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 : 블라스 파레라 (1777-1840)

작사 : 비센테 로페스 이 플라네스 (1785-1856)

제정 : 1813년 (1924년 개정)


 - 본 제목은 <조국의 행진>으로, 아르헨티나 독립전쟁 당시 만들어져 1813년 국가로 제정되었습니다(독립 선포는 1810년, 공화국 수립은 1816년). 이후 후안 페드로 에스나올라(1808-1878)가 편곡한 버전에 제목을 <아르헨티나 국가>라고만 표기한 것이 그대로 굳어져, 현재는 이 제목으로 불립니다. 본래는 9절까지 있었는데, 아무래도 독립전쟁기 노래이다보니 스페인을 까는 내용이 많아 이민자들의 문제제기가 이어졌고 1924년 1절, 9절, 후렴만을 남긴 후 가사를 대폭 개정하여 현재에 이릅니다.


 - 사실 <아르헨티나 국가>가 국외에서 유명한 이유는 따로 있는데, 서주만 1분ㅡㅡ;에 달하고 전체 길이는 4분 이상이나 되는 범상찮은 길이 때문. 대체 9절까지 있던 시절엔 어떻게 노래를 부른 거냐 노래가 너무 길기 때문에 올림픽이나 월드컵 등 국제 스포츠 경기에서는 전곡을 연주하기는 곤란하고, 따라서 일반적으로는 서주만 떼어 연주하거나 가사 있는 부분을 적절히 압축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 가사 ###


Oíd, mortales, el grito sagrado:
"¡Libertad, libertad, libertad!"
Oíd el ruido de rotas cadenas,
ved en trono a la noble igualdad.
Ya su trono dignísimo abrieron
las Provincias Unidas del Sud
y los libres del mundo responden:
"Al gran pueblo argentino, ¡salud!
Al gran pueblo argentino, ¡salud!"
Y los libres del mundo responden:
"Al gran pueblo argentino, ¡salud!"
Y los libres del mundo responden:
"Al gran pueblo argentino, ¡salud!"

[시민들이여 들어라, 신성한 외침을
"자유!, 자유!, 자유!"
쇠사슬이 부서지는 소리를 들어라.
고귀한 평등의 즉위를 보라.
그 가치 있는 왕위가
단결된 남부 주를 열었으니,
세계의 자유인들은 화답하라.
"위대한 아르헨티나인이여, 만세!"
"위대한 아르헨티나인이여, 만세!"
세계의 자유인들은 화답하라.
"위대한 아르헨티나인이여, 만세!"
세계의 자유인들은 화답하라.
"위대한 아르헨티나인이여, 만세!"]


후렴
Sean eternos los laureles
que supimos conseguir,
que supimos conseguir.
Coronados de gloria vivamos...
¡o juremos con gloria morir!,
¡o juremos con gloria morir!,
¡o juremos con gloria morir!

월계수는 영원하리라.
우리는 승리를 알고 있다.
우리는 승리를 알고 있다.
영광의 왕관을 쓰고 살자...
그렇지 않으면 영광과 함께 죽음을 맹세하리!
그렇지 않으면 영광과 함께 죽음을 맹세하리!
그렇지 않으면 영광과 함께 죽음을 맹세하리!]


(가사 출처 : 위키백과 "아르헨티나의 국가")



現 국가 <리비아, 리비아, 리비아>


카다피 집권기 국가 <알라후 아크바르>


작곡 : 무함마드 압델 와하브 (1902-1991)
작사 : 알 바시르 알 아레비

제정 : 1951년(1969년 폐지) / 2011년


 - <리비아, 리비아, 리비아>는 리비아가 독립한 1951년에 리비아 국가로 제정되었습니다. 작사는 튀니지 출신 시인 알 아시르 알 아레비가, 작곡은 이집트 출신 가수 겸 작곡가인 무함마드 압델 와하브(튀니지와 아랍에미리트 국가도 이 사람이 작곡)이 맡았습니다. 이 노래의 운명은 상당히 기구한데, 처음 왕정 리비아의 국가였던 이 노래는 1969년 무아마르 알 카다피(1942-2011)의 쿠데타 이후 폐지되었습니다.


