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월간 여행기가 되어가고 있지만 근성으로 이어나갑니다. 어느새 제주도에 다녀온지 세 달이 되어가네요)


 - 아침 일찍 일어나서, 일단 서둘러 성산일출봉부터 다녀오기로 합니다. 게스트하우스 위치가 좋아서 골목 하나만 빠져나오면 바로 매표소가 있는 입구 길목이 나옵니다. 역시 유명 관광지다보니 주차장에서부터 단체관광객의 파도가 느껴지네요. 주차장에 가득한 관광버스들은 대체로 중국인 여행객들의 것이 아닐까 합니다.



 -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본격적으로 등산을 시작합니다. 매표소-일출봉 사이에는 어느 정도 경사진 초원이 있는데 그 곳에서 말타기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블로거는 돈이 없으니 열심히 올라가는 데 집중합니다. 올라가면서 등 뒤로 내려다보는 성산읍의 풍경도 퍽 멋집니다.



-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면 드디어 성산일출봉 저편을 볼 수 있습니다. 보호 차원에서 분화구 안쪽으로는 깊이 들어가지 못하게 해 놓았습니다. 새벽에 가면 유명한 일출 모습을 볼 수도 있겠지만 아쉬운대로 구름이 아스라이 낀 풍경으로 대신하기로 합니다.



 성산일출봉이 세계유산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그 지질학적 가치 때문입니다. 이런 형태의 분화구 중에서도 오랜 기간 바닷물에 깎여나가 지층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에, 화산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분명하게 알 수 있죠. 그리고 이곳에서 깎여나간 화산 생성물들은 터진목과 신양해변 쪽으로 가 쌓여 지금의 성산일출봉과 섭지코지를 육지와 연결시킵니다. 이 또한 세계적으로 보기 힘든 독특한 지형입니다. 아무튼 한국어보다도 많이 들리는 중국어를 뒤로 하고 다시 내려옵니다. 성산일출봉에는 화산활동과 침식으로 생긴 이런 특이한 바위들이 많이 있습니다.



 - 내려와서 게스트하우스에 돌아가 짐을 찾고 출발합니다. 오늘은 바삐 움직여야겠습니다. 왜냐고요? 우도를 다녀와야 하니까요. 성산포 항구에서 우도로 가는 배를 탈 수 있습니다. 종달리 쪽에서도 탈 수는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성산포 쪽이 배편도 더 자주 있고 편리합니다. 다리가 너무 아픈 관계로 ㅡㅡ; 자전거는 세워두고 다녀오기로 합니다. 가방은 매표창구 쪽에 맡겨 두었습니다.



 - 배는 우도 천진항에 도착합니다. 이게 또 천진항에 서는 게 있고 하우목동항에 서는 게 있으니 헷갈리지 말아야 합니다. 이걸 헷갈리면 나중에 순환버스 탈 때 이상한 곳으로 가는 경우가 있거든요.



 - 천진항에서는 우도 순환버스를 타고 관광지를 돌아다닐 수 있습니다. 순서대로 관광지마다 내려서 둘러보고 시간 맞춰서 다음 버스를 타고 다음 관광지로...... 가는 식으로 이용하게 됩니다. 다 좋은데 가격이 살짝 세군요. ㅡㅡ; 그래도 나름 기사님들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주는 것도 있고, 무엇보다 다리가 편하니 돈이 아깝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습니다.


 - 첫 행선지는 우도봉입니다. 우도의 최고봉인데 위치는 섬 한쪽 구석에 있습니다. 올라가는 길을 따라서 해식 절벽이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절경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지형이 무너질 수 있으니 주의하라는 경고문도 있네요. ㅡㅡ;). 꼭대기쯤에는 등대가 있는데, 1906년 처음 설치되었으니 아마도 일본의 한국 침략과 관련이 있겠지요? 실제로 직전인 1904년에는 러일전쟁에 대비하여 일본 해군의 초소가 만들어진 바 있다고 합니다. 러시아의 발틱 함대가 제주도 동쪽 바다를 통해 들어왔을테니, 이를 감시하기 위해 초소를 만들었겠죠.



 - 우도봉 밑에는 유명한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습니다. 우도의 특산물은 땅콩인데, 이를 이용한 땅콩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팔고 있습니다. 추천.



 - 다음 세 곳은 모두 해변입니다. 순서대로 검멀레해변, 하고수동해변, 서빈해변입니다. 서빈해변은 바닥에 모래 대신 홍조류의 단괴(團塊)가 퇴적되어 만들어진 지형입니다(산호 해변이라고도 하는데 실제로 산호와는 조금 다르다고 합니다). 일반적인 모래가 아니고 색깔도 훨씬 백색에 가깝기 때문에, 이곳에서 보이는 바닷물은 말 그대로 에메랄드빛이란 말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맑은 빛을 띱니다. 실제로 세계에 단 두어 곳밖에 없다고 하네요. 

