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l August Nielsen (1865-1931)

Symphony No.2 Op.16 <The Four Temperaments>

연주 : 하나클랑 졸업생 오케스트라 HALO (2015 정기연주회)


 - 닐센은 덴마크를 대표하는 작곡가로, 전반적으로는 신고전주의(구체적으로는 反바그너)에서 출발하여 현대음악과 고전주의 사이의 접점을 찾고자 노력한 음악가입니다. 2번 교향곡의 주제는 고대 철학자들이 이야기한 인간의 네 가지 기질에서 따 왔는데, 닐센이 어느 선술집에서 이를 표현한 그림을 보고 영감을 얻어 작곡에 착수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각 악장이 하나의 기질을 상징하고 있는데, 각각 'Chloeric(담즙질, 충동적)' 'Phlegmatic(점액질, 나태함)' 'Melancholic(우울질)' 'Sanguine(다혈질'을 뜻합니다.


[후기] 북유럽의 작곡가 중 닐센은 그리그, 시벨리우스에 비해 묻히는 경향이 크지만 그 업적은 크게 뒤처지지 않지요. 블로거가 닐센의 작품을 제대로 접해본 건 이 연주가 처음이었고, 지금 교향곡 2번은 블로거가 즐겨 듣는 레퍼토리의 하나가 되어 있습니다.





Antonin Dvorak (1841-1904)

Cello Concerto in d Op.104

연주 : 하나클랑 졸업생 오케스트라 HALO (2015 정기연주회)


 - 드보르자크의 미국 생활은 그리 성공적이었다고 보기는 어렵고 기간도 3년 남짓으로 길지 않았지만, 음악적 지평을 넓히는 데는 큰 도움이 된 시기였습니다. 뉴욕 내셔널 음악원장으로 근무하면서 드보르자크는 '인종 불문 입학 가능'이라는, 당시로서는 과감한 조치를 단행하였고 그렇게 입학한 학생들을 통하여 아프리카계와 아메리카 원주민의 음악을 자신의 것으로 흡수할 수 있었습니다. 첼로 협주곡은 1895년 완성, 1896년 영국에서 초연되어 큰 호평을 받았습니다. 드보르자크의 후원자였던 브람스는 "이런 작품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면 내가 진작 첼로 협주곡을 썼을 텐데"라며 탄식했다고 하지요.


[후기] 연주회 뒷풀이에서 협연자와 나누었던 이야기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아마추어와 맞추다 보니 루바토를 주기 어려워서 철저히 정석에 맞게 연습을 했는데, 들어보니 대가들은 다 정석에 맞게 하더라" 뭐 이런 이야기도 했고, "음악을 업으로 하다가 음악을 순수하게 즐기는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게 굉장히 소중한 경험이다" 이런 이야기도 했던가요. 오케스트라 활동을 하다 보면 이 자리가 전문가와 취미가의 연결지점이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양쪽 모두에게 정말 중요한 경험이 되겠지요.





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

Oboe Concerto in C K.314/K.271k

연주 : 서강대학교 ACES (2014 가을 연주회)


 - 모차르트의 오보에 협주곡은 그가 협주곡을 썼다는 정보만 있고, 작품의 실체는 오랫동안 알려져 있지 않았습니다. 이 작품의 사보된 악보가 발견된 것은 1920년이었는데, 놀랍게도 모차르트의 플루트 협주곡 D장조 K.314와 조만 다른 사실상 똑같은 곡이어서 논란을 낳았습니다. 핵심적인 것은 과연 둘 중 어느 쪽이 원곡이냐 하는 것인데, 일단은 모차르트 연구의 권위자인 알프레드 아인슈타인(1880-1952)의 의견을 따라 대체로 오보에 협주곡 쪽을 원곡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기존의 작품 분류에서는 플룻/오보에 협주곡에 같은 번호가 붙어 있습니다(개정 번호에서는 물론 다름).


[후기] 사실 이 곡을 연주했는지 아니 했는지도 기억이 불분명했다가, 곡을 다시 들으면서 간신히 기억해 냈습니다. 남아있는 기억이 이 수준이다보니, 후기랄 만한 건 딱히 없습니다. ㅡㅡ;





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Symphony No.1 in C Op.21

연주 : 한국 대학생 연합 오케스트라 KUCO (2014 여름 연주회)


 - 베토벤이 교향곡이라는 형태의 음악에 끼친 영향이라면, 무엇보다 음악회의 보조 음악이었던 교향곡을 음악회의 중심부로 끌어올렸다는 것에 있습니다. 베토벤이 1번 교향곡을 완성한 것은 1800년, 나이 30세 때로 그의 선배들인 하이든이나 모차르트에 비해 상당히 늦은 시작입니다. 실제로 그 이전에도 베토벤은 상당히 많은 교향곡 초안을 만들었지만 작품으로 완성시키지는 않았으니, 처음부터 교향곡 자체에 큰 공을 들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1번 교향곡은 지금에 와서는 선배들의 영향이 상당히 남아있는 작품으로 평가되지만, 그래도 나름 새로운 시도가 많이 보이기 때문에 발표 당시에는 상당히 진보적인 음악으로 이런저런 논란을 낳기도 했다고 합니다.


[후기] 베토벤 교향곡 입문용으로 괜찮은 작품. 좋게 평가하면 하이든-모차르트의 고전적 스타일과 베토벤 고유의 스타일을 모두 맛볼 수 있고, 나쁘게 평가하면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작품이라 할만하죠.





