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대학교 역사교육과 2017 추계답사 - 3일차

일시 : 2017. 9. 25. ~ 27.

답사지역 : 서울특별시



 둘쨋날 뒷풀이는 한강공원에서 맥주로 조촐하게 치렀습니다. 덕분에 2일차보다는 한결 개운하게 답사를 시작할 수 있겠군요!



 마지막날 3일차의 첫 번째 답사지는 창덕궁입니다.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으로 들어갑니다.



 돈화문으로 들어가서 우선 정전인 인정전으로 들어가는데, 특이하게도 경복궁과 다르게 돈화문-인정문-인정전은 일직선상에 있지 않고 두 번을 꺾어 들어가야 합니다. 평지에 네모 반듯한 구획으로 만들어진 경복궁에 비하여 창덕궁은 비교적 자유로운 건물 배치를 하고 있는데, 일대의 지형과 조화를 이루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인정전은 경복궁의 정전인 근정전만은 못해도 상당한 위엄이 흐르는 웅장한 건물입니다.



 인정전의 내부는 의외로 어느 정도 서양식 분위기도 나고, 특이하게 전등도 달려 있는데 이는 나중에 일부러 단 게 아니라 실용적인 목적으로 설치한 것입니다. 순종 때인 1908년에 인테리어를 개조한 것이라고 하네요.



 인정전 옆에는 선정전이 있는데, 이곳은 편전(왕의 평상시 집무실)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특이하게 종종 왕과 왕비의 장례를 치를 때 신주를 모셔 놓는 공간(혼전魂殿)으로 쓰이기도 했다고 하는데 사진에 보이는 복도는 그런 이유 때문에 나중에 덧붙은 것입니다. 다른 특이점으로 선원전 지붕의 기와는 특이하게도 회회청(回回靑)이라는 비싼 안료를 사용한 청기와인데 이는 광해군 시기에 처음 깔았다고 합니다.



 선정전 옆에 있는 희정당은 왕의 생활공간으로 쓰인 곳인데, 선정전이 비좁은데다 왕의 장례 용도로 쓰인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임시 편전으로 활용되기도 했습니다. 블로거는 건물 전면의 구조가 독특해서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선정전과 희정당 뒤편에는 왕후가 생활한 대조전이 있습니다. 입구인 선평문을 넘어가면



 대조전 건물이 나옵니다.



 대조전 역시 실제 사용되던 당시의 모습으로 꾸며 놓았는데, 가구 등의 디자인을 봤을 때 여기도 대한제국 시기쯤의 모습으로 만들어 놓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조선과 대한제국의 최첨단 CCTV 물론 이건 현대에 관리용으로 달아 놓은 것이겠지요. 덧붙이자면 인정전 같은 큰 전각의 내부에는 로봇청소기도 돌아다닙니다. ㅡㅡ;



 이곳은 대조전의 일부인 청향각인데, 전각 옆에 붙은 굴뚝이 참으로 인상적입니다. 이곳 뿐만 아니라 서울의 조선 궁궐을 돌아다니면 저렇게 수수하면서도 예쁘게 쌓아올린 굴뚝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대조전을 나와 희정당 옆을 지나치면 세자가 거처했던 성정각이 나옵니다. 블로거가 사진을 거의 찍지 않은 관계로 여기는 그냥 안내간판으로 대체하겠습니다. ㅡㅡ;



 그리고 창덕궁의 한 쪽 구석에는 낙선재가 있습니다. 숙종 때부터 건물이 들어서기 시작해 헌종 시기 크게 중건된 이곳은, 다른 무엇보다도 조선 궁궐 중 가장 마지막까지 사람이 거주한 곳으로 역사에 길이 남을 공간입니다. 해방 이후에도 귀국한 의친왕과 이방자, 덕혜옹주가 모두 이곳에서 여생을 보냈습니다.



