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진곡 <노들강변>
작곡 : 장익환

 - 장익환(1937-1991)은 예천 출신의 작곡가입니다. 처음에는 트럼펫을 전공하였고, 해군 군악대 하사관(부사관)으로 복무 중 미국 해군군악학교에 유학하여 빅밴드 편곡을 공부하였습니다. 제대 후 부산에서 잠시 활동하다가 상경, KBS 방송음악 편곡을 맡았습니다. 1983년에는 MBC-TV 경음악단의 단장으로 부임, 20명 남짓의 소규모 악단을 80명 규모의 팝스 오케스트라로 성장시켰습니다. 1988년 악단을 이끌고 서울올림픽 행사에 참여하기도 하였고 많은 작품의 작편곡을 맡는 등 활약하다가 1991년 암으로 별세하였습니다.


 - 군복무 시기부터 많은 작품을 만들었는데, 군 시기에는 <멋진 사나이>를 비롯한 군가와 행진곡 <노들강변>이 유명합니다. 이외에도 다수의 대중가요와 방송용으로 편곡한 작품이 있으며, 오케스트라곡으로는 <아리랑> 서곡이 유명합니다. <노들강변> 행진곡은 20세기 초 만들어진 동명의 창작민요를 모티브로 하며, 원곡의 작사는 신불출(1905?-1969?), 작곡은 문호월(1905?-1949?)이 맡았습니다.



애국 행진곡


해군 행진곡


행진곡 <애국>
작곡 : 이교숙


 - 이교숙은 1924년 원산 출생으로, 1944년 만주국 신경(창춘)방송교향악단의 트롬본 단원으로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다음해 일본의 패망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고려교향악단(서울시향의 전신 중 하나) 단원으로 활동하던 중 1949년 해군 군악학교가 설립되면서 교관으로 영입되었습니다. 상사로 시작하여 장교 교육을 마친 후 1951년 군악장교로 임관, 6대 해군 군악대장을 역임하였습니다.


 - 전쟁 이후 1955~57년 미국 해군군악학교로 유학, 당시까지 한국에 전해지지 않았던 하프와 재즈 빅밴드 이론을 배워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1967년 예편 이후 이화여자대학교에 신설된 하프 전공 교수로 활동하였고, 이와 별개로 당시 미8군 연예부대에서 활동하던 음악인들에게 음악을 개인교습하는 등 한국 대중음악에도 큰 업적을 남겼습니다. 당시 그에게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이 신중현, 김희갑(뮤지컬 <명성황후> 작곡), 정성조(前 KBS 관현악단 단장) 등이었으니 더 이상의 설명이 必要韓紙?


 - 해군 군악대 재직시절에는 <해군가>를 작곡하고, 다수 의식곡(국기에 대한 경례, 장성에 대한 경례 등) 및 행진곡의 작편곡을 맡기도 하였습니다. <애국>은 이후 편곡을 거쳐 <해군 행진곡>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행진곡 <신 아리랑>
작곡 : 황문규


 - 황문규 작곡. 그가 서울올림픽 조직위원회에 있을 당시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에 활용할 한국적인 행진곡이 너무 적었기 때문에, 두 행사에 활용할 목적으로 새로 작곡하였습니다. 실제로 이 작품은 서울올림픽 입장곡으로 활용하였으며, 원곡인 <아리랑>이 워낙 한국을 대표하는 민요이다보니 행진곡 또한 국가 행사 등 다양한 곳에서 널리 연주하고 있습니다.




행진곡 <타령> 1번

작곡 : 황문규


 - '한국 행진곡의 아버지' 황문규가 작곡하였으며, 1984년경 국방부 정훈국의 위촉을 받아 작곡한 두 작품(타령 1, 2번) 중 하나입니다(출처1 출처2). 민요 가락을 모티브로 만든 작품으로 도입부는 <능수버들>, 트리오는 <몽금포타령>을 바탕으로 합니다. 황문규의 행진곡 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작품 중 하나지요.



행진곡 <위대한 전진>

작곡 : 황문규


 - 한국의 군악대에서 가장 흔하게 연주하는 작품 중 하나. 작곡자 황문규는 해군 군악대장을 역임하였고, 예편 후 서울올림픽 조직위원회에서 활동하기도 하였습니다. 한국의 주요 행진곡 중 다수를 이 분이 작곡하여 '대한민국 행진곡의 아버지'라는 수식어가 있으며, 2000년대 중반 작고하였습니다(몇 년째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이 분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는데, 일단 인터넷에서는 아직 이 정도밖에 찾지 못하였음). 이 작품의 앞부분은 본래 트리오와 비슷한 느낌의 민요조 선율이었으나, 후에 개작된 것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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