Sergey Koussevitzky (1874-1951)

Double Bass Concerto in e Op.3

연주 : 한국 대학생 연합 오케스트라 KUCO (2014 여름 연주회)


 - 세르게이 쿠세비츠키는 지휘자 겸 더블베이스 연주자로, 젊은 시절에는 주로 연주자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30대 중반쯤부터 지휘자로 활동, 본래 러시아를 중심으로 음악 활동을 하였으나 러시아 혁명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서 미국 시민권을 획득하였습니다. 1924년부터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지휘를 맡아 25년간 맹활약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작곡가로서의 활동은 별로 없지만, 평소 더블베이스를 위한 곡이 부족함을 아쉬워하던 중 직접 작품을 쓰기에 이르렀으니 유명한 더블베이스 협주곡입니다.


[후기] 더블베이스를 위한 협주곡 자체가 희귀하니, 진기한 경험을 한 셈이지요. 당시 협연은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더블베이스 연주자 성민제씨가 연주한 바 있습니다.





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Symphony No.7 in A Op.92

연주 : 서울교육대학교 에듀필 (2014 봄 연주회), 한국교사오케스트라 (2016 여름 연주회)


 - 베토벤의 7번 교향곡은 5번과 6번 교향곡이 완성된 지 4년쯤 지난 1812년에 완성되었고, 5-6번의 관계와 비슷하게 8번 교향곡과 거의 동시기에 작곡이 진행되었습니다. 동시기의 작품임에도 7번과 8번의 분위기는 상당히 다른데, 7번의 경우 도취적일 정도로 힘차고 경쾌한 느낌을 전반적으로 주고 있습니다. 작곡 당시의 오스트리아는 연속된 전쟁의 영향으로 애국주의가 판치고 있었으며,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7번의 분위기는 대중들에게 큰 호평을 받아 대단한 인기를 누렸습니다. 다만 베토벤 본인의 경우 8번을 7번보다 오히려 더 뛰어난 작품으로 자평했다는군요.


[후기] 베토벤의 교향곡을 더블베이스 연주자는 대체로 싫어합니다. 보통 첼로와 더블베이스는 동일한 음형을 연주하는 경우가 많은데, 첼로에게도 상당히 까다로운 부분들이 더블베이스에게는 거의 HELL 난이도가 되거든요. 뭐, 블로거는 첼로를 연주하고 첼로에게도 베토벤 교향곡은 어렵긴 하지만 아예 못 해먹을 정도까진 아닙니다. 7번 교향곡은 말 그대로 질주하는 마음가짐으로 연주해야 재미있고, 그럴 생각이 없더라도 연주를 하다 보면 자연스레 그렇게 되더군요. ㅡㅡ;





Dmitry Kavalevsky (1904-1987)

Violin Concerto in C Op.48

연주 : 서울교육대학교 에듀필 (2014 봄 연주회)


 - 카발렙스키는 쇼스타코비치, 하차투리안과 동시대 인물로, 주로 극음악 쪽에서 두각을 나타낸 작곡가입니다. 소련의 정치권력과는 대체로 타협적이었으며, 전반적으로 예술적 깊이보다는 일반인도 이해하기 쉬운 음악을 추구하였습니다. 특히 그의 협주곡들은 전문적 연주자가 아니더라도 연주할 수 있을 정도의 쉬운 난이도를 추구하였다고 하는데, 이는 그가 어린이 음악교육에 깊이 관여한 것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후기] 러시아-소련의 작곡가들은 저마다 독특한 매력을 하나씩은 가지고 있습니다. 당연하게도(?) 블로거는 이 연주를 통하여 카발렙스키를 처음 접했고, 협주곡에 대하여 남들과는 다른 인식을 가지고 접근하였다는 데 깊은 인상을 받은 바 있습니다. 이 연주 또한 프로페셔널이 아닌, 단원 중 한 명이 협연을 하였죠.





Franz Schubert (1797-1828)

Symphony No.5 in Bb D.485

연주 : 서강대학교 ACES (2014 봄 연주회)


 - 변성기가 오면서 국립신학교를 퇴학한 슈베르트는 아버지의 끈질긴 요구에 따라 일종의 대체복무 성격으로 아버지가 운영하는 초등학교의 조교사직을 맡아 일하게 되었습니다. 다만 이 일은 그에게 맞는 일이 아니었고, 실제로 그는 교사직보다도 작곡과 음악 관련 활동에 열중하여 수많은 명곡을 만들었습니다. 1816년에는 견디다 못하여 라이바흐 초등교원양성학교에 음악교사로 지원하였지만 탈락하였고, 결국 아버지와 충돌한 후 집을 나와버리게 됩니다. 교향곡 5번은 바로 이 시기에 만들어졌고, 격동의 시기였음에도 3주 남짓한 기간동안 빠르게 작곡되었습니다. 다만 이 곡의 초연은 슈베르트의 사후인 1841년에야 실현되었습니다.


[후기] 규모가 '너무 작아서' 연주해보기 은근히 까다로운 곡이죠(아무래도 클라리넷이 없다는 게). 2악장은 슈베르트 특유의 아름다운 선율이 인상적이고, 3악장은 딱 들어도 모차르트의 40번 3악장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느낌이 강하게 옵니다. 또 해 보고 싶은 작품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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