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들 아시다시피 1930년대 이후 급격하게 미쳐돌아가기 시작한 일본은, 무리한 팽창정책이 화를 불러와 1940년대에 이르면 중일전쟁-태평양전쟁이라는 양면전쟁의 구도 속에 스스로 빠져들게 됩니다. 당시 일본의 국력은 유럽의 웬만한 국가와 1:1로 붙어도 이기기 힘들 정도였음에도, 그야말로 폭주하듯이 중국과 미국이라는 두 거대국가에 선제공격을 가한 일본은 각각 초반에는 그나마 좀 앞서나가는 듯하다가 이내 압도적 국력차에 밀려나기 시작합니다.
- 이런 정신나간 짓을 한 데는 고질병이었던 일본 육군과 해군의 알력다툼이 한몫 했습니다. 러일전쟁 이전부터 유구한 역사를 자랑해온 일본 육군-해군 간 반목은, 당시 독립된 군체계가 아니었던 항공전력을 따로 구성하여 운영하고 육군이 항공모함과 잠수함 부대를 운영한다거나, 타 군의 전략을 스파이를 통해 '알아내야' 했을 정도...... 육군 주도의 중일전쟁이 잘 나가는 것처럼 보이자, 이를 의식한 해군이 무리하게 밀어붙인 게 태평양전쟁이라고도 합니다. 물론 여기엔 미국이 적극 참전하지 않을 것으로 예측한 일본 측의 오판이 겹쳐 있기도 했습니다.
- 1944년 6월 필리핀 해 해전에서 일본 해군의 항모전단이 궤멸당한 이후, 비행기의 자폭공격을 골자로 한 특공작전이 발동됩니다(이것이 바로 '카미카제'). 물론 이미 해상이든 항공이든 미군에 압도당하게 된 일본군으로서는 무슨 짓이라도 해야 하긴 했지만, 이러한 자폭공격은 결국 그나마 남은 전력과 숙련된 군인들마저 무의미하게 소모한 결과 일본이 더 빨리 망하는 데 기여할 뿐이었죠.
- 비행기만으로는 부족해지자 일본군은 아예 자폭 그 자체를 목적으로, 그것도 여러 종류의 병기를 개발하게 되는데...
#1. MXY-7 "오카"
- 기존의 비행기들이 아까웠는지 일본군은 자폭용 비행기를 개발합니다. 아니, 비행기라고 보기도 좀 그렇습니다. 사진만 봐도 잘 날게 생기진 않았는데, 이 비행기(?)는 혼자 이륙하지도 못하고, 빈약한 로켓엔진 하나만 달랑 달려 있습니다. 어떻게 날아다닐까요? 공격기나 폭격기 등을 모기(母機)로 삼아 함께 이륙하고, 목표에 가까워지면 떨어져 로켓엔진을 가동하며 엔진이 꺼진 이후로는 활공을 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대략의 운용 형태)
- 이것만 해도 심각한데, 자폭공격이 그나마 성공하기라도 하려면 일단 모기가 격추당하지 않고 목적지에 접근하고, 모기에서 떨어진 오카가 격추되지 않고, 동력조차 꺼진 이후에는 신의 조종능력으로 목표에 정확히 갖다박아야 합니다. 과연 공격에 성공할 수는 있을까요?...... 실제로 '오카'는 총 10여 회 출격에 모기와 오카의 승무원을 합하여 400여 명 이상이 전사했고, 전과는 미군 구축함 1척 격침에 그칩니다. 아무튼 탄두 자체의 위력은 대단했으니, 미군은 여러 의미를 담아 오카를 '바카(바보) 밤'이라고 불렀다는군요.
#2. 가이텐
- 공중으로는 부족했는지 수중에서도 자폭병기가 개발됩니다. 가이텐의 모체인 '93식 어뢰'는 일본이 그나마 기술적으로 앞서 있던 '산소어뢰'입니다. 그런데 산소어뢰 자체가 전쟁 후반에는 사장된 기술체계였고 이 무식한 크기를 자랑하는 어뢰 또한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었는데, 일본군은 바로 이것을 개량하여 조종실(!!!)을 만들어 놓은 것.
