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nny Mendelssohn-Bartholdy / Fanny Hensel (1805-1847)

Notturno in g



[파니 멘델스존. 1842년]


 파니 멘델스존(결혼 후에는 파니 헨셀)은 흔히 펠릭스 멘델스존의 누나로 잘 알려져 있지만, 본인 또한 대단한 음악적 재능을 보였으며 음악적 활동도 꽤 활발하게 했던 인물입니다. 다만 보수적인 그의 아버지와 사회적 편견 때문에 음악가로 정식 데뷔를 하지 못하고, 평생을 아마추어로 만족해야 했던 비운의 음악가이기도 합니다.


 멘델스존은 1805년 태어났고, 부유한 유대계 은행가 집안에서 동생과 함께 음악 교육을 받았습니다. 동생 펠릭스의 재능도 물론 대단했지만, 파니 역시 12세 때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을 마스터했을 만큼 음악적 재능은 동생 못지 않게 대단했습니다. 동생처럼 그 또한 어린 나이부터 작곡 활동을 시작하였고, 많은 피아노 관련 작품들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그가 19세기 초 유럽에서 살아간 '여성'이라는 것, 그리고 그의 아버지가 보수적인 인물이었다는 게 그의 앞길을 가로막았습니다. 그(들)의 아버지 아브라함 멘델스존은 펠릭스가 음악가로 활동하는 것은 허용했지만 파니의 경우에는 연주활동은 물론 자작곡을 출판하는 것조차 못하게 막아버렸습니다. 아브라함은 "음악은 펠릭스에게는 직업이 될 수 있겠지만, 파니에게는 그저 장식용일 뿐이다" 라고 언급하기까지 했습니다. ㅡㅡ;


 결국 멘델스존은 이러한 부조리에 저항하기보다는 어느 정도 타협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그는 음악가로 정식 데뷔하는 것을 포기했고, 음악을 아예 놓지는 않았지만 아마추어 음악가로 활동하며 동생의 음악 활동을 돕는 역할에 그쳤습니다. 1829년에는 화가로 활동하던 빌헬름 헨셀(1794-1861)과 결혼하여 가정주부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그의 동생과 남편만큼은 그의 음악적 재능을 인정하고, 비공식적으로나마 그가 음악 활동을 활발히 할 수 있도록 지지해 주었습니다. 특히 동생 펠릭스와는 음악적, 인간적으로 대단히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고 펠릭스는 "나보다 누나의 음악적 재능이 더 뛰어나다"고도 언급하였습니다. 펠릭스는 파니의 몇몇 작품을 자신의 이름으로 출판하기도 했습니다(도용이라거나 작품을 훔쳤다거나 한 건 아니고, 자기 이름을 빌려 누이의 작품을 세상에 알린 것).


 정식 데뷔를 하지 못했을 뿐 그는 피아노곡을 중심으로 460편이나 되는 많은 작품을 남겼습니다. 결혼 이후에는 남편의 지지에 힘입어 자신의 이름으로 조금씩 정식 데뷔를 시도하기도 했는데 1838년에는 공개적인 자리에서 동생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한 것이 알려져 있고, 1846년에는 몇몇 자작곡을 모아 자신의 이름으로 출판하였습니다. 이것이 그의 Op. 1이 됩니다.


 이제 정말 자신의 재능을 제대로 세상에 선보일 찰나, 1847년 그는 작은 음악회를 준비하던 도중 뇌졸중으로 쓰러져 그대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펠릭스는 며칠 뒤에야 누이의 부고를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지만 이미 장례식이 끝난 이후였고, 충격에 과로가 겹쳐 몇 달 뒤 동일한 뇌졸중으로 사망하였습니다(그들의 아버지와 할아버지 또한 비슷한 이유로 사망한 것을 볼 때 가족력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파니 멘델스존은 헨셀과의 사이에서 아들 한 명을 낳았습니다.


