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적 

 21㎢

 인구

 10,084명 (2015년 추산)

 1인당 GDP(PPP)

 $2,500 (2006년 추산)



 - '나우루'라는 나라가 있습니다. 지도에서 볼 수 있듯 태평양 한가운데, 적도 바로 아래 위치한 작은 섬나라죠. 그 작은 정도가 상상을 초월하는데, 넓이는 서울 면적의 1/30이고 인구는 한국의 웬만한 읍 하나보다도 적습니다. 나우루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작은 국가이며, 특히 공화국 중에서는 가장 작은 나라로 꼽힙니다(나우루보다 작은 바티칸이나 모나코는 '공화국'이 아니므로). 어찌나 작은지 명시된 수도(首都) 자체가 없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 위치나 크기 등에 비하여, 나우루는 언론이나 인터넷 등을 통하여 일반인에게도 어느 정도는 그 정체가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관광이라든지 국제정치라든지 하는 것과는 별 관련이 없고, '자원으로 흥하고 자원의 고갈과 함께 쫄딱 망한' 대표적인 사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원 고갈 이후 인류(혹은 중동의 석유 부국들)의 미래를 논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나라입니다.




1. 시작 : 바다새의 배설물로 만들어진 작은 섬


 - 이곳은 그야말로 태평양에 점점이 흩어진 수많은 섬들 중 작은 하나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이 섬에는 뭔가 특별한 게 하나 있었으니, 태평양에 서식하는 알바트로스 등의 바다새들이 오랜 기간 이 섬을 오가며 화장실(?)로 썼다는 것입니다. 자연히 이 섬에는 수천 수만 수억(?)년간 바다새의 배설물이 쌓이게 되었는데, 이 배설물은 오랜 시간동안 굳어 인(P) 성분이 많이 함유된 인광석으로 변모하였습니다.


 - 바다새가 만든 인광석만 잔뜩 쌓인 이 섬에는 태평양을 누비던 원주민(폴리네시아, 미크로네시아)들이 언제부턴가 들어와 정착하였습니다. 원주민들이 물고기를 잡으며 살던 작은 마을에 서양 세력이 들어온 것은 19세기. 나우루 섬은 독일 제국의 식민지가 되었고, 이곳을 찾은 유럽인들은 섬 전체에 지천으로 널린 인광석에 주목하게 됩니다. 인광석은 비료, 폭약, 의약품 등 다양한 분야의 산업에 쓰이는 중요 자원이었거든요.


 - 자원의 보고로 밝혀진 이 섬은 이후 본의아니게 열강의 각축장이 되어버렸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독일의 손을 떠나 국제연맹의 위임통치를 받았고, 제2차 세계대전 초에는 독일 폭격기가 이 섬 일대를 폭격하여 연합군의 시설을 파괴한 일이 있었으며, 얼마 뒤 일본이 이 섬을 점령하여 1945년 항복할 때까지 지배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원주민은 외부의 전염병이나 강제이주 조치를 겪어야 했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섬에 귀환한 원주민은 700여 명에 불과했습니다.


[폭격을 당하는 나우루 섬]


 - 이후에는 오스트레일리아가 국제연합을 대표하여 신탁통치를 하였으며, 1960년대 정부를 구성한 이후 1968년 완전히 독립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우루의 신화가 시작됩니다.




2. 리즈시절 : 세계 제일의 부자 나라


 - 독립 직전인 1967년, 나우루 주민들은 영국으로부터 인광석 개발권을 완전히 넘겨받았습니다. 독립 이후 나우루는 국가 차원에서 인광석 개발에 나서 엄청난 이익을 쓸어모았으며, 주민들은 손 하나 까딱 안 해도 배불리 먹고 살 만큼 막대한 부를 얻게 됩니다. 1980년대 초 미국의 1인당 GDP가 1만 달러를 갓 넘을 때, 나우루의 1인당 GDP는 2만~3만 달러에 달했습니다. 다시 강조하자면, 1980년대 초입니다.


[저게 다 돈입니다 돈!]


