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동교(可動橋)란, 스스로 움직여 다리 위 교통을 막거나 다리 아랫쪽의 교통을 열어줄 수 있는 특수한 기능을 가진 교량을 의미합니다. '교량'이라는 존재 자체가 고대로부터 이어져온 만큼 가동교 또한 (원시적인 외나무다리라든지 이런 건 빼더라도) 고대로부터 다양한 형태로 존재해 왔습니다. 특히 근대 이후로는 큰 규모의 교량이 건설되고 그 밑을 지나가는 배 또한 크기가 커지면서, 교량이 뱃길을 막지 않도록 하기 위해 대규모의 기계설비를 갖춘 가동교가 건설되기 시작했습니다.


 - 가동교는 한 가지 커다란 단점을 가지고 있는데, 교량이 뱃길을 열어주기 위해 작동하는 동안에는 필연적으로 다리 위 통행을 막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다리 위 교통과 다리 아래 교통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확실한 방법은 교량의 높이를 충분히 높게 짓는 것이지만, 지형적 이유 등으로 이런 식의 건설이 곤란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현재도 가동교 형태의 교량이 애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1. 도개교 (Bascule Bridge)


 [부산 영도대교(일엽도개교)]

 [런던 타워브리지(이엽도개교)]

 - 상판의 한 쪽(일엽도개교) 혹은 양쪽(이엽도개교)을 들어올려 배가 지나갈 길을 터주는 교량. 일반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가동교의 종류입니다. 고대부터 존재했을 정도로 만들어진 역사가 매우 오래며, 구조와 가동 방식이 비교적 간단하기 때문에 현재도 가동교 중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방식입니다. 현재 한국의 유일한 도개교인 부산 영도대교가 일엽도개교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1-1. 현문 (Drowbridge)


 - 성 주변에 파인 해자(垓子)를 건널 때 사용한 일종의 일엽도개교. 일반적으로 교량의 끝부분에 줄이 연결되어 있어, 이것으로 교량을 들었다 놓았다 할 수 있습니다. 유사시에 교량을 들어올리면 적의 접근을 방지하면서 성문을 이중으로 막는 부수효과가 있으니 방어용으로는 최적이라 할 만합니다. 해자의 개념이 발명된 고대 이후 세계 곳곳에서 절찬리에 애용되었으며, 중세 유럽의 성에 쓰인 게 유명하지만 한국에서도 고려~조선시대에 걸쳐 만들어진 바 있습니다.




 1-2. 전개교 (Rolling Bascule Bridge)


[프랑스 노르망디에 있는 페가수스 다리. 1934년 완공.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주요 전장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 도개교와 유사하지만, 상판을 들어올리는 부분을 축 대신 일종의 흔들의자처럼 만든 다리입니다. 미국의 엔지니어인 윌리엄 도널드 슈어저(1858-1893)가 고안하였습니다.



 2-1. 승개교 (Vertical-lift Bridge)


 

[포티지 호 리프트교. 미시간 주 행콕과 휴튼을 잇는 다리로, 현재의 다리는 1959년 완공]


 - 양쪽에 상판을 들어올릴 수 있는 리프트가 설치되어 있는 형태입니다. 이러한 형태는 양쪽에서 상판을 들어올리기 때문에 들어올리는 부분에 가해지는 부담이 그만큼 적고, 그래서 상판을 더 무겁고 튼튼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승개교는 무거운 열차가 지나가는 철도교에 적합합니다. 다만 다리 아래쪽으로 지나가는 데 높이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2-2. 탁자교 (Table Bridge)


 [벨기에 투르네에 있는 탁자교]

 - 승개교와 유사하지만, 이번에는 상판을 움직이는 기둥이 상판 자체에 달려 있습니다. 승개교와 달리 거대한 리프트를 따로 설치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한결 깔끔한 모양을 띱니다. 물론 높이 제한이라는 단점은 승개교와 동일하게 가지고 있지요.



