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ns Eisler (1898-1962)

<Deutsche Sinfonie> Op.50



 - 한스 아이슬러는 독일의 작곡가로, 독일민주공화국(동독) 국가인 <폐허에서 부활하여>를 작곡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아이슬러는 1898년 라이프치히에서 출생하였는데, 아버지 루돌프 아이슬러(1873-1926)는 칸트 철학을 전공한 명망 있는 지식인이었지만 가족의 생계는 그닥 챙기지 못하는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일찍이 급진적 사회운동에 뛰어든 형과 누나가 있었기 때문에 그도 자연스럽게 급진적 사상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 종전 직후인 1919년 아이슬러는 아르놀트 쇤베르크를 찾아가 제자가 되었는데, 아이슬러는 이 때에야 비로소 체계적인 음악 교육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4년여간 쇤베르크에게 작곡을 사사한 아이슬러는 피아노 소나타 1번으로 비엔나 예술상을 수상, 전문 작곡가의 길을 화려하게 시작하였습니다.


 - 다만 쇤베르크는 음악에 정치색을 넣는 것을 극도로 배척했기 때문에, 급진주의자이며 매우 '정치적'이었던 아이슬러는 스승과 그리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1925년 아이슬러는 베를린 음악원 교수로 초빙되어 독일로 떠났고, 그 무렵 독일 공산당에 입당하였는데 이것이 계기가 되어 두 사람은 크게 반목하게 되었고 사제관계도 사실상 끝장나고 말았습니다.


 - 독일에서 작곡과 정치 활동을 이어가던 아이슬러는 1930년부터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1898-1956)과의 오랜 관계를 시작하였습니다. 본래 쿠르트 바일(1900-1950)과 함께 작업하며 <서푼짜리 오페라> 등을 작업한 브레히트는, 예술관의 차이로 바일과 결별하고 새로운 파트너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예술적, 정치적 지향점이 비슷한 아이슬러는 최고의 파트너였고 두 사람은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직접 부를 수 있는 합창곡과 민중가요를 다수 작업하며 명성을 떨쳤습니다.


 - 아이슬러는 나치의 집권 이후로 큰 위기를 맞게 됩니다. 반공주의와 반유대주의로 무장한 나치 독일에게, 공산당원인데다 유대계 혈통이기까지 한 아이슬러는 최우선 척결 대상이었던 것. 1933년 1월 안톤 베베른의 초청으로 비엔나를 방문 중이던 아이슬러는, 자신의 집이 게슈타포에게 수색당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곧바로 망명길에 오르게 됩니다. 유럽 각지를 떠돌며 활동하던 그는, 1938년 미국으로 망명하여 정착하였습니다.


 - 이 무렵 쇤베르크(이 양반도 유대계)는 이미 미국으로 망명해 있었는데, 같은 망명자 신세였던 사제(師弟)는 미국에서 어느 정도 관계를 회복한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에서 아이슬러는 주로 영화음악 작곡으로 생계를 유지하였고, 두 작품 정도가 오스카상 후보작으로 오르기도 했다는군요(수상은 하지 못했다고). 물론 사회주의자인 그에게 자본주의의 상징이나 다름 없는 미국 생활은 우울하기 이를 데 없었고, 그의 작품세계도 다분히 내면으로 침잠하는 경향을 보이게 됩니다.


 -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냉전이 시작되면서, 이 우울한 망명생활조차도 끝장날 위기에 처했습니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대결이 표면화하면서, 미국 내의 좌파 인사들이 무차별적인 공격을 받게 된 것(그 유명한 '매카시즘'). 1947년에는 '반미 행위 조사위원회' 청문회에 피고발인으로 불려나가기도 했는데, 황당하게도 고발자는 그의 친누나인 루트 피셔(1895-1961)였습니다(루트 피셔는 독일 공산당에서 정치적 논쟁 끝에 제명당했고, 이후 우파로 전향하였습니다).


 - 스트라빈스키, 아인슈타인, 찰리 채플린(이 양반은 자기부터가 매카시즘에 휘말렸는데) 등의 구명운동에도 아이슬러는 1948년 미국에서 추방당하고 말았습니다. 일단 비엔나로 옮겨 활동하던 아이슬러는, 영혼의 단짝 브레히트의 권유를 받아들여 얼마 후 동독에 정착하였습니다. 이후 아이슬러는 동독 국가 <폐허에서 부활하여>를 작곡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나갔습니다.