 - 인구도 1만 명 남짓으로 많지 않으니 나우루 정부는 인광석 관련 수익을 아예 전국민에게 골고루 분배했고, 신석기시대 나우루 주민은 그야말로 허공에 태워도 남아돌 만큼 많은 부를 얻었습니다. 웃기게도 정작 나우루 주민은 인광석 채굴에 전혀 참여하지 않았고, 단지 외국인들이 인광석을 채굴하는 대가로 지불한 로얄티만으로 이런 상황이 가능했던 것.


 - 사실 아무도 일을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필요한 물건은 외국에서 사 오고, 필요한 노동력은 외국인을 불러와서 시키고(심지어 공무원이 외국인이었을 정도!), 술 한 잔 마시러 오스트레일리아까지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다녀도 돈이 남아돌 정도였습니다. 세금은 당연히 없고(애초에 그 돈을 누가 줬는데요), 주택, 교육, 병원 또한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지요. 현실 유토피아 심하게는 화장실에서 1달러짜리 지폐로 뒤를 닦을 정도였다는군요.


[물론 돈으로 담뱃불을 붙이는 이 분은 나우루와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 다만 당시에도 (주로 외국인들을 중심으로) 이러한 나우루의 행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있었던 모양입니다. 자원은 영원한 게 아니니까요. 나름 나우루 정부에서도 이 돈을 가지고 여기저기 투자도 하고, 돈놀이도 하곤 했지만 무엇 하나 제대로 성공한 게 없었습니다. 그래도 당장의 영광이 너무 컸기 때문에 나우루의 그 누구도 걱정을 하지 않았고, 정부에서는 "자원이 떨어지면 그 때 가서 생각해보면 되겠지" 정도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ㅡㅡ; 그리고......




3. 몰락의 시작 : 인광석이 바닥났다!


 - 우려했던 상황이 1990년대 이후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80% 이상이 채굴된 나우루의 인광석 생산량은 갈수록 줄어들었고, 정부는 더 이상 인광석 개발로 돈을 벌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정부는 부랴부랴 해외에 투자한 자산을 매각하거나 이를 담보로 돈을 빌려 당장 급한 불을 끄고, 어항을 확장하여 주민들이 새로운 직업을 갖게 하려고 했지만 참담하게 실패했습니다. 오랜 기간 동안 나우루 주민들은 '일을 해서 돈을 번다'는 기본적인 노동 개념조차 잊어버린 겁니다!


 -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온갖 문제가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은 일하는 방법 자체를 잊어버려서, 빨래나 설거지 등 기본적인 가사조차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할 지경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움직이거나 하질 않는데다 식품이라곤 죄다 외국산 가공식품 투성이였으니, 90% 이상의 주민이 비만 상태로 온갖 질병에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바론 디바베시 와카(1959-) 現 대통령. 대부분의 주민이 이런 상태]


 - 다급해진 나우루 정부는 전략을 바꾸어, 세계의 검은 돈(부정축재라든지, 범죄조직이라든지......)을 끌어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조세피난처와 돈세탁 천국으로 변모한 나우루는 세계의 욕을 처먹으면서도 그럭저럭 경제수준은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 와중에도 정부는 영국에서 상연된 어느 뮤지컬에 수백만 달러를 투자하고, 런던에서 열린 초연에는 정부 각료들이 비행기를 타고 다녀왔으며, 투자한 돈은 쫄딱 날려먹는 등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습니다.


 - 결국 국제사회의 금융 제재를 먹으면서 이 전략도 끝장났고, 나우루는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4. 나우루의 현재 : 자원에만 의존한 사회의 최후


 - 이후 나우루는 오스트레일리아로부터 지원금을 받는 대가로, 오스트레일리아로 흘러들어온 난민들을 수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나우루가 이들을 제대로 먹여살릴 여력이 있는 곳도 아니고, 사실상 난민들을 수용소에 가둬놓다시피하는 수준이라 난민들의 거센 불만을 불러왔습니다. 그래서 2003년 이후 지금까지 나우루는 잊을 만하면 수용된 난민들의 폭동으로 나라 전체가 난장판이 되는 일을 겪고 있습니다. 대통령 청사가 불탄 적도 있다는군요.


