現 국가 <리비아, 리비아, 리비아>


카다피 집권기 국가 <알라후 아크바르>


작곡 : 무함마드 압델 와하브 (1902-1991)
작사 : 알 바시르 알 아레비

제정 : 1951년(1969년 폐지) / 2011년


 - <리비아, 리비아, 리비아>는 리비아가 독립한 1951년에 리비아 국가로 제정되었습니다. 작사는 튀니지 출신 시인 알 아시르 알 아레비가, 작곡은 이집트 출신 가수 겸 작곡가인 무함마드 압델 와하브(튀니지와 아랍에미리트 국가도 이 사람이 작곡)이 맡았습니다. 이 노래의 운명은 상당히 기구한데, 처음 왕정 리비아의 국가였던 이 노래는 1969년 무아마르 알 카다피(1942-2011)의 쿠데타 이후 폐지되었습니다.


 - 카다피 집권기에는 <알라후 아크바르>가 국가로 사용되었는데, 이 노래는 본래 이집트군의 군가로 쓰이던 것을 카다피가 국가로 채용한 것입니다. 2011년 反카다피 시위가 혁명으로 발전하며 <리비아, 리비아, 리비아>는 옛 리비아 국기와 함께 혁명세력의 상징으로 쓰이기 시작했고, 카다피의 죽음으로 정권이 교체된 이후 리비아 국가로 다시 제정되어 현재에 이릅니다.



### 가사 ###


후렴
يا بلادي بجهادي وجلادي
ادفعي كيد الأعادي
واسلمي
اسلمي طول المدي إننا نحن الفدا

ليبيا ليبيا ليبيا

[나의 조국, 나의 조국
나의 완강한 투쟁에
나의 꾸준한 노력에
차례로 적과 역경을 모두 무너뜨리고
해방이 된 것은, 우리들이 목숨을 바쳤기 때문이다
리비아, 리비아, 리비아]


1절
يا بلادي أنت ميراث الجدود
لارعى الله يداً تمتد لك
فاسلمي، إنا -على الدهر- جنود
لا نبالي إن سلمت من هلك
وخذي منا وثيقات العهود
إننا يا ليبيا لن نخذلك
لن نعود للقيود قد تحررنا وحررنا الوطن
ليبيا ليبيا ليبيا

[나의 조국이여, 그대는 할아버지의 유산이었다
신이 모든 손을 던지고 너를 해쳤다고 하지만
군대는 언제든지 너를 이기려 한다
우리는 오래 살기 위해 누군가가 죽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우리는 진지한 서약을 받았다
그대는 우리(오 리비아여)를 위해 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인질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자유로울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조국은 자유로울 것이다
리비아, 리비아, 리비아]


2절
جرّد الأجداد عزماً مرهفاً
يوم ناداهم منادٍ للكفاح
ثم ساروا يحملون المصحفا
باليد الأولى، وبالأخرى سلاح
فإذا في الكون دين وصفا
وإذا العالم خير وصلاح
فالخلود للجدود إنهم قد شرفوا هذا الوطن
ليبيا ليبيا ليبيا

[그들이 발버둥칠 때
우리 할아버지께서는 그들의 칼을 갖고 오셨다
손으로 신성한 꾸란을 들라
그렇지 않으면 칼을 그들에게 빼앗긴다
그들은 자신의 땅을 넓히기 위해 전쟁을 벌이지만
온 세상은 평화롭고 번창할 것이다
그들이 우리의 성실을 지을 때, 그들은 영원하리라
리비아, 리비아, 리비아]


3절
حيّ إدريس سليل الفاتحين
إنه في ليبيا رمز الجهاد
حمل الراية فينا باليمين
وتبعناه لتحرير البلاد
فانثنى بالملك والفتح المبين
وركزنا فوق هامات النجاد
رايةً حرّةً ظللت بالعز أرجاء الوطن
ليبيا ليبيا ليبيا

[정복자의 후손 이드리스를 찬양하랴
그는 발버둥치는 제하드의 그림이었다
그는 우리의 깃발을 높이 들었다네
우리는 우리 땅의 자유를 위해 그를 따랐도다
그는 왕위의 영광을 만들었다
리비아의 하늘, 자유로운 깃발
번영하는 조국을 뛰어넘으리
리비아, 리비아, 리비아]