 - 하지만 동독 정권이 스탈린주의 관료들로 들어차면서 아이슬러의 비판정신은 또다시 비판의 대상이 되고, 그의 작품이 상연 금지되는 일도 벌어집니다. 정치적 압박이 계속되는 와중에 1956년 브레히트가 세상을 떠나자 큰 충격을 받은 아이슬러의 건강은 크게 악화되었으며, 결국 이를 회복하지 못하고 1962년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 <독일 교향곡>은 망명 시기인 1935~39년에 걸쳐 작곡되었습니다. 1936년 첫 두 악장을 파리 만국 박람회에서 초연하려 했지만 나치 독일의 항의로 무산되고(지휘자는 가사를 빼는 타협안을 제시했으나 작곡가 자신이 거부), 그가 동독에서 활동하던 1959년에야 초연될 수 있었습니다. 브레히트의 시에 곡을 붙인 것으로, 전반적으로 반(反) 파시즘 성향을 띠고 있습니다.




Iannis Xenakis (1922-2001)

<Metastasis>



 - 크세나키스는 그리스 출신의 건축가, 작곡가입니다(본업은 건축가). 출생지는 루마니아의 브러일라이며, 부모는 그리스계 인텔리 계층에 속해 있었습니다. 부모가 모두 음악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크세나키스는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그가 5세 때 세상을 떠났고, 이는 그에게 큰 마음의 상처가 되었다고 합니다.


 - 크세나키스는 10세 때 그리스로 보내져 기숙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이후 1938년에 그는 아테네 공과대학에 입학하여 건축을 전공하였는데, 전공 교육을 받는 틈틈이 화성학과 대위법 등 음악 쪽 공부도 이어나갔습니다. 그런데 이듬해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그리스가 이탈리아와 독일의 연이은 침공으로 전쟁에 휘말려들자 그의 인생도 뒤흔들리게 됩니다.


 - 1941~1944년까지 계속된 추축국 점령기동안 크세나키스는 그리스 민족해방전선에 참여하여 저항군으로 활동하다가 부상을 입고 한쪽 눈을 실명하였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학교로 돌아간 크세나키스는 간신히 학교를 졸업하고 학위를 받았는데, 이 무렵 좌우파의 대립이 외국의 개입을 등에 업고 내전으로 번지자(그리스 내전) 그는 그리스 민주군(좌파)에 참여하여 다시 전쟁에 나섰습니다.


 - 내전은 미국과 영국의 지원을 받은 우파 쪽의 승리로 끝났고, 좌파 계열 인사들이 대거 학살당하는 와중에 그는 가까스로 몸을 피하고 프랑스로 망명하였습니다. 망명지에서 크세나키스는 대건축가 르 코르뷔지에(1887-1965)의 조수로 들어가 활동하였고, 작곡을 더 배우기 위해 아르튀르 오네게르(1892-1955), 다리우스 미요(1892-1974) 등을 찾아갔지만 큰 성과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코르뷔지에가 그의 음악적 재능을 알아보고 높이 평가했다고 합니다.


 - 이후 크세나키스는 올리비에 메시앙(1908-1992)을 찾아갔고, 메시앙에게서 비로소 가능성을 인정받고 가르침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메시앙이 특히 높게 평가한 것은 크세나키스가 건축가이며 고급 수학을 배웠다는 것인데, 실제로 크세나키스는 확률론을 비롯한 각종 수학적 이론을 음악에 도입하여 독특한 음악적 세계를 만들어낸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 크세나키스는 1959년 코르뷔지에 사무실을 떠나 독립하였고, 이후 건축가와 작곡가로 활동하면서 인디애나 대학, 소르본 대학 등에서 강의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코르뷔지에 사무실에서 일하던 1958년에 사무실은 브뤼셀 엑스포의 전시관인 필립스관(館)을 설계하였는데, 크세나키스는 이 건물의 구조와 기술적 요소를 적극 활용한 <Metastasis(전이)>라는 작품을 발표하여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그가 작곡가로 널리 알려지게 됩니다.