 2-3. 잠수교 (Submersible Bridge)


 [그리스 코린트 운하에 있는 잠수교]

 - (서울 한강에 있는, 낮게 만들어져 홍수 때 물에 잠기는 형태의 '잠수교'와는 다른 용어) 승개교, 탁자교와 비슷한 방식이지만 이번에는 상판을 물 밑으로 내려 배가 통과하게 하는 방식입니다. 위의 두 형태와 비교하여 높이 제한이 없다는 큰 장점이 있지만, 이번에는 반대로 배의 흘수(물 아래로 잠기는 깊이)에 제한이 있을 수 있습니다.



 3-1. 수납교 (Retractable Bridge)


 - 상판을 한 쪽으로 치워서 뱃길을 터주는 형태. 중세 때부터 존재했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1452-1519)가 이러한 형태의 다리를 설계한 적이 있을 만큼 긴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만, 다리를 열 때 상판을 보관하기 위해 많은 공간이 필요하다는 큰 단점이 있어 현재는 별로 쓰이지 않습니다. 



 3-2. 접식교 (Folding Bridge)


[독일 킬(Kiel)에 있는 회른 다리. 1997년 완공.]

 - 접식교는 상판을 옆으로 접어서 치우는 방식을 사용합니다. 많은 공간이 필요한 수납교의 단점을 해결할 수 있지만, 구조가 복잡하고 접히는 부위에 과도한 무게가 걸리기 때문에 건설 및 유지보수에 많은 신경을 써야 합니다.



 3-3. 전접교 (Curling Bridge 혹은 Rolling Bridge)


 [롤링 브리지]


 - 접식교와 비슷하지만 이번에는 상판을 돌돌 말아서 옆으로 치웁니다. 이러한 형태의 다리는 2004년 런던에 건설된 보행자용 다리 '롤링 브리지'가 최초이며, 그래서 이러한 형태 자체를 'Rolling Bridge'라 부르기도 합니다. 역시 구조적으로 상당히 복잡하기 때문에 유지보수에 신경쓸 필요가 있습니다.



 4. 비경교 (Tilt Bridge)


 [게이츠헤드 밀레니엄 브리지. 영국 뉴캐슬 소재]


 - 상판을 옆으로 기울여 뱃길을 열어주는 다리입니다. 디자인을 제법 간지나게 만들 수 있어서인지, 높이 제한 등 이런저런 단점이 있음에도 몇 곳에 건설되어 있습니다.




 5. 선회교 (Swing Bridge)


[뉴캐슬 스윙 브리지. 저 뒤에 게이츠헤드 밀레니엄 브리지도 있군요]


 - 가운데에 회전이 가능한 기둥을 세워놓고, 그 위에 상판을 올려놓아 기둥이 상판과 함께 회전하는 다리. 전체 구조를 가볍고 간단하게 만들 수 있지만, 기둥을 세우느라 물길 한가운데를 막아야 한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보통 가운데에 인공섬을 만들어 뱃길을 둘로 나누고(양쪽의 방향을 다르게 하는 식으로 운영), 인공섬에 기둥을 세워 선회교를 건설하는 형태가 많습니다.



 6. 운반교 (Transporter Bridge)



 - 상판이 움직여 자동차나 사람 등을 실어나르는 구조로, 일반적인 교량보다는 케이블카와 더 유사합니다. 19세기~20세기 초까지 세계 여러 곳에 건설되었지만, 다리 위에서 움직일 수 있는 교통량이 너무 적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기 때문에 다양한 형태의 가동교가 개발된 현재는 거의 건설되지 않습니다. 당시 건설된 다리 중 몇몇이 지금까지 남아 있습니다.






작곡 : 훌리안 펠리페 (1861-1944)

작사 : 호세 팔마 (1876-1903)

제정 : 1898년


 - <루팡 히니랑>은 '선택받은 땅'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노래는 1898년 필리핀 독립 선언에 즈음하여, 독립운동의 지도자인 에밀리오 아기날도(1869-1964)의 의뢰를 받고 국립 악단의 감독인 훌리안 펠리페가 행진곡 형태로 작곡하였습니다. 펠리페는 작업에 임하면서 <Marcha Real>(스페인 국가), <La Marseillaise>(프랑스 국가), 주세페 베르디(1813-1901)의 오페라 <아이다> 중 "Grand March" 등을 참고하였다고 합니다.


