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끝났습니다. 결과야 모두 예상한 대로 나왔고 말입니다(하긴 그것보다도 민주당이 더 싹쓸이를 하긴 했네요). 뭐 전체적인 결과에 대해서야 너무 뻔한 이야기가 나올테니 관두고, 그냥 블로거 개인적으로 흥미있었던 몇몇 동네만 짧게 살펴보겠습니다.




1. 이번 선거 최대 격전지



 이번 선거에서 가장 간발의 차로 당선자가 결정된 곳은 강원도 평창군수입니다. 득표율 50:50에 표차가 단 24표가 나왔습니다. 2위 후보는 아마 두 달은 잠을 못 이룰 듯. ㅡㅡ; 사실 강원도는 도지사는 몰라도 시장-군수는 대부분 보수계열 정당 후보들이 석권하는 곳이었는데, 이곳은 아무래도 평창올림픽 성공 개최가 크게 작용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2. 왕년의 최대 격전지



 강원도 고성군수 선거에서는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현직 군수를 떨어뜨리고 당선되었습니다. 이 곳은 사실 많은 이들에게 유명한데 과거 어떤 일이 있었냐면



 바로 이 사건이 벌어졌던 곳입니다. ㅡㅡ; 두 후보는 이후 지방선거에서 리벤지(?) 매치를 치렀는데 황종국 후보가 한 번 더 승리하였고, 황종국씨가 시장 재직 중 별세한 이후에는 윤승근 후보가 당선되어 현직 군수로 재직하고 있었습니다. 산을 하나 넘어서 군수직을 계속 하나 했더니, 또다른 산이 나타나 버렸네요. ㅡㅡ;




3. 이부망천의 최후




 얼마 전 자유한국당 대변인 정태옥씨의 "이부망천(이혼하면 부천, 망하면 인천)" 발언으로 폭탄을 맞은 두 지역입니다. 뭐 서울에서 망해서 인근 위성도시로 이사간다는 식의 이야기는 블로거가 어렸을 적 아버지에게서도 들은 적이 있는 유서 깊은 이야기이긴 한데, 그 때와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르기도 하고 무엇보다 선거에 나서는 정당의 중요 인물이 이런 식으로 대놓고 지역비하를 하는 건 그냥 그 지역에서 선거 포기하겠다는 거나 다름없지요. 당연하겠지만 선거 결과를 보면 수도권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격차가 났습니다.




4. 박정희 본진 털리다



 사실 이번 선거의 숨은 주인공은 바로 이곳일지도 모릅니다. 박정희의 고향이자 이전 시장이 "박정희=반인반신" 드립이나 치던, 박정희 숭배의 끝판왕 구미시장 자리가 더불어민주당에 넘어왔습니다. 민주당 계열에서 후보조차 잘 못 내던 경북 지역에 처음으로 민주당 기초단체장이 배출된 것도 그렇고, 그 자리가 하필이면 박정희의 고향 구미라는 게 더 의미심장하네요. 보수 계열 후보가 난립했던 것, 구미시가 전자산업 중심의 도시라 청장년층의 비중이 생각보다 높은 것 등이 크게 작용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5. 어쨌거나 당선!



 이번에는 옆동네 상주시장으로 가 보겠습니다. 크게 이슈가 없는 동네에 왜 왔을까요? 바로 1위 득표율 때문입니다. 보시는 대로 1위와 4위의 득표차가 10%도 나지 않습니다. ㅡㅡ; 여기도 무소속 후보가 난립하는 바람에 이런 결과가 나온 것 같습니다. 아무튼 TK에서도 자유한국당 후보들의 득표율이 예전보다 많이 낮다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겠습니다.




