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곡]


[문제의 4악장. 2009 비엔나 필하모닉 신년 콘서트]


Joseph Haydn (1732-1809)

Symphony No.45 in f# Hob I:45 <Farewell>

연주 : 서강대학교 ACES (2016 봄 연주회(4악장))


 - 하이든이 근무한 에스테르하지 악단은 여름 시즌에는 고용주인 에스테르하지 후작을 따라 가문의 여름 별장으로 장기 출장을 떠나곤 했습니다. 1772년에는 가을이 되었는데도 후작이 본궁으로 돌아가지 않는 바람에 악단도 별장에 발이 묶이게 되었는데, 하이든 등 몇 명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단원들이 가족과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불만이 이만저만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를 후작에게 전하기 위하여, 하이든은 새로운 교향곡을 (당시에는 매우 드문) 올림바단조 조성으로 작곡하고 4악장에서는 연주자가 조명을 끄고 하나하나 나가버리는 퍼포먼스까지 선보였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차린 후작은 다음날로 악단에게 휴가를 주었다고 하는군요.


[후기] 앞으로는 앙코르 때 연주한 작품도 블로그에 함께 올리게 될 것 같습니다. <고별>의 핵심은 누가 뭐래도 4악장이고, 연주자가 중간중간 나가는 장면에서는 그냥 밋밋하게 퇴장해서는 참 재미가 없어지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보통은 청중이 웃을 만한 재미있는 퍼포먼스를 하나씩 준비하게 됩니다. 블로거는? 주머니에 숨겨둔 전화를 받으며 나갔지요.



[노년의 하이든]


 -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1732-1809)은 말년에는 고향 오스트리아를 넘어 전 유럽에 이름이 알려진 대작곡가로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가 1809년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을 때 성대한 장례식이 치러질 법도 했지만, 당시는 나폴레옹 전쟁 도중으로 오스트리아가 프랑스에게 신나게 털리는 와중이었기 때문에 ㅡㅡ; 큰 행사를 벌일 만한 분위기는 아니었습니다.


 - 거기에 하이든 본인의 유언도 있고 하여, 시신은 간단한 장례 이후 비엔나 구역 내에 있는 공동묘지에 안치됩니다. 이후 시간이 지나 1820년, 하이든의 옛 고용주였던 에스테르하지 가문에서는 하이든의 시신을 이장하여 자신들의 가문 묘지에 안치하기로 결정하고 무덤을 발굴하였습니다. 그리고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눈에 보인 것은, 머리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하이든의 반쪽짜리 시체였습니다.



1. 누구의 짓인가?


 - 당연하게도 에스테르하지 가문은 발칵 뒤집혔습니다. 당시 가문의 수장 니콜라우스 2세(1765-1833)는 범인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고, 이전부터 나돌던 소문을 바탕으로 요제프 칼 로젠바움(1770-1829)과 요한 네포무크 페터(?-?)가 범인이라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로젠바움은 에스테르하지 가문의 비서였고, 하이든이 결혼을 주선한 적이 있을 만큼 그와 친분이 있는 관계이기도 했습니다.


 - 당연히 니콜라우스는 로젠바움과 페터의 집을 수색하여 하이든의 두개골을 찾아나섰지만, 로젠바움의 부인 테레제 가스만(하이든에게 소개받은 그 사람)이 두개골이 숨겨진 매트리스를 깔고 앉아 버티는 바람에 찾아내는 데 실패합니다. 이후에도 니콜라우스는 로젠바움을 계속 추궁하고, 결국 사실을 실토한 로젠바움은 두개골을 니콜라우스에게 전달하는데 이게 또 다른 사람의 것이었습니다. ㅡㅡ;


 - 1829년 로젠바움이 사망하면서부터 하이든의 머리는 기나긴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됩니다. 일단 범행 동료인 페터에게 머리가 전달되었고, 이후에는 그의 주치의 칼 헬러, 그 다음에는 의사 겸 병리학자인 칼 폰 로키탄스키(1804-1878)의 수중에 들어가는 등 사방을 돌아다녀야 했습니다. 최종적으로 1895년에는 비엔나 악우(樂友)협회가 하이든의 머리를 기증받고, 협회 내에 전시하기에 이릅니다.



2. 왜 그런 짓을?


 - 이 사건을 이해하려면 우선 골상학(骨相學, Phrenology)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이는 근대 의학의 태동기에 유행한 분야로, 현재는 거의 인정되지 않지만 당시 사람들은 뇌 각 부분의 지능이나 정신작용과 직접 관련이 있다고 여겼습니다. 특히 연구자들에게 관심을 끌었던 부류가 범죄자와 천재의 두뇌였습니다.


 [골상학은 현재는 유사과학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 하필 로젠바움과 페터는 이 골상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이들에게 음악천재 하이든의 두뇌는 최고의 연구재료였던 것입니다. 하이든이 매장되고 며칠 후 두 사람은 묘지 관리인들을 매수한 후, 하이든의 머리를 도굴하여 빼돌렸던 것입니다. 페터는 실제로 하이든의 뇌를 연구해본 후 "음악과 관련된 부위가 매우 발달해 있었다"고 말했다는데, 과학적 신빙성은 저 너머에.