 바깥에서 본 낙선재의 풍경. 낙선재의 건물들은 단청을 칠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전각들과는 확연히 구별됩니다. 아마도 건물의 위상과 역할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 추정되긴 한데, 한참 나중에 교수님에게 물었을 때 교수님은 현대에 문화재를 복원 · 수리하면서 단청이 있고 없고 여부를 제대로 고증하지 않은 경우가 있으니 그냥 참고만 해두라고 하셨습니다. ㅡㅡ;



 낙선재 곁으로 두 갈래 길이 있는데, 사진 왼쪽은 후원으로 들어가는 입구이고 오른쪽은 창경궁과 연결된 통로인 함양문입니다. 창덕궁 후원은 종묘와 비슷하게 정해진 시간에 모여 입장하며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관람하게 되는데, 정해진 답사 일정에 맞추기 쉽지 않을 것 같아 그냥 바로 창경궁으로 이동하기로 합니다.



 함양문을 통과하면 가장 먼저 창경궁 통명전이 일행을 맞이합니다. 통명전은 왕후의 침전으로 쓰였습니다. 주변으로는 이외에도 몇몇 전각들이 흩어져 있는데 이곳이 창경궁의 내전 영역이라고 하는군요.



 많이 알려져 있지만 창경궁은 일제강점기에 대부분 철거되고 '창경원'이라는 이름의 동물원과 식물원으로 전락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20세기 말엽에야 동물원을 이전하고(이 때 창경원의 대타로 설치된 동물원이 바로 서울대공원 동물원) 본래 모습을 복원하고 있지만 아직은 비어 있는 공간이 많습니다.



 그런 연유로 궁궐 내부에서는 이런저런 공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답사 당시에는 정전인 명정전 앞에서 무슨 공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특이하게도 왕의 집무실인 문정전은 명정전과 바로 옆-뒤를 맞대고 바짝 붙어 있습니다. 창경궁은 본래 궁궐이 아니었던 곳에 이런저런 건물들을 덧붙여 궁궐로 만든 곳이라 역시 내부 구조가 상당히 독특하다고 합니다.



 아직 한창 복원 중이라 볼 것이 많지는 않습니다. 비어 있는 건물터를 노니는 재미도 있겠지만 창경궁은 이 정도만 보고 이동하기로 하였습니다. 뒤쪽으로 들어왔으니 정문(홍화문)으로 나가게 되겠지요? 명정전에서 홍화문으로 이어진 길목에 작은 개울(궁궐 내부에 낸 인공하천으로 '금천'이라고 합니다)과 다리가 있는데, 각각 '옥천'과 '옥천교'라고 부릅니다.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길에 서울역사박물관이 있는데, 시간이 조금 남는 김에 이곳을 짧게 관람하기로 하였습니다.



 서울역사박물관 앞뜰에는 서울에 있다가 철거된 이런저런 건축물들의 잔해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로테스크하게 생긴 이놈은 박정희 정권 때 지어진 '콘크리트제' 광화문의 부재로, 현재는 철거하고 원래의 재료를 활용하여 다시 지은 것입니다.



 서울역사박물관도 이런저런 전시물들이 잘 구성되어 있습니다. 옛 서울을 재현한 모형들도 있고



 다양한 유물들도 있습니다. 짐바브웨 달러의 100년 선배가 여기에 ㅡㅡ;



 아무래도 현대의 서울 또한 기억할 게 많다 보니 현대 유물도 많이 구비되어 있습니다. 사진 속 포크레인은 뭔가 예술작품으로 만든 것 같은데 인상적이어서 한 컷.



 2층에는 블로거가 여기서 가장 좋아하는 전시물이 있는데, 서울 전체의 건물들과 지형을 모형화하여 전시한 것입니다. 농담이 아니라 서울의 웬만한 건물들은 다 있는데 심지어 블로거가 몇 년 전 자취를 하던 다세대주택도 있더군요.



 이렇게 역사박물관을 떠나갑니다. 서울역사박물관은 옛 경희궁 터의 일부에 서 있는데 경희궁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철거된 이후 시가지가 들어서 지금은 복원하기도 요원한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점심을 먹기 위해 종로 쪽으로 이동 중. 광화문사거리 앞에는 빌딩숲 가운데 웬 기와건물이 하나 있는데, 고종 즉위 40주년을 기념하는 기념비가 있는 '기념비각'입니다. 어릴 적 이걸 처음 보고 이게 그 보신각인가 하고 종을 암만 찾아봐도 없어 실망했던 기억이 나네요. ㅡㅡ;



 광화문~종로 일대에는 이런 것들이 몇 군데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곳은 조선시대에도 서울의 중심가였다보니 땅을 파면 옛 건물의 흔적들이 많이 나오는 모양입니다.