6. 서울 유일의 자유한국당 구청장



 서울은 더불어민주당이 싹쓸이를 해서 제4회 지방선거의 리버스 버전이 되나 싶었지만 유일하게 서초구만 자유한국당이 지켜냈습니다. 딱히 이 지역이 보수라서라기보다 현직 구청장이 인근 강남구에 비해 크게 안 좋은 쪽으로 이슈가 되지도 않았고, 선거 공보물 등 선거운동도 잘 한 측면이 있다고 하네요. 아무튼 덕분에 자유한국당 역시 간신히 고개를 들 껀수가 하나 생기긴 했습니다. 현실은 TK자민련




7. 녹색당에도 털린 자유한국당



 제주지사 선거는 예상대로 원희룡씨가 당선되었지만, 자유한국당 후보가 녹색당 후보에게도 밀리는 대참사(?)가 벌어졌습니다. ㅡㅡ; 이번 제주도 녹색당은 비례대표 선거에서도 꽤 높은 득표율을 얻었는데 아무래도 제주도라는 지역의 특성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8. 이준석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서울 노원병 재보궐선거는 생각보다 큰 차이가 나 버렸습니다. 이준석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9. 자유한국당 vs. 안티자유한국당



 경북 김천 재보궐선거에서는 자유한국당 후보가 간발의 차이로 당선되었습니다. 사실 이것도 자유한국당이 기뻐할 일만은 아닌 것이 무소속 최대원 후보는 반(反) 자유한국당 연합후보로 민주당 쪽의 지지까지 등에 업고 출마한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마터면 민주당 혹은 민주당이 지지하는 후보들에게 재보선 모든 지역구를 다 털릴 뻔한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10. 정리


 라고 할 게 있을까요? 이번 선거에서는 아무튼 민주당이 압승할 것이라고 대부분이 예상했고, 결국 그 정도가 문제일 뿐 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났으니 말입니다. 이재명씨나 김경수씨가 개인적, 정치적 온갖 논란의 중심에 있었음에도 무난하게 당선된 것을 보면 여론 일반이 자유한국당이나 바른미래당에 어떤 입장인지 명확히 알 수 있는 것이지요. 바른미래당은 반짝 떴다가 사라진 수많은 제3정당들의 뒤를 따를 가능성이 아주 높아졌고, 민주평화당은 역시 호남 자유선진당 노릇이나 좀 하다가 말겠지요. 정의당은 정당득표율은 좀 나온 것 같지만 고질적인 인재부족을 어떻게든 해결 못하면 여전히 답이 없을 겁니다. 그냥 앞으로 4년간 이 사람들이 뭔 짓을 하는지나 잘 감시해 봅시다.



 - 1.


 '선언'이란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무엇일까요? 사실 선언이라는 건 그 자체만으로는 어떠한 역사적 의미도 갖지 않습니다. 그냥 말만 한 거니까요. 그것이 무슨 계약이나 판결, 조약처럼 강제력 또는 법적 효력을 가진 것도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언의 의미를 논하려면 결국 그 이후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를 가지고 따질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기미독립선언서는 한반도가 결국 해방되었기 때문에 역사적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이고, 군사독재 시대 발표된 많은 선언문들은 결국 민주화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역사에 그 빛을 남기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번 판문점 선언 또한 마찬가지라 할 것입니다. 좀 더 멀리 간다면 7·4 남북공동성명부터 시작해서 6·15, 10·4에 이르기까지 통일 문제와 관련한 모든 선언문들은, 결과적으로 남북이 통일되어야 역사적으로 그 의의를 평가받을 수 있을 겁니다. 이번 선언에 마음 한 구석 불안함이 있다면 바로 이 지점이겠지요. 지금까지는 그러한 선언들이 제대로 실행으로 옮겨지지 않았기 때문에 남북관계가 지금 이 순간까지 이 모양이었던 거니까요.




 - 2.


