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lix Mendelssohn-Bartholdy (1809-1847)

Symphony No.3 in a Op.56 <Scottish>
연주 : 한양대학교 하나클랑 (2012 정기연주회)


 - 20대 초반 멘델스존이 유럽 여행을 하던 중, 스코틀랜드 지역에서 받은 인상을 바탕으로 작곡되었습니다. 다만 작곡 자체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려, 10년 이상 지나서야 완성되었는데 이는 교향곡 4번, 5번의 작곡보다도 늦은 것입니다. 다만 4번과 5번이 멘델스존 사후에나 출판될 수 있었기 때문에 출판 순서를 따라 이 작품이 3번을 받게 되었습니다. 초연은 자신의 지휘로 라이프치히에서 이루어졌고, 멘델스존은 이 작품을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에게 헌정하였습니다.


 [후기] 뭐랄까요? 뭔가 우울한 것 같으면서도 묘한 매력을 가진 곡이죠. 이 작품 역시 클라리넷으로 연주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는데, 기회를 얻진 못했습니다.




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Egmont> Overture

연주 : 한양대학교 하나클랑 (2012 정기연주회), 서울교육대학교 에듀필 (2014 봄 연주회), 한국 대학생 연합 오케스트라 KUCO (2014 여름 연주회), 한국교사오케스트라 (2016 여름 연주회)


 - <에그몬트>서곡은 요한 볼프강 폰 괴테(1749-1832)가 쓴 동명의 희곡에 붙인 음악입니다. 베토벤은 초년부터 괴테의 음악세계를 존경해왔고, 괴테의 작품 중에서 특별히 <에그몬트>를 선택하여 극음악을 작곡, 괴테에게 헌정하였습니다. 괴테 또한 베토벤의 예술적 열정에 강한 인상을 받았고, 두 사람은 나이 차이를 극복한 교류를 지속하게 됩니다. 베토벤의 작품 중에는 영웅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 많은데, <에그몬트> 또한 그 중 하나입니다.


[후기] 워낙 자주 연주되는 작품이라.




Antonin Dvorak (1841-1904)

Symphony No.9 in e Op.95 <From the New World>

연주 : 한양대학교 하나클랑 (2012 신입생 환영 연주회), 서울교육대학교 에듀필 2013 봄 연주회(4악장)), 서강대학교 ACES (2014 가을 연주회)


 - 말년 들어 세계적인 작곡가로 인정받게 된 드보르자크는 1892년 뉴욕 국민음악원의 원장으로 (거액의 급여를 받으며) 스카웃되어 미국으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향수병이라도 있었는지 그의 미국 생활은 3년을 채우지 못하고 그는 다시 유럽으로 돌아오게 되지만, 그 사이에 흑인이나 아메리카 원주민 등 미국에서 만날 수 있는 특유의 음악 스타일을 자신의 작품에 적잖이 녹여내는 데 성공합니다. 이 시기의 작품 중 현악사중주 <아메리카>와 함께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곡이 바로 교향곡 9번으로, 아메리카 대륙을 의미하는 <신세계로부터>라는 표제가 붙어 있습니다. 여담으로, 4악장을 시작하는 특유의 음형은 증기기관차의 출발 기적소리에서 유래한 것으로, 실제로 드보르자크는 중증 철도덕후ㅡㅡ;였다고 하지요.


[후기] 작곡을 다분히 '실전형'으로 익힌 드보르자크의 작품은, 실제로 후기로 갈수록 정교함과 세련미가 더 높아지는 특징을 보입니다. 대표적으로 7번 이전의 교향곡과 9번 교향곡을 들으며(혹은 연주하며) 비교해보면 확연한 차이를 느낄 수 있죠. 그런데 개인적으로 드보르자크 특유의 매력은 초기 작품에서 더 많이 느낍니다. 물론 9번 교향곡 또한 걸작이며, 연주하면서 매우 즐거웠던 작품이죠.