 - 카다피 집권기에는 <알라후 아크바르>가 국가로 사용되었는데, 이 노래는 본래 이집트군의 군가로 쓰이던 것을 카다피가 국가로 채용한 것입니다. 2011년 反카다피 시위가 혁명으로 발전하며 <리비아, 리비아, 리비아>는 옛 리비아 국기와 함께 혁명세력의 상징으로 쓰이기 시작했고, 카다피의 죽음으로 정권이 교체된 이후 리비아 국가로 다시 제정되어 현재에 이릅니다.



### 가사 ###


후렴
يا بلادي بجهادي وجلادي
ادفعي كيد الأعادي
واسلمي
اسلمي طول المدي إننا نحن الفدا

ليبيا ليبيا ليبيا

[나의 조국, 나의 조국
나의 완강한 투쟁에
나의 꾸준한 노력에
차례로 적과 역경을 모두 무너뜨리고
해방이 된 것은, 우리들이 목숨을 바쳤기 때문이다
리비아, 리비아, 리비아]


1절
يا بلادي أنت ميراث الجدود
لارعى الله يداً تمتد لك
فاسلمي، إنا -على الدهر- جنود
لا نبالي إن سلمت من هلك
وخذي منا وثيقات العهود
إننا يا ليبيا لن نخذلك
لن نعود للقيود قد تحررنا وحررنا الوطن
ليبيا ليبيا ليبيا

[나의 조국이여, 그대는 할아버지의 유산이었다
신이 모든 손을 던지고 너를 해쳤다고 하지만
군대는 언제든지 너를 이기려 한다
우리는 오래 살기 위해 누군가가 죽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우리는 진지한 서약을 받았다
그대는 우리(오 리비아여)를 위해 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인질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자유로울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조국은 자유로울 것이다
리비아, 리비아, 리비아]


2절
جرّد الأجداد عزماً مرهفاً
يوم ناداهم منادٍ للكفاح
ثم ساروا يحملون المصحفا
باليد الأولى، وبالأخرى سلاح
فإذا في الكون دين وصفا
وإذا العالم خير وصلاح
فالخلود للجدود إنهم قد شرفوا هذا الوطن
ليبيا ليبيا ليبيا

[그들이 발버둥칠 때
우리 할아버지께서는 그들의 칼을 갖고 오셨다
손으로 신성한 꾸란을 들라
그렇지 않으면 칼을 그들에게 빼앗긴다
그들은 자신의 땅을 넓히기 위해 전쟁을 벌이지만
온 세상은 평화롭고 번창할 것이다
그들이 우리의 성실을 지을 때, 그들은 영원하리라
리비아, 리비아, 리비아]


3절
حيّ إدريس سليل الفاتحين
إنه في ليبيا رمز الجهاد
حمل الراية فينا باليمين
وتبعناه لتحرير البلاد
فانثنى بالملك والفتح المبين
وركزنا فوق هامات النجاد
رايةً حرّةً ظللت بالعز أرجاء الوطن
ليبيا ليبيا ليبيا

[정복자의 후손 이드리스를 찬양하랴
그는 발버둥치는 제하드의 그림이었다
그는 우리의 깃발을 높이 들었다네
우리는 우리 땅의 자유를 위해 그를 따랐도다
그는 왕위의 영광을 만들었다
리비아의 하늘, 자유로운 깃발
번영하는 조국을 뛰어넘으리
리비아, 리비아, 리비아]


4절
يا ابن ليبيا، يا ابن آساد الشرى
إننا للمجد والمجد والمجدُ لنا
مذ سرونا حمد القوم السرى
بارك الله لنا استقلالنا
فابتغوا العلياء شأواً في الورى
واستعدوا للوغى أشبالنا
للغلاب يا شباب إنما الدنيا كفاح للوطن
ليبيا ليبيا ليبيا