 그의 작품세계는 대체로 초기 낭만파의 일반적인 스타일을 충실히 따르고 있으며, 동생처럼 다수의 <무언가(無言歌)>도 작곡하였습니다(애초에 무언가 자체가 파니와 펠릭스의 음악적 교감을 통하여 만들어진 것이라고). 그는 특히 피아노 쪽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고 이 부분에서는 동생 펠릭스보다도 앞선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의 유일한 녹턴은 1838년 작곡되었습니다.




Felix Mendelssohn-Bartholdy (1809-1847)

Violin Concerto in e Op.64

연주 : 서강대학교 ACES (2016 봄 연주회)


 -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총 2곡이 알려져 있는데, 일반적으로는 두 번째 작품이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1번은 멘델스존이 유년기에 작곡한 것으로, 오랫동안 잊혀져 있다가 20세기 후반에야 재발견). 이 작품은 1843년부터 작곡이 진행되어 1845년에 초연이 이루어졌으니, 멘델스존이 사망하기 불과 2년 전에 완성된 후기 작품입니다. 베토벤, 브람스, 차이콥스키의 작품과 함께 최고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 걸작이기도 합니다. 전체적인 구성은 일반적인 3악장이지만, 각 악장이 끊어지지 않고 끝까지 이어지는 독특한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후기] 음악을 듣다 보면 작곡가의 인생이 그들의 작품에 얼마나, 어떤 형태로 투영되는가 생각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멘델스존은 역대 클래식 음악 작곡가들 중에서 최강급의 금수저(?)였고, 경제적인 어려움은 평생 겪지 않고 산 사람이죠. 그의 음악세계는 고도의 세련미, 편안하고 밝은 느낌으로 정리할 수 있을텐데 아무래도 그가 처한 환경이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그나저나 이건 이전에도 어딘가에서 연주한 적이 있었던 것도 같은데 기억이 분명치 않네요.





Felix Mendelssohn-Bartholdy (1809-1847)

Symphony No.3 in a Op.56 <Scottish>
연주 : 한양대학교 하나클랑 (2012 정기연주회)


 - 20대 초반 멘델스존이 유럽 여행을 하던 중, 스코틀랜드 지역에서 받은 인상을 바탕으로 작곡되었습니다. 다만 작곡 자체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려, 10년 이상 지나서야 완성되었는데 이는 교향곡 4번, 5번의 작곡보다도 늦은 것입니다. 다만 4번과 5번이 멘델스존 사후에나 출판될 수 있었기 때문에 출판 순서를 따라 이 작품이 3번을 받게 되었습니다. 초연은 자신의 지휘로 라이프치히에서 이루어졌고, 멘델스존은 이 작품을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에게 헌정하였습니다.


 [후기] 뭐랄까요? 뭔가 우울한 것 같으면서도 묘한 매력을 가진 곡이죠. 이 작품 역시 클라리넷으로 연주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는데, 기회를 얻진 못했습니다.




Jacob Ludwig Felix Mendelssohn-Bartholdy (1809-1847)

Symphony No.4 in A <Italy>

연주 : 한양대학교 하나클랑 (2009 신입생 환영 연주회)


 - 부유한 은행가 집안에서 태어난 멘델스존은 어려서부터 여러 차례 여행을 다니곤 하였으며, 이 때의 인상을 바탕으로 많은 작품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교향곡 4번 <이탈리아>의 경우는 1829~31년 사이 장기간의 유럽 여행 중 이탈리아에서 받은 인상과 느낌을 바탕으로 작곡되었고, 1833년 자신의 지휘로 초연되었지만 여러 차례 개작하여 출판은 그의 사후에야 이루어집니다. 4악장은 '살타렐로'와 '타란텔라'라는, 이탈리아에서 당시 유행하던 두 춤곡 양식을 따왔으며 매우 빠르고 격렬한 느낌으로 유명합니다.


[후기] 1악장이 보통 유명하긴 하지만 이 곡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4악장. 어려운만큼의 성취감(혹은 도취감)은 반드시 주는 부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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