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장소

 화성 당성

 일자

 2018. 9. 23.




 새로 이사한 본가 인근에 유적지가 있어, 추석 연휴를 이용하여 다녀오기로 하였습니다. 사적 제217호이며 역사교과서에도 자주 등장하는 당성(당항성)입니다.



 당성, 즉 당항성은 삼국시대부터 존재한 유서 깊은 곳이며, 처음에는 백제의 영역이었지만 한강 유역의 주인이 바뀌면서 이곳의 주인도 차례대로 바뀌어 왔습니다. 특히 신라는 한강 유역을 뒤통수를 쳐서 차지한 이후 이곳을 통하여 중국과 교류하였고 이는 신라의 삼국 통일에 매우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교통상의 중요성 때문에 이곳에는 통일신라 후기 당성진이 설치되었으며 서남해안의 청해진과 함께 중요한 해군 기지였습니다.


 당성은 고려시대에도 그 역할을 다하였고, 조선 초기에도 성을 쌓고 보수한 흔적이 발견되어 이 무렵까지는 계속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일대의 행정구역은 본래 당성군이었으며, 고려 말~조선 초기에 남양군의 일부가 된 이후 일제강점기 수원군(現 화성시)에 통폐합되어 현재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당성은 산성이기는 하지만 산 자체가 그리 높지는 않기 때문에 접근성은 크게 나쁘지 않습니다. 입구에는 작은 주차장도 설치되어 있고, 행정당국에서 조금이나마 신경은 쓰고 있는지 올라가는 길도 그럭저럭 꾸며져 있습니다.



 표지판을 따라 콘크리트 포장된 시골길을 조금 올라오면 당성으로 올라가는 입구가 나옵니다. 입구에는 나름 거창(?)하게 세워 놓은 당성 사적비와



 당성을 소개하는 안내판이 있습니다. 약도를 보면 당성은 1차성과 2차성이 있는 모양입니다.



 나름 관리소도 있기는 한데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모두 순찰 중이라는 표지판만 붙어 있었습니다. 평소 사람이 있기는 한 건지 모르겠군요. ㅡㅡ;



 낮은 산이라고는 해도 나름 산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거라 등산을 조금은 할 각오를 해야 합니다(실제로 당성을 돌면서 등산객을 몇 명 마주치기도 했습니다). 당성은 전형적인 포곡식(골짜기를 둘러싸 성을 쌓은 형태) 산성이라 이렇게 한 쪽 성벽이 골짜기 아래까지 낮게 내려오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올라가는 길은 2차성 동문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여기서부터 오른쪽 계단을 따라 성벽을 쭉 돌게 될 겁니다(물론 반대로 돌아도 무방). 중간중간 출입금지 표지판이 있기는 한데, 성벽이 무너질 위험이 있는 곳에 접근하지 말라는 의미라 그런 곳만 피하여 돌면 됩니다.



 사실 여기서 산꼭대기까지 바로 올라가는 형태라 이 부분에서는 조금 힘이 듭니다. 그래도 일대에 높은 산이 별로 없어서 경치 구경하는 재미는 있군요.



 그렇게 산꼭대기 근처까지 올라가면 꽤 멋진 광경을 볼 수 있는데, 성벽 바깥으로 멀찍이 서해 바다가 거의 3면에 가깝게 펼쳐져 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현대 들어 많은 곳을 간척했기 때문에 바다가 꽤 멀리 보이긴 하지만, 아마 조선시대 이전에는 정말로 3면이 바다였을 것 같습니다. 왜 이곳에 산성을 지었는지 대번에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이 성은 바다에 접하지 않은 한쪽(동쪽)으로만 평지와 맞닿은 구조이기 때문에, 바다 쪽으로 오는 적을 막기에도 용이했을 것입니다.



 산꼭대기 근처에서는 1차성에 대한 안내를 받을 수 있습니다. 안내판의 설명을 보며 생각하자면 본래 삼국시대에는 1차성이 있었고, 이곳이 무역도시로 커지면서 성이 너무 비좁으니 권역을 크게 확장하여 2차성을 쌓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1차성은 테뫼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능선을 돌다 보면 저렇게 성벽이 번듯하게 서 있는 부분도 볼 수 있는데, 현대에 문화재 보수 차원에서 다시 쌓은 것인지는 확실히 모르겠습니다.



 정상 부근에는 망해루라는 이름의 건물 터가 있습니다. 처음 지은 것은 삼국시대지만 고려 말기에 다시 건축했다는 설명이 붙어 있습니다. 당성 망해루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언급되며 고려 말 성리학자인 이색(1328-1396)은 <망해루기>라는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설명에 따르면 이곳에 누각을 지어 사신 등의 귀빈을 맞이하는 장소로 썼다고 합니다. 귀빈을 이런 높은 곳까지 올라오게 하다니



 당성은 근대 들어서 버려졌다가 1990년대 이후 발굴작업이 진행되었고, 이를 통하여 삼국시대의 그 '당항성'이었음이 확인되었습니다. 발굴 작업은 지금도 꾸준히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성벽을 따라 계속 걸어갑니다. 사진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데 사진 왼쪽으로는 저 멀리 시화호가 펼쳐져 있습니다. 저쪽 평지도 간척으로 만들어진 땅이니, 본래는 대부분 바다의 일부였을 것입니다.



 이곳은 북문 터입니다. 저기 쑥 들어간 곳이 보이시나요? 물론 지금은 문짝도 없고 길도 문을 통과하는 방향으로는 나 있지 않기 때문에, 유적으로서만 그 의미가 있는 곳입니다.



 이제 조금만 더 걸으면 처음 들어왔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게 됩니다. 이쯤부터는 골짜기 아래쪽으로 쭉 내려가는 길입니다.



 골짜기 쪽으로 내려와 위를 바라본 모습입니다.



 골짜기 아래, 그러니까 본래 당성 내부 중심지였던 곳에는 성에서 사용할 물을 담아 놓는 집수시설의 흔적이 있습니다. 지금 관점에서 보면 뭐 이런 비탈에 다 살았겠나 싶긴 하지만, 당성의 전성기에는 성 안에 대장간도 있고 귀빈 접대시설도 있는 등 나름 큰 도시의 역할을 수행하였다고 하네요.



 이제 내려갈 일만 남았습니다. 당성 입구에는 당성 발굴이 어떻게 이루어져 왔는지에 대한 간략한 소개글과 사진들이 붙어 있습니다. 여러 설명을 보면 이곳이 신라까지 이어진 비단길의 주 경로였다고 언급되는데, 실제로 요즘에는 비단길이 중국을 넘어 신라 경주까지 이어졌다고 보는 경우가 많으니 충분히 말이 된다고 하겠습니다.


 당성을 그냥 가볍게 관광지로 생각하기에는 좀 아쉬움이 있습니다. 나름 정비는 해 놓았다지만 여기저기 접근금지 표지판이 난잡하게 서 있고, 성벽을 도는 길 외에는 자연 상태의 수풀이 그대로 있거나 대충 잘라서 쌓아 놓은 폐허 투성이입니다. ㅡㅡ; 하지만 역사, 특히 삼국시대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한 번쯤 꼭 와볼 만한 곳입니다. 삼국시대 가장 중요한 지역 중 하나가 바로 이곳 당성이었기 때문입니다. 이곳에서는 상당히 많은 유물들이 최근까지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고 하는데, 나중에는 조금 더 깔끔하게 정비된 당성 유적지를 만날 수 있기를 바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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