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근 한화 이글스 감독(이하 김성근)이 연일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안 좋은 쪽으로. 한화가 김성근을 선임할 때만 해도 2015년 한화의 변화할 모습에 대한 기대가 훨씬 많았기 때문에,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는 현재의 모습은 의외라고 할만하죠. 야알못이라 깊은 분석은 어렵고, 그동안 보고 들은 것들을 생각하며 개인적인 생각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 김성근은 자타공인 한국 최고의 야구지도자 중 하나입니다. 김응룡 전 감독 정도만이 비교대상이죠. 그런 그가 2010년대 압도적 최하위팀 한화를 맡을 때, 블로거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올해 한화가 어떻게든 분명 발전한 모습을 보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단지 첫 해에 5강에 드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를 따져보는 수준이었죠. 시즌이 끝나가는 지금, 분명 전체적으로 보면 한화는 이전보다 나아지긴 했습니다(이는 그동안의 한화가 그야말로 답이 없는 상태였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김성근에 대한 평가는 그야말로 최악으로 치달아 버렸습니다. 블로거가 보기에도 현재의 김성근은 분명 한화를 망치고 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들이 있었던 걸까요? 문제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이 글은 그러한 의문으로부터 출발합니다.

1. 김성근, 전형적인 '한국형' 리더


 - 일단 김성근이라는 캐릭터가 왜 사람들에게 지도자의 표상으로 대접받는지를 생각해봅시다. 김성근의 스타일은 리더가 목표와 실행방법을 구체적으로 지시하면 '아랫사람'들은 거기에 절대적으로 따르면 되는, 전형적인 독재자형 리더십이죠('독재자'라는 단어가 입맛이 쓰지만, 적절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 쓴 것이지 부정적 의미로 쓴 건 아닙니다). 20세기 후반 한국 사회의 발전신화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영명한 지도자(독재자)가 방향을 제시하고,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강제적인 통제와 더불어)지시하면 사람들이 거기에 충실히 따르는. 이것이 한국 사회에서 현재도 잘 먹힌다는 건 현재의 대통령이 당선된 과정을 보면 명백하고, 그런 사회에서 김성근의 리더십은 가장 이상적인 것임에 분명합니다.

 - 그런데 여기엔 분명한 후과가 따르죠. 독재자형 리더십은 필연적으로 리더를 따르지 않는 자에 대한 탄압, 그리고 리더가 옳은 방향과 방법을 제시하지 못했을 때의 후유증을 낳습니다. 김성근이 대단히 인간적이고 아랫사람을 잘 챙기는 지도자인 것은 유명하지만, 자신과 맞지 않는 스타일의 아랫사람에게는 끝없이 매몰차고 가혹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 또한 분명합니다. 그 대표적 인물인 한대화 전 감독의 경우, OB에서 뛰던 시절 질병(A형간염)의 여파로 강훈련을 소화할 몸상태가 아니었음에도 '훈련에 태만하다'는 이유로 김성근의 눈 밖에 나고, 쫓겨나다시피 해태로 트레이드되었으며 나중에 쌍방울에서 다시 만났을 때도 한대화는 김성근의 반대로 은퇴식조차 치르지 못하고 쓸쓸히 은퇴한 바 있습니다.

 - 김성근 스타일의 또 한 가지 특징은 '양으로 질을 커버한다'는 것입니다. 세월이 흐른 2010년대쯤 되어서는 김성근식 훈련의 강도와 분량이 그야말로 독보적이라 할 만하지만, 그런 게 일반적이었던 20세기에도 김성근은 선수를 대단히 많이 '굴리는' 감독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각각의 선수들에게 다양한 방식의(나쁘게 말하면 별별 희한한 방식의) 훈련을 시키죠. 빠른 성적향상을 위해 엄청난 훈련량을 소화시키고, 선수의 기량을 향상시키는 훈련법은 감독이 직접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이러한 방식 또한 한국의 경제발전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다는 건 다들 짐작하실 겁니다.