 그러니 앞으로 이 선언의 내용이 제대로 실현될 수 있겠는가를 따져 보아야 할텐데, 아직 확정적인 이야기를 할 수야 없지만 이전 선언에 비해 훨씬 여건이 좋고 실현 가능성이 크기는 한 것 같습니다(물론 블로거의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이번 회담은 '북미정상회담'과 한 트랙으로 가는 이벤트이고, 또한 한 쪽 당사자인 대한민국 대통령은 임기를 4년 이상 남겨 두고 있습니다. 북미관계라는 변수, 반북세력으로의 정권교체라는 변수를 충분히 제어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또 하나는 북한 쪽에서 이전과 다르게 매우 즉각적인 조치들을 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핵실험장을 확실히 폐쇄할테니 그걸 직접 와서 확인하라는 이야기나, 몇 년 전에 바꾸어 놓은 북한식 표준시를 다시 원래 기준으로 돌려놓겠다는 이야기나 이전의 북한이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요. 물론 이것이 '정치'인 만큼 이것이 진심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건 별 의미가 없고, 적어도 북한 쪽에서 "우리 지금 진지하다"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건 분명합니다. 이것 또한 이번 선언의 신뢰도를 높여 주는 건 물론이고 말이지요.




 - 3.


 이번 선언문에 비핵화 문제가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았다는 지적이 있지만, 계속 언급이 되었듯이 비핵화 문제에 있어 남북정상회담은 북미정상회담의 전초전 성격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북핵이 '외교적'으로 겨냥하는 대상은 어디까지나 미국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찌 되었건 비핵화 안건은 북미정상회담에서 다루어야 하고 거기서 어떤 식으로든 결판이 날 겁니다(이 점에 있어서는 플레잉 카...... 아니 트럼프가 장사꾼 답게 협상 하나는 통 크게 한다는 생각은 듭니다).


 그러므로 판문점 선언에서 언급된 비핵화 이야기는 북미정상회담에서 어떤 기준으로 이야기를 할지 '가이드라인'을 잡은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이 정도 주제와 무게를 가진 회담에 한국 정부가 미국과 협의를 하지 않았을 턱이 없으니, 이번 선언의 내용에 미국의 의중이 들어가 있음은 부정할 수 없기도 하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북미정상회담에서도 기본적으로 핵을 완전히 없앤다는 전제 하에 북한과 미국의 딜이 이루어진다고 보면 될 겁니다. 기대해도 좋을 것 같군요.




 - 4.


 이번 선언 단독으로 보았을 때 가장 중요한 내용은 역시 '종전선언' 추진 부분입니다. 다만 이것은 아마 남북한만의 합의로 해결되기는 어렵겠지요. 1953년 휴전협정의 당사자가 이들만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휴전협정문에 서명한 당사자는 북한, 중국, UN군(사실상 미국) 측으로, 심지어 대한민국은 여기에 서명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ㅡㅡ; 다들 아시다시피 이는 당시의 대통령인 저승...... 아니 이승만이 여기에 서명을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종전 이야기는 남북미중 4자회담으로 결정될 가능성이 높지요(뭐 이래 놓고 미국과 중국이 그냥 남북에 일임해버리면 또 모르지만). 무엇보다 종전선언이란 곧 기존 정전협정의 폐기를 의미하고, 이는 평화협정으로 이어진다는 이야기인데 이렇게 되면 또 외교적으로 만만치 않습니다. 생각보다 따져봐야 할 것들이 많거든요. 한국전쟁의 최종 정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주변국들 - 특히 전쟁과 휴전협정의 직접 당사자였던 미국과 중국의 입장은 어떻게 할지, 군축 문제는 어찌 할지, 서로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지 등등등등.


 그래도 전쟁이 완전히 끝난 상황이라는 게 상상할수록 흥미로워지기는 합니다. 우선 (옛 동서독이 그랬던 것처럼) 양측간에 제한적이나마 왕래가 가능해질 것이고, 그리 되면 이산가족 상봉 문제는 사실상 완전 해결됩니다. 수시로 창구를 열어 놓고, 고향을 방문하도록 하는 것도 가능하니까요. 그리고 그간 말로만 나왔던 북한 철로를 통한 대륙간 물류수송, 러시아에서 한반도로 오는 석유와 가스 파이프라인 건설 등도 실현될 겁니다. 러시아 싱글벙글 무엇보다도 더 이상 휴전선에 육군 병력을 몰빵할 이유가 사라지고, 휴전선(일단 이름이 바뀌겠군요)의 경비는 일반 국경 수준으로 완화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게 되면 양측 군대에도 상당한 변화가 생기겠지요.




