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에서 강진이 발생하여 전국이 시끄럽습니다. 이번에도 많은 곳(그것도 그 중 상당수는 언론)에서 지진의 세기를 말할 때 '규모'와 '진도'를 혼동하여 쓰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데, '규모'와 '진도'는 엄연히 다른 개념이기 때문에 이를 언급할 때는 조금 더 엄격히 분리해서 말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두 가지 개념이 정확히 무엇이고,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1. 규모 : 객관적인 지진의 Power


 - '규모'는 지진 발생 시에 방출된 힘 자체를 간단한 숫자로 표현한 것입니다. 힘의 크기 하나만을 보기 때문에 객관적이고, 수치로 정리하기도 쉽죠. 지진의 규모를 표시하는 척도에는 크게 '릭터 규모('리히터 규모'라고도 하는데 '릭터'가 정확한 표현)'와 '모멘트 규모'가 있습니다.


 - 릭터 규모는 미국의 지질학자 찰스 릭터(1900-1985)가 만든 체계입니다. 릭터는 지진이 발생했을 때 100km 떨어진 지진계에 기록된 최대 진동폭을 기준으로, 진폭이 10배 커질 때마다 수치가 1씩 증가하는 척도를 개발하였습니다. 이 경우 힘의 크기는 진폭의 크기의 2/3제곱만큼 커지기 때문에, 릭터 규모 수치가 1 증가할 때마다 힘의 크기는 대략 31.6배씩, 2 증가할 때마다 대략 1000배씩 증가하게 됩니다.


 - 1930년대 개발된 릭터 규모는 파의 종류(S파냐 P파냐), 지진계와 진원 사이 거리에 따른 변수 등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특히 큰 지진에 대하여 정확한 측정이 어렵다는 약점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랜 기간에 걸쳐 릭터 규모 척도에 대한 보완이 이루어졌고, 1979년 가나모리 히로오(1936-) 등 캘리포니아 공대(칼텍) 연구진에 의해 '모멘트 규모'가 새롭게 고안되었습니다.


 - 실제로 릭터 규모와 모멘트 규모는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혼용되고 있습니다. 대체로 작은 규모 지진에서는 릭터 규모가, 큰 규모의 지진에서는 모멘트 규모가 더 신뢰성이 높다고 하는군요. 그래서 미국 지질조사국의 경우 규모 3.5를 기준으로 그 이상에서는 모멘트 규모를, 그 이하에서는 릭터 규모 등 다른 척도를 사용한다고 합니다.


 - 릭터 규모 기준으로 힘의 크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1.0 - TNT 480g

2.0 - TNT 15kg

3.0 - TNT 480kg

4.0 - TNT 15t

5.0 - TNT 480t

6.0 - TNT 15kt

7.1 - TNT 480kt

8.0 - TNT 15Mt

9.0 - TNT 480Mt

10.0 - TNT 15Gt


 - 이번 경주 지진은 최대 규모 5.8이었으니, 대략 TNT 10kt 정도 크기가 되겠습니다. 참고로 제2차 세계대전 때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 '리틀 보이'가 TNT 20kt 위력이었으니, 대략 원자폭탄 반 개 정도의 위력이었다고 보면 되겠군요.


 - 규모는 단순히 힘의 크기만을 나타내기 때문에, 소수점 이하로 표시하는 게 가능합니다. 뉴스 등에서 지진의 세기를 소수점 찍어가며 표현했을 경우(예를 들어 이번 경주 지진에서의 5.1이나 5.8같이)에는 '규모'를 쓴 것으로 생각하면 됩니다. 그런데 규모의 경우 단순히 지진으로 방출된 힘이 얼마냐 크냐는 것만 따지므로, 이 힘이 실제로 어떻게 작용해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지는 알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2. 진도 : 사람이 느끼는 주관적인 피해


 - '진도'라는 다른 개념이 등장합니다. 진도는 사람이 느끼는 지진의 위력을 말하는데, 이를테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지진을 느끼는지, 시설이나 실내 물건에는 어떤 영향이 있는지같이 사람이 직접 느낄 수 있는 영향력에 대한 척도입니다. 이는 사람의 체험과 감각에 기초하므로, 당연히 주관적인 척도가 됩니다. 하지만 실제로 사람이 어떤 피해를 입었는가에 대하여는 오히려 더 자세한 정보가 될 수 있습니다.


 - 진도 척도는 기본적으로 '수정 메르칼리 계급'(MM계급, 12등급)을 사용합니다. 그런데 세계 굴지의 지진대국(?) 일본에서는 이 체계를 쓰지 않고, 자체적인 척도를 따로 만들어 씁니다. 일본 기상청의 진도 계급은 예전에는 8등급(진도 0~7)이었다가, 1996년 진도 5와 6을 각각 5약-5강-6약-6강으로 세분화하여 현재는 10등급으로 되어 있습니다. 역시 잘라파고스...... 한국은 일본 기상청 계급을 사용하다가 2000년부터 MM 계급으로 바꾸어 쓰고 있습니다.


 - 지진이 지표에 전달되는 과정에는 여러 변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진원은 지표면에서 얼마나 깊은 곳에 있는지(당연하게도 진원이 깊을수록 지표면은 안전해집니다), 진동은 어떤 형태로 되어 있는지, 땅은 단단한지 연약지반인지 등등. 그러니까 규모가 큰 지진이라도 사람에게 별다른 영향이 없을 수 있고, 약한 지진이라도 지표면에서는 큰 피해를 낼 수 있는 것입니다.


 - 그래서 진도의 경우 규모와는 별개로 발표하며, 어떤 지역의 진도가 얼마라는 것을 따로따로 나누어 발표합니다(이번 지진의 경우 경주와 대구에서 6, 부산과 울산 등지에서 5였다는군요). 진도는 정확히 1 단위로 표현되기 때문에 소수점 이하 단위가 있을 수 없고, 일반적으로는 로마 숫자로 표기하는 게 원칙입니다. 그러니까 6, 5가 아니라 VI, V로 표기하는 게 맞지요.


 - MM 계급은 다음과 같이 해석됩니다.


I. 미세한 진동. 특수한 조건에서 극히 소수 느낌.

II. 실내에서 극히 소수 느낌.

III. 실내에서 소수 느낌. 매달린 물체가 약하게 움직임.

IV. 실내에서 다수 느낌. 실외에서는 감지하지 못함.

V. 건물 전체가 흔들림. 물체의 파손, 뒤집힘, 추락. 가벼운 물체의 위치 이동.

VI. 똑바로 걷기 어려움. 약한 건물의 회벽이 떨어지거나 금이 감. 무거운 물체의 이동 또는 뒤집힘.

VII. 서 있기 곤란함. 운전 중에도 지진을 느낌. 회벽이 무너지고 느슨한 적재물과 담장이 무너짐.

VIII. 차량운전 곤란. 일부 건물 붕괴. 사면이나 지표의 균열. 탑·굴뚝 등의 구조물 붕괴.

IX. 견고한 건물의 피해가 심하거나 붕괴. 지표의 균열이 발생하고 지하 파이프관 등의 지하 시설물 파손.

X. 대다수 견고한 건물과 구조물 파괴. 지표균열, 대규모 사태, 아스팔트 균열.

XI. 철로가 심하게 휨. 구조물 거의 파괴. 지하 파이프관 작동 불가능.

XII. 지면이 파도 형태로 움직임. 물체가 공중으로 튀어오름.


 - 경주와 대구가 진도 VI(6)이라면, TV가 넘어지고 담벼락이 쓰러지는 수준의 피해소식이 대강 이해가 되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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