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yotr Ilyich Tchaikovsky (1840-1893)

Symphony No.1 in g Op.13 <Winter Dreams>

연주 : 건국대학교 KUPhil (2015 가을 연주회)


 - 차이콥스키의 첫 번째 교향곡은 그가 28세 때 완성하였습니다. 음악을 전공하고 싶었던 차이콥스키는 자신의 아버지 때문에 법무관으로 진로를 틀어야 했는데, 법률학교에 재학했던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음악원이 신설되면서 그는 음악원에 입학하여 음악을 다시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졸업 후에는 니콜라이 루빈시테인(1835-1881)의 권유로 모스크바 음악원의 교수로 재직하게 되었는데, 음악원에 재임한 1866년부터 교향곡 작곡에 착수하여 2년 후 완성한 작품이 바로 교향곡 1번입니다. 차이콥스키는 각 악장에 각각 "겨울 여행의 몽상" "어둠의 땅, 안개의 땅" "춥고 오랜 여행에 지친 여행자의 꿈" "꽃망울이 열리고"라는 표제를 붙였는데,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는 불분명하나 대체로 고향 러시아를 상징하는 '추운 겨울'에서 온 것이 아닐까 추정하고 있습니다. 초기 작품이라 작곡 기법상으로는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데, 그래서인지 이 작품은 초연에서 평이 괜찮았음에도 몇 차례 곡을 고쳐 1875년 출판하였습니다.


[후기] 블로거는 별로 연주해본 적 없는 새로운 작품을 더 좋아합니다. 물론 완전 새롭게 연습을 해야 하니 부족한 실력에 고생이 많지만, 그래도 하던 것만 자꾸 하면 재미가 없잖아요. 이 작품은 예전에 다른 곳에서 딱 한 번 연습만 해 본 곡이라 어딘가에서 꼭 한 번 연주해보고 싶었는데, 감사하게도 기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Leonore> "Overture" No.3 Op.72a

연주 : 건국대학교 KUPhil (2015 가을 연주회)


 - 베토벤의 유일한 오페라 <피델리오>는 파란만장한 개작(改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 번째 판본은 1805년 완성되어 그해 말 초연되었는데, 하필 나폴레옹이 비엔나로 침공한 혼란통에 몇 차례 상연되지 못하고 무대에서 내려오고 말았습니다(당시의 서곡은 <레오노레> 2번). 이듬해 초 베토벤은 작품을 다듬어 3막에서 2막으로 축소하고, 새로운 서곡(<레오노레> 3번)을 만들어 무대에 올렸으니 이것이 두 번째 판본입니다. 다만 이는 1차보다도 흥행에 실패하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이듬해(1807년) 프라하에서 상연 기회가 생기자 베토벤은 서곡을 다시 써서(<레오노레> 1번) 준비를 하였으나 이번에는 상연 자체가 취소. 이후 시간이 지나 1814년이 되어서야 작품은 다시 상연될 기회를 얻게 되었는데, 베토벤은 음악을 대규모로 개작하였고 비로소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서곡을 다시 썼는데(<피델리오> 서곡), 초연 당시까지 완성하지 못하여 얼마 후에야 새로 쓴 서곡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최종본에 이르기까지 3명의 다른 작가가 대본 작업에 참여했고, 제목도 <피델리오> → <레오노레> → <피델리오>로 바뀌었습니다. '레오노레'는 주인공의 본명, '피델리오'는 남장한 주인공의 가명입니다.


[후기] 은근히 어려워서 허를 찔린 기억이 있습니다. 곡 자체의 재미도 재미지만, 완성되기까지의 긴 사연이 더 인상적이었던 작품.





Arturo Marquez (1950-)
Danzon No.2

연주 : 서울교육대학교 에듀필 (2015 봄 연주회)


 - 아르투로 마르케스는 멕시코 출신의 작곡가입니다. 멕시코 북부의 알라모스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내고, 가족들과 함께 미국 로스엔젤레스 교외의 라 푸엔테로 이주하여 이곳에서 본격적인 음악 교육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멕시코 음악원을 거쳐 프랑스 파리에 장학생으로 유학을 다녀왔고, 1990년에는 캘리포니아 예술학교에서 MFA(Master of Fine Arts) 학위를 받았으며 풀브라이트 장학금의 수혜를 받기도 했습니다. 주로 멕시코를 비롯한 라틴아메리카의 음악적 성격을 강하게 드러내는 작품 활동으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단존 2번은 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 '단존(Danzon)'은 멕시코와 쿠바 등에서 유행한 2/4 박자의 춤곡입니다.


[후기] 흥겨움 하면 라틴아메리카 음악을 따라올 게 별로 없죠. 독특한 리듬을 가지고 있는 곡은 제대로 연주하기가 상당히 까다로운데, 블로거는 이런 곡이야말로 색다른 재미가 있기 때문에 오히려 좋아합니다.





Johann Strauss II (1825-1899)

Waltz <Fruhlingsstimmen> Op.410

연주 : 서울교육대학교 에듀필 (2015 봄 연주회)


 - '왈츠'라는 춤곡 형식은 19세기 유럽을 완전히 평정하다시피 했는데, 당시 유럽의 대도시는 부유층의 무도회로부터 서민의 길거리 음악에 이르기까지 온통 왈츠로 차 있었습니다. 비엔나의 왈츠를 평정한 게 바로 요한 슈트라우스 부자(父子)인데,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아버지 요한 슈트라우스 1세의 격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음악가가 되었으며, 말년의 아버지와 흥행 경쟁까지 벌여가며(요즘도 그렇지만 이런 대결구도는 대중의 관심을 받기 딱 좋았지요) 비엔나 왈츠의 최강자로 군림했습니다. <봄의 소리>는 1883년 슈트라우스가 헝가리로 연주 여행을 갔다가 초대받아 간 저녁 파티에서 거의 즉흥적으로 만들어 다듬은 작품입니다. 본래는 소프라노 독창을 위한 곡이었으며, 이후 관현악용으로 편곡한 버전이 널리 연주되고 있습니다.