 - 5.


 정치는 결국 '쇼'입니다. 특히 대중매체가 극도로 발달한 현대사회의 정치라면 더욱 그렇지요. 홍XX씨가 이번 회담을 '위장 평화쇼'라고 주장하는 건 충분히 제시 가능한 의견입니다만 그건 애초에 정치라는 게 그렇다는 걸 무시한, 유아적인 논리에 입각한 주장에 불과합니다. 그분의 말대로라면 이번 회담은 그 목적을 백배 달성한 겁니다. 이 분 정치 오래 하신 분 맞나요? 그대로 종신대표를 하시기를 기원합니...... 에......




 - 6.


 김정은씨는 갑자기 왜 태도를 돌변했을까요? 이건 블로거가 전문가도 아니고 정확히 알 수야 없는 노릇입니다. 일단 이 사람 생각에 북한이 언제까지나 은둔 상태로 있을 수도 없고 핵을 더 이상 크게 키울 수도 없는데(이 이상 핵개발을 더 하려면 이제 메가톤 단위의 핵무기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런 걸 실험하려면 만탑산이 아니라 개마고원이 날아갑니다), 미국의 현 황상대통령을 봤을 때 장사꾼 출신이고 통 크게 쇼부(?)를 칠 수 있는 사람이니 적당히 판을 만들어 최종적으로 핵을 외교카드로 제대로 쓰고 버리자...... 이런 생각을 한 게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개인적으로 의문인 건 김정은씨가 과연 저렇게까지 나와도 괜찮은가 하는 것입니다. 북한이 이 정도까지 전향적으로 나온다면 분명 북한 내부의 체제 유지 프로세스에도 변화가 불가피합니다. 전쟁과 반미라는 두 가지 명분이 한꺼번에 날아가니까요. 그런데 북한에도 분명 냉전체제로 기득권을 유지하는 자들이 있고(남한에도 있듯이), 이들이 북한 지배계층을 점유하고 있는 만큼 예상되는 반발을 과연 제어할 수 있겠는가 의문이 조금 듭니다. 어쩌면 김정은씨는 그동안 이런 식으로 나올 준비를 하기 위해 위협요소들을 대숙청으로 착실히 제거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한데, 김정은씨를 과대평가한 게 아닌가 싶어 일단 판단을 보류하겠습니다.



 - 김성근 한화 이글스 감독(이하 김성근)이 연일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안 좋은 쪽으로. 한화가 김성근을 선임할 때만 해도 2015년 한화의 변화할 모습에 대한 기대가 훨씬 많았기 때문에,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는 현재의 모습은 의외라고 할만하죠. 야알못이라 깊은 분석은 어렵고, 그동안 보고 들은 것들을 생각하며 개인적인 생각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 김성근은 자타공인 한국 최고의 야구지도자 중 하나입니다. 김응룡 전 감독 정도만이 비교대상이죠. 그런 그가 2010년대 압도적 최하위팀 한화를 맡을 때, 블로거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올해 한화가 어떻게든 분명 발전한 모습을 보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단지 첫 해에 5강에 드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를 따져보는 수준이었죠. 시즌이 끝나가는 지금, 분명 전체적으로 보면 한화는 이전보다 나아지긴 했습니다(이는 그동안의 한화가 그야말로 답이 없는 상태였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김성근에 대한 평가는 그야말로 최악으로 치달아 버렸습니다. 블로거가 보기에도 현재의 김성근은 분명 한화를 망치고 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들이 있었던 걸까요? 문제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이 글은 그러한 의문으로부터 출발합니다.