4절
يا ابن ليبيا، يا ابن آساد الشرى
إننا للمجد والمجد والمجدُ لنا
مذ سرونا حمد القوم السرى
بارك الله لنا استقلالنا
فابتغوا العلياء شأواً في الورى
واستعدوا للوغى أشبالنا
للغلاب يا شباب إنما الدنيا كفاح للوطن
ليبيا ليبيا ليبيا

[리비아의 아들, 사자의 아들인 이드리스는
우리의 영광이요 영광은 당신의 것이로다
우리가 스스로를 발버둥칠 때, 모든 백성들이 발버둥쳤다
하느님이 우리의 독립을 도와주셨을 때

가장 높은 곳을 찾았도다
젊은이들이여, 발버둥 칠 준비를 하라
삶은 우리 조국의 영광을 위한 전쟁이다
리비아, 리비아, 리비아]


(자료 출처 : 위키백과 "리비아의 국가")




現 버전



타지크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시기 버전

작곡 : 술레이만 유다코프 (1916-1990)

작사 : 굴나자르 켈디 (1945-, 현 버전) / 아불카심 라후티 (1887-1957, 타지크 SSR 버전)

제정 : 1946년 (타지크 SSR 버전) / 1991년 (현 버전)


 - 이 곡은 처음에는 <타지크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국가>로, 당시 소련의 일원인 타지크 SSR의 국가로 제정되었습니다. 첫 작사자인 아불카심 라후티는 이란 출신의 작가로, 불가리아, 터키, 나히체반(아제르바이잔 소속 자치공화국)등을 거치며 사회주의를 받아들이고 혁명활동에 몸담았습니다. 이후 소련으로 이주하였고, 타지크 지역에 정착하여 작가로서 큰 명성을 얻었습니다. 작곡자는 우즈베키스탄의 부하라 유대인 출신으로 라인홀트 글리에르(1875-1956)를 사사하였고, 제2차 세계대전과 그 이후 많은 작품 활동을 하였습니다.


 - 소련 붕괴와 함께 타지키스탄이 독립하면서, 곡은 그대로 놔둔 채 가사만을 바꾼 <수루디 밀리('국가(國歌)')>가 새롭게 제정되었습니다. 타지키스탄 출신의 시인 굴나자르 켈디가 작사를 맡았습니다.



### 가사 (現 버전) ###


1절
Диёри арҷманди мо - !
Ба бахти мо сари азизи ту баланд бод - !
Саодати ту, давлати ту бегазанд бод - !
Зи дурии замонахо расидаем - ,
Ба зери парчами ту саф кашидаем, кашидаем - !
(후렴)Зинда бош, эй Ватан, Тоҷикистони озоди ман - !
[사랑하는 우리 조국!
조국의 긍지는 가장 자랑스런 명예이다!
조국의 행복과 발전이 영원하기를!
우리의 소원은 예부터 독립이었다,
조국의 깃발을 휘날리자!
(후렴) 영원하고 자유로운 우리 조국, 타지키스탄!]

2절
Барои нангу номи мо - !
Ту аз умеди рафтагони мо нишонаӣ - !
Ту баҳри ворисон ҷахони ҷовидонаӣ - !
Хазон намерасад ба навбаҳори ту - ,
Ки мазраи вафо бувад канори ту, канори ту - !
[우리의 조국, 우리의 희망!
우리의 명예와 존엄성은 영원하리라!
우리는 조국 안에 있는 국민이다!
희망은 결코 끝나지 않으리라,
우리는 조국을 위해 충성한다!]

3절
Ту модаре ягонаӣ - !
Бақои ту бувад бақои хонадони мо - !
Мароми ту бувад мароми ҷисму ҷони мо - !
Зи ту саодати абад насиби мост - ,
Ту ҳастиву ҳама ҷаҳон ҳабиби мост, ҳабиби мост - !

[조국은 우리의 스승이라네!
조국의 미래가 곧 우리 미래이다!
조국의 의미는 곧 우리의 의미이다!
조국의 행복은 우리의 행복이다,
우리는 조국을 존경한다!]


(가사 출처 : 위키백과 "타지키스탄의 국가")



### 가사 (타지크 SSR 버전) ###


1절
Чу дасти рус мадад намуд,
бародарии халқи совет устувор шуд,
ситораи ҳаёти мо шарорабор шуд.
Гузаштаҳои пурифти хори мо
ба ҷилва омаданду дар диёри мо, диёри мо
Мустақил давлати тоҷикон барқарор шуд.