 - 다음 해(1899년)에는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인 호세 팔마가 <필리핀인>이라는 이름으로 가사를 붙여, 비로소 온전한 노래로 완성되었습니다. 처음의 가사는 스페인어로 만들어졌으며, 이후 영어와 타갈로그어로 번역되었다가 가사가 개정되는 등 몇 차례의 과정을 거쳐 1960년 최종적으로 현재의 가사가 완성되었습니다. 이후 1998년 필리핀 정부는 영어와 스페인어 버전을 더 이상 쓰지 않고, 타갈로그어 버전만을 공식 국가로 인정하였습니다.



### 가사 ###


Bayang magiliw
Perlas ng Silanganan,
Alab ng puso,
Sa dibdib mo'y buhay.
[사랑스러운 땅이여,
동방의 진주여
마음의 열정은
너의 가슴에 오래도록 살아 있다.]

Lupang Hinirang,
Duyan ka ng magiting,
Sa manlulupig,
Di ka pasisiil.
[선택된 땅이여,
너는 용감의 요람이다.
정복자로부터
당신은 이길 수 없다.]

Sa dagat at bundok,
Sa simoy at sa langit mong bughaw,
May dilag ang tula
At awit sa paglayang minamahal.
[바다와 산을 넘어,
공기와 푸른 하늘을 넘어,
사랑스러운 자유 속에서
시와 노래의 훌륭함을 찾으리라.]

Ang kislap ng watawat mo'y
Tagumpay na nagniningning,
Ang bituin at araw nya'y
Kailan pa ma'y di magdidilim.
[깃발의 불꽃은
승리를 빛나게 한다.
그대의 별과 해는 희미하지만
영원할 것이다.]

Lupa ng araw, ng luwalhati't pagsinta,
Buhay ay langit sa piling mo;
[영광과 애정, 태양의 나라여,
인생은 너의 팔과도 같다.]

Aming ligaya, na pag may mang-aapi
Ang mamatay nang dahil sa iyo.
[독재자가 있을 때, 나는 네게 감사의 표시를 전한다.
네가 죽을 때 까지.]




작곡 : 미상

작사 : 유제프 비비츠키 (1747-1822)

제정 : 1927년


 - 이 노래는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과 폴란드 멸망의 소용돌이 속에서 만들어졌습니다. 1773~1795년에 걸쳐 폴란드는 주변 국가(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러시아)에 의해 분할 점령당하여 나라 자체가 소멸했고, 폴란드인 망명자들은 이탈리아에서 '폴란드 군단'을 결성하여 나폴레옹 전쟁에 참여하였습니다. 군단의 사령관은 얀 헨리크 돔브로프스키(1755-1818)였으며, 그의 친구인 시인 비비츠키는 폴란드의 독립 정신을 고취하기 위한 노래를 폴란드 전통 마주르카 선율에 맞추어 만들었습니다.


 - 폴란드 군단의 노력으로 프랑스의 위성국 '바르샤바 공국'이 만들어졌지만 나폴레옹의 패배와 함께 국가는 다시 사라졌고, 폴란드의 독립은 100년을 넘어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나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독립 이후 이 노래는 국가로 제정되었으며, 본래는 6절까지 있었지만 현재는 공식적으로 4절까지만 부르고 있습니다. 이 노래는 첫 소절 가사를 따서 <폴란드는 아직 죽지 않았다>라는 제목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 이 노래의 곡조는 (약간 수정되어) 유고슬라비아의 국가에도 쓰인 적이 있습니다. 유고슬라비아 국가의 제목은 <Hej, Sloveni>



### 가사 ###


1절
Jeszcze Polska nie zginęła
Kiedy my żyjemy
Co nam obca przemoc wzięła
Szablą odbierzemy
[폴란드는 우리가 살아가는 한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어떠한 외적들이 우리를 침략해도
우리는 손에 든 칼로 되찾으리라]