1. 김성근, 전형적인 '한국형' 리더


 - 일단 김성근이라는 캐릭터가 왜 사람들에게 지도자의 표상으로 대접받는지를 생각해봅시다. 김성근의 스타일은 리더가 목표와 실행방법을 구체적으로 지시하면 '아랫사람'들은 거기에 절대적으로 따르면 되는, 전형적인 독재자형 리더십이죠('독재자'라는 단어가 입맛이 쓰지만, 적절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 쓴 것이지 부정적 의미로 쓴 건 아닙니다). 20세기 후반 한국 사회의 발전신화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영명한 지도자(독재자)가 방향을 제시하고,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강제적인 통제와 더불어)지시하면 사람들이 거기에 충실히 따르는. 이것이 한국 사회에서 현재도 잘 먹힌다는 건 현재의 대통령이 당선된 과정을 보면 명백하고, 그런 사회에서 김성근의 리더십은 가장 이상적인 것임에 분명합니다.

 - 그런데 여기엔 분명한 후과가 따르죠. 독재자형 리더십은 필연적으로 리더를 따르지 않는 자에 대한 탄압, 그리고 리더가 옳은 방향과 방법을 제시하지 못했을 때의 후유증을 낳습니다. 김성근이 대단히 인간적이고 아랫사람을 잘 챙기는 지도자인 것은 유명하지만, 자신과 맞지 않는 스타일의 아랫사람에게는 끝없이 매몰차고 가혹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 또한 분명합니다. 그 대표적 인물인 한대화 전 감독의 경우, OB에서 뛰던 시절 질병(A형간염)의 여파로 강훈련을 소화할 몸상태가 아니었음에도 '훈련에 태만하다'는 이유로 김성근의 눈 밖에 나고, 쫓겨나다시피 해태로 트레이드되었으며 나중에 쌍방울에서 다시 만났을 때도 한대화는 김성근의 반대로 은퇴식조차 치르지 못하고 쓸쓸히 은퇴한 바 있습니다.

 - 김성근 스타일의 또 한 가지 특징은 '양으로 질을 커버한다'는 것입니다. 세월이 흐른 2010년대쯤 되어서는 김성근식 훈련의 강도와 분량이 그야말로 독보적이라 할 만하지만, 그런 게 일반적이었던 20세기에도 김성근은 선수를 대단히 많이 '굴리는' 감독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각각의 선수들에게 다양한 방식의(나쁘게 말하면 별별 희한한 방식의) 훈련을 시키죠. 빠른 성적향상을 위해 엄청난 훈련량을 소화시키고, 선수의 기량을 향상시키는 훈련법은 감독이 직접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이러한 방식 또한 한국의 경제발전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다는 건 다들 짐작하실 겁니다.

 - 그에게 '한국적'이라는 말을 붙인다면, 그 목표의 달성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 또한 이유로 들 수 있겠습니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너무 길어지니 링크를 참고.


2. 김성근은 리빌딩형 감독이 아니다


  - 2015년의 한화는 철저한 리빌딩이 필요한 팀입니다. 주전급 선수의 뎁스가 처참할 정도로 얇기 때문에(차라리 선수들 다 팔아치우던 시절의 히어로즈가 더 나아 보입니다. 블로거는 넥센 팬), 일단 선수층의 두께를 키우는 일부터가 필요하고 이건 1~2년 가지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넥센이 아직도 이 문제로 허덕이고 있다는 걸 생각해 보신다면). 이런 팀에는 선수 육성에 일가견이 있는 지도자를 앉혀놓고 한 3~5년쯤은 성적에 연연할 필요가 없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리빌딩이 가능하죠.