[리비아의 아들, 사자의 아들인 이드리스는
우리의 영광이요 영광은 당신의 것이로다
우리가 스스로를 발버둥칠 때, 모든 백성들이 발버둥쳤다
하느님이 우리의 독립을 도와주셨을 때

가장 높은 곳을 찾았도다
젊은이들이여, 발버둥 칠 준비를 하라
삶은 우리 조국의 영광을 위한 전쟁이다
리비아, 리비아, 리비아]


(자료 출처 : 위키백과 "리비아의 국가")




現 버전



타지크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시기 버전

작곡 : 술레이만 유다코프 (1916-1990)

작사 : 굴나자르 켈디 (1945-, 현 버전) / 아불카심 라후티 (1887-1957, 타지크 SSR 버전)

제정 : 1946년 (타지크 SSR 버전) / 1991년 (현 버전)


 - 이 곡은 처음에는 <타지크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국가>로, 당시 소련의 일원인 타지크 SSR의 국가로 제정되었습니다. 첫 작사자인 아불카심 라후티는 이란 출신의 작가로, 불가리아, 터키, 나히체반(아제르바이잔 소속 자치공화국)등을 거치며 사회주의를 받아들이고 혁명활동에 몸담았습니다. 이후 소련으로 이주하였고, 타지크 지역에 정착하여 작가로서 큰 명성을 얻었습니다. 작곡자는 우즈베키스탄의 부하라 유대인 출신으로 라인홀트 글리에르(1875-1956)를 사사하였고, 제2차 세계대전과 그 이후 많은 작품 활동을 하였습니다.


 - 소련 붕괴와 함께 타지키스탄이 독립하면서, 곡은 그대로 놔둔 채 가사만을 바꾼 <수루디 밀리('국가(國歌)')>가 새롭게 제정되었습니다. 타지키스탄 출신의 시인 굴나자르 켈디가 작사를 맡았습니다.



### 가사 (現 버전) ###


1절
Диёри арҷманди мо - !
Ба бахти мо сари азизи ту баланд бод - !
Саодати ту, давлати ту бегазанд бод - !
Зи дурии замонахо расидаем - ,
Ба зери парчами ту саф кашидаем, кашидаем - !
(후렴)Зинда бош, эй Ватан, Тоҷикистони озоди ман - !
[사랑하는 우리 조국!
조국의 긍지는 가장 자랑스런 명예이다!
조국의 행복과 발전이 영원하기를!
우리의 소원은 예부터 독립이었다,
조국의 깃발을 휘날리자!
(후렴) 영원하고 자유로운 우리 조국, 타지키스탄!]

2절
Барои нангу номи мо - !
Ту аз умеди рафтагони мо нишонаӣ - !
Ту баҳри ворисон ҷахони ҷовидонаӣ - !
Хазон намерасад ба навбаҳори ту - ,
Ки мазраи вафо бувад канори ту, канори ту - !
[우리의 조국, 우리의 희망!
우리의 명예와 존엄성은 영원하리라!
우리는 조국 안에 있는 국민이다!
희망은 결코 끝나지 않으리라,
우리는 조국을 위해 충성한다!]

3절
Ту модаре ягонаӣ - !
Бақои ту бувад бақои хонадони мо - !
Мароми ту бувад мароми ҷисму ҷони мо - !
Зи ту саодати абад насиби мост - ,
Ту ҳастиву ҳама ҷаҳон ҳабиби мост, ҳабиби мост - !

[조국은 우리의 스승이라네!
조국의 미래가 곧 우리 미래이다!
조국의 의미는 곧 우리의 의미이다!
조국의 행복은 우리의 행복이다,
우리는 조국을 존경한다!]


(가사 출처 : 위키백과 "타지키스탄의 국가")



### 가사 (타지크 SSR 버전) ###


1절
Чу дасти рус мадад намуд,
бародарии халқи совет устувор шуд,
ситораи ҳаёти мо шарорабор шуд.
Гузаштаҳои пурифти хори мо
ба ҷилва омаданду дар диёри мо, диёри мо
Мустақил давлати тоҷикон барқарор шуд.