Dmitry Shostakovich (1906-1975)

Symphony No.5 in d Op.47

연주 : 한국 대학생 연합 오케스트라 KUCO (2012 겨울 연주회)


 - '모차르트의 재래' 소리를 들으며 승승장구하던 소련의 신진 작곡가 쇼스타코비치는,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이 공산당 기관지 <프라브다>에서 "음악이 아니라 혼란"이라는 맹비난(대체로 스탈린의 의향을 반영했다고 여겨지는)을 받으며 일생일대의 위기에 빠지게 됩니다. 대숙청의 시대에 지도자의 비위를 거스른 쇼스타코비치는 어떻게든 체제에 고개를 숙임으로써 목숨을 보전해야 했고, 매우 실험적인 작품인 4번 교향곡은 이러한 위기의식 속에서 리허설 도중에 스스로 초연을 취소해 버립니다(4번은 스탈린의 사후에야 초연됩니다). 그가 다시 '체제'로부터 찬사를 받기 시작한 계기가 바로 교향곡 5번이었는데, 피날레의 종결부를 체제는 승리의 팡파르로 받아들였고 이 작품 또한 체제의 승리를 선언하는 작품으로 널리 알려집니다. 하지만 그 최후의 팡파르는 순수한 의미로 듣기에는 어딘가 뒤틀려있는 느낌을 주죠. 과연 그는 어떤 마음으로 이 작품을 만들었을까요? 아무튼 이 작품의 성공으로 그는 한 숨 돌릴 수 있었습니다.


[후기] 긴 말을 붙이진 않겠고, 그냥 이 작품을 연주하여 '영광'이었습니다. 아 물론 연주를 준비하면서 말 그대로 '죽을 뻔'했습니다. ㅡㅡ; 이 곡만큼은 꼭 파트보를 오래도록 챙겨두려고 했는데, 연주회 직후 모종의 개인적인 사고 때문에 악보를 챙기지 못했던 게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네요. 덧붙여 첼로파트의 최고음은 3악장에서 두어 번 등장하는 '4옥타브 A' 입니다.





Sergei Rachmaninov (1873-1943)

Piano Concerto No.2 in c Op. 18

연주 : 한국 대학생 연합 오케스트라 KUCO (2012 겨울 연주회)


 -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1번은 발표 당시 비평가들에게 엄청난 혹평에 시달렸고, 라흐마니노프는 여기에 스트레스를 받은 나머지 우울증을 겪음과 동시에 악상이 전혀 떠오르지 않는 상태(야구로 치면 스테브 블레스 증후군?)로 몇 년이나 시달리게 됩니다. 이후 정신과에서 최면요법까지 받아가며 간신히 우울증을 극복해내고, 다시 작곡도 가능해지자 그는 새로운 협주곡을 작곡하였고, 그 작품이 바로 피아노 협주곡 2번입니다. 그래도 아직 트라우마를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는지 라흐마니노프는 이 곡의 초연을 주변 관계자와 동료들만 모아서 비공식적으로 열었고, 대중 앞에 공식적으로 작품을 발표한 것은 그로부터 반년이나 지나서였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당시 작품에 대한 평가가 매우 좋았기 때문에 그는 트라우마를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다는군요.


[후기] 의외로 아마추어 쪽에서 종종 들을 수 있습니다. 사실 오케스트라 파트는 (어렵기는 해도) 어떻게든 소화 가능하긴 하거든요. 피아노 협연이 그야말로 죽을 맛(?)이라 그렇지.