 - 그에게 '한국적'이라는 말을 붙인다면, 그 목표의 달성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 또한 이유로 들 수 있겠습니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너무 길어지니 링크를 참고.


2. 김성근은 리빌딩형 감독이 아니다


  - 2015년의 한화는 철저한 리빌딩이 필요한 팀입니다. 주전급 선수의 뎁스가 처참할 정도로 얇기 때문에(차라리 선수들 다 팔아치우던 시절의 히어로즈가 더 나아 보입니다. 블로거는 넥센 팬), 일단 선수층의 두께를 키우는 일부터가 필요하고 이건 1~2년 가지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넥센이 아직도 이 문제로 허덕이고 있다는 걸 생각해 보신다면). 이런 팀에는 선수 육성에 일가견이 있는 지도자를 앉혀놓고 한 3~5년쯤은 성적에 연연할 필요가 없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리빌딩이 가능하죠.


 - 김성근은 어떨까요? 분명 김성근은 그동안 이러한 팀들을 맡아 성공적인 육성 능력을 보여왔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팀들을 맡아 첫 해부터 좋은 성적을 거두었죠. 여기서 '첫 해부터'라는 게 중요. 즉 김성근은 선수를 장기적으로 키우기보다, 단기간에 가능한 한 빨리 선수를 키워낸 다음 그 선수들을 200% 활용하여 최대한의 성적을 거두는 스타일의 감독인 셈입니다. 단기간에 선수를 키워내려면, 결국 훈련의 강도를 최대로 높이는 것밖에 답이 없죠. 김성근 특유의 미친 듯한 훈련량은 상당 부분 여기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 그런데 이는 선수들에게는 필연적으로 '오버페이스'가 됩니다. 6개월 이상 계속되는 페넌트레이스 일정에 강훈련, (투수의 경우) 혹사까지 겹치게 되면 선수들은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체력 및 근력소모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과연 선수들에게 어떤 악영향을 주게 될까요? 김성근을 변명할 여지가 있다면 적어도 그는 선수의 상태에 대한 세심한 관리를 한다는 점인데, 김성근식 관리는 선수를 최대한 혹사한 후 나가떨어질 때쯤 일정한 휴식을 부여하는 방식이고 이러한 방식으로 신체가 점점 소모되는 것을 온전히 막지는 못합니다(재료과학에서는 '피로파괴'라고 합니다).


 - 위에서 분석해봤듯이 김성근은 '빨리 만들어서 빨리 써먹는' 타입의 감독입니다. 적어도 먼 미래를 우선시하는 감독은 아니죠. 그가 몸담았던 팀이 그가 나간 이후로 하나같이 성적이 추락하는 결말을 맞았다는 것은, (팀이 아예 망해버린 쌍방울을 빼고)거의 하나도 빠짐없이 그랬다는 것은 단순히 프론트나 후임 감독의 삽질이라고만 해석하기엔 곤란할 것입니다. 비록 그가 5년 이상 장기간 재임한 적이 없기 때문에 '김성근이 끝까지 책임을 진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인가'에 대한 답은 내릴 수 없겠지만, 적어도 후임자를 대단히 난감하게 만드는 감독인 건 분명해 보입니다.


3. 선수의 특성을 무시하는 방향제시


 - 김성근식 리더십의 다른 문제는 '선수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일단 그의 밑에 있는 선수는 일률적으로 '적당히 날씬한' 몸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김성근의 강훈련을 거쳐가게 되면 누구라도 살이 빠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ㅡㅡ; 최근 프로야구 선수들이 체중을 불리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가 되면서, 살을 지나치게 찌워 문제가 되는 선수들도 제법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선수들을 제외한, 현재 상태로도 별 문제가 없는 선수들까지 강제 다이어트(?)를 하게 된다는 것.


