트남 전쟁 관련)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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