Sophie-Carmen Eckhardt-Gramatté (1898(1899)-1974)

Symphony No.1 in C E.104



 - 이 비범한 ㅡㅡ; 이름을 가진 인물은 러시아계 캐나다인으로, 작곡가, 피아니스트, 바이올린 연주자로 활동하였습니다.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출생하였으며(출생연도가 1898년과 1899년으로 각기 다르게 적혀 있는데, 그레고리력(세계 표준)과 율리우스력(제정 러시아 사용)의 차이로 보입니다), 초명은 Sofia (Sonia) Fridman-Kochevskaya입니다. 어려서부터 음악적 재능을 보여 8세에 파리 콘서바토리에 유학하였는데, 이곳에서 그는 바이올린과 피아노, 작곡을 트리플복수전공하게 됩니다.


 - 11세에는 파리, 제네바, 베를린을 순회하며 첫 번째 연주회를 열었는데,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번갈아가며 연주하여 화제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이후 음악가로 활발히 활동하던 그는 1920년 화가 발터 그라마테(1897-1929)와 결혼하였고, 이후에도 1925년 에드윈 피셔(1886-1960)와 독일에서 연주회를 여는 등 활동을 이어나갔습니다. 그런데 1929년 그는 남편을 결핵으로 잃고 말았습니다.


 - 이후 그는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가 자신의 첫 번째 피아노/바이올린 협주곡을 초연하였고, 1934년에는 저널리스트 겸 예술사학자인 페르디난트 에크하르트(1902-1995)와 재혼하였습니다. 1936~39년 사이에는 베를린에서 막스 트라프(1887-1971)에게 작곡을 배웠고, 이후 남편과 함께 비엔나로 이주하여 작곡가로 활동하였습니다(제2차 세계대전도 겪었을 텐데 이와 관련한 이야기를 찾기 어렵네요).


 - 1953년에는 다시 아메리카로 이주, 캐나다의 위니펙에 정착하여 여생을 보냈습니다. 이곳에서 그는 작곡 활동과 함께 음악 교육자로 활동하며 몇몇 학생을 지도하였습니다. 1974년 트럼펫 협주곡을 작업하던 도중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교향곡은 2개가 있으며, 1번 교향곡은 1939년에 작곡하였습니다.



시편 10편 (개신교 개역개정판) : 

1. 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
2. 악한 자가 교만하여 가련한 자를 심히 압박하오니 그들이 자기가 베푼 꾀에 빠지게 하소서
3. 악인은 그의 마음의 욕심을 자랑하며 탐욕을 부리는 자는 여호와를 배반하여 멸시하나이다
4. 악인은 그의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하지 아니하신다 하며 그의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
5. 그의 길은 언제든지 견고하고 주의 심판은 높아서 그에게 미치지 못하오니 그는 그의 모든 대적들을 멸시하며
6.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나는 흔들리지 아니하며 대대로 환난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나이다
7. 그의 입에는 저주와 거짓과 포악이 충만하며 그의 혀 밑에는 잔해와 죄악이 있나이다
8. 그가 마을 구석진 곳에 앉으며 그 은밀한 곳에서 무죄한 자를 죽이며 그의 눈은 가련한 자를 엿보나이다
9. 사자가 자기의 굴에 엎드림 같이 그가 은밀한 곳에 엎드려 가련한 자를 잡으려고 기다리며 자기 그물을 끌어당겨 가련한 자를 잡나이다
10. 그가 구푸려 엎드리니 그의 포악으로 말미암아 가련한 자들이 넘어지나이다
11. 그가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잊으셨고 그의 얼굴을 가리셨으니 영원히 보지 아니하시리라 하나이다
12. 여호와여 일어나옵소서 하나님이여 손을 드옵소서 가난한 자들을 잊지 마옵소서
13. 어찌하여 악인이 하나님을 멸시하여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주는 감찰하지 아니하리라 하나이까
14. 주께서는 보셨나이다 주는 재앙과 원한을 감찰하시고 주의 손으로 갚으려 하시오니 외로운 자가 주를 의지하나이다 주는 벌써부터 고아를 도우시는 이시니이다
15. 악인의 팔을 꺾으소서 악한 자의 악을 더 이상 찾아낼 수 없을 때까지 찾으소서
16. 여호와께서는 영원무궁하도록 왕이시니 이방 나라들이 주의 땅에서 멸망하였나이다
17. 여호와여 주는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셨사오니 그들의 마음을 준비하시며 귀를 기울여 들으시고
18. 고아와 압제 당하는 자를 위하여 심판하사 세상에 속한 자가 다시는 위협하지 못하게 하시리이다