주의 : 해변 전체가 천연기념물이니 바닥의 홍조단괴를 퍼오는 따위의 일은 하지 마세요. 벌금 나옵니다.



 - 아까 도착한 게 어느 항구였는지 헷갈리지 말라는 말 기억하시나요? 바로 서빈해변에서 항구로 돌아갈 때 하우목동항 방향과 천진항 방향 버스가 따로 있는데, 잘못하면 버스를 잘못 타서 엉뚱한 곳으로 가버리게 됩니다. 네. 블로거가 버스를 잘못 타서 하우목동항으로 가는 바람에 서빈해변까지 다시 걸어와야 했습니다. ㅡㅡ; 어찌어찌 천진항으로 돌아와서 성산포행 배에 올라탑니다. 우도여 안녕~


 - 육지로 돌아와서, 본격적인 라이딩을 시작합니다. 성산포는 서귀포시(옛 남제주군)의 동쪽 가장자리에 있기 때문에, 얼마 가지 않아 서귀포시는 끝납니다. 다시 제주시로 돌아왔군요! 이제 여행의 끝이 머지 않은 듯합니다.



 - 중간에 조금 늦은 점심을 먹습니다. 해안도로를 달리는 길에 발견한 해물칼국수집은 '김대중 대통령이 다녀간 맛집'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있습니다. ㅡㅡ; 아무튼 음식 맛은 좋군요.



 - 이곳에도 환해장성이 있습니다.



 - 지나가는 길에 어느 포구에서 상당히 흥미로운 표석을 발견합니다. 광해군은 인조반정으로 폐위당한 이후 강화도와 태안, 다시 강화도를 거쳐 마지막으로 이곳 제주도에 유배당해 살게 되는데, 이곳 행원리 포구가 바로 광해군이 도착한 곳이었던 것 같군요.



 - 해변도로를 쭉 달리다 보면 순서대로 월정리해변과 김녕해변이 나옵니다. 유명하기로야 김녕해변 쪽이 더 유명하지만, 월정리 쪽도 나름 괜찮습니다. 월정리해변에서는 멀찍이 풍력발전소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 김녕해변은 다 좋은데 (아마도 모래 유실을 막으려는 것이겠지만) 백사장을 무언가로 덮어놓아서 살짝 아쉬웠습니다. 무언가 기대를 굉장히 많이 하고 가다보니 그 기대엔 살짝 못미치는 정도?



 - 그리고 조금 더 가면 드디어 오늘의 여정이 끝납니다.


#7일차 게스트하우스 : 안녕프로젝트 게스트하우스




 - 날이 밝고, 사람들과 헤어져 길을 떠납니다. 오늘은 그럭저럭 평탄한 여행이 될 예정이라 목표를 조금 길게 잡았습니다. 다리가 계속 아프기는 한데 이젠 적응이 되었는지 그럭저럭 달릴 만 합니다. 수고해주고 있는 자전거를 사진에 담아 보았습니다(이름을 '고물카'라고 지었습니다. ㅡㅡ;).



 - 해안도로를 달립니다. 제주도의 해안도로는 저렇게 돌을 세워 가드레일(?)을 삼아놓는 경우가 많습니다.



 - 한동안은 딱히 붙일 말이 없을 정도로 평탄하네요. 해안도로와 일주도로를 오가며 달리다 보면 어느새 남원읍을 지나 표선면으로 들어섭니다. 표선면은 조선시대 정의군(郡)의 중심지였고, 중산간 쪽의 성읍마을에는 당시의 읍성도 남아 있습니다만 역시 자전거를 타고 들어가기엔 난이도가 높으니 다음을 기약하기로.



 - 해안도로의 끄트머리에 표선해변과 제주민속촌박물관이 있습니다. 표선해변은 백사장이 상당히 넓습니다.



 - 그리고 바로 이웃의 제주민속촌박물관으로 들어가려는데 입구 바로 근처쯤에 4.3 유적지가 나타납니다. 생각해보니 그동안 4.3 사건에 대해 너무 신경을 쓰지 않고 돌아다녔네요. 박물관에 들어가기 전에 잠시 길을 멈춥니다.