 이곳은 종로타워. 예전에 화신백화점이 있던 곳입니다. 화신백화점의 역사와 이곳에 종로타워가 들어서기까지의 과정은 이 글을 참조.



 광화문광장 곁으로 공사장 같은 곳이 있는데, 옛 의정부 구역을 발굴조사하는 것 같습니다.



 자 이제 이번 답사의 마지막 장소인 경복궁으로 들어갑니다. 아까 박물관에서 본 그 콘크리트 말고, 제대로 된 재료로 복원한 광화문입니다.



 역시 경복궁은 다른 궁궐과도 차원이 다를 만큼 관람객이 많습니다. ㅡㅡ;



 정전인 근정전의 모습입니다. 이쯤이면 뭐 경복궁 구경 반 사람 구경 반이로군요.



 이곳은 수정전입니다. 이러저러한 용도 변화를 겪었는데 초기에는 집현전 건물로 쓰인 적도 있고, 조선 말에는 군국기무처가 이 곳에 있었다고 합니다. 특이하게 수정전 앞에서는 이런저런 공연을 하는 모양인데 이 날에는 무슨 음악회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알고 계실 그 건물 경회루입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전통 목조건물로 알려져 있지요.



 경복궁의 각 전각 사이를 넘나드는 문은 아무리 작아도 웬만하면 이름이 꼭 붙어 있습니다.



 강녕전과 교태전은 각각 왕과 왕비의 침실로 쓰였습니다. 바로 곁에 있기 때문에 안내표지에는 '강녕전과 교태전'이라고 묶어서 설명을 하고 있었습니다.



 흠경각과 함원전은 경복궁에서도 상당히 용도가 독특한 공간입니다. 흠경각에는 장영실이 만든 시계인 '옥루'가 설치되었고, 그 일대에는 이외에도 다양한 천문 관측기구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곁의 함원전은 불교 관련 행사가 열린 곳이라는데 조선이 유교 국가였음을 생각하면 궁궐 내에 이런 공간이 있는 게 상당히 독특하지요? 물론 태조나 세종, 세조 등 조선의 국왕 중에서도 불교를 존중한 사례는 꽤 있으니 말입니다.



 자경전은 대비의 처소입니다. 왕이 죽으면 왕비는 대비로 격상되면서 교태전을 새 왕비에게 넘겨주고 이곳으로 옵니다.



 경복궁 역시 어딘가에서는 항상 공사 중입니다. 열심히 복구 중이긴 하지만 경복궁은 그 자체가 워낙 넓다보니 ㅡㅡ;



 함화당, 집경당을 위시한 흥복전 일대는 후궁과 궁녀들을 위한 공간이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저 두 건물만 남아 있습니다.



 어느새 경복궁의 가장 깊은 곳까지 왔습니다. 이 집옥재는 딱 보기에도 아주 독특하게 생긴 건물인데, 벽돌을 사용하여 뭔가 중국적인 분위기도 나고, 하여튼 묘한 느낌을 줍니다. 이곳은 지금도 일반인을 위한 특강 같은 것들을 위해 활용이 되고 있으며, 블로거가 갔을 때도 무슨 강연을 한다고 그랬던가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하게 막아 놓았습니다.



 이곳은 건청궁인데, 특이하게 궁궐 내에 있음에도 일반 사대부의 저택과 비슷하게 지어졌으며 역시 단청이 없습니다. 고종이 왕실 사비로 건축하여 명성황후와 함께 살았다고 합니다.



 경복궁의 북문인 신무문입니다. 이곳을 나가면 청와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이 있습니다. 더 자세한 사항은 읍읍읍



 다시 들어와서, 이번에는 태원전으로 이동합니다. 이곳은 경복궁에서도 가장 외진 곳에 있어서 찾아오는 관람객이 별로 없습니다. 답사 온 일행 중에서도 이곳까지 구경하러 온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더군요.



 태원전은 왕의 장례를 위해 쓰인 공간입니다. 사진에 복도가 보이시지요? 이곳은 일제강점기에 철거되고 일본군과 미군, 국군까지 번갈아가며 주둔하였다가 이들이 모두 철수한 2000년대 이후에야 다시 옛 모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제 경복궁 끝까지 갔으니 다시 돌아올 일만 남았습니다. 돌아오는 도중에 우연히 발견한 풍기대는 저 위에 깃발을 설치하여 풍향과 풍속을 측정하는, 일종의 기상관측 기구였습니다.