[러시아의 손으로 온 세기를 거쳐
소련 인민들이 탄생했도다!
힘센 가족이 새로운 운명의 빛을 발했도다
우리는 전통의 용기로 빛을 발했도다
우리 위에는 천둥이 지구를 괴롭히지만
타지키스탄의 타지크 인민들은 국가를 불렀도다]


2절
Ба ҳоли таб даруни шаб
Садои раъди давлати Ленин фаро расид
Зи барқи байрақаш сиёҳии ситам парид
Саодати ҷовидон дар ин замин
Зи партия ба мо расид, ба партия сад офарин
Марду озода моро чунин ӯ бипарварид.

[우리는 납치되었고 어둠에 굴복했다
그러나 레닌의 목소리가 천둥을 폭파시켰도다
붉은 깃발에 낙뢰가 쳤는데 어둠이 망가졌다
신성한 날이여, 자유로운 노동자여, 강철 곰같은 힘은
위대한 지도자이자 기본인 스탈린이었도다
아버지로서 그는 격렬한 전투에서 노동으로 우리를 키웠다]


3절
Шиори мо диҳад садо:
Баробарӣ, бародарӣ миёни халқи мо.
Зи хонадони мо касе намешавад ҷудо,
Ягонагиро ба худ сипар кунем
Ба сӯи фатҳи коммунизм сафар кунем, сафар кунем,
Зинда бод мулки мо, халқи мо, Иттиҳоди мо.

[그대의 용감한 아들은 우리와 다를 바 없겠지만
불명예스런 적을 물리칠 것이다
평생 소련 인민에 대한 신뢰를 믿는다
일치는 우리 전투의 기초가 되었도다
우리는 원수의 모든 요새를 정복할 것이다
조국에서 세기를 살며 세기를 살며 단결하랴!]


(가사 출처 : 위키백과 "타지크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국가")




작곡 : 오스만 제키 윈괴르 (1880-1958)

작사 : 메흐메트 아키프 메르소이 (1873-1936)

제정 : 1921년


 - <독립 행진곡>은 터키 공화국(과 사실상 터키의 괴뢰국가인 북키프로스 터키 공화국)의 국가로, 오스만 제국이 멸망하기 직전인 1921년 터키 공화국 국민회의에서 국가로 제정되었습니다. 당시는 현대의 터키를 만든 '터키 독립전쟁(1919-1923)이 한창이었던 시기로, 이 노래는 각지에서 결사항전을 거듭하는 터키 국민회의 군대와 민병대의 사기를 고취할 목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후 1930년 현재의 형태로 다듬어져 오늘에 이릅니다. 메르소이가 쓴 시는 본래 10절까지 있으나, 현재 국가로 부를 때는 1절과 2절만 사용합니다.



### 가사 ###


1절
Korkma, sönmez bu şafaklarda yüzen al sancak;
Sönmeden yurdumun üstünde tüten en son ocak.
O benim milletimin yıldızıdır parlayacak;
O benimdir, o benim milletimindir ancak.

[두려워 말라, 붉은 깃발이 새벽 속에서 파도를 이루면,
우리 집의 마지막 남은 불이 꺼지기 전까지 쓰러지지 않을 것이다.
저것은 영원히 빛나는 나의 국가의 별이다.
저것은 나의 것, 영웅적인 국가이다.]


2절
Çatma, kurban olayım çehreni ey nazlı hilal!
Kahraman ırkıma bir gül! ne bu şiddet bu celal?
Sana olmaz dökülen kanlarımız sonra helal,
Hakkıdır, Hakk'a tapan, milletimin istiklal!

[수줍은 초승달이여, 나의 희생에 불쾌하지 말라.
영웅적인 나의 무리에 한 송이의 장미를 바치니, 어찌 화를 내고 격노하는가?
그대를 위해, 우리는 피를 흘릴 옳은 행위를 할 것이다.
자유를 위해, 독립은 하느님을 믿는 나의 국가의 올바른 정의다.]