[나우루 섬을 촬영한 항공사진]


 - 그리고 이제는 새로운 문제가 대두되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인광석 개발이 지속되면서 사실상 인광석 더미나 다름없었던 나우루 섬의 높이는 계속 낮아졌고, 개발이 거의 끝나가는 현 시점에는 해수면과 거의 높이 차이가 없을 만큼 섬의 고도가 낮아져 있습니다. 여기에 지구온난화로 해수면의 높이가 높아져버리니, 나우루는 장기적으로 바다 밑에 통째로 잠겨버릴 위기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 현재의 나우루는 사실상 국제 사회의 원조로 연명하고, 그 대가로 난민을 수용하거나 국제연합에 한 표를 던져주는 신세입니다. 소수의 공무원을 제외한 대부분의 주민은 실업 상태이고, 그나마도 대부분이 비만과 성인병에 시달리며(당뇨병 환자가 전체의 40%) 제대로 일하기도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이 나라 주민의 평균 수명은 에이즈나 다른 전염병의 요소가 거의 없는 환경임에도, 58세(남자)/65세(여자)로 상당히 낮은 수준입니다.


 - 나우루의 번영과 몰락은 인류 문명 전체에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자원을 빨아먹으며 번영을 누리는 현재의 인류 문명이, 바로 그 자원이 고갈될 때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우루의 역사는, 현재의 번영에 도취되어 미래의 환경 변화를 대비하지 않을 때 인류는 결국 몰락하게 될 것이라는 교훈을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참고 : 

한글 위키백과, 영문 위키피디아, 나무위키

http://www.nauru.or.kr/

http://skccblog.tistory.com/1070

http://clankorea.com/index.php?document_srl=16368&listStyle=webzine&mid=mission_south_pacific

경향신문 "[지구의 밥상] (1) 태평양의 '콜라 식민지'"

연합뉴스 "태평양 나우루의 호주 난민수용소, 폭동에 초토화"



 -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이야기할 때, 일반적으로는 현재의 인간이 자연을 파괴하여 '미래에 어떤 재앙이 닥칠 것이다' 라는 주제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자연이 인간에게 여러 차례 역습을 가했고, 그 결과 역사적으로 잘 나가던 문명 여럿이 절단나기도 했다는 것에 주목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런 동네도 한때는 잘 나갔다는 이야깁니다.] (출처 : 영문 위키피디아 "Ur")


 - 콘크리트와 아스팔트 더미 위에 사는 우리들이라 잘 느끼지 못할 뿐이지, 사실 인간은 오랫동안 자연이라는 토대 위에서 살아왔고 그 자연의 변화에 따라 숱한 부침을 겪어왔습니다. 개중에는 자연의 자연스러운(?) 변화에 따른 것도 있고, 인류문명이 자초한 변화도 있지요. 몇 가지 사례를 들어 살펴보겠습니다.



1. 메소포타미아 : 관개농업으로 흥한 자 관개농업으로 망하다


 - 인류 최초의 문명으로 불리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이스라엘에서 출발하여 시리아-이라크를 거쳐 페르시아 만에 이르는 소위 '비옥한 초승달 지대'를 중심으로 형성되었습니다. 가장 초기의 도시국가가 형성된 게 기원전 4000년 무렵이라니 대단하죠(고조선의 성립이 좋게 봐줘야 기원전 2000년 무렵이라는 걸 감안해봅시다). 메소포타미아라는 이름 자체가 '두 강의 사이'라는 의미라는 데서 알 수 있듯, 이곳은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이라는 두 개의 강이 물을 공급한다는 이점을 갖고 있었습니다.


 - 물론 이쪽도(남쪽의 아라비아 사막만큼은 아니지만) 비교적 건조한 기후라는 건 분명합니다. 그래서 메소포타미아의 비옥한 토양에서 농사를 짓기 위하여, 사람들은 수로를 만들어 강의 흐름을 농토로 끌어들였는데 이것이 우리가 말하는 '관개농업'의 시초입니다. 중요한 물 문제를 해결하고 나니, 이 동네는 많은 농업생산력을 자랑하는 풍요로운 땅이 될 수 있었지요(건조 지역은 일반적으로 물 문제만 해결되면 농사짓기 좋은 땅인 경우가 많습니다).