후렴
Marsz, marsz, Dąbrowski
Z ziemi włoskiej do Polski
Za twoim przewodem
Złączym się z narodem (×2)
[전진하라, 돔브로프스키여
이탈리아에서 폴란드까지
그대의 지도 아래서
우리 국민들은 단결하리라 (×2)]

2절
Przejdziem Wisłę, przejdziem Wartę
Będziem Polakami
Dał nam przykład Bonaparte
Jak zwyciężać mamy
[비슬라 강과 바르타 강을 건너서
우리는 폴란드인이 되리라
우리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에게
승리의 방법을 보여주었도다]

3절
Jak Czarniecki do Poznania
Po szwedzkim zaborze
Dla ojczyzny ratowania
Wrócim się przez morze
[스테판 차르니에츠키가 스웨덴 인들과 싸워
포즈난을 되찾은 것과 같이
억압의 사슬로부터 우리 조국을 해방시키기 위해
우리는 바다를 건너오리라]

4절
Już tam ojciec do swej Basi
mówi zapłakany:
"Słuchaj jeno, pono nasi
Biją w tarabany."
[아버지가 눈물을 흘리며
바시아에게 말한다
"단지 들어라, 우리 국민들이여
북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도다."]




작곡 : 톨리아 니키프로베츠키 (1916-1997)

작사 : 바바 울드 셰이크 (1860-1924)

제정 : 1960년

폐지 : 2017년




 <모리타니 국가>는 1960년 모리타니 독립과 함께 국가로 제정되었습니다. 이슬람 법학자 겸 시인으로 활동한 바바 울드 셰이크의 시를 바탕으로, 프랑스의 작곡가인 톨리아 니키프로베츠키가 곡을 붙여 완성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곡은 따라 부르기가 어렵다는 이유로 이후 모리타니 정부가 가사를 공식적으로 폐지하여, 가사가 없는 국가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본래의 가사를 붙여 부르는 경우는 종종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다른 나라들처럼 국가에 정식 가사가 있어야 한다는 여론도 많았고, 결국 모리타니 정부에서는 이집트 출신의 라게 사미 다우드(1954-)가 작곡한 노래를 2017년 11월 새로운 국가로 제정하여 이 곡은 더 이상 국가로 쓰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새 국가는 이 곡과 제목만 같은 전혀 다른 노래입니다. [새 국가 듣기]




### 가사 ###

그런 거 없다



(갱신 : 2018. 4. 5.)




작곡 : 프란츠 에케르트 (1852-1916)

작사 : 민영환 (1861-1905)

제정 : 1902년

폐지 : 1910년


 - 대한제국의 국가로 쓰인 이 노래는, 대한제국 자체가 금방 멸망했기 때문에 국가로서는 몇 년 쓰이지 못한 비운의 노래입니다. 작곡자인 프란츠 에케르트는 본래 독일 해군 소속 음악가로 일본에서 활동하기도 하였으며, 당시 일본 국가인 <기미가요>를 근대식으로 편곡하기도 하였습니다. 그가 대한제국에 파견된 것은 1901년이었는데, 일본에서 경험했듯이 대한제국에서도 국가를 만들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으며 예상대로 정부가 국가 제작을 의뢰했다고 합니다.


 - 에케르트는 민요 선율에 바탕을 두고 작곡을 진행하여, 1901년 고종 탄신일에 궁궐에서 초기 버전을 연주하였고 다음해 최종적으로 완성하여 대한제국 국가로 공식 제정하였습니다. 하지만 대한제국이 망해감에 따라 이 노래 또한 풍운에 처하게 되었는데, 공식적으로 연주된 것은 1907년 순종 즉위식 이후로 없었으며 1909년에는 일본이 다른 애국창가와 함께 금지곡으로 묶어 버렸습니다. 공식적으로는 1910년 병합과 함께 폐지되었습니다.


