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는 확실히 과거의 유물이 되었지만(블로거는 몇 달 전 이사를 오면서 수십 년간 모은 테이프들을 다 버렸습니다. 초창기 스타리그 결승전 녹화본이 많았는데), 10~20여 년 전에는 대부분의 집에 비디오테이프 기계가 하나씩은 있었습니다. 컴퓨터를 활용한 홈씨어터와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가 없던 시절 비디오테이프는 집에서 영화를 보게 하고, 필요한 기록을 영상으로 남길 수 있게 하는 소중한 존재였습니다.


[이제는 추억이 되어버린 그것]


 -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비디오테이프는 단 한 가지 모양새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마 당연하게도) 역사상 비디오테이프의 규격은 여러 종류가 있었으며, 이들 사이의 경쟁에서 최후까지 살아남은 것이 우리 기억에 남은 형태, 즉 VHS 규격이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비디오테이프의 규격을 둘러싼 전쟁은 이후에 계속되는 IT업계의 '표준전쟁'의 서막을 연 사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1. 베타맥스 : 먼저 나왔고, 크기가 작으며, 화질도 좋았다


 - VHS 규격이 세상에 나온 것은 1976년이었지만, 이미 그 전에 등장한 비디오테이프 규격이 있었으니 이름하여 '베타맥스(이하 베타)'입니다. 베타는 1년 전인 1975년 소니(네 바로 그 소니)가 개발하여 세상에 내놓았고, 막 태동하던 가정용 비디오 시장을 선점하여 표준으로 자리잡고자 하였습니다.


[베타맥스 테이프]


 - 그런데 일은 소니의 뜻대로 돌아가지 않았으니, 소니와는 별개로 독자적인 규격을 개발한 업체들이 또 있었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JVC에서 VHS를 1년 후에 내놓았고, 조금 지난 1980년 필립스와 그룬디히가 공동으로 '비디오2000'이라는 규격을 내놓는 등 다수 기업들이 가정용 비디오 시장에 뛰어들었습니다. 이 가운데 비디오2000은 여러 모로 품질이 떨어졌고 인기도 없어서 얼마 뒤 시장에서 퇴출, 얼마 지나지 않아 시장은 VHS와 베타의 2파전이 되었습니다.


[VHS 테이프]


 - 기술력의 소니는 당연히 베타가 VHS를 처바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을 것입니다. 베타는 VHS보다 1년 먼저 나왔고(시장 선점), 테이프의 크기가 작아 기기를 소형화하는 데도 유리했으며(1980~90년대 비디오를 보신 분이라면 크기가 의외로 컸다는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심지어 화질도 VHS보다 뛰어났거든요. 품질과 시장 선점을 모두 충족한 베타의 승리가 예상될 법도 합니다. 그런데......




2. VHS : 후발주자에 화질도 구리다. 하지만!


[캠코더 비교. 베타 vs. VHS]


 - VHS는 여러 모로 불리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테이프도 쓸데없이 컸고, 화질도 (큰 차이는 아니었다고 하지만) 베타보다 구렸지요. 거기에 후발주자라서 베타를 쫓아가야 하는 위치였던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VHS가 가지고 있었던 유일한, 하지만 결정적인 강점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재생 시간이었습니다.


 - 가장 많이 쓰인 규격을 기준으로, VHS의 재생 시간은 2시간으로 베타의 1시간30분보다 길었습니다. 사실 25% 차이라면 다른 부분에서 충분히 상쇄할 수 있는 차이로 보이는데, 이것이 매우 크게 작용했던 것은 영화의 재생 시간이 일반적으로 2시간 남짓이었다는 것입니다. 즉 VHS 테이프는 웬만한 영화를 테이프 1장으로 때울 수 있었는데, 베타는 그것이 불가능했던 것입니다.