 - 이번 시즌 양훈의 변화는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경찰청에서 제대하여 올시즌 한화로 복귀한 양훈은 김성근의 지시로 살을 뺐습니다. 그런데 애초에 우수한 피지컬이 무기인 양훈은 살을 뺀 이후 젓가락이 되어 ㅡㅡ; 구위를 완전히 잃어버렸고, 시즌 초 버려지다시피 넥센으로 트레이드됐죠. 그런 양훈을 받은 넥센은 김성근과 정확히 '반대로' 가게 됩니다. 짧은 기간 동안 무서울 정도의 벌크업을 통하여, 거의 다른 사람 수준으로 만들어놓은 겁니다. 그 이후 양훈은 넥센의 새로운 필승조로 맹활약하고 있습니다. 많은 걸 시사하죠.


 - 혹자는 선수들 개개인에 맞는 다양한 훈련법을 적용하는 감독이지 않냐고 반론을 제기하실텐데, 그건 그것대로 맞습니다. 블로거가 말하고 싶은 건 큰 틀에서, '최대한 많은 훈련과 이를 통하여 강인하고 가벼운 몸 만들기'라는 기본 전제를 일률적으로 적용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마인드를 가진 감독에게, 위에서 말한 한대화 같은 선수가 인정받을 것으로 생각되진 않습니다. 예외가 있다면 당뇨병 환자였던 심성보 정도일텐데, 김성근이 직접 훈련 스케줄을 따로 짜 줄 정도로 신경을 썼다지만 (본인의 태만 때문이건 어쨌건) 좋은 결과는 내지 못했으니 야만없이라 하겠습니다.


4. 투수혹사 문제에 대한 단상


  - 투수의 수명에 대한 김성근의 생각은 전형적인 일본식 마인드인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야구에서는 '투수의 팔은 던지면 던질수록 단련된다'라는 마인드를 가지고, 투수가 최대한 많은 공을 던지도록 유도합니다. 그러니까 매년 고시엔 대회에서 연일 완투를 거듭하는 고교선수가 나와도 문제를 삼지 않는 것이고, 선발 투수가 많은 공을 던져 완투하는 것을 당연한 미덕으로 여기는 거죠. 반면 미국은 정 반대로 생각하는데, '투수가 평생 던질 수 있는 공의 개수는 정해져 있다'고 보고 학교야구에서 투수들의 투구수를 철저히 제한합니다. 놀란 라이언이 예찬하는 '롱토스 훈련법'의 경우도 찬반 양론이 거세고, 이를 즐겨 하는 선수들 중 다수가 나중에 구속 저하 증세를 보인다는 점 때문에 부정적인 쪽으로 여론이 가고 있죠.

 - 이것에 대해 블로거는 뭐라 할 수 있을 만큼의 식견을 전혀 갖고 있지 못합니다. 다만 일본인 투수들이 메이저리그에서 몇 년 활약하다가 하나같이 드러눕는 게 과연 우연일까 싶기는 합니다.

 - 한국야구로 돌아와 보죠. 20세기의 야구 감독들이 으레 그러했듯이, 김성근 또한 팀의 마운드를 우수한 몇몇 투수들에게 최대한 집중시키는 투수 운용을 합니다. 가깝게는 SK 감독 시절 정우람, 전병두, 박희수 등 몇몇 불펜투수가 수많은 혹사 관련 기록들을 만들어냈던 바 있죠. 여기에 대하여는 항상 '김성근은 철저한 관리 하의 혹사를 한다'라는 변명이 따라붙는데, 글쎄요 저 SK 불펜 3인이 현재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5년째 재활, 재활과 복귀를 반복, 마침내 퍼져버린 것으로 의심됨)를 생각하면 그 관리라는 게 도대체 얼마나 유효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올해 한화의 '살려조'에 대한 우려가 많은 건 결코 과한 게 아닙니다.