한국어판 가사 (<칼빈의 시편찬송가> 시편찬송가 편찬위원회, 진리의깃발, 2009) : 
(1~6, 15~18절)

1. 여호와여 왜 멀리 서시며 / 환난 때 어찌 숨으십니까
악한 자가 악하여 교만해 / 가련한 자를 심히 압박해
그 꾀에 빠져들게 하소서 / 악인은 그의 욕심 자랑하며 / 탐욕 부려 주를 배반 멸시해

2. 악인들은 교만한 얼굴로 / 주께서 감찰하지 않으며
그 생각에 하나님 없다네 / 악인의 길은 항상 견고해
주 심판 못 미친다 하면서 / 그 모든 대적 그들 멸시하며 / 환란 당치 아니한다 말하네

3. 악인의 팔 꺾으시옵소서 / 악한 일 행하는 자의 악을
찾아낼 수 없을 때에까지 / 주께서 악인들을 찾도다
주님은 영원 무궁하신 왕 / 이방의 나라 주님의 땅에서 / 주 땅에서 멸망하였나이다

4. 여호와여 겸손한 자들의 / 소원을 들어주셨사오니
그들 마음 견고케 하시며 / 주 귀를 기울여서 들으사
고아와 압박당한 자 위해 / 그들을 위해 심판하시어서 / 세상 속한 자 위협 못하게 해




시편 9편 (개신교 개역개정판) : 


 -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뭇랍벤에 맞춘 노래 -

1. 내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오며 주의 모든 기이한 일들을 전하리이다

2. 내가 주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지존하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니

3. 내 원수들이 물러갈 때에 주 앞에서 넘어져 망함이니이다

4. 주께서 나의 의와 송사를 변호하셨으며 보좌에 앉으사 의롭게 심판하셨나이다

5. 이방 나라들을 책망하시고 악인을 멸하시며 그들의 이름을 영원히 지우셨나이다

6. 원수가 끊어져 영원히 멸망하였사오니 주께서 무너뜨린 성읍들을 기억할 수 없나이다

7. 여호와께서 영원히 앉으심이여 심판을 위하여 보좌를 준비하셨도다

8. 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심이여 정직으로 만민에게 판결을 내리시리로다

9. 여호와는 압제를 당하는 자의 요새이시요 환난 때의 요새이시로다

10.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

11. 너희는 시온에 계신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의 행사를 백성 중에 선포할지어다

12. 피 흘림을 심문하시는 이가 그들을 기억하심이여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을 잊지 아니하시도다

13. 여호와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나를 사망의 문에서 일으키시는 주여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서 받는 나의 고통을 보소서

14.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찬송을 다 전할 것이요 딸 시온의 문에서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15. 이방 나라들은 자기가 판 웅덩이에 빠짐이여 자기가 숨긴 그물에 자기 발이 걸렸도다

16. 여호와께서 자기를 알게 하사 심판을 행하셨음이여 악인은 자기가 손으로 행한 일에 스스로 얽혔도다 "힉가욘, 셀라"

17. 악인들이 스올로 돌아감이여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이방 나라들이 그리하리로다

18. 궁핍한 자가 항상 잊어버림을 당하지 아니함이여 가난한 자들이 영원히 실망하지 아니하리로다

19. 여호와여 일어나사 인생으로 승리를 얻지 못하게 하시며 이방 나라들이 주 앞에서 심판을 받게 하소서

20. 여호와여 그들을 두렵게 하시며 이방 나라들이 자기는 인생일 분인 줄 알게 하소서 "셀라"



한국어판 가사 (<칼빈의 시편찬송가> 시편찬송가 편찬위원회, 진리의깃발, 2009) : 