[후기] 슈트라우스 일가의 왈츠는 빼놓을 수 없는 앙코르 곡목이죠. BGM으로도 많이 쓰이다보니 귀에 익은 작품들이 많지만, 조금만 찾아보면 처음 듣는 왈츠가 쏟아져나올 정도로 많은 작품을 쓴 작곡가들이기도 합니다.





Alessandro Marcello (1673-1747)

Oboe Concerto in d

연주 : 서울교육대학교 에듀필 (2015 봄 연주회)


 - 마르첼로는 베네치아 원로원 의원 집안에서 태어나, 음악 뿐 아니라 미술, 문학 등에서도 재능을 나타내었고 취미로 예술 활동을 한 전형적인 귀족 음악가입니다. 동생 베네디토 마르첼로(1686-1739) 역시 음악가로, 오보에 협주곡은 기존에는 베네디토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1716년 출판된 악보가 뒤늦게 발굴되면서 알레산드로의 작품으로 밝혀졌습니다. 한동안은 잊혀져 있었으나 동시대 활동한 바흐가 건반악기용으로 편곡(BWV 975)하면서 세상에 알려진 바 있습니다.


[후기] 바로크 음악이 시대를 뛰어넘어 지금까지 사랑받는 이유가 분명히 있겠지요. 블로거는 바로크 음악의 친숙하고 편안한 느낌을 좋아합니다.





Gioacchino Rossini (1792-1868)

<Guillaume Tell> "Overture"

연주 : 서울교육대학교 에듀필 (2015 봄 연주회)


 - 로시니의 마지막 오페라. 흥미롭게도 로시니는 37세 때 <빌헬름 텔>을 완성한 이후 39년을 더 살았지만, 남은 기간 동안 오페라를 단 한 개도 쓰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당시 서양음악의 성향이 낭만파로 옮겨가고 성악가들의 창법도 변화하면서, 기본적으로 이전 시대의 작곡가였던 로시니가 이에 발맞추지 않은(혹은 못한) 것이라는 게 유력한 추측입니다. <빌헬름 텔>은 스위스 독립과 관련된 '빌헬름 텔'의 전설을 바탕으로 프리드리히 실러(1759-1805)가 쓴 동명의 희곡을 원작으로 한 '그랜드 오페라(프랑스를 중심으로 유행한 거대규모 오페라)'입니다.


[후기] 역시 첼로파트에게는 곡의 처음에 등장하는, 첼로만의 합주가 기억에 남지요.





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

<Die Zauberflote> K.620 "Overture"

연주 : 서강대학교 ACES (2015 봄 연주회)


 - <마술 피리>는 모차르트가 죽은 1791년 완성한 징슈필(독일어 오페라)입니다. 이 작품은 모차르트가 프리메이슨 지부에서 함께 활동하던 극작가 에마누엘 시카네더(1751-1812)의 제안을 받아 만들었고, 실제로 프리메이슨 사상이 담겨 있다고도 합니다. 당시의 징슈필은 이탈리아어 오페라에 비하여 낮은 취급을 받았기 때문에 이 작품은 비엔나 변두리의 서민 대상 극장에서 초연되었는데, 당시의 상연은 100회 이상 반복되는 대 흥행을 기록했고 예술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다만 모차르트 자신은 오페라 두 개와 레퀴엠을 동시에 작업하는 무리를 하여 건강을 해쳤고, 결국 완성 두 달 후에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후기] 맨 처음의 2연음에 대하여, 일반적으로는 한음 한음 떼어서 연주하는 게 보통인데 특별한 이유는 아니고 대가들이 그런 식으로 연주를 했기 때문에 이를 관례적으로 따르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말년의 모차르트는 바흐의 음악을 연구하여 대위법 마스터가 되어 있었는데, 그걸 잘 드러내는 작품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Ludwid van Beethoven (1770-1827)

Triple Concerto in C Op.56

연주 : 서강대학교 ACES (2015 봄 연주회)


 - 삼중 협주곡은 세 악기의 합동 협주라는 특이한 형태의 작품으로, 이런 형태의 음악은 주로 바로크 시대 '합주 협주곡(Concerto Grosso)'이라는 이름으로 많이 만들어진 바 있습니다. 고전 시대 이후로는 찾아보기 어려워진 이러한 형태를 베토벤이 왜 꺼내들었는지는 분명치 않은데, 베토벤의 전기 작가(하지만 신뢰성은 심히 의심받는)인 안톤 쉰들러(1795-1864)에 따르면 피아노는 베토벤의 후원자 중 하나인 루돌프 대공, 바이올린은 루돌프의 전속 음악가인 칼 자이들러, 첼로는 에스테르하지 가문 오케스트라의 수석 첼로 주자인 안톤 크라프트를 염두에 둔 것이라고 합니다. 완성은 1804년에 되었지만, 루돌프 대공이 악보를 먹튀개인소장하는 바람에 출판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하는군요.


[후기] 블로거는 이 작품을 딱히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베토벤 특유의 혁신성이 그닥 느껴지지 않거든요. 그래도 역시 (바로크 음악이 아닌) 세 악기의 동시 협주라는 게 독특한 매력이기는 하지요. 첼로를 듣보잡 취급했다는 모차르트와는 달리 베토벤은 나름 첼로를 좋아해서 첼로 소나타를 썼다든지 삼중 협주곡에 첼로를 포함했다든지 정도의 노력은 했으니 경건히 들을 따름입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