- 가이텐은 본래 자폭병기는 아닐 예정이었는데, 일정 거리까지 접근하면 진로를 고정시키고 조종사가 탈출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군부의 높으신 분들은 위력을 키우라고 요구했고, 가뜩이나 큰 어뢰가 더 커지면서 가이텐은 끝까지 조종을 하지 않으면 똑바로 갈 수 없게 되어버립니다. 결국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기존의 설계고 뭐고 자폭병기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 산소어뢰가 사장된 것은 특유의 민감한 성질을 비롯한 이런저런 문제 때문이었는데, 특히 이놈은 오래 추진하면 유독가스가 발생하여 조종사를 질식(!!)시키는 치명적 결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장거리 주행은 어림도 없었고, 목표에 가까이 접근에서 추진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거기에 억지로 달아놓은 조종실은 지나치게 비좁았고, 조종 자체도 무진장 어려웠다고......
- 어쨌든 1944년 말부터 가이텐은 실전에 투입되어 함선 4척 격침, 2척 대파(大破)라는 눈물나는 전과를 올립니다. 가이텐은 한자로 '回天'이 되며 '국면을 좋게 전환시킴' 정도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데, 그냥 조종사를 하늘로 돌려보내버리(?)는 병기가 되어 버렸습니다.
#3. 신요
- 이것은 자폭용 보트입니다. 모터보트에 대량의 폭약을 싣고 돌진하는 일종의 '화공선'이었는데, 문제는 <삼국지연의> 정도에서나 나오던 화공선이 20세기 한복판에 등장했다는 것.
- 아무래도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치 않다보니 무려 6,000여 대가 만들어졌는데, 누가 made by 일본군 아니랄까봐...... 몇 가지 치명적인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일단 작은 보트에 300kg이나 되는 폭약을 달아놓았으니, 파괴력은 좋겠지만 기동성에는 쥐약이었고 무게중심도 맞지 않아 조종하기가 아주 어려웠다고 합니다.
- 수천 대나 만들었지만 정작 제대로 된 전과가 알려진 것은 없고, 연합군의 상륙전에서 일부 활용된 적이 있다는 정도만 알려져 있습니다.
- 이것으로 전부가 아니라, 일본군은 자폭용 잠수함 '카이류(海龍)', 인간 기뢰 '후쿠류(伏龍)' 따위의 다양한 자폭병기를 개발했지만 (다행히도) 이것들은 실전에 활용될 기회를 갖지 못합니다. 이 외에도 대전차 죽창(!!)이니 인간지뢰(!!!)니 하는, 듣기만 해도 정신이 아득해지는 자폭병기들은 정작 본전치기조차 하지 못한 채 일본의 명줄을 재촉하는 역할이나 하게 됩니다.
- 이 웃기지도 않은 이야기의 하이라이트는, 자폭특공을 매우 즐겨 지시한 도미나가 교지(1892-1960)입니다. 62회에 걸쳐 특공을 명령하여 약 400여 대의 전투기와 조종사들을 날려먹은 그는 정작 위기 상황에서 적전도주를 감행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꼴통으로 유명한 일본군 수뇌부도 이것까진 봐주지 못하겠던지 그를 만주 관동군 장교로 좌천시켜버렸을 정도. 그에 비하면 실제 자폭공격에 투입된 이들의 모습은 차라리 모두를 숙연케 합니다.
"대일본제국 카미카제 특공대의 일원으로 선발된 것은 매우 영광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이는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짓이고,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절대 생각할 수 없는 작전이다. 자살하고 싶어 안달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과연 전제주의 국가다운 발상이다. 이런 짓으로 반짝 효과를 볼 수야 있겠지만, 패전을 막을 수는 없겠지." - 특공대원 우메하라 유지. 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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