 이제 입구로 거의 돌아왔습니다. 이번에는 조금 옆으로 빠져서 아까 보지 않았던 동궁(東宮) 구역을 잠시 돌아보기로 합니다. 동궁은 세자가 거처했던 공간으로, 현재는 자선당을 비롯한 몇몇 전각만 복원되어 있습니다.



 이제 경복궁의 전각들은 거의 둘러본 것 같습니다. 이제 대전으로 돌아올 일만 남았는데, 시간이 조금 남아서 모두 국립고궁박물관을 잠시 둘러보고 오기로 하였습니다. 국립고궁박물관은 광화문 옆에 붙어 있고, 과거 국립중앙박물관의 임시 청사로 쓰기도 했습니다. 고궁박물관 답게 왕실 관련 물품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주차장으로 나가는 길목에 있는 협생문을 지나면 이제 모든 답사가 종료됩니다. 


 이번 서울 답사를 두고 많은 우려가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의 노고에 힘입어 성공적으로 답사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서울은 수백 년 이상, 그리고 현재도 한국의 중심이며 당연히 역사적으로도 가장 중요한 도시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서울의 역사적 흔적은 근대 이후 도시개발의 와중에도 상당 부분 보존되어 있고, 이를 돌아보는 데 2박 3일로도 턱없이 부족함을 절감했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서울 답사가 어렵다고 말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서울은 정말로 한국사를 이해하기 위해 꼭 돌아보아야 할 공간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한정된 답사 기간만으로 서울의 역사를 보았다고 하기엔 부끄럽겠지만 그 조그만 한 구석이라도 목도했다고 말할 수는 있겠지요. 조금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사실 아쉬움보다는 빨리 가서 쉬고 싶은 생각만 답사 인원들은 대전으로 돌아왔습니다. 각자 다음을 기약하며......



한남대학교 역사교육과 2017년 추계답사 - 2일차 (2)

일시 : 2017. 9. 25. ~ 27.

답사지역 : 서울특별시




 갈 길이 바쁩니다. 도중에 있는 서울역사박물관도 잠시 들러서 관람을 하고



 다음 장소로 이동합니다. 근처에는 과거 서울에서 운행한 전차가 하나 전시되어 있습니다.



 길을 건너 언덕을 조금 올라가면 웬 흰색 탑이 하나 있는데, 이곳은 대한제국 시기에 러시아 공사관이 있던 곳입니다.



 아마 저 사진을 교과서나 문제집에서 보신 분들도 있겠네요. 당연히 저 탑 하나만 달랑 있었던 건 아니고, 원래 이곳에는 꽤 큰 건물이 있었고 탑은 그 한켠에 붙어 있던 것이었다고 합니다. 한국전쟁 때 나머지는 다 박살나고 저 탑만 달랑 남아서 지금까지 이어진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러시아 공사관은 아관파천의 주무대입니다.



 여기서 반대편으로 내려가면 정동거리인데, 이곳에는 옛 이화학당 건물이 남아 있습니다(그 옆으로는 이화여고 건물이 있는데 거기까지 갈 일은 없지요).



 이곳은 작은 역사관으로 쓰이고 있는데, 나름 이화학당이 한국 최초의 여학교인 만큼 들러서 관람할 만은 한 곳입니다. 참고로 여기는 처음 왔을 때는 입구가 반대편에 있어서 어디인지 헷갈립니다. ㅡㅡ;



 그리고 바로 근처에 있는 중명전. 이곳은 본래 덕수궁의 일부였지만 일제강점기 이후 덕수궁 권역이 난도질당하고 쪼그라들면서 ㅡㅡ; 현재는 덕수궁 권역 밖으로 밀려난 건물입니다. 본래는 황제의 개인 도서관이었고, 1904년 덕수궁 대화재 이후로는 한동안 고종의 편전(집무실)으로 쓰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중명전의 모습. 현재는 덕수궁과 떨어져 외롭게 놓여 있지만 원래는 덕수궁에 있던 여러 서양식 건축물 중 하나였습니다.