(가사 출처 : 위키백과 "독립 행진곡")




[파리쿠틴 산]


 - 파리쿠틴 산(Mt. Paricutin)은 멕시코 중서부에 위치한 화산으로 해발 높이는 2,800m, 주변으로부터의 상대 높이는 208m인 작은 산입니다. 활화산이라는 점을 빼면 특별할 것 하나 없어보이는 이곳은 의외로 전세계적으로 유명세를 떨치는 화산인데, 그것은 화산의 탄생과 성장 과정을 인류가 확실하게 목격한 매우 특이한 케이스이기 때문입니다.


 - 본래 이 일대는 산이 아닌 들판이었고, '파리쿠틴'이라는 이름의 작은 마을과 인근의 농경지가 있었습니다. 1943년 2월 20일 오후 4시, 동네 주민인 '디오니시오 풀리도'는 가족들과 함께 자신의 옥수수밭을 일구고 있었습니다. 일을 하던 그들은 갑자기 큰 소리와 함께 땅이 흔들리고, 땅에 균열이 생겨 부풀어오르더니 화산재와 연기가 분출하는 것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들은 연기에서 계란 썩는 냄새(황화수소 등 유황 화합물 가스)를 맡았다고 증언했습니다.


 - 소스라치게 놀란 그와 그의 가족은 농지와 경작용 소를 다 내버린 채 마을로 도망쳤고, 분출은 점점 심해져 다음날에는 약 50m, 일주일 후에는 100~150m 높이의 봉우리가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농사를 망칠까 걱정하는 수준이었던 파리쿠틴 마을 사람들은 용암과 화산탄이 뿜어져나오자 자신들의 생존 자체를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되었고, 결국 4월 들어서 마을을 포기하고 대피하기에 이릅니다. 6월에는 용암이 흐르는 방향에 있던 인근 마을 주민들도 대피하였습니다.



[1943년의 분출 장면. 출처 : 위키피디아]


 - 그러거나 말거나 화산의 분출은 계속되었고, 대략 1945년 1월까지 크게 세 단계로 나누어 대규모의 분출이 계속되었습니다(당시 분출된 화산재는 약 320km 떨어진 멕시코시티까지 날아갔다고). 그리고 큰 분출이 멈춘 이후로도 간간이 소규모의 분출이 이어졌고, 1952년에야 화산의 활동이 완전히 정지합니다. 처음 분출로부터 약 9년이 지나서, 파리쿠틴 '마을'이 아닌 파리쿠틴 '화산'은 계곡 바닥에서 424m 높이(출처 : 위키피디아)의 분화구로 변모하였습니다.


 - 마을 사람들과는 반대로 세계의 과학자들은 이 따끈따끈한 화산의 탄생에 흥미를 가지고 몰려들기 시작했는데, 그들은 화산의 탄생 순간부터 활동이 정지하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이는 인류가 화산의 탄생과 성장 과정을 온전히 지켜본 첫 사례로, 이후 화산 연구에 커다란 공헌을 하였으며 당시에 남긴 데이터는 현재까지도 연구에 요긴하게 쓰이고 있다고 합니다.


 - 사람들이 뻔히 보는 앞에서 분출한 화산이라, 이로 인한 인명피해는 거의 없었습니다(위키피디아에 의하면 사망 3명). 다만 주민들이 대피한 파리쿠틴 및 인근 마을은 용암 등의 분출물에 파묻혀 버렸고, 채 다 묻히지 않은 몇몇 건물들만이 이곳에 마을이 있었음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현재 분출은 완전히 멈춘 상태이며, 화산은 관광 명소가 되었고 분출에서 살아남은 인근의 다른 마을들에는 기념품 가게와 식당들이 들어서 있다는군요.


[화산 인근의 San Juan Parangaricutiro 성당 유적]



1. LED가 뭔데?

 

- LED(Light Emitting Diode), 한국어로 '발광 發狂 말고 다이오드'입니다. '다이오드'라는 명칭이 붙은 걸 보니 반도체 소자의 일종이고, 그 중 빛을 내는 성질을 가진 특정 종류의 소자를 의미합니다. 최근 LED 이야기가 사방에서 나오는 것은 이 특이한 소자의 발전이 빛을 다루는 전반적인 분야에 큰 변수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 LED가 일종의 반도체 소자라고 말했으니 여기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해 봅시다. 일단 '반도체'란 말을 많이 쓰지만 이게 대체 뭔가에 대하여는 많은 사람들이 모르죠. 일단 반도체는 도체(전기가 통함)와 부도체(전기가 거의 통하지 않음) 사이의 물질이라고 흔히 정의됩니다. 이들은 보통 14족 원소들인데, 전자의 개수와 전자가 없는 빈 칸의 개수가 같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죠.