5. 결론 - 김성근은, 20세기는 끝났다


  - 지금 시점에서 어떤 욕을 먹더라도, 김성근이 20세기 최고의 감독 중 하나라는 데 이견은 없습니다. 라이벌 김응룡이 커리어 막판에 웃음후보(?)가 되었음에도 10회 우승 감독이라는 금자탑을 아무도 폄하하지 않는 것과 같죠. 하지만 그들의 방식이 앞으로도 통할 것인가에 대한 건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 블로거는 김성근에 대하여 '분명 저런 방식이 언젠가는 한계에 다다를텐데 그것이 언제가 될진 모르겠다' 정도의 생각을 항상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2015년 이후 한화 감독으로서의 행보가 여기에 답을 줄 것이라고 생각했죠. 일단 (안타깝게도) 김성근은 커리어 막판에 김응룡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입니다. 오히려 시즌 중반 이후 그의 모습은, 그동안 그의 뻣뻣한 이미지를 보완하던 '최소한의 유연성'마저 집어던진 것 같습니다. 이제는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김성근의 시대는 끝났다' 그리고 우리는 김성근으로 대표되는 한국식 성공신화, 발전의 패러다임이 종언을 고하는 순간을 목도하고 있기도 합니다. 몇몇 투수들의 팔을 제물로 삼아서.




Bedrich Smetana (1824-1884)
<Ma Vlast> "Vltava"
연주 : 한양대학교 하나클랑 (2011 정기연주회)

 - 19세기 무렵 체코 지역은 오스트리아가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체코 출신의 대작곡가로 유명한 인물은 단연 드보르자크(1841-1904)를 들 수 있겠지만, 엄밀한 의미의 체코 '국민'음악가라면 스메타나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스메타나는 청력 상실로 고생하던 말년에 6곡의 연작 교향시를 만들고, 이를 하나로 묶어 <나의 조국>이라는 표제를 붙였습니다. 각각의 곡은 체코의 자연, 문화, 역사를 종합적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곡이 2번 "몰다우(체코어로는 블타바)"입니다. 몰다우강은 엘베강의 지류로 중간에 프라하를 지나가는데, 스메타나는 이 곡에서 몰다우강의 발원부터 강의 흐름, 주변 주민들의 삶을 매우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후기] 강의 흐름을 묘사하는 부분들은 정말 아름답죠. 또 상당히 까다롭기도 하고요.





Jean Sibelius (1865-1957)
<Finlandia> Op.26

연주 : 한양대학교 하나클랑 (2011 정기연주회)


 - 20세기 초까지 핀란드는 러시아 제국의 영토였고, 민족주의가 발흥하면서 핀란드 지역에도 이런저런 독립운동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핀란디아>는 1899년 핀란드 언론인을 위한 연금 모금 행사......를 가장한 민족주의 언론 지원 기금 마련 행사에서 처음 연주되었고, 당시 행사에서는 총 7곡이 연주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이 작품은 서유럽에도 알려지며 큰 호평을 받았고, 이듬해 출판되기도 하였지만 당연히 핀란드 내에서는 러시아에 의해 금지곡으로 지정됩니다. 물론 이 작품은 지하에서 몰래몰래 연주되었고, 탄압을 피하기 위해 <즉흥곡>이나 <핀란드의 봄에 들어오는 즐거운 기분>(?!) 따위의 가짜 표제를 달곤 했다는군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핀란드가 독립하면서 이 작품은 당당히 연주할 수 있게 되었고, 이후 베이코 코스켄니에미(1885-1962)가 후반부 멜로디에 가사를 붙여 현재는 핀란드 제2국가(國歌) 쯤의 위치에 있습니다. 동영상은 합창이 붙은 버전인데 시벨리우스의 원곡에는 합창은 없습니다.


[후기] 이 작품도 인기 있는 편이죠. 아무래도 한국의 근대사 역시 비슷한 측면이 있다보니 더 인기가 있는 것일지도 모르고, 순수하게 음악 자체로만 놓고 봐도 주제의식이 상당히 명쾌하기 때문에 듣기에 편한 작품입니다.





