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annis Xenakis (1922-2001)

<Metastasis>



 - 크세나키스는 그리스 출신의 건축가, 작곡가입니다(본업은 건축가). 출생지는 루마니아의 브러일라이며, 부모는 그리스계 인텔리 계층에 속해 있었습니다. 부모가 모두 음악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크세나키스는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그가 5세 때 세상을 떠났고, 이는 그에게 큰 마음의 상처가 되었다고 합니다.


 - 크세나키스는 10세 때 그리스로 보내져 기숙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이후 1938년에 그는 아테네 공과대학에 입학하여 건축을 전공하였는데, 전공 교육을 받는 틈틈이 화성학과 대위법 등 음악 쪽 공부도 이어나갔습니다. 그런데 이듬해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그리스가 이탈리아와 독일의 연이은 침공으로 전쟁에 휘말려들자 그의 인생도 뒤흔들리게 됩니다.


 - 1941~1944년까지 계속된 추축국 점령기동안 크세나키스는 그리스 민족해방전선에 참여하여 저항군으로 활동하다가 부상을 입고 한쪽 눈을 실명하였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학교로 돌아간 크세나키스는 간신히 학교를 졸업하고 학위를 받았는데, 이 무렵 좌우파의 대립이 외국의 개입을 등에 업고 내전으로 번지자(그리스 내전) 그는 그리스 민주군(좌파)에 참여하여 다시 전쟁에 나섰습니다.


 - 내전은 미국과 영국의 지원을 받은 우파 쪽의 승리로 끝났고, 좌파 계열 인사들이 대거 학살당하는 와중에 그는 가까스로 몸을 피하고 프랑스로 망명하였습니다. 망명지에서 크세나키스는 대건축가 르 코르뷔지에(1887-1965)의 조수로 들어가 활동하였고, 작곡을 더 배우기 위해 아르튀르 오네게르(1892-1955), 다리우스 미요(1892-1974) 등을 찾아갔지만 큰 성과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코르뷔지에가 그의 음악적 재능을 알아보고 높이 평가했다고 합니다.


 - 이후 크세나키스는 올리비에 메시앙(1908-1992)을 찾아갔고, 메시앙에게서 비로소 가능성을 인정받고 가르침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메시앙이 특히 높게 평가한 것은 크세나키스가 건축가이며 고급 수학을 배웠다는 것인데, 실제로 크세나키스는 확률론을 비롯한 각종 수학적 이론을 음악에 도입하여 독특한 음악적 세계를 만들어낸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 크세나키스는 1959년 코르뷔지에 사무실을 떠나 독립하였고, 이후 건축가와 작곡가로 활동하면서 인디애나 대학, 소르본 대학 등에서 강의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코르뷔지에 사무실에서 일하던 1958년에 사무실은 브뤼셀 엑스포의 전시관인 필립스관(館)을 설계하였는데, 크세나키스는 이 건물의 구조와 기술적 요소를 적극 활용한 <Metastasis(전이)>라는 작품을 발표하여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그가 작곡가로 널리 알려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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