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x Bruch (1838-1920)

<Kol Nidrei> Op.47

연주 : 한국교사오케스트라 (2016 겨울 연주회)


 - '콜 니드라이'의 어원은 아람어 '콜 니드레(כָּל נִדְרֵי)'입니다. 이는 유대교의 속죄일에 부르는 성가 중 하나로 아람어 단어로는 원래 '모든 서약'이라는 의미이며, '신의 날'이란 '욤 키푸르'라는 속죄일 명칭의 의미입니다. 이 노래는 신(야훼)과 유대인 사이에 맺어진 약속(서약)을 유대인들 자신이 지키지 못한 데 대하여, 신에게 용서를 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 브루흐는 평소 각국의 민속음악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가 지휘하는 합창단의 유대인 단원 하나가 이 성가의 선율을 그에게 알려주었다고 합니다. 속죄일에 부르는 노래답게 전반적으로 차분하고 경건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좋은 협주곡을 많이 남긴 브루흐의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여담으로 브루흐는 유대인이 아닌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 작품 하나 때문에 유대인으로 오인받고 나치 독일 시대에는 그의 작품이 금지곡이 되기까지 했다는군요.


[후기] 소싯적에는 웅장하고 힘차고 신나는 곡을 주로 들었는데, 나이가 조금씩 들면서(물론 지금도 그렇게 나이든 건 아닙니......) 경건하고 차분한 작품에도 조금씩 흥미가 붙더군요. 작품의 배경에서도 알 수 있듯이 대단히 종교적이며 경건한 작품입니다. 이런 작품들을 감상하노라면 듣는 사람의 마음도 차분해지고, 자기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된다는 게 참 좋습니다.





Ludwid van Beethoven (1770-1827)

Triple Concerto in C Op.56

연주 : 서강대학교 ACES (2015 봄 연주회)


 - 삼중 협주곡은 세 악기의 합동 협주라는 특이한 형태의 작품으로, 이런 형태의 음악은 주로 바로크 시대 '합주 협주곡(Concerto Grosso)'이라는 이름으로 많이 만들어진 바 있습니다. 고전 시대 이후로는 찾아보기 어려워진 이러한 형태를 베토벤이 왜 꺼내들었는지는 분명치 않은데, 베토벤의 전기 작가(하지만 신뢰성은 심히 의심받는)인 안톤 쉰들러(1795-1864)에 따르면 피아노는 베토벤의 후원자 중 하나인 루돌프 대공, 바이올린은 루돌프의 전속 음악가인 칼 자이들러, 첼로는 에스테르하지 가문 오케스트라의 수석 첼로 주자인 안톤 크라프트를 염두에 둔 것이라고 합니다. 완성은 1804년에 되었지만, 루돌프 대공이 악보를 먹튀개인소장하는 바람에 출판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하는군요.


[후기] 블로거는 이 작품을 딱히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베토벤 특유의 혁신성이 그닥 느껴지지 않거든요. 그래도 역시 (바로크 음악이 아닌) 세 악기의 동시 협주라는 게 독특한 매력이기는 하지요. 첼로를 듣보잡 취급했다는 모차르트와는 달리 베토벤은 나름 첼로를 좋아해서 첼로 소나타를 썼다든지 삼중 협주곡에 첼로를 포함했다든지 정도의 노력은 했으니 경건히 들을 따름입니다.





Antonin Dvorak (1841-1904)

Cello Concerto in d Op.104

연주 : 하나클랑 졸업생 오케스트라 HALO (2015 정기연주회)


 - 드보르자크의 미국 생활은 그리 성공적이었다고 보기는 어렵고 기간도 3년 남짓으로 길지 않았지만, 음악적 지평을 넓히는 데는 큰 도움이 된 시기였습니다. 뉴욕 내셔널 음악원장으로 근무하면서 드보르자크는 '인종 불문 입학 가능'이라는, 당시로서는 과감한 조치를 단행하였고 그렇게 입학한 학생들을 통하여 아프리카계와 아메리카 원주민의 음악을 자신의 것으로 흡수할 수 있었습니다. 첼로 협주곡은 1895년 완성, 1896년 영국에서 초연되어 큰 호평을 받았습니다. 드보르자크의 후원자였던 브람스는 "이런 작품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면 내가 진작 첼로 협주곡을 썼을 텐데"라며 탄식했다고 하지요.


[후기] 연주회 뒷풀이에서 협연자와 나누었던 이야기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아마추어와 맞추다 보니 루바토를 주기 어려워서 철저히 정석에 맞게 연습을 했는데, 들어보니 대가들은 다 정석에 맞게 하더라" 뭐 이런 이야기도 했고, "음악을 업으로 하다가 음악을 순수하게 즐기는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게 굉장히 소중한 경험이다" 이런 이야기도 했던가요. 오케스트라 활동을 하다 보면 이 자리가 전문가와 취미가의 연결지점이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양쪽 모두에게 정말 중요한 경험이 되겠지요.





Dmitry Shostakovich (1906-1975)

Cello Concerto No.1 Op.107
연주 : 하나클랑 졸업생 오케스트라 HALO (2013 정기연주회)


 - 스탈린 사후 쇼스타코비치를 둘러싼 환경에는 숨통이 트였지만, 개인사적으로는 첫째 부인의 사망과 두 번째 결혼의 실패, 본인의 건강 문제 등 악재가 겹치는 시기였습니다. 두 번째 결혼이 파탄지경에 이른 후 쇼스타코비치는 한동안 모스크바를 떠나 있었는데, 이 시기에 만든 작품이 첼로 협주곡 1번입니다. 이 작품의 작곡에 영향을 준 두 존재로 프로코피예프와 로스트로포비치를 들 수 있는데, 작곡가 본인은 프로코피예프의 첼로 작품에서 창작의 동기를 얻었다고 밝힌 적이 있으며, 실제 작곡은 쇼스타코비치가 좋아하는 명 첼리스트인 므스티슬라브 로스트로포비치(1927-2007)를 염두에 두고 작곡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이 곡의 초연은 로스트로포비치의 협연으로 이루어졌고, 쇼스타코비치는 작품을 그에게 헌정하기도 했습니다.


[후기] 총 4악장으로 되어 있는데, 그 중 3악장은 오로지 협주자의 카덴차만으로 되어 있습니다. 본래 2악장에 붙어 있던 카덴차가 길어지면서 아예 다른 악장으로 독립시킨 것이라고 하는군요. 연주하기에는 (현대음악이 종종 그렇듯이) 리듬이나 마디 구분이 변화무쌍하여 꽤 까다로운 작품입니다.




 

Franz Joseph Haydn (1732-1809)

Violoncello Concerto No.1 in C

연주 : 한양대학교 하나클랑 (2005 정기연주회), 서강대학교 ACES (2014 봄 연주회)


 - 하이든의 초기 작품. 오랫동안 알려져 있지 않다가 1961년 프라하 국립 박물관에서 필사본 악보가 발견되며 세상에 다시 알려졌습니다. 이 곡의 진위 여부에 대하여는 이런저런 논란이 있지만, 현재는 대체로 하이든 본인의 작품으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에스테르하지 가문의 오케스트라에서 선임 첼로 연주자로 일하던 요제프 바이글을 위해 작곡되었다고 합니다.


[후기]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품. 연주 당시에도 '들으면서 즐거운 곡'으로 기억에 남아 있네요. 협주 첼로도 한 번쯤 연주해보는 게 꿈이긴 하지만 현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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