(1~9절)


1. 주님께 감사하오며 / 주 모든 기사 전하리

나 기뻐하고 즐거워해 / 높으신 주를 찬송하리


2. 원수들 물러갈 때에 / 넘어져 망하리로다

내 의와 송사 변호하며 / 의롭게 심판하셨도다


3. 이방들 책망하시고 / 악인을 멸하셨도다

악인들 이름 지우셨네 / 영원히 지우셨나이다


4. 원수가 끊어졌으며 / 영원히 멸망하였네

주께서 멸한 성읍들을 / 기억할 수가 없나이다


5. 여호와께서 영원히 / 영원히 앉으심이여

심판을 위해 준비하사 / 보좌를 준비하셨도다


6. 공의로 세계 심판해 / 정직함으로 판결해

압제당한 자 요새이요 / 환난 때 요새이시로다


(가사 출처 : http://blog.daum.net/hwang6710/)




시편 8편 (개신교 개역개정판) : 

 -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깃딧에 맞춘 노래 -
1.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
2. 주의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으로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들과 보복자들을 잠잠하게 하려 하심이니이다
3.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4.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5.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6.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으니
7. 곧 모든 소와 양과 들짐승이며
8. 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와 바닷길에 다니는 것이니이다
9.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한국어판 가사 (<칼빈의 시편찬송가> 시편찬송가 편찬위원회, 진리의깃발, 2009) : 

1. 여호와 주의 이름이 온 땅에 / 참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 영광 하늘 덮었나이다 / 주 영광 하늘 덮었나이다

2. 주 대적 인해 어린 아이들과 / 젖먹이 입에 권능 세우시네
보복자 원수 잠잠케 하고 / 잠잠케 하려 하심이니다

3. 주의 손가락으로 만든 하늘 / 주께서 달과 별들 베푸셨네
달과 별 무리 내가 보오니 / 사람들이 무엇이니이까

4.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며 /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들을 돌보시옵나이까 / 그를 주님보다 못하게 해

5. 영화와 존귀 관을 씌우시며 / 주 만드신 것 다스리게 하네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신 / 소와 양들 짐승이니이다

6. 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 / 그 바닷길에 다니는 것이라
여호와 우리 주여 온 땅에 / 주 이름 어찌 아름다운지




시편 7편 (개신교 개역개정판) : 

 - 다윗의 식가욘, 베냐민인 구시의 말에 따라 여호와께 드린 노래 -
1.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를 쫓아오는 모든 자들에게서 나를 구원하여 내소서
2. 건져낼 자가 없으면 그들이 사자 같이 나를 찢고 뜯을까 하나이다
3.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런 일을 행하였거나 내 손에 죄악이 있거나
4. 화친한 자를 악으로 갚았거나 내 대적에게서 까닭 없이 빼앗았거든
5. 원수가 나의 영혼을 쫓아 잡아 내 생명을 땅에 짓밟게 하고 내 영광을 먼지 속에 살게 하소서 "셀라"
6. 여호와여 진노로 일어나사 내 대적들의 노를 막으시며 나를 위하여 깨소서 주께서 심판을 명령하셨나이다
7. 민족들의 모임이 주를 두르게 하시고 그 위 높은 자리에 돌아오소서
8. 여호와께서 만민에게 심판을 행하시오니 여호와여 나의 의와 나의 성실함을 따라 나를 심판하소서
9. 악인의 악을 끊고 의인을 세우소서 의로우신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과 양심을 감찰하시나이다
10. 나의 방패는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있도다
11.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
12. 사람이 회개하지 아니하면 그가 그의 칼을 가심이여 그의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
13. 죽일 도구를 또한 예비하심이여 그가 만든 화살은 불화살들이로다
14. 악인이 죄악을 낳음이여 재앙을 배어 거짓을 낳았도다
15. 그가 웅덩이를 파 만듦이여 제가 만든 함정에 빠졌도다
16. 그의 재앙은 자기 머리로 돌아가고 그의 포악은 자기 정수리에 내리리로다
17. 내가 여호와께 그의 의를 따라 감사함이여 지존하니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리로다


한국어판 가사 (<칼빈의 시편찬송가> 시편찬송가 편찬위원회, 진리의깃발, 2009) : 
(1~10절)