 - 김성근은 어떨까요? 분명 김성근은 그동안 이러한 팀들을 맡아 성공적인 육성 능력을 보여왔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팀들을 맡아 첫 해부터 좋은 성적을 거두었죠. 여기서 '첫 해부터'라는 게 중요. 즉 김성근은 선수를 장기적으로 키우기보다, 단기간에 가능한 한 빨리 선수를 키워낸 다음 그 선수들을 200% 활용하여 최대한의 성적을 거두는 스타일의 감독인 셈입니다. 단기간에 선수를 키워내려면, 결국 훈련의 강도를 최대로 높이는 것밖에 답이 없죠. 김성근 특유의 미친 듯한 훈련량은 상당 부분 여기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 그런데 이는 선수들에게는 필연적으로 '오버페이스'가 됩니다. 6개월 이상 계속되는 페넌트레이스 일정에 강훈련, (투수의 경우) 혹사까지 겹치게 되면 선수들은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체력 및 근력소모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과연 선수들에게 어떤 악영향을 주게 될까요? 김성근을 변명할 여지가 있다면 적어도 그는 선수의 상태에 대한 세심한 관리를 한다는 점인데, 김성근식 관리는 선수를 최대한 혹사한 후 나가떨어질 때쯤 일정한 휴식을 부여하는 방식이고 이러한 방식으로 신체가 점점 소모되는 것을 온전히 막지는 못합니다(재료과학에서는 '피로파괴'라고 합니다).


 - 위에서 분석해봤듯이 김성근은 '빨리 만들어서 빨리 써먹는' 타입의 감독입니다. 적어도 먼 미래를 우선시하는 감독은 아니죠. 그가 몸담았던 팀이 그가 나간 이후로 하나같이 성적이 추락하는 결말을 맞았다는 것은, (팀이 아예 망해버린 쌍방울을 빼고)거의 하나도 빠짐없이 그랬다는 것은 단순히 프론트나 후임 감독의 삽질이라고만 해석하기엔 곤란할 것입니다. 비록 그가 5년 이상 장기간 재임한 적이 없기 때문에 '김성근이 끝까지 책임을 진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인가'에 대한 답은 내릴 수 없겠지만, 적어도 후임자를 대단히 난감하게 만드는 감독인 건 분명해 보입니다.


3. 선수의 특성을 무시하는 방향제시


 - 김성근식 리더십의 다른 문제는 '선수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일단 그의 밑에 있는 선수는 일률적으로 '적당히 날씬한' 몸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김성근의 강훈련을 거쳐가게 되면 누구라도 살이 빠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ㅡㅡ; 최근 프로야구 선수들이 체중을 불리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가 되면서, 살을 지나치게 찌워 문제가 되는 선수들도 제법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선수들을 제외한, 현재 상태로도 별 문제가 없는 선수들까지 강제 다이어트(?)를 하게 된다는 것.


 - 이번 시즌 양훈의 변화는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경찰청에서 제대하여 올시즌 한화로 복귀한 양훈은 김성근의 지시로 살을 뺐습니다. 그런데 애초에 우수한 피지컬이 무기인 양훈은 살을 뺀 이후 젓가락이 되어 ㅡㅡ; 구위를 완전히 잃어버렸고, 시즌 초 버려지다시피 넥센으로 트레이드됐죠. 그런 양훈을 받은 넥센은 김성근과 정확히 '반대로' 가게 됩니다. 짧은 기간 동안 무서울 정도의 벌크업을 통하여, 거의 다른 사람 수준으로 만들어놓은 겁니다. 그 이후 양훈은 넥센의 새로운 필승조로 맹활약하고 있습니다. 많은 걸 시사하죠.


 - 혹자는 선수들 개개인에 맞는 다양한 훈련법을 적용하는 감독이지 않냐고 반론을 제기하실텐데, 그건 그것대로 맞습니다. 블로거가 말하고 싶은 건 큰 틀에서, '최대한 많은 훈련과 이를 통하여 강인하고 가벼운 몸 만들기'라는 기본 전제를 일률적으로 적용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마인드를 가진 감독에게, 위에서 말한 한대화 같은 선수가 인정받을 것으로 생각되진 않습니다. 예외가 있다면 당뇨병 환자였던 심성보 정도일텐데, 김성근이 직접 훈련 스케줄을 따로 짜 줄 정도로 신경을 썼다지만 (본인의 태만 때문이건 어쨌건) 좋은 결과는 내지 못했으니 야만없이라 하겠습니다.