 

- 중고등학교 과학 지식을 가지고 이해를 해 봅시다. 주기율표에서 '족'이란 최외곽 전자 개수와 관계가 있죠. 14족 원소들은 최외곽 전자 개수가 4개이고, 여기엔 전자가 8개까지 찰 수 있으니(물론 큰 원소들은 최외곽 전자가 18개까지 차겠지만 우린 거기까지 가지 않을 겁니다) 전자 4개에 빈 칸 4개가 있는 셈이죠. 이들 빈 칸을 일반적으로 '정공(혹은 양공)'이라 합니다.

 

 - 순수한 14족 원소는 전자와 정공의 수가 같기 때문에 별 일이 일어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불순물이 섞여 전자와 정공의 개수가 바뀌면 상황이 달라지죠. 전자가 더 많아지면 남는 전자는 정공을 찾아다닐 것이고, 정공이 많아지면(전자가 적어지면) 남는 정공들은 전자가 들어오기만 하염없이 기다리게 됩니다.


- 그래서 어떻게 하냐면, 두 물질을 붙여놓은 다음 거기에 전류를 흘려보냅니다. 전류가 흐른다는 건 전자가 이동한다는 것과 동의어니까, 이를 이용하여 두 물질 사이에서는 전자가 정공을 찾아다니는 일이 벌어집니다. 그런데 전자는 한 쪽에만 많이 있지 않았나요? 그래서 실제로 두 물질 사이에서 전자는 한쪽 방향으로만 흐르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반도체 소자의 기본 원리입니다.

 

- 두 물질 중 전자가 많은 쪽은 전기적으로 음성(-)을 띠기 때문에 N형(Negative), 정공이 많은 쪽은 (+)를 띠므로 P형(Positive) 반도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됩니다. 당연히 전류는 P형→N형으로 흐르죠. N형과 P형을 하나씩 붙여놓은 것을 '다이오드', 번갈아가며 세 개를 붙여놓은 것을 '트랜지스터'라 합니다.

 

- 그런데 전자는 이동하면서 일정한 양의 에너지를 방출하게 되고, 몇몇 종류는 이 에너지가 빛의 형태로 방출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LED입니다. 여기서 방출되는 에너지의 양은 일정한데, 빛에서 에너지의 양은 파장의 길이와 관련이 있고 파장의 길이란 빛에서는 바로 색깔이죠. 특정한 물질로 LED를 만들었을 때 특정한 색의 빛이 나온다는 원리가 바로 이것입니다(자세히 설명하려면 Energy Band Gap 이야기가 나와야 하는데 어려우니 생략).


[대충 이런 원리]


 

2. LED 개발의 역사

 

- LED의 원리 자체는 상당히 오래 전에 이미 알려져 있었습니다. 영국의 엔지니어 헨리 조셉 라운드(1881-1966)는 진공관 다이오드의 대체물질을 연구하던 중 특정 재료에 전류를 흘려보낼 때 빛이 방출되는 현상을 '우연히' 발견하고 학술지에 소개하였습니다. 다만 라운드의 전공 분야가 이 쪽이 아니기도 해서 그는 이걸 소개만 하고 끝내 버렸고, 이후 몇몇 학자들의 관련 연구만 진행되었습니다.

 

- 1950년대 이후 반도체 소자가 개발되고 관련 지식이 쌓이면서, 발광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도 설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가시광선을 방출하는 소자를 개발하여 실제로 활용하는 데 집중하였고, 마침내 1962년 닉 홀로니악(1928-)이 GaAsP(갈륨+비소+인)을 이용한 적색 LED를 개발하여 최초로 실용화하는 데 성공합니다.

 

- 이후 1970년대 초반까지 황색, 황록색, 주황색 등의 LED가 속속 개발되어 LED 실용화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전철역이나 버스정류장 등에서 흔히 보는 단순한 색의 전광판이 바로 초기 LED의 대표적인 활용 사례죠. 그런데 LED의 활용도를 높이는 데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으니, 바로 청색 LED가 실용화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 물론 청색 LED의 개발 자체는 초창기부터 계속되어 왔지만, 실제로 써먹을 수 있을 만큼 효율적인 소자를 찾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오랫동안 LED 사용 확대를 가로막고 있었는데, 1994년 나카무라 슈지(1954-), 아마노 히로시(1960-), 아카사키 이사무(1929-) 등이 GaN(질화갈륨)을 이용한 새로운 청색 LED를 개발하며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됩니다. 이를 바탕으로 녹색 LED도 곧 개발되었습니다.