Pyotr Ilyich Tchaikovsky (1840-1893)
<The Nutcracker> Suite Op. 71a
연주 : 중앙대학교 루바토 (2011 가을 연주회)


 - 차이콥스키가 작곡한 3대 발레곡 중 하나. 원작은 독일의 작가 E. T. A. 호프만(1776-1822)의 동화로, 차이콥스키의 발레곡은 마리우스 프티파(1822-1910)가 2막 3장으로 각색한 대본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차이콥스키는 이 곡의 작업에 어려움을 느끼고, 발표를 한 시즌 미루면서 미국과 서유럽으로 연주 여행을 떠납니다. 이 시기 동생이 사망하는 등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여행 과정에서 악상을 채운 차이콥스키는 귀국 후 본격적으로 곡을 완성시킵니다. 발레는 중간에 안무가가 교체되는 등 많은 우여곡절 끝에 작곡 9개월 후에야 초연되었고, 평도 그다지 좋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후 차이콥스키가 편곡하여 내놓은 관현악 모음곡은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발레 또한 이후에는 크게 인정받아 현재는 미국 발레단 공연수입의 40% 가까이를 차지할 만큼 인기 레퍼토리가 되었습니다.


[후기] 전곡 연주보다는 한 곡을 뽑아 앙코르 연주로 해 본 기억이 더 많네요. 역시 편성 문제(그놈의 하프 등등) 때문에 아마추어에서는 전곡을 모두 연주하는 경우는 많지 않고, 구하기 어려운 악기가 들어있는 몇몇 곡을 빼고 연주하는 게 보통.





Aram Khachaturian (1903-1978)
<Masquerade> Suite
연주 : 한국 대학생 연합 오케스트라 KUCO (2011 여름 연주회)

 - 원곡은 미하일 레르몬토프(1814-1841)가 쓴 동명의 희곡에 붙인 극음악입니다. 원작 희곡은 당시 러시아 제국의 부패를 비판하는 내용이었다고 하니, 사회주의 국가인 소련에서 인기있었을 법합니다. 하차투리안은 여러 극음악 중에서 5개의 곡을 뽑아 관현악용으로 편곡하였는데, 순서대로 Waltz(왈츠), Noctune(녹턴), Mazurka(마주르카), Romance(로망스), Galop(갈롭)입니다. 특히 대중적으로 유명한 곡은 1번 왈츠.


[후기] 전곡 연주보다는 주로 1번 왈츠를 앙코르 때 많이 연주해 보았습니다. 전곡 연주도 꽤 재미있는 곡이긴 하죠. 언제던가 하나클랑에서 앙코르로 연주하던 때는 트롬본이 무대에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그냥 연주를 시작한 전설적인 일화도 있었던, 재미있는 기억이 많은 작품이네요.




Pyotr Ilyich Tchaikovsky (1840-1893)
 Symphony No.5 in e Op.64
 연주 : 한국 대학생 연합 오케스트라 KUCO (2011 여름 연주회, 2014 겨울 연주회), 한양대학교 하나클랑 (2014 신입생 환영 연주회), 서강대학교 ACES (2015 가을 연주회)

 - 차이콥스키는 1880년대 후반쯤이 되면 전 유럽에 알려진 유명한 작곡가가 되어 있었습니다. 나데주다 폰 메크 백작부인에게 거액의 후원을 받던 차이콥스키는 1888년 초 모스크바 근교의 작은 마을로 이주하였고, 이곳에서 교향곡 5번의 작곡에 착수하여 8월에 완성합니다. 이후 11월에는 자신의 지휘로 초연되었는데, 청중에게는 호평을 받았지만 비평가들은 상당히 박한 평가를 내렸다고(차이콥스키는 지휘자로는 상당히 저질이었다니 어쩌면 지휘가 신통찮아서였을지도). 흥미롭게도 차이콥스키 스스로도 이 곡을 별로 좋아하진 않았다는군요.

