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대학교 역사교육과 2017년 추계답사 - 2일차 (2)

일시 : 2017. 9. 25. ~ 27.

답사지역 : 서울특별시




 갈 길이 바쁩니다. 도중에 있는 서울역사박물관도 잠시 들러서 관람을 하고



 다음 장소로 이동합니다. 근처에는 과거 서울에서 운행한 전차가 하나 전시되어 있습니다.



 길을 건너 언덕을 조금 올라가면 웬 흰색 탑이 하나 있는데, 이곳은 대한제국 시기에 러시아 공사관이 있던 곳입니다.



 아마 저 사진을 교과서나 문제집에서 보신 분들도 있겠네요. 당연히 저 탑 하나만 달랑 있었던 건 아니고, 원래 이곳에는 꽤 큰 건물이 있었고 탑은 그 한켠에 붙어 있던 것이었다고 합니다. 한국전쟁 때 나머지는 다 박살나고 저 탑만 달랑 남아서 지금까지 이어진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러시아 공사관은 아관파천의 주무대입니다.



 여기서 반대편으로 내려가면 정동거리인데, 이곳에는 옛 이화학당 건물이 남아 있습니다(그 옆으로는 이화여고 건물이 있는데 거기까지 갈 일은 없지요).



 이곳은 작은 역사관으로 쓰이고 있는데, 나름 이화학당이 한국 최초의 여학교인 만큼 들러서 관람할 만은 한 곳입니다. 참고로 여기는 처음 왔을 때는 입구가 반대편에 있어서 어디인지 헷갈립니다. ㅡㅡ;



 그리고 바로 근처에 있는 중명전. 이곳은 본래 덕수궁의 일부였지만 일제강점기 이후 덕수궁 권역이 난도질당하고 쪼그라들면서 ㅡㅡ; 현재는 덕수궁 권역 밖으로 밀려난 건물입니다. 본래는 황제의 개인 도서관이었고, 1904년 덕수궁 대화재 이후로는 한동안 고종의 편전(집무실)으로 쓰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중명전의 모습. 현재는 덕수궁과 떨어져 외롭게 놓여 있지만 원래는 덕수궁에 있던 여러 서양식 건축물 중 하나였습니다.



 이곳이 한동안 황제의 집무공간으로 쓰였다 보니 본의아니게 역사적 대사건의 무대가 되기도 했는데, 1905년 이토 히로부미의 주도 아래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된 장소가 바로 이곳입니다.



 그렇다 보니 중명전의 전시는 대부분 을사늑약을 중심으로 짜여 있습니다.



 내부에는 이 조약이 무효임을 알리는 고종의 친서를 인쇄해놓은 종이들과 거기에 대한제국 어새(御璽)를 찍어볼 수 있는 체험코너가 있습니다. 물론 이 친서는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합니다.



 실제 고종 황제의 어새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쯤에서 나와 다음 장소로 이동합니다. 역시 정동거리는 볼 게 많은데, 중간에 있는 정동제일교회 역시 역사적으로 볼 거리가 됩니다만 무슨 공사를 하는지 밖에서 보아야 했습니다.



 조금 더 걸으면 시청광장이 나옵니다. 생각하면 블로거는 1년 전만 해도 이곳으로 출퇴근과 통학을 매일같이 했는데 여기서 조금만 들어가면 있는 그 많은 역사들을 그냥 지나쳐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 이제 시청광장 반대편으로 가면 요런 곳이 있는데, 고종이 황제 즉위식을 거행한 환구단으로 들어가는 입구입니다. 현재 환구단으로 가는 출입구는 저기 있는 저 문이 아니라 그 오른쪽에 있는 샛길입니다. 어째 블로거의 기억에는 저 문 앞에서 재능교육 노동자들이 매일같이 시위를 하던 게 기억나네요. 저기가 재능교육 본사 바로 앞이다보니......



 샛길로 들어가면 환구단 가는 길이 친절......한지는 모르겠고 아무튼 약도로 안내되어 있습니다.



 약도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면 환구단의 '황궁우'가 나옵니다. 환구단은 원구단이라고도 하며 본래는 지금보다 훨씬 넓은 공간에 여러 건축물이 있었지만(본래 환구단의 본단은 황궁우 앞에 따로 있었음), 대한제국 멸망 이후 황궁우와 석고단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설이 철거되고 그곳에 호텔(現 조선호텔)이 지어집니다.



 황궁우 곁에 있는 석고단의 모습.



 이제 조별관람을 해야 하는 장소들을 모두 둘러보았습니다.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 전에 명동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는데, 중간에 봐야 할 게 또 있지요. 현재 신세계백화점 건물로 쓰이는 옛 미쓰코시백화점 건물과 그 옆에 있는 옛 조선저축은행(現 SC제일은행) 건물, 그리고 사진 이편에 있어 나오지 않은 옛 조선은행(한국은행) 건물입니다. 이곳은 밖에서 건물만 둘러보고 지나가기로 합니다.



 명동에서 점심식사. 다들 하루종일 걷느라 배가 고픈 김에 돈 좀 들여서 한식부페에 갔습니다.



 이제는 걷지 말고 전철을 통하여 이동합니다. 명동에서 4호선 전철을 타면 국립중앙박물관(이촌역)으로 바로 갈 수 있지요.