[농사짓기 좋은 땅] (출처)


 - 그런데 영원히 잘 나갈 것 같던 이 동네에 문제가 생깁니다. 농사가 점차 잘 되지 않게 되었던 겁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 근본 원인은 '염류화'였습니다. 강물이나 지하수 등의 민물이라도 아주 약간의 염분은 포함되어 있게 마련입니다. 농사를 위해 관개시설로 물을 끌어오면, (건조 지역이니까) 끌어들인 물은 많은 양이 증발되어 사라집니다. 물론 증발되는 건 H2O 뿐이죠. 원래 물에 포함된 염분은 증발되지 않고 그대로 땅에 남게 됩니다.


 - 강수량이 많은 곳이라면 자주 내리는 빗물에 염분이 씻겨 내려가서 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동네는 비가 많이 오는 곳이 아니죠. 물을 끌어오면 끌어올수록 염분은 (아주 조금씩이지만) 계속 쌓여 나갑니다. 10~20년 정도라면 별 탈이 없겠지만, 이러한 과정이 수천 년간 반복된다면? 땅에 염분(염류)이 지나치게 많아지면 식물이 자라기 어렵게 됩니다(뿌리가 물을 흡수하는 데 문제가 생기던가 그렇습니다. 삼투 작용이죠).


 - 결국 수천 년에 걸쳐 생산력이 서서히 떨어지면서, 메소포타미아의 지배력도 서서히 떨어졌다는 이야기. 더구나 이곳은 넓은 평야지대이기 때문에, 자신들의 힘이 약해지면 주변 지역의 침입을 방어하기 굉장히 어렵게 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후기는, 북부와 동부에서 밀고들어오는 수많은 이민족의 정복의 역사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 물론 두 강이 주는 이점은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후로도 꽤 오랫동안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적어도 서아시아 일대에서는 비교적 잘 나가는 동네로 남을 수 있었습니다. 이 지역의 중심지는 바빌론에서 크테시폰을 거쳐 바그다드로 이어졌고, 모두 당대 손꼽히는 대도시였죠. 물론 사막화가 더욱 진행된 현대에 와서는...... 사담 후세인? ISIL?



2. 화산 한 방에 날아간 미노스 문명


 - 유럽 최초의 문명으로 꼽히는 게 '에게 문명' 입니다. 그리스 옆 에게 해의 수많은 섬들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는데, 대체로 이 지역 사람들은 지중해를 가로지르며 해상무역으로 먹고 살았으며 그래서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영향을 가장 빠르게 받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에게 해 최남단의 크레타 섬을 중심으로 발전한 미노스(미노아) 문명이 대표적입니다.


[미노스 문명의 대표적 유적인 크노소스 궁전]


 - 근대 이후에야 재발견되었고, 따라서 확인할 수 있는 정보가 많지는 않지만 미노스 문명은 기원전 2700년경부터 발전하여 천 년 이상 지속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기원전 1500년경 미노스 문명은 갑자기 쇠퇴 기미를 보이더니, 불과 수십여 년만에 그리스 본토의 세력에게 허무하게 무너지고 맙니다. 잘 나가던 해양문명을 한순간에 날려버린 배경에는, 에게 해 한가운데 있던 한 화산섬이 있었습니다.


 - 지금은 포카리스웨트 절벽 위 하얀 집으로 유명한 관광지 산토리니 섬이 에게 해에 있습니다. 지금이야 평화로운 관광지로만 보이는 섬이지만, 알고보면 이 섬은 화산섬이며 심지어 인류 역사 이래 손꼽히는 대폭발을 일으킨 곳입니다. 기원전 1500년경, 하나의 커다란 화산섬이었던 산토리니에 대규모 화산폭발이 발생하였고, 땅 속에 있던 마그마와 가스, 화산재가 뿜어져나오자 그 빈 자리가 그대로 무너져내리기 시작합니다(이것을 '칼데라'라고 합니다).


[그 결과 산토리니는 이렇게 여러 개의 섬으로 토막나 버립니다. 섬들로 둘러싸인 가운데 바다가 대폭발의 흔적]


 - 일단 대규모 화산폭발은 지진을 동반하게 마련이니, 산토리니 섬의 폭발로 생긴 지진이 크레타 섬을 강타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으니, 무너진 분화구로 바닷물이 쏟아져 들어가면서 대규모의 해일이 발생, 크레타 섬의 해안을 직격해 버립니다! 당시 지중해 최강이었던 크레타의 해군이 이 해일 한 방에 싸그리 날아가 버렸고, 해안의 도시와 마을에도 엄청난 피해가 발생합니다.