[후기] 무난하게 좋아하는 곡 중 하나. 차이콥스키의 교향곡은 4번과 6번이 모두 굉장히 빡센(?) 곡이다보니, 아마추어 쪽에서는 5번이 가장 인기 있습니다. 작품 내적으로도 꽤 서정적이면서 마무리가 명쾌하니까요. 이 곡은 정말 클라리넷으로 평생 한 번 연주해보고픈데, 1악장의 클라리넷 솔로 부분은 정말 잊을 수 없는 매력이 있거든요. 어느새 4번째 연주회네요.





Robert Alexander Schumann (1810-1856)
Symphony No.3 in Bb <Rheinische>
연주 : 한양대학교 하나클랑 (2011 신입생 환영 연주회 / 클라리넷)

 - 슈만의 교향곡은 4번까지 있지만, 실제 작곡 순서는 이와는 조금 달라서 1-4-2-3번 순서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그의 마지막 교향곡은 3번입니다. 슈만은 1850년부터 라인 강 유역의 뒤셀도르프에서 지휘자로 활동하면서, 라인 지역의 풍경과 사람들의 삶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을 진행하였다고 합니다. 다만 슈만은 이미 우울증 등의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기에 지휘자 활동은 성공적이지 못했고, 3년 후 악단과의 불화로 사임하며 반 년도 못 되어 정신 발작으로 인한 자살 기도까지 하게 되죠.

[후기] 일단 이 곡의 1악장은 클라리넷이 쉬는 부분이...... 없습니다. 정말 하나도 없습니다. 정확히는 4마디 쉬는 곳이 가장 긴데, 이 곡의 지휘는 in 1이죠. ㅡㅡ; 연주하면서 꽤 고생했습니다(거기에 클라리넷을 하필 몇 년 쉬다가 잡은 것이다보니). 슈만 교향곡의 오케스트레이션은 섬세하거나 화려하지 않고 대체로 매우 단순합니다. 악기 각각의 음색을 별로 고려하지 않는 경향이 있죠. 예전에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이것을 분석한 글을 읽어본 기억이 있습니다. 슈만 자신이 아예 이러한 쪽을 지향하여 오케스트레이션을 했다던가요.




Pyotr Ilyich Tchaikovsky (1840-1896)
<Swan Lake> Suite

연주 : 한양대학교 하나클랑 (2011 신입생 환영 연주회(발췌) / 클라리넷), 한국 대학생 연합 오케스트라 KUCO (2013 여름 연주회(발췌))


 - <백조의 호수>는 총 4막 29장, 36곡으로 된 방대한 규모의 발레음악입니다. 당시에는 발레음악이 단순한 BGM 정도로 인식되었고, 차이콥스키의 작품에 대하여도 처음에는 이와 관련한 논란이 많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당시의 인식과 관계없이 차이콥스키의 발레음악은 탁월한 예술성을 보여주었으며 결과적으로는 발레음악에 대한 세상의 인식까지 바꾸는 성과를 가져옵니다. 이 작품은 차이콥스키의 3대 발레음악(<호두까기 인형>, <잠자는 숲속의 공주>) 중 하나로 손꼽히며, 차이콥스키는 여기서 6곡을 뽑아 관현악 모음곡으로 정리하였습니다.


[후기] 차이콥스키의 관현악을 연주할 때마다 느끼는 사실이지만, 클라이막스 부분을 최대한 극적으로 처리하는 데는 정말 탁월한 작곡가입니다. 물론 거길 연주하는 연주자들에게는 po노가다wer. 아무튼 이 작품에도 재미있는 곡들이 많죠. 다만 몇 가지 미묘한 문제들(편성에 하프가 있다든지......) 때문에 아마추어에서 전곡을 통으로 연주하는 건 별로 본 기억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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