[간단한 비교로, 베타 규격으로는 이보다 1.5~2배 많은 테이프가 필요합니다. 출처]


 - 이 작다면 작은 차이가 시청자의 선택을 갈랐으니, 대부분의 시청자는 (화질을 약간 희생하더라도) 영화 중간에 테이프를 갈아야 하는 귀찮음을 최소화할 수 있는 VHS를 선택했던 것입니다. 1980년대 초만 해도 어느 정도 점유율을 유지하던 베타는 1980년대 후반이 되면 점유율이 한 자리 수까지 떨어지는 등 급속히 시장에서 밀려났습니다. 소니는 재생 시간을 두 배로 늘린 Beta-II를 뒤늦게 내놓았지만, 이쪽은 베타의 장점인 화질을 희생한 것이고 ㅡㅡ; 대세에 영향을 주지도 못합니다.




3. 사실 숨겨진 요소는 이것이었다?


 - 한편 베타가 경쟁에서 밀려난 데는 소니의 폐쇄적 라이센스 정책이 한몫 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일단 소니는 베타 호환 기기에 대한 라이센스를 굉장히 까다롭게 관리했기 때문에, 베타 관련 기기의 가격이 VHS 쪽보다 상당히 비싸지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래서 일단 초기부터 베타는 고급 소비자를 중심으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것 자체가 나쁠 건 없지만, 문제는 이것이 대중화에 장애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 뿐만 아니라 소니는 테이프에 담기는 영상에 대하여도 매우 까다로운 규제를 가했습니다. 이를테면 베타 규격의 비디오 복제 기기를 이용하려면 영상에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인 장면이 들어가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에 동의해야 했습니다. 이것 또한 나쁠 건 없지만 결과적으로 이는 대부분의 컨텐츠 제작자들이 베타에 'ㅗ'를 날리고 규제가 별로 없었던 VHS로 몰리게 만들었습니다.


[VHS : 야 너네는 이런 거 없지?ㅋㅋㅋㅋㅋㅋㅋㅋ]


 - 결정적으로 그 컨텐츠 제작자들 중에는 포르노(네 그 포르노 말입니다) 업계가 있었는데, 그 자체로 선정적인 ㅡㅡ; 포르노 비디오가 베타로 나올 수 있을 리가 없었으니 이들은 전부 VHS로 갔고 포르노 비디오 시장이 엄청나게 커지면서 사람들 역시 VHS로 몰리게 된 것입니다. 이쯤 되면 베타는 화질만 좋지 볼 영화가 없는 규격이 되었고, 당연히 시청자의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




4. 결말


 - 결국 1988년 소니는 VHS 규격 기기의 생산을 시작함으로써 이 경쟁에서 사실상 GG를 선언하고 말았습니다. 대부분의 소비자와 기업체가 몰린 VHS는 이후 기술개발을 통하여 고속 영상검색, Hi-Fi 스테레오 음향 등의 기능을 추가, 기능에서까지 베타를 앞질러 버립니다. 우습게도 소니 또한 VHS 기술 개발에 이런저런 공헌을 했습니다. ㅡㅡ;


 - 물론 소니가 베타를 완전히 버린 것은 아니었고, 베타 규격의 비디오는 이후로도 계속 생산되어 여러 차례 개량도 되고(이를테면 베타캠) 일본이나 남아메리카 쪽에서는 어느 정도 점유율을 늦게까지 유지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방송국의 전문 장비에는 베타 규격이 VHS를 누르고 사실상 표준으로 자리잡기도 했는데, TV 프로그램의 재생 시간이 보통 1시간30분 이내로 끊어져서 베타의 재생시간이 문제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방송용 베타캠. 출처]


 - 아무튼 베타는 그렇게 틈새시장용으로 간신히 살아남다가 2002년 레코더가 생산 중단, 2015년 테이프가 생산 중단되며 역사 속으로 사라집니다(생각해 보면 의외로 최근까지 생산했다는 이야기). 그리고 VHS는 수십 년간 시장의 지배자로 군림하다가 1990년대 말 DVD라는 새 시대의 지배자가 등장하면서 쇠퇴, 2016년 일본의 마지막 생산업체인 후나이전기가 레코더 생산을 중단하는 등 종말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참고 : 

한글 위키백과, 영문 위키피디아, 나무위키

http://mdl.dongascience.com/magazine/view/S200506N038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11/11/0200000000AKR20151111007700091.HTML?input=1195m

http://news.joins.com/article/20343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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