 

- 이게 왜 중요하냐면, 청색-녹색 LED가 개발되면서 드디어 빛의 3원색을 모두 LED로 구현하게 되었고, LED로 백색 빛을 내는 것이 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LED를 조명이나 영상화면에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 바로 이 때부터죠. 그 중요성이란 이 세 명의 과학자가 함께 2014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을 정도니 더 이상의 설명이 必要韓紙?

 

 

3. 어디에 쓰이고 있는가?

 

- 일단 생각나는 곳은 바로 전광판. 간단한 글자와 그림을 표현할 수 있는 LED 전광판은 꽤 오래 전부터 실용화가 되었고, 일찍부터 일상에 깊이 파고들어 왔습니다. 우리가 흔히 기억하는, 황색-적색-황록색을 활용한 전광판이 바로 초창기 LED 기술로 만들어진 대표적인 물건이죠.


[우리에게 익숙한 LED 전광판]


- LED의 활용도가 폭발하게 된 계기가 바로 청색-녹색 LED 개발이라고 언급하였습니다. 빛의 3원색을 모두 표현할 수 있게 되면서, 이를 모두 합친 백색 빛을 표현하는 것이 가능해졌는데 이것은 조명이라든지 디스플레이라든지 등등 빛을 활용하는 거의 모든 분야에 활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거든요(괜히 다른 색도 아니고 청색 LED 개발자들이 노벨상을 받은 게 아닙니다).


- 이들의 생산이 본격화된 2000년대 이후 LED를 활용한 물건은 우리 주변에서 점차 많아지게 됩니다. 당장 이 글을 보는 분들 중 상당수는 집 전등을 LED 조명으로 쓰고 있을 겁니다. 블로거의 집도 책상 조명은 모두 LED 램프를 쓰죠. 그리고 LED 디스플레이(TV나 모니터)가 상용화되었는데, 일반적으로 이건 LCD 액정 뒤에 있는 광원을 LED로 바꾼 것을 이야기합니다.


 

[LED TV의 원리. 일반 LCD TV보다 더 얇게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 그 외에 신호등 조명이 LED로 바뀌기 시작한 건 좀 됐고, 가로등이나 공공건물 조명도 LED로 바꾸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도대체 왜 이렇게 LED 조명 열풍이 불고 있는 것일까요? 우선 LED가 기존 전등에 비해 가진 효율성의 우위 때문입니다. 열이 많이 방출되어 에너지 낭비가 심한 다른 조명과 달리 열 방출이 비교적 적습니다(블로거는 이 글을 쓰면서 책상 스탠드 전구에 손을 30초쯤 대고 있었습니다. 다른 조명이면 바로 화상을 입죠).


- 두 번째 이점은 전구의 수명입니다. 주기적인 전등 교체가 필요한 백열등이나 형광등에 비하여 훨씬 긴 수명을 자랑하죠(다만 반영구적인 것까지는 아니고, 특히 LED 소자는 열에 악하기 때문에 제대로 방열을 해주지 못하면 수명이 다른 전등보다도 훨씬 짧아질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용도에 따라 다양한 빛을 낼 수 있도록 다양한 종류를 만들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 물론 아직 해결되지 못한 문제점들도 있다는군요. 위에서 말한 열 문제도 그렇고, 기술적인 문제 때문에 현재는 전기 종류를 변환(교류→직류)할 필요가 있는데 여기서 열 낭비가 적잖이 발생하기 때문에 아직 백열등-형광등을 압도할 정도의 효율은 나오지 못한다고 합니다.


- LED의 가능성을 두고 2000년대 이후 수많은 업체가 사업에 뛰어들었는데, 아직 기술이나 경험이 부족하고 시장이 '생각만큼' 빠르게 성장하지는 않고 있는 등의 이유로 시장에서 철수하거나 망하는 기업이 많다고 합니다. 과당경쟁이 벌어지면서 가격이 지나치게 빨리 떨어지는 측면이 있다는군요. 관련기사


- LED 조명의 가능성 자체는 분명 거대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미 광합성에 적합한 파장의 빛을 방출하는 LED 조명을 이용한 농작물 재배가 시도되고 있고, 벌레가 특정 파장의 빛을 좋아한다는 특징을 활용한 특수 용도의 조명도 연구되고 있습니다. 분명 새로운 시장이기 때문에 불안정한 측면은 있지만, 앞으로 계속 성장할 분야임에는 틀림없어 보입니다.