 이곳은 다시 단체관람(이래봐야 박물관 내에서는 또 자유관람이지만). 블로거는 현재의 국립중앙박물관 건물이 그닥 마음에 들지 않는데, 뭐 이거야 개인 취향의 문제인가 싶어 그러려니 합니다.



 역시 시작은 구석기시대부터 - 연천 전곡리에서 출토된 주먹도끼는 돌덩이 양쪽을 깨뜨려 만든 것으로, 당시 세계 구석기시대 연구에 큰 영향을 준 대발견이었습니다. 당시 전곡리에 애인과 함께 휴가를 나온 주한미군이 강변에서 우연히 발견한 것으로 유명하죠. 역시 연애는 좋은 것이다



 예전에 배로 쓰였을 나무조각도 있는데, 블로거의 짧은 식견에는 저걸 보고 어떻게 배의 흔적임을 알았을까 신기하기도 합니다.



 빗살무늬토기야 뭐 모르시는 분 없으실 테고



 그리고 그만큼이나 중요한 농경무늬 청동기도 있습니다. 자세히 보면 저 크지 않은 공간에 농사짓는 사람의 모습 등 당시의 문화를 알 수 있는 다양한 무늬가 새겨져 있습니다.



 김~~~~~치



 호우명 그릇은 신라 경주에서 발굴된 주제(?)에 광개토대왕의 호칭이 새겨져 있어 주목을 끌었습니다. 당시 고구려와 신라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는 증거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여담으로 이게 발견된 신라 무덤 '호우총'은 1946년 발굴되어 한국인이 직접 발굴한 최초의 유적입니다.



 신라 금관이야 당연히 빼놓을 수 없지요. 신라의 금관은 나뭇가지를 둘러 꽂아놓은 듯한 모양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북아시아(시베리아) 샤머니즘 문화의 흔적이라고 합니다. 이 지역의 샤먼들이 나뭇가지를 꽂은 모자같은 것을 머리에 쓰고 의식을 거행하거든요.



 가운데의 로비에는 경천사지 10층 석탑이 우뚝하니 서 있습니다. 경천사는 본래 개성에 있었던 절인데, 이 석탑은 일제강점기 초기에 일본 궁내대신이 한국을 방문했다가 이걸 보고 해체하여 일본으로 밀반출했고 ㅡㅡ; 이게 알려져 비판 여론이 거세게 일자 다시 한국으로 반환하여 경복궁 내에 재건해 놓은 것을 여기로 옮겼다는 기구한 운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고려 이전의 유물 중에는 불교와 관련된 것들이 많습니다.



 발해의 건축물에 쓰인 기와 중 하나. 크고 아름답습니다.



 아주 도발적인 자세와 큰머리 때문에 블로거의 눈길을 끌었던 불상.



 어느새 조선시대로 넘어왔습니다. 태조 이성계의 어진(御眞)이 관람객을 반깁니다. 조선시대의 어진은 남아있는 게 몇 없는데, 한국전쟁 직후 부산에 보관 중이던 어진을 포함한 많은 문화재들이 큰 화재로 대거 소실되었기 때문입니다. ㅡㅡ; 전북 전주에 있는 경기전에서도 조선시대 어진들을 볼 수 있습니다.



 네 음악 취미 있는 사람이 이걸 빼먹을 수 없지요. 편경은 당시에 국악기의 음을 조율하는 기준악기였는데, 세종대왕은 편경의 소리를 듣고 아주 미세한 차이를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의 절대음감이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대체 못하는 게 뭐냐 당신은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조선 초에 만들어진 세계지도로, 자세히 보면 당시까지 한국인에게 알려진 거의 모든 세계가 다 들어가 있습니다. 물론 한중일 외에는 아주 조그맣게 압축되어 '이런 게 있다' 수준이긴 하지만 ㅡㅡ;



 코끼리 모양 도자기......라고는 한데 아무래도 코끼리를 본 적 없는 사람들이 대충 이야기만 듣고 상상으로 만든 녀석 같습니다. 뭐 한반도에는 예나 지금이나 코끼리가 살지 않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겠습니다.



 암행어사 출두요~~~~~!!



 이제는 웬만큼 알려져 있지만 흥선대원군이 대동여지도 목판을 불태우고 김정호를 옥에 가두었다는 말은 명백한 개소리입니다. 무엇보다도 대동여지도 목판이 다수 남아 있기 때문에 ㅡㅡ;



 백자는 참 간결한 멋이 있는 것 같습니다.



 유명한 척화비와 당시의 조선 대포. 자주적인 모습이었긴 하지만 당시 저 대포로는 서양의 철갑선에 제대로 흠집 하나 내기 어려웠다는 근본적 한계도 있었습니다.



 위층으로 올라가면 불교유물을 집중적으로 모아 놓은 전시관도 있습니다. 불상도 있고



 벽면에는 거대한 불화(佛畵)도 걸려 있습니다.



 재미있게도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외국의 유물도 일부 전시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어디서 약탈을 해 온 건 아닐테니 문제될 건 없겠지요. 인도와 동남아시아 쪽 유물도



 중국의 유물도



 일본의 유물도 있습니다.



 드넓은 박물관을 둘러보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구름이 은은하게 낀 하늘이 예뻐 보이네요. 이것으로 2일차 일정도 모두 끝났고 블로거의 전화기에 있는 만보계는 이 날 하루 24,000걸음을 찍었습니다. ㅡㅡ;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