4. 투수혹사 문제에 대한 단상


  - 투수의 수명에 대한 김성근의 생각은 전형적인 일본식 마인드인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야구에서는 '투수의 팔은 던지면 던질수록 단련된다'라는 마인드를 가지고, 투수가 최대한 많은 공을 던지도록 유도합니다. 그러니까 매년 고시엔 대회에서 연일 완투를 거듭하는 고교선수가 나와도 문제를 삼지 않는 것이고, 선발 투수가 많은 공을 던져 완투하는 것을 당연한 미덕으로 여기는 거죠. 반면 미국은 정 반대로 생각하는데, '투수가 평생 던질 수 있는 공의 개수는 정해져 있다'고 보고 학교야구에서 투수들의 투구수를 철저히 제한합니다. 놀란 라이언이 예찬하는 '롱토스 훈련법'의 경우도 찬반 양론이 거세고, 이를 즐겨 하는 선수들 중 다수가 나중에 구속 저하 증세를 보인다는 점 때문에 부정적인 쪽으로 여론이 가고 있죠.

 - 이것에 대해 블로거는 뭐라 할 수 있을 만큼의 식견을 전혀 갖고 있지 못합니다. 다만 일본인 투수들이 메이저리그에서 몇 년 활약하다가 하나같이 드러눕는 게 과연 우연일까 싶기는 합니다.

 - 한국야구로 돌아와 보죠. 20세기의 야구 감독들이 으레 그러했듯이, 김성근 또한 팀의 마운드를 우수한 몇몇 투수들에게 최대한 집중시키는 투수 운용을 합니다. 가깝게는 SK 감독 시절 정우람, 전병두, 박희수 등 몇몇 불펜투수가 수많은 혹사 관련 기록들을 만들어냈던 바 있죠. 여기에 대하여는 항상 '김성근은 철저한 관리 하의 혹사를 한다'라는 변명이 따라붙는데, 글쎄요 저 SK 불펜 3인이 현재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5년째 재활, 재활과 복귀를 반복, 마침내 퍼져버린 것으로 의심됨)를 생각하면 그 관리라는 게 도대체 얼마나 유효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올해 한화의 '살려조'에 대한 우려가 많은 건 결코 과한 게 아닙니다.


5. 결론 - 김성근은, 20세기는 끝났다


  - 지금 시점에서 어떤 욕을 먹더라도, 김성근이 20세기 최고의 감독 중 하나라는 데 이견은 없습니다. 라이벌 김응룡이 커리어 막판에 웃음후보(?)가 되었음에도 10회 우승 감독이라는 금자탑을 아무도 폄하하지 않는 것과 같죠. 하지만 그들의 방식이 앞으로도 통할 것인가에 대한 건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 블로거는 김성근에 대하여 '분명 저런 방식이 언젠가는 한계에 다다를텐데 그것이 언제가 될진 모르겠다' 정도의 생각을 항상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2015년 이후 한화 감독으로서의 행보가 여기에 답을 줄 것이라고 생각했죠. 일단 (안타깝게도) 김성근은 커리어 막판에 김응룡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입니다. 오히려 시즌 중반 이후 그의 모습은, 그동안 그의 뻣뻣한 이미지를 보완하던 '최소한의 유연성'마저 집어던진 것 같습니다. 이제는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김성근의 시대는 끝났다' 그리고 우리는 김성근으로 대표되는 한국식 성공신화, 발전의 패러다임이 종언을 고하는 순간을 목도하고 있기도 합니다. 몇몇 투수들의 팔을 제물로 삼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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