 - 그런데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화산폭발로 날아간 많은 양의 화산재는 공기 중에 떠다니며 햇빛을 차단하고, 그 결과 지구의 평균 기온을 떨어뜨리게 됩니다. 실제로 산토리니 폭발과 맞먹는 규모로 추정되는 1815년 탐보라 화산의 폭발에서는, 화산재 때문에 기온이 떨어져 이후 몇 년간 '여름이 없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큰 기후 변화가 발생한 적도 있지요. 산토리니 폭발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고, 가뜩이나 큰 피해를 입은 미노스 문명에 마지막 일격을 날렸을 것으로 보입니다.


 - 이후 미노스 문명은 과거의 영광을 되찾지 못했고, 수십 년간 사회 전반이 혼란에 빠지는 양상을 보이다가 그리스 본토 세력의 침공에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해군의 위용을 믿고 수도에 성벽조차 쌓지 않았을 정도라니, 해군이 사라진 이후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는 쉽게 상상할 수 있죠. 이후 크레타 섬은 다시는 역사의 주인공이 되지 못하고, 그리스와 터키의 입구에 있다는 지리적 특징 때문에만 역사에 몇 번 반짝 등장하는 처지가 됩니다.



3. 1℃의 역사 : 기온 변화는 문명을 어떻게 변화시켰는가


 - 약 1만여 년 전 마지막(일지 아닐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빙하기가 끝난 이후로도, 지구의 평균 기온은 끊임없이 변화를 거듭해 왔습니다. 물론 그 변화라는 게 대략 1~2℃ 미만의 작은 변화였다고는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각 지역의 식생이나 서식하는 동물들, 나아가서는 인류문명에 생각보다 큰 영향을 끼쳐 왔지요.


 - 고대 문명이 번성하던 2000~3000년 전쯤에는 전반적으로 평균기온이 지금보다 높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기온이 높으면 농작물이 잘 자랄 수 있고, 당연히 인류는 풍요롭게 살 수 있습니다. 이럴 때 문명이 발전하죠. 사람들은 배가 부르면 딴 짓(?)을 하고 싶게 마련이거든요. 이를테면 중국의 황하 유역은 당시에는 울창한 숲이 우거진 온대(내지는 아열대) 기후였고, 황하 근처에서까지 코끼리와 코뿔소를 볼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중국 상나라 시대의 코끼리 모양 유물. 코끼리를 가까이서 관찰하고 그 모양을 디테일하게 알 수 있었다는 이야기]


 - 물론 그동안에도 기온은 조금씩 오르내리고 있었는데, 본격적으로 평균기온이 떨어지기 시작한 게 대략 3~4세기 무렵부터입니다. 이는 농업생산력의 저하를 유발했고, 당시 지구의 양대 문명(로마, 중국)은 약속이나 한 듯이 혼란기에 빠지게 되죠. 물론 여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당시 알려진 세계의 양쪽 끝에서 거의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면 온도 변화에 따른 세계적인 변화 요소를 고려해볼 수 있겠습니다.


 - 이후 수백 년간의 암흑기(임과 동시에 평균기온이 낮았던 시기)를 거쳐 9~10세기 무렵에는 평균기온이 상승합니다. 그리고 12세기 무렵부터 다시 평균기온이 떨어지는데 공교롭게도 이 시기는 전 세계에 흑사병+몽골제국 콤보의 시대로 기억됩니다. 이후 잠깐의 조정기를 거쳐(하필 이 때 유럽에서는 르네상스가......) 16세기부터는 그 이름도 유명한 '소빙하기'가 도래합니다(넓게 봐서 12세기부터를 소빙하기로 보는 경우도 있음).


[3000년간 지구의 평균기온 변화 양상] (출처)


 - 소빙하기는 비교적 근래의 일이기도 하고, 비교적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일단 서쪽에서는 이탈리아 중심의 르네상스가 끝장나고 대규모 전쟁이 빈번하게 벌어지기 시작하며, 흑사병은 여전히 잊을 만하면 창궐하고, 사람들이 살기 위해 바둥거리는 과정에서 자본주의와 민족주의가 형성됩니다. 동쪽에서는 명나라가 멸망하고 만주족의 청나라가 들어섰으며, 한가운데서는 아랍 종족의 국가가 북쪽 이민족의 국가인 오스만 튀르크로 완전히 대체됩니다.