 - 이후로는 당연히 공식적으로 부를 수 없었으며 주로 해외 교민들에 의해 전파되었는데, 전파가 주로 구전으로 되었기 때문에 시대와 지역별로 가사에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 1945년 해방이 되었지만 남북한 정부 모두 새로운 노래를 국가로 선정하면서 이 노래는 사실상 잊혀지게 되었습니다. 원곡 가사는 충정공 민영환이 작사하였으며, 대한제국이 전제 제국이었기 때문에 황제를 찬양하는 성격이 강합니다.



### 가사 (원곡) ###

상뎨(上帝)는 우리 황뎨를 도으ᄉᆞ
셩슈무강(聖壽無疆)ᄒᆞᄉᆞ
ᄒᆡ옥듀(海屋籌)를 산(山)갓치 ᄡᆞ으시고
위권(威權)이 환영(環瀛)에 ᄯᅳᆯ치사
오쳔만셰(於千萬歲)에 복녹(福祿)이
일신(日新)케 ᄒᆞ소셔
상뎨(上帝)는 우리 황뎨(皇帝)를 도으소셔

[하느님은 우리 황제를 도우셔서
만수무강하시고
큰 수명의 수를 산같이 쌓으시고
위엄과 권세를 천하에 떨치셔서
오, 천만세에 기쁨과 즐거움이
날로 새롭게 하소서
하느님은 우리 황제를 도우소서]



### 가사 (1925년 하와이 한미클럽 버전) ###

상뎨(上帝)는 우리 나라를 도으쇼셔
영원무궁토록
나라태평ᄒᆞ고 인민(人民)은 안락ᄒᆞ야
위권(威權)이 셰샹에 떨치여
독립자유부강을
일신(一信)케ᄒᆞ소서
상뎨(上帝)는 우리 나라를 도으쇼셔

[하느님은 우리나라를 도우소서
영원 무궁토록
나라 태평하고 인민은 안락하여
위엄과 권세가 세상에 떨치여
독립 자유 부강 을
날로 새롭게 하소서
하느님은 우리 나라를 도우소서]




작곡 : 마르티우스 로렌스 드 빌리어즈 (1885-1977) / 에노흐 손통가 (1873-1905)

작사 : 코넬리스 야코부스 랑겐호번 (1873-1932) / 에노흐 손통가 (1873-1905), 조셉 페리 (1841-1903)

제정 : 1957년 (<Die Stem van Suid-Afrika>) / 1994년 (<Nkosi Sikelel' iAfrika>) / 1997년 (<Volkslied van Suid-Afrika>)


 - 현재 버전인 <남아프리카 찬가>는 두 노래를 합친 것입니다. 첫째는 1957년부터 남아프리카공화국 국가로 쓰인 <남아프리카의 외침(Die Stem van Suid-Afrika)>이며, 둘째는 1994년 공동 국가로 제정된 <주여 아프리카를 구원하소서(Nkosi Sikelel' iAfrika)>입니다. 두 노래는 공동 국가로 쓰이다가 1997년 개정을 통해 하나의 노래로 합쳐졌고, 이후로는 합쳐진 노래가 유일한 국가로 쓰이고 있습니다.


 - <남아프리카의 외침>은 1918년 작사, 1921년 작곡된 이후 1920년대 SABC(남아프리카 방송 공사)를 통해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후 1957년 <God Save The Queen>을 대신하여 남아프리카공화국 국가로 제정되었는데, 이후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인종분리 정책으로 국제적인 고립에 처했으며 가사 또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분리 정책을 옹호한다 하여 올림픽 등의 국제 행사에서 이 노래가 거의 연주되지 못했던 흑역사도 가지고 있습니다.


 - <주여 아프리카를 구원하소서>는 1897년에 첫 버전이 만들어졌고, 본래는 교가(校歌)로 쓰일 예정이었다가 널리 퍼지면서 아프리카 흑인의 민중가요가 되었습니다. 물론 백인 치하에서는 금지곡이 되었으며,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인종분리 정책의 철회 이후 다시 공개적으로 불리기 시작했고 1994년에는 공동 국가의 위치에 오릅니다. 이 노래는 남부 아프리카에서 널리 불리고 있는데, 탄자니아와 잠비아에서는 현재 이 노래의 가사만 번역 혹은 개사하여 국가로 쓰고 있습니다.