1. 여호와 나의 주 하나님 / 주님께 내가 피하오니
날 쫓는 자들에게서 / 날 구원하여 주소서
건져낼 사람이 없으면 . 그들이 사자들과 같이
날 찢고 뜯을까 하네 / 날 뜯을까 하나이다

2. 여호와 나의 주 하나님 / 나 이런 일을 행했거나
내 손에 죄악 있거나 / 화친한 자를 대하여
악으로 그를 갚았거나 / 까닭 없이 빼앗았거든
내 생명 땅에 짓밟고 / 내 영광 진토 살게 해

3. 여호와 진노로 일어나 / 대적의 노를 막으소서
나 위해 깨시옵소서 / 주 심판 명하셨도다
그 모든 민족들 모임이 / 오 주를 두르게 하시고
그 위의 높은 자리에 / 주님이 돌아오소서

4. 여호와 심판 행하시니 / 내 의와 성실함을 따라
나에게 심판하소서 / 의인을 세워 주소서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 사람의 마음 감찰하니
내 방패 정직한 자를 / 구원하는 주께 있네


(가사 출처 : http://blog.daum.net/hwang6710/)




Friedrich Nietzsche (1844-1900)

<Hymnus an das Leben>


 - 프리드리히 니체는 현대 철학의 문을 연 역사적인 철학자로 기억되지만, 그의 삶은 음악과도 깊은 연관이 있었으며 실제로 어느 부분에서는 음악가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니체는 전문적 음악교육을 받은 적은 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어릴 적부터 음악적 재능을 보여 왔으며 10대 때의 짧은 시기동안이나마 여러 작품을 작곡하기도 했습니다. 청년기 이후로는 철학 연구에 집중하느라 작곡에서는 멀어졌지만, 이후로도 음악은 그의 삶이나 사상에서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 니체는 1869년 스위스 바젤 대학교의 교수로 채용되었고, 이 무렵 스위스에 머물며 작곡활동을 하던 리하르트 바그너를 만나게 됩니다. 니체는 음악적으로나 사상적으로 완숙기에 접어들고 있었던 바그너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고, 여러 해 바그너와 깊은 교우관계를 유지하면서 자신의 사상에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음악적으로도 새로운 자극을 받았는지, 중단했던 작곡 활동에 다시 손을 대어 몇 개의 작품을 작곡하기도 했습니다.


 - 다만 시간이 지나며 니체는 바그너를 차츰 멀리하게 되었는데, 이는 바그너의 사상에서 기독교나 반유대주의 등 니체가 받아들일 수 없는 요소들이 강해졌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웃기게도 그의 사상은 사후 자신의 후처 코지마와 나치의 합작으로 반유대주의 사상인 것처럼 왜곡되었고, 이러한 오해는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1880년대가 되면 니체는 역설적으로 격렬한 바그너 반대자가 되었고, <바그너의 경우>, <니체 대 바그너> 등의 저술을 통하여 바그너를 비판하게 됩니다.


 - 1882년경 니체는 작가이자 정신분석학자인 루 살로메(1861-1937)과 친교를 맺게 되었고, 살로메가 자신의 철학세계를 이해하는 데 반한 니체는 그에게 청혼을 하지만 곧바로 차이고 말았습니다. ㅡㅡ; 살로메의 회고에 따르면, 철학적으로야 깊은 교감을 나눌 수 있었지만, 자신보다 17세나 연상인데다 이미 이런저런 지병(매독, 사시, 치질 등)으로 건강이 악화되어가던 니체는 육체적으로는 도무지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 다만 두 사람은 철학적으로는 깊은 교감을 나누었고 이후 살로메의 동료인 파울 레에(1849-1901)와 함께 '철학적 교류만이 개재된' 3인 동거 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런데 니체는 살로메에 대해 미련을 버리지 못했고, 결국 얼마 뒤 두 번째로 청혼했다가 다시 거절당했으며 결국 동거 생활은 파탄나게 됩니다. ㅡㅡ; <삶을 위한 찬가>는 살로메의 시를 바탕으로 오케스트라 반주를 붙여 작곡한 합창곡으로 1887년 완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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