[러시아의 손으로 온 세기를 거쳐
소련 인민들이 탄생했도다!
힘센 가족이 새로운 운명의 빛을 발했도다
우리는 전통의 용기로 빛을 발했도다
우리 위에는 천둥이 지구를 괴롭히지만
타지키스탄의 타지크 인민들은 국가를 불렀도다]


2절
Ба ҳоли таб даруни шаб
Садои раъди давлати Ленин фаро расид
Зи барқи байрақаш сиёҳии ситам парид
Саодати ҷовидон дар ин замин
Зи партия ба мо расид, ба партия сад офарин
Марду озода моро чунин ӯ бипарварид.

[우리는 납치되었고 어둠에 굴복했다
그러나 레닌의 목소리가 천둥을 폭파시켰도다
붉은 깃발에 낙뢰가 쳤는데 어둠이 망가졌다
신성한 날이여, 자유로운 노동자여, 강철 곰같은 힘은
위대한 지도자이자 기본인 스탈린이었도다
아버지로서 그는 격렬한 전투에서 노동으로 우리를 키웠다]


3절
Шиори мо диҳад садо:
Баробарӣ, бародарӣ миёни халқи мо.
Зи хонадони мо касе намешавад ҷудо,
Ягонагиро ба худ сипар кунем
Ба сӯи фатҳи коммунизм сафар кунем, сафар кунем,
Зинда бод мулки мо, халқи мо, Иттиҳоди мо.

[그대의 용감한 아들은 우리와 다를 바 없겠지만
불명예스런 적을 물리칠 것이다
평생 소련 인민에 대한 신뢰를 믿는다
일치는 우리 전투의 기초가 되었도다
우리는 원수의 모든 요새를 정복할 것이다
조국에서 세기를 살며 세기를 살며 단결하랴!]


(가사 출처 : 위키백과 "타지크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국가")




작곡 : 오스만 제키 윈괴르 (1880-1958)

작사 : 메흐메트 아키프 메르소이 (1873-1936)

제정 : 1921년


 - <독립 행진곡>은 터키 공화국(과 사실상 터키의 괴뢰국가인 북키프로스 터키 공화국)의 국가로, 오스만 제국이 멸망하기 직전인 1921년 터키 공화국 국민회의에서 국가로 제정되었습니다. 당시는 현대의 터키를 만든 '터키 독립전쟁(1919-1923)이 한창이었던 시기로, 이 노래는 각지에서 결사항전을 거듭하는 터키 국민회의 군대와 민병대의 사기를 고취할 목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후 1930년 현재의 형태로 다듬어져 오늘에 이릅니다. 메르소이가 쓴 시는 본래 10절까지 있으나, 현재 국가로 부를 때는 1절과 2절만 사용합니다.



### 가사 ###


1절
Korkma, sönmez bu şafaklarda yüzen al sancak;
Sönmeden yurdumun üstünde tüten en son ocak.
O benim milletimin yıldızıdır parlayacak;
O benimdir, o benim milletimindir ancak.

[두려워 말라, 붉은 깃발이 새벽 속에서 파도를 이루면,
우리 집의 마지막 남은 불이 꺼지기 전까지 쓰러지지 않을 것이다.
저것은 영원히 빛나는 나의 국가의 별이다.
저것은 나의 것, 영웅적인 국가이다.]


2절
Çatma, kurban olayım çehreni ey nazlı hilal!
Kahraman ırkıma bir gül! ne bu şiddet bu celal?
Sana olmaz dökülen kanlarımız sonra helal,
Hakkıdır, Hakk'a tapan, milletimin istiklal!

[수줍은 초승달이여, 나의 희생에 불쾌하지 말라.
영웅적인 나의 무리에 한 송이의 장미를 바치니, 어찌 화를 내고 격노하는가?
그대를 위해, 우리는 피를 흘릴 옳은 행위를 할 것이다.
자유를 위해, 독립은 하느님을 믿는 나의 국가의 올바른 정의다.]