 - 1997년 두 곡을 통합하여 단일 국가로 만들었습니다. <남아프리카의 외침>이 2개 언어(아프리칸스어, 영어), <주여 아프리카를 구원하소서>가 3개 언어(코사어, 줄루어, 소토어)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통합 국가는 노래 안에 총 5개 언어가 함께 들어있는 독특한 노래가 되었습니다.



### 가사 ###

(코사어) Nkosi sikelel' iAfrika
Maluphakanyisw' uphondo lwayo,
(줄루어) Yizwa imithandazo yethu,
Nkosi sikelela, thina lusapho lwayo.

[주여, 아프리카를 구원하소서
그 뿔을 들어올리소서

또한 우리 기도를 들으소서
주여, 우리에게 복을 주소서, 우리는 그의 자녀라네.]

(소토어) Morena boloka setjhaba sa heso,
O fedise dintwa le matshwenyeho,
O se boloke, O se boloke setjhaba sa heso,
Setjhaba sa, South Afrika — South Afrika.
[주여,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
전쟁과 고통을 멈춰 주소서,
지켜주소서, 우리 나라를 지켜주소서.
남아프리카, 남아프리카를 지켜 주소서.]

(아프리칸스어) Uit die blou van onse hemel,
Uit die diepte van ons see,
Oor ons ewige gebergtes,
Waar die kranse antwoord gee,   
[우리 바다의 깊숙히에서부터,
우리 파란 하늘을 벗어나,
우리의 영원한 산들을 넘어,
절벽들이 대답하리라.]

(영어) Sounds the call to come together,
And united we shall stand,
Let us live and strive for freedom
In South Africa our land.   
[함께 하자는 외침이 울리네,
그리고 단결한 우리는 일어서리.
자유를 위해 살며 투쟁하리라
우리의 땅 남아프리카에서.]





작곡 : 주빈 사이드 (1907-1987)

제정 : 1959년(싱가포르 주) / 1965년


 - <전진하는 싱가포르>는 싱가포르의 독립 이전인 1959년 싱가포르 주의 주가(州歌)로 제정된 이래, 독립 이후 그대로 국가로 제정되어 현재에 이릅니다. 이전에 싱가포르는 영국 식민지 시절에 쓰던 <God Save The King>(여기서 King은 조지 6세)을 그대로 쓰고 있었는데, 싱가포르 주 정부에서 인도네시아 출신의 대중음악 작곡가 주빈 사이드(1907-1987)에게 새로운 노래의 제작을 의뢰, 1959년 주가로 제정하였습니다.


 - 이후 싱가포르가 말레이시아로부터 강제로 독립하면서 이 노래는 그대로 국가로 제정되었습니다. 이 노래는 특이하게 4개 언어 버전(말레이어, 중국어, 영어, 타밀어)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이는 싱가포르에 거주하는 네 종족의 언어를 배려한 것입니다. 노래 제목을 중국어로는 <前进吧,新加坡>, 영어로는 <Onward Singapore>라고 부릅니다.



### 가사 (말레이어) ###

Mari kita rakyat Singapura
Sama-sama menuju bahagia
Cita-cita kita yang mulia
Berjaya Singapura
Marilah kita bersatu
Dengan semangat yang baru
Semua kita berseru
Majulah Singapura

Majulah Singapura

[오라 싱가포르 인민이여
우리 모두의 행복을 향해 나아가자
우리의 숭고한 이상이
싱가포르의 성공을 이루리라
오라 우리의 새로운 정신으로
하나로 단결하여
한 목소리로 환호하라
전진하라 싱가포르
전진하라 싱가포르]


### 가사 (중국어) ###

来吧,新加坡人民,
让我们共同向幸福迈进;
我们崇高的理想,
要使新加坡成功。
来吧,让我们以新的精神,
团结在一起;
我们齐声欢呼:
前进吧,新加坡!

前进吧,新加坡!