 이곳이 한동안 황제의 집무공간으로 쓰였다 보니 본의아니게 역사적 대사건의 무대가 되기도 했는데, 1905년 이토 히로부미의 주도 아래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된 장소가 바로 이곳입니다.



 그렇다 보니 중명전의 전시는 대부분 을사늑약을 중심으로 짜여 있습니다.



 내부에는 이 조약이 무효임을 알리는 고종의 친서를 인쇄해놓은 종이들과 거기에 대한제국 어새(御璽)를 찍어볼 수 있는 체험코너가 있습니다. 물론 이 친서는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합니다.



 실제 고종 황제의 어새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쯤에서 나와 다음 장소로 이동합니다. 역시 정동거리는 볼 게 많은데, 중간에 있는 정동제일교회 역시 역사적으로 볼 거리가 됩니다만 무슨 공사를 하는지 밖에서 보아야 했습니다.



 조금 더 걸으면 시청광장이 나옵니다. 생각하면 블로거는 1년 전만 해도 이곳으로 출퇴근과 통학을 매일같이 했는데 여기서 조금만 들어가면 있는 그 많은 역사들을 그냥 지나쳐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 이제 시청광장 반대편으로 가면 요런 곳이 있는데, 고종이 황제 즉위식을 거행한 환구단으로 들어가는 입구입니다. 현재 환구단으로 가는 출입구는 저기 있는 저 문이 아니라 그 오른쪽에 있는 샛길입니다. 어째 블로거의 기억에는 저 문 앞에서 재능교육 노동자들이 매일같이 시위를 하던 게 기억나네요. 저기가 재능교육 본사 바로 앞이다보니......



 샛길로 들어가면 환구단 가는 길이 친절......한지는 모르겠고 아무튼 약도로 안내되어 있습니다.



 약도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면 환구단의 '황궁우'가 나옵니다. 환구단은 원구단이라고도 하며 본래는 지금보다 훨씬 넓은 공간에 여러 건축물이 있었지만(본래 환구단의 본단은 황궁우 앞에 따로 있었음), 대한제국 멸망 이후 황궁우와 석고단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설이 철거되고 그곳에 호텔(現 조선호텔)이 지어집니다.



 황궁우 곁에 있는 석고단의 모습.



 이제 조별관람을 해야 하는 장소들을 모두 둘러보았습니다.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 전에 명동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는데, 중간에 봐야 할 게 또 있지요. 현재 신세계백화점 건물로 쓰이는 옛 미쓰코시백화점 건물과 그 옆에 있는 옛 조선저축은행(現 SC제일은행) 건물, 그리고 사진 이편에 있어 나오지 않은 옛 조선은행(한국은행) 건물입니다. 이곳은 밖에서 건물만 둘러보고 지나가기로 합니다.



 명동에서 점심식사. 다들 하루종일 걷느라 배가 고픈 김에 돈 좀 들여서 한식부페에 갔습니다.



 이제는 걷지 말고 전철을 통하여 이동합니다. 명동에서 4호선 전철을 타면 국립중앙박물관(이촌역)으로 바로 갈 수 있지요.



 이곳은 다시 단체관람(이래봐야 박물관 내에서는 또 자유관람이지만). 블로거는 현재의 국립중앙박물관 건물이 그닥 마음에 들지 않는데, 뭐 이거야 개인 취향의 문제인가 싶어 그러려니 합니다.



 역시 시작은 구석기시대부터 - 연천 전곡리에서 출토된 주먹도끼는 돌덩이 양쪽을 깨뜨려 만든 것으로, 당시 세계 구석기시대 연구에 큰 영향을 준 대발견이었습니다. 당시 전곡리에 애인과 함께 휴가를 나온 주한미군이 강변에서 우연히 발견한 것으로 유명하죠. 역시 연애는 좋은 것이다



 예전에 배로 쓰였을 나무조각도 있는데, 블로거의 짧은 식견에는 저걸 보고 어떻게 배의 흔적임을 알았을까 신기하기도 합니다.



 빗살무늬토기야 뭐 모르시는 분 없으실 테고



 그리고 그만큼이나 중요한 농경무늬 청동기도 있습니다. 자세히 보면 저 크지 않은 공간에 농사짓는 사람의 모습 등 당시의 문화를 알 수 있는 다양한 무늬가 새겨져 있습니다.