- 이 전설적(?)인 시는 중국 출신의 언어학자 자오위안런(1892-1982)이 지은 것입니다. 예술적 의미가 있다기보단, 언어학적인 문제제기를 위해 만든 시라고 하는군요. 한자는 배우고 쓰기가 불편한 점이 있기 때문에 근대 이후로 꾸준히 로마자 표기로 바꾸자는 주장이 제기되어 왔는데, 자오위안런은 로마자 표기가 현대중국어 구어체(백화문(白話文))에는 적합하지만 전근대 문어체인 한문을 표기하는 데는 부적합하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이 시를 썼다고 합니다. 실제로 이 시는 백화문이 아닌 옛날 한문의 문법을 따르고 있습니다.



[본문]


石室詩士施氏, 嗜獅, 誓食十獅。Shí shì shī shì Shī Shì, shì shī, shì shí shí shī.
氏時時適市視獅。Shì shí shí shì shì shì shī.
十時, 適十獅適市。Shí shí, shì shí shī shì shì.
是時, 適施氏適市。Shì shí, shì Shī Shì shì shì.
氏視是十獅, 恃矢勢, 使是十獅逝世。Shì shì shì shí shī, shì shì shì, shǐ shì shí shī shì shì.
氏拾是十獅屍, 適石室。Shì shí shì shí shī shī, shì shí shì.
石室濕, 氏使侍拭石室。Shí shì shī, Shì shǐ shì shì shí shì.
石室拭, 氏始試食是十獅。Shí shì shì, Shì shǐ shì shí shì shí shī.
食時, 始識是十獅, 實十石獅屍。Shí shí, shǐ shì shì shí shī, shí shí shí shī shī.
試釋是事。Shì shì shì shì.



[해석(출처 : 위키백과 "시씨식사사")]


석실(石室)의 시인 시씨는 사자를 먹기를 즐겨 열 사자를 먹기로 하니
종종 저자에 사자를 보러 나감이라.
열시에 열 사자가 저자에 오니
그때 마침 시씨도 저자에 있더라.
열 마리 사자를 보고 활을 쏘니 열 사자는 곧 세상을 떠나
열 사자를 끌고 석실로 갔노라.
석실이 습하여 종에게 닦으라 하고
석실을 닦고 나서 그는 열 사자를 먹으려 하는데
먹으려 할제 열 사자를 보니 열 개의 돌 사자 주검이라.
이 어찌 된 일이오.




[1939~2013년의 Habemus Papam. 순서대로 비오 12세, 요한 23세, 바오로 6세, 요한 바오로 1세, 요한 바오로 2세, 베네딕토 16세,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종한 이후 바티칸에서는 '콘클라베'라 불리는 절차를 거쳐 후임 교황을 선출하는데, 후임 교황이 최종 선출되면 선임 부제 추기경이 대중 앞에서 새로운 교황을 소개하게 됩니다. 이를 보기 위해 성 베드로 대성당의 광장에는 수많은 인파가 운집하고, 추기경의 발표와 새 교황의 첫 강복('Urbi et Orbi')을 함께합니다. 추기경의 발표는 정해진 대사에 새 교황의 이름, 교황명을 포함하는 형태로 진행되며 'Habemus Papam'은 '교황이 선출되었습니다'라는 의미입니다. 대사의 양식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프란치스코 교황의 경우).

<Annuntio vobis gaudium magnum:

Habemus Papam!

Eminentissimum ac reverendissimum Dominum,

Dominum 'Georgium Marium' Sanctæ Romanæ Ecclesiæ Cardinalem 'Bergoglio',

Qui sibi nomen imposuit 'Franciscum'.>


<매우 기쁜 소식을 발표하겠습니다.

새 교황이 선출되었습니다!

지극히 탁월하시고 공경하올 분,

거룩한 로마 교회의 추기경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리오'이십니다.

이분은 자신을 '프란치스코'로 명명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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