### 가사 (영어) ###

Come, fellow Singaporeans
Let us progress towards happiness together
May our noble aspiration bring
Singapore success
Come, let us unite
In a new spirit
Let our voices soar as one
Onward Singapore

Onward Singapore


### 가사 (타밀어) ###

சிங்கப்பூர் மக்கள் நாம்
செல்வொம் மகிழ்வை நோக்கியே
சிங்கப்பூரின் வெற்றிதான்
சிறந்த நம் நாட்டமே
ஒன்றிணைவோம் அனைவரும்
ஓங்கிடும் புத்துணர்வுடன்
முழுங்குவோம் ஒன்றித்தே
முன்னேறட்டும் சிங்கப்பூர்

முன்னேறட்டும் சிங்கப்பூர்




작곡 : 블라스 파레라 (1777-1840)

작사 : 비센테 로페스 이 플라네스 (1785-1856)

제정 : 1813년 (1924년 개정)


 - 본 제목은 <조국의 행진>으로, 아르헨티나 독립전쟁 당시 만들어져 1813년 국가로 제정되었습니다(독립 선포는 1810년, 공화국 수립은 1816년). 이후 후안 페드로 에스나올라(1808-1878)가 편곡한 버전에 제목을 <아르헨티나 국가>라고만 표기한 것이 그대로 굳어져, 현재는 이 제목으로 불립니다. 본래는 9절까지 있었는데, 아무래도 독립전쟁기 노래이다보니 스페인을 까는 내용이 많아 이민자들의 문제제기가 이어졌고 1924년 1절, 9절, 후렴만을 남긴 후 가사를 대폭 개정하여 현재에 이릅니다.


 - 사실 <아르헨티나 국가>가 국외에서 유명한 이유는 따로 있는데, 서주만 1분ㅡㅡ;에 달하고 전체 길이는 4분 이상이나 되는 범상찮은 길이 때문. 대체 9절까지 있던 시절엔 어떻게 노래를 부른 거냐 노래가 너무 길기 때문에 올림픽이나 월드컵 등 국제 스포츠 경기에서는 전곡을 연주하기는 곤란하고, 따라서 일반적으로는 서주만 떼어 연주하거나 가사 있는 부분을 적절히 압축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 가사 ###


Oíd, mortales, el grito sagrado:
"¡Libertad, libertad, libertad!"
Oíd el ruido de rotas cadenas,
ved en trono a la noble igualdad.
Ya su trono dignísimo abrieron
las Provincias Unidas del Sud
y los libres del mundo responden:
"Al gran pueblo argentino, ¡salud!
Al gran pueblo argentino, ¡salud!"
Y los libres del mundo responden:
"Al gran pueblo argentino, ¡salud!"
Y los libres del mundo responden:
"Al gran pueblo argentino, ¡salud!"

[시민들이여 들어라, 신성한 외침을
"자유!, 자유!, 자유!"
쇠사슬이 부서지는 소리를 들어라.
고귀한 평등의 즉위를 보라.
그 가치 있는 왕위가
단결된 남부 주를 열었으니,
세계의 자유인들은 화답하라.
"위대한 아르헨티나인이여, 만세!"
"위대한 아르헨티나인이여, 만세!"
세계의 자유인들은 화답하라.
"위대한 아르헨티나인이여, 만세!"
세계의 자유인들은 화답하라.
"위대한 아르헨티나인이여, 만세!"]


후렴
Sean eternos los laureles
que supimos conseguir,
que supimos conseguir.
Coronados de gloria vivamos...
¡o juremos con gloria morir!,
¡o juremos con gloria morir!,
¡o juremos con gloria morir!

월계수는 영원하리라.
우리는 승리를 알고 있다.
우리는 승리를 알고 있다.
영광의 왕관을 쓰고 살자...
그렇지 않으면 영광과 함께 죽음을 맹세하리!
그렇지 않으면 영광과 함께 죽음을 맹세하리!
그렇지 않으면 영광과 함께 죽음을 맹세하리!]


(가사 출처 : 위키백과 "아르헨티나의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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