 김~~~~~치



 호우명 그릇은 신라 경주에서 발굴된 주제(?)에 광개토대왕의 호칭이 새겨져 있어 주목을 끌었습니다. 당시 고구려와 신라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는 증거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여담으로 이게 발견된 신라 무덤 '호우총'은 1946년 발굴되어 한국인이 직접 발굴한 최초의 유적입니다.



 신라 금관이야 당연히 빼놓을 수 없지요. 신라의 금관은 나뭇가지를 둘러 꽂아놓은 듯한 모양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북아시아(시베리아) 샤머니즘 문화의 흔적이라고 합니다. 이 지역의 샤먼들이 나뭇가지를 꽂은 모자같은 것을 머리에 쓰고 의식을 거행하거든요.



 가운데의 로비에는 경천사지 10층 석탑이 우뚝하니 서 있습니다. 경천사는 본래 개성에 있었던 절인데, 이 석탑은 일제강점기 초기에 일본 궁내대신이 한국을 방문했다가 이걸 보고 해체하여 일본으로 밀반출했고 ㅡㅡ; 이게 알려져 비판 여론이 거세게 일자 다시 한국으로 반환하여 경복궁 내에 재건해 놓은 것을 여기로 옮겼다는 기구한 운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고려 이전의 유물 중에는 불교와 관련된 것들이 많습니다.



 발해의 건축물에 쓰인 기와 중 하나. 크고 아름답습니다.



 아주 도발적인 자세와 큰머리 때문에 블로거의 눈길을 끌었던 불상.



 어느새 조선시대로 넘어왔습니다. 태조 이성계의 어진(御眞)이 관람객을 반깁니다. 조선시대의 어진은 남아있는 게 몇 없는데, 한국전쟁 직후 부산에 보관 중이던 어진을 포함한 많은 문화재들이 큰 화재로 대거 소실되었기 때문입니다. ㅡㅡ; 전북 전주에 있는 경기전에서도 조선시대 어진들을 볼 수 있습니다.



 네 음악 취미 있는 사람이 이걸 빼먹을 수 없지요. 편경은 당시에 국악기의 음을 조율하는 기준악기였는데, 세종대왕은 편경의 소리를 듣고 아주 미세한 차이를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의 절대음감이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대체 못하는 게 뭐냐 당신은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조선 초에 만들어진 세계지도로, 자세히 보면 당시까지 한국인에게 알려진 거의 모든 세계가 다 들어가 있습니다. 물론 한중일 외에는 아주 조그맣게 압축되어 '이런 게 있다' 수준이긴 하지만 ㅡㅡ;



 코끼리 모양 도자기......라고는 한데 아무래도 코끼리를 본 적 없는 사람들이 대충 이야기만 듣고 상상으로 만든 녀석 같습니다. 뭐 한반도에는 예나 지금이나 코끼리가 살지 않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겠습니다.



 암행어사 출두요~~~~~!!



 이제는 웬만큼 알려져 있지만 흥선대원군이 대동여지도 목판을 불태우고 김정호를 옥에 가두었다는 말은 명백한 개소리입니다. 무엇보다도 대동여지도 목판이 다수 남아 있기 때문에 ㅡㅡ;



 백자는 참 간결한 멋이 있는 것 같습니다.



 유명한 척화비와 당시의 조선 대포. 자주적인 모습이었긴 하지만 당시 저 대포로는 서양의 철갑선에 제대로 흠집 하나 내기 어려웠다는 근본적 한계도 있었습니다.



 위층으로 올라가면 불교유물을 집중적으로 모아 놓은 전시관도 있습니다. 불상도 있고



 벽면에는 거대한 불화(佛畵)도 걸려 있습니다.



 재미있게도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외국의 유물도 일부 전시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어디서 약탈을 해 온 건 아닐테니 문제될 건 없겠지요. 인도와 동남아시아 쪽 유물도



 중국의 유물도



 일본의 유물도 있습니다.



 드넓은 박물관을 둘러보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구름이 은은하게 낀 하늘이 예뻐 보이네요. 이것으로 2일차 일정도 모두 끝났고 블로거의 전화기에 있는 만보계는 이 날 하루 24,000걸음을 찍었습니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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