 - 뿐만 아니라 당시 유럽에서는, 천재의 머리를 소유하고 있으면 자신과 자손들이 천재가 된다는 이상한 미신이 횡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뛰어난 예술가들은 사후 머리를 도난당하기 일쑤여서 사회문제가 될 정도였습니다. 실제로 베토벤 역시 이러한 가능성 때문에 친구들이 밤새 묘지를 지킬 정도였고, 매장지가 알려지지 않은 모차르트의 경우 매장에 참여한 인부에게 도굴을 제안하는 사람이 있었다고 하는군요.



3. 머리를 되찾기까지


 - 에스테르하지 가문에서는 오랫동안 자신들이 받은 가짜(?) 머리가 진짜인 줄 알았고, 그 사이 하이든의 진짜 머리는 비엔나 악우협회에서 방문객의 구경거리가 되어 있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에스테르하지 가문의 새로운 당주 파울(1901-1989)은 머리에 얽힌 진실을 알게 되었고 하이든의 머리를 되찾아 온전한 유해를 안치할 계획을 세웁니다.


 - 이러한 계획에 따라, 하이든 탄생 200주년인 1932년에 가문의 본거지인 아이젠슈타트의 교회에 하이든을 위한 영묘를 만들고 비엔나 악우협회에 머리의 반환을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악우협회의 비협조 속에 사태는 법정싸움으로 번졌고, 이후 나치의 오스트리아 병합과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분쟁은 한참 동안이나 해결되지 못했습니다.


 - 결국 1954년에야 모든 소송이 마무리되고, 하이든의 머리는 죽은지 145년만에야 자신의 몸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드디어 온전한 모습을 되찾은 하이든의 시신은, 수많은 인파가 모인 가운데 성대한 추모행사와 함께 영묘에 안치되었습니다. 흥미롭게도 그간 하이든의 몸과 함께한 가짜 머리 또한 함께 안치되어, 현재 하이든의 시신은 두 개의 머리를 가지고 있다는군요.



 [하이든이 안치된 영묘]


참고자료 :

영문 위키피디아 "Haydn's head"

정준극씨 블로그 "하이든 머리 수난사건" 





Franz Joseph Haydn (1732-1809)
Symphony No.92 <Oxford>
연주 : 서울교육대학교 에듀필 (2013 봄 연주회(3악장))

 - 하이든은 프랑스의 도니 백작의 후원으로 82~87번까지 6개의 교향곡을 작곡하였고, 이를 묶어 <파리 교향곡>이라 부릅니다. 이후 도니 백작은 하이든에게 새로운 교향곡 작곡을 다시 의뢰하였고 이를 받아들여 새롭게 작곡한 작품이 바로 교향곡 92번입니다. 이 작품은 1789년 완성되었지만 정작 프랑스에서는 초연하지 못했고(아마 그 해 발생한 프랑스 대혁명과 관계가 있지 않을까), 2년 후 영국에서 초연하였는데 하이든이 옥스포드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은 다음날 초연된 이유로 <옥스포드>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후기] 하이든의 교향곡을 많이 들어보지 않은 관계로(사실 너무 많은 것도 있고), 이 작품은 이 연주 때 처음 들어봤지요.




Franz Joseph Haydn (1732-1809)
Symphony No.101 <The Clock>
연주 : 서울교육대학교 에듀필 (2013 봄 연주회(2악장))


 - 1790년대 들어 하이든은 몇 차례 런던을 방문하여 자신의 작품을 발표하였고 큰 성공을 거둡니다. 그의 런던 방문은 주로 런던의 공연기획자 존 피터 잘로몬(1745-1815)의 초청으로 이루어졌는데, 하이든은 이 때의 연주회를 위하여 총 12개의 교향곡을 작곡하였고 이 작품들을 통틀어 <잘로몬 교향곡> 혹은 <런던 교향곡>이라 부릅니다. 101번 교향곡은 <시계>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데, 2악장의 반주가 마치 시계추의 똑딱거리는 소리를 연상시킨다 하여 붙은 제목입니다. 물론 여느 작품이 그렇듯 작곡가 자신이 직접 붙인 제목은 아닙니다.


[후기] 하이든의 교향곡도 은근히 아마추어에서 보기 쉽지 않습니다. 역설적으로, 편성이 너무 작기 때문이죠. 그리고 고전파 관현악곡이 대체로 그렇듯이 이 작품도 완성도를 높이려면 칼같은 정확성이 요구됩니다. 언제 하이든 교향곡 하나를 전곡으로 연주할 기회가 올지 모르겠군요.




 

Franz Joseph Haydn (1732-1809)

Violoncello Concerto No.1 in C

연주 : 한양대학교 하나클랑 (2005 정기연주회), 서강대학교 ACES (2014 봄 연주회)


 - 하이든의 초기 작품. 오랫동안 알려져 있지 않다가 1961년 프라하 국립 박물관에서 필사본 악보가 발견되며 세상에 다시 알려졌습니다. 이 곡의 진위 여부에 대하여는 이런저런 논란이 있지만, 현재는 대체로 하이든 본인의 작품으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에스테르하지 가문의 오케스트라에서 선임 첼로 연주자로 일하던 요제프 바이글을 위해 작곡되었다고 합니다.


[후기]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품. 연주 당시에도 '들으면서 즐거운 곡'으로 기억에 남아 있네요. 협주 첼로도 한 번쯤 연주해보는 게 꿈이긴 하지만 현실은......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