 - 이렇게 세계 각지에서 문명의 변화는 (어쩌다보니)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양상으로 벌어졌고, 거기에 기온 변화가 상당한 역할을 했을 거라는 추측이 가능해집니다. 최근에도 (다분히 인류의 활동으로 인한) 급격한 기온 변화가 발생하고 있는데, 이것이 인류 문명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될지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4. 황하 문명의 마지막 유산, 황사경보


 - 늦겨울~늦봄 사이에 블로거는 황사(내지는 미세먼지)로 인해 인생이 고난에 빠집니다. 알레르기성 비염 환자에게 먼지가 많은 환경이란 아주 최악이거든요. 도대체 저놈의 황사는 어디서부터, 왜 날아드는 걸까요? 과학적인 요인을 따지기 이전에, 동아시아의 황사는 수천 년 전부터 열심히 살아온 중국 문명이 만들어낸 결과물입니다.


 - 현재 중국의 산시(陝西)성과 간쑤성 동부 일대, 황하 중류가 휘돌아 흐르는 넓은 지역을 '황토고원'으로 칭합니다. 말 그대로 고운 황토가 엄청난 면적에 걸쳐 퍼져 있는 곳으로, 대체로 건조 기후에 속합니다. 지금 이곳을 찍은 사진들을 보면, 수천 년 전 이곳에 울창한 삼림이 있었다고 말하면 그야말로 기절초풍할 노릇이죠. 그런데 실제로 그랬습니다. 울창한 숲과 비옥한 황토지대, 황하의 물이 합쳐져 이곳에서는 일찍부터 문명이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곳에 과거 숲이 우거져 있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 따라서 고대 중국의 중심지는 어디까지나 황하 중하류 일대였습니다. 상술했지만 기후가 지금보다 따뜻하고 황하 유역에 숲이 우거져 있던 고대에는, 황하 바로 아래까지 코끼리와 코뿔소가 살고 있었을 정도로 풍요로운 땅이었습니다. 그러던 곳이 저 모양이 되어버린 것은, 기후의 변화도 있겠지만 인류의 삼림 파괴가 큰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황하 중류의 삼림 면적 변화. 3000여년 전 / 현재] (출처 : NHK 고대문명 다큐멘터리에서 캡처)


 - 삼림 파괴의 결과 이 지역은 점차 사막화되고, 대규모의 문명을 유지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중국 초기의 중심지였던 장안(現 시안)과 낙양(뤄양)은 예전의 영광을 잃고, 현재는 중국 전체에서도 낙후된 동네의 지역 중심지로 명맥을 잇고 있습니다. 삼림이 사라지면서 더 큰 문제가 발생했는데, 고운 황토는 바람에 쉽게 날아간다는 것이었습니다.


 - 숲이 황토를 잡아주지 못하게 되자, 흙과 모래는 바람이 불면 공기 중으로 쉽게 날아갔고 이는 공기의 흐름을 타고 수천㎞ 떨어진 곳까지 날아가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황사'입니다. 황사는 일종의 퇴적작용을 하여 땅을 비옥하게 만들어주는 효과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호흡기에 해를 끼치며 특히 현대에는 공장 매연의 유해성분이 섞이는데다 반도체 산업처럼 먼지에 민감한 분야가 늘어나면서 피해를 매우 키우고 있죠.


 - 여담으로, 황하 문명이 삼림을 파괴한 결과는 다른 쪽에서도 나타납니다. 황토가 강으로 쓸려들어가면서 황하는 우리가 아는 그 싯누런 흙탕물이 되었고, 강바닥에 흙이 계속 퇴적된 결과 황하는 주변 평야보다 강바닥이 더 높은 '천정천'이 되고 말았습니다(당연히 홍수에 아주 취약해집니다). 최근에는 수자원 사용량이 늘어나면서 아예 황하의 흐름이 중간중간 끊어지는 현상이 발생, 자원문제+환경문제까지 유발하고 있다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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