 - 그리고 오늘의 1차 목적지, 제주민속촌박물관으로 갑니다. 용인 한국민속촌과 비슷하게 사설 박물관이라 입장료가 제법 되는 편이지만(그래도 한국민속촌보단 저렴합니다), 몇 가지 아쉬운 느낌을 빼면 입장료만큼의 가치는 충분히 하는 곳입니다. 입장료를 끊고 남은 돈을 헤아려보니 이젠 돈을 조금 아낄 필요가 있겠군요. ㅡㅡ;



 - 처음 들어가면 한켠에 제주 전통 어선 '테우'가 손님들을 반깁니다. 이런 뗏목 수준의 어선을 이용했던 것은 조선시대 제주도 주민에게 출륙(出陸) 금지령이 내려져 번듯한 선박의 제조가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멀쩡한 선박을 만들 수 없으니 안전성이 떨어지는 테우를 이용하여 물고기를 잡고, 그러다가 폭풍이라도 불면 어민들은 불귀의 객이 되기 일쑤였고, 이것이 반복되면서 제주도는 여자가 많은 섬이 되었다......라는, 아픈 역사의 페이지가 서려 있는 배이기도 합니다.



 - 박물관 곳곳에 제주 전통 가옥들이 복원되어 있습니다. 여러 가지 주제로 다양한 형태의 집들이 있어서 볼 거리가 많은데 이쯤 되면 박물관이 너무 넓다라는 문제점에 직면하게 됩니다. ㅡㅡ; 자전거 여행 중이라 다리도 아픈데, 결국 중간부터 관람열차를 이용하기로 합니다. 관람열차는 중간중간 있는 정거장에서 탈 수 있는데, 그리 자주 다니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 어째 탑승하지 말라는 투 같습니다. ㅡㅡ; 어쨌든 관람열차로 상당한 거리를 이동한 후 다시 내려서 마저 관람을 계속합니다. 중간을 빼먹고 나서도 볼 거리들은 군데군데 있는데, 제주 양식으로 낮은 돌담을 두른(방목하는 가축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라고) 묘지의 모형이 인상적입니다. 특이하게도 4.3 사건을 비롯하여 제 명에 죽지 못한 이들을 위한 작은 위령비가 함께 서 있습니다.


 

 - 그렇게 한 바퀴를 돌고 나면 다시 박물관의 출입구가 나옵니다. 민속촌 내에 주막 스타일의 식당가가 있긴 한데, 그냥 표선면으로 나가서 점심을 때우기로 합니다. 냉면으로 간단히 요기를 하고 다시 출발.



 - 성산읍 구내로 들어갈 때쯤 바닷가를 따라 웬 돌더미들이 쭉 나타납니다. 자연적으로 쌓인 건 아니고, 고려~조선시대 유적인 환해장성(環海長城)입니다. 삼별초 전쟁 시기에 처음 쌓기 시작하여 조선시대까지 걸쳐 오랜 기간동안 제주도 해안을 둘러 건축한 성인데, 지금은 이 곳을 비롯하여 몇 군데에만 남아 있습니다. 저렇게 돌더미 수준인 경우도 있고, 비교적 온전한 형태로 남아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 해안도로를 계속 달리다가, 온평리쯤에서 방향을 내륙쪽으로 틀었습니다. 일주도로를 건너 조금 더 들어가면 탐라 건국 신화에 등장하는 혼인지(婚姻池)와 신방굴(神房窟)을 만날 수 있습니다. 고을나, 양을나, 부을나의 세 신인이 벽랑국에서 건너온 공주들과 혼인하기 위해 목욕재계한 곳이 혼인지, 혼례 후 신방을 차린 곳이 신방굴이라고 하지요. 신방굴은 작은 용암동굴인데, 특이하게도 내부가 세 갈래로 나뉘어 있습니다.



 - 온 길을 돌아가 다시 해안도로를 달립니다. 조금 더 가면 섭지코지가 나옵니다. '코지'는 곶(串)의 제주어 발음이라고 하지요. 요즘은 한가운데 큰 리조트가 들어서고 유명세 때문에 사람이 너무 많아져서 기대만큼의 공간은 아니었습니다. 주차장에서 더 들어가려다가 자전거나 짐가방을 보관할 곳이 마땅치 않아 그냥 그 주변 경치만 보고 발길을 돌립니다.



  - 그리고 좀 더 북쪽으로 올라가면 오늘의 목적지인 성산포입니다. 성산포로 들어가면서 잠깐 짚고 넘어갈 곳이 하나 있는데......



 - 성산포 터진목은 화산폭발로 성산일출봉이 형성된 이후 바닷물의 퇴적 작용으로 모래가 쌓여 만들어진 사주(沙洲)입니다. 제주도 본섬과 성산포를 연결하고 있으며, 20세기 현대적인 도로가 가설되기 이전에는 밀물 때 바닷물에 잠기기도 하여, 완전히 막힌 곳이 아니라는 의미로 '터진목'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는군요. 이것도 중요하지만, 이 곳의 해변은 4.3 당시 이웃 고성리와 오조리 일대 주민 100여 명이 끌려와 학살당한 곳이기도 합니다.



 - 사진의 장소에는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르 클레지오(1940-)가 쓴 제주 기행문의 한 부분이 새겨진 추모비가 있습니다. 


#6일차 게스트하우스 : 산토리니 게스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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