(가사 출처 : 위키백과 "독립 행진곡")



애국 행진곡


해군 행진곡


행진곡 <애국>
작곡 : 이교숙


 - 이교숙은 1924년 원산 출생으로, 1944년 만주국 신경(창춘)방송교향악단의 트롬본 단원으로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다음해 일본의 패망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고려교향악단(서울시향의 전신 중 하나) 단원으로 활동하던 중 1949년 해군 군악학교가 설립되면서 교관으로 영입되었습니다. 상사로 시작하여 장교 교육을 마친 후 1951년 군악장교로 임관, 6대 해군 군악대장을 역임하였습니다.


 - 전쟁 이후 1955~57년 미국 해군군악학교로 유학, 당시까지 한국에 전해지지 않았던 하프와 재즈 빅밴드 이론을 배워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1967년 예편 이후 이화여자대학교에 신설된 하프 전공 교수로 활동하였고, 이와 별개로 당시 미8군 연예부대에서 활동하던 음악인들에게 음악을 개인교습하는 등 한국 대중음악에도 큰 업적을 남겼습니다. 당시 그에게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이 신중현, 김희갑(뮤지컬 <명성황후> 작곡), 정성조(前 KBS 관현악단 단장) 등이었으니 더 이상의 설명이 必要韓紙?


 - 해군 군악대 재직시절에는 <해군가>를 작곡하고, 다수 의식곡(국기에 대한 경례, 장성에 대한 경례 등) 및 행진곡의 작편곡을 맡기도 하였습니다. <애국>은 이후 편곡을 거쳐 <해군 행진곡>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행진곡 <신 아리랑>
작곡 : 황문규


 - 황문규 작곡. 그가 서울올림픽 조직위원회에 있을 당시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에 활용할 한국적인 행진곡이 너무 적었기 때문에, 두 행사에 활용할 목적으로 새로 작곡하였습니다. 실제로 이 작품은 서울올림픽 입장곡으로 활용하였으며, 원곡인 <아리랑>이 워낙 한국을 대표하는 민요이다보니 행진곡 또한 국가 행사 등 다양한 곳에서 널리 연주하고 있습니다.




행진곡 <타령> 1번

작곡 : 황문규


 - '한국 행진곡의 아버지' 황문규가 작곡하였으며, 1984년경 국방부 정훈국의 위촉을 받아 작곡한 두 작품(타령 1, 2번) 중 하나입니다(출처1 출처2). 민요 가락을 모티브로 만든 작품으로 도입부는 <능수버들>, 트리오는 <몽금포타령>을 바탕으로 합니다. 황문규의 행진곡 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작품 중 하나지요.



Carl Czerny (1791-1857)

<30 Etudes> Op.849


 - 체르니 교본 2단계. 다만 체르니가 모든 연습곡을 의식적으로 순서대로 만든 것은 아니기 때문에, 실제 작곡 순서는 30번이 가장 마지막입니다. 체르니 100번까지를 첫 번째 단계(물론 100번 역시 최후반부로 가면 결코 연주하기 쉽지는 않습니다)라고 한다면, 30번은 두 번째 단계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체로 이 때쯤 하농 교본의 중반부, 바흐 인벤션이나 모차르트의 쉬운 소나타들을 같이 들어가게 됩니다. 블로거는 어렸을 적 진도를 야매로 빼느라 30번 끝날 때가지 소나티네를 못 끝냈지만


 - 체르니 30번을 전후해서 피아노 교습의 첫 번째 고비가 찾아오는데, 본격적으로 난이도가 올라가기 때문에 피아노에 흥미와 소질이 없는 학생은 여기서 대부분 피아노를 포기하게 됩니다. 초등학교 입학과 함께 피아노를 시작하면 특별한 재능이 있지 않은 이상 30번 끝날 때쯤엔 5~6학년이 되기 때문에, 중학교 입학하면서(공부를 시켜야 하니까) 피아노를 그만두는 경향이 있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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