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Symphony No.6 in F Op. 68 <Pastorale>

연주 : 서울교육대학교 에듀필 (2011 가을 연주회(1, 2악장)), 한양대학교 하나클랑 (2012 정기연주회(1, 2악장))


 - 1800년대 초의 비엔나는 많은 사람들이 거주하는 대도시였지만, 인구밀도가 높았기 때문에 조금만 교외로 나가도 푸른 숲과 자연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베토벤은 젊어서부터 이러한 비엔나 교외의 마을을 자주 드나들며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곤 했는데, 그러한 경험이 교향곡 작곡의 원천이 된 것으로 보입니다. 교향곡 6번은 5번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작곡이 진행되어, 같은 연주회에서 함께 초연되었는데 당시에는 5번과 6번의 순서가 바뀌어 있었습니다. 이 연주회는 베토벤의 작품만으로 세 시간 이상을 진행하는 대규모의 연주회였는데, 베토벤의 작품이 워낙 파격적이기로 유명해서 이 연주회 또한 평가가 엇갈렸다고 합니다. 한편 6번은 베토벤이 직접 표제를 붙였기 때문에 '표제 교향곡'의 효시로 평가되기도 한데, 정작 베토벤은 표제에 별 의미를 두진 않았다는군요.


[후기] 그냥 무난합니다. 특이하게도 블로거는 두 번의 연주회를 모두 1, 2악장만 잘라서 연주해봤는데 3악장부터는 트롬본이 들어오기 때문에 편성 문제로 자른 것이었습니다. ㅡㅡ; 아마추어 쪽에서는 악기 편성 문제가 꽤 크니까요.




Antonin Dvorak (1841-1904)
Symphony No.7 in b Op. 70
연주 : 한양대학교 하나클랑 (2011 정기연주회/클라리넷)

 - 드보르자크의 교향곡은 총 9개의 작품이 있지만, 한때는 그 중 후기의 5곡에만 번호가 붙어 있던 적도 있었는데 이는 4번 이전의 초기 작품은 오랫동안 거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초기의 무명 시절을 보내고, <슬라브 무곡> 시리즈와 <스타바트 마테르> 등의 잇따른 성공으로 드보르자크는 일약 유명 작곡가의 대열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이 무렵 그의 작품 중 <스타바트 마테르>와 교향곡 6번이 영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이를 바탕으로 그는 영국으로부터 다양한 작품의 작곡 의뢰를 받았습니다. 그 중 런던필하모닉협회에서 새로운 교향곡 작곡을 의뢰받고 만든 작품이 바로 교향곡 7번입니다. 드보르자크는 친구이자 후원자인 요하네스 브람스(1833-1897)를 의식하여, 작곡에 매우 심혈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후기] 드보르자크의 교향곡은 앞 번호일수록 난이도가 높다는 속설(?)이 있는데, 실제로 7번은 8번이나 9번보다 한결(은 개뿔 미친듯이) 어렵습니다. 2악장은 거의 클라리넷이 주인공of주인공인데, 운 좋게도 이 때 클라리넷을 잡는 바람에 기억에 남는 연주를 할 수 있었죠. 물론 연주 자체는 그렇게 마음에 들게 되진 않았습니다. 클라리넷을 놓은지 꽤 돼서 이젠 연주하래도 못하겠네요.




Igor Stravinsky (1882-1971)
<Firebird> "Finale"
연주 : 한양대학교 하나클랑 (2011 정기연주회)

 -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세계를 이해하는 키워드라면 역시 많은 러시아계 음악가들에게서 보이는 대륙적 감성, 스승인 림스키코르사코프에게서 전수받은 관현악 기법, 그리고 일생에 걸쳐 계속 작풍을 바꾸어가는 끊임없는 도전과 변신일 것입니다. 1900년대 후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신진 작곡가이던 스트라빈스키의 초기작품을 파리의 유명 발레 기획자인 세르게이 디아길레프(1872-1929)가 듣고 깊은 인상을 받은 것이 그가 출세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디아길레프는 당시 진척이 부진하던 발레 <불새>의 음악 제작을 스트라빈스키에게 위촉했고, 촉박한 시간이었지만 6개월 남짓한 기간에 완성된 발레음악은 1910년 파리 오페라극장에서 발레와 함께 초연되어 커다란 성공을 거둡니다. 이 시기의 스트라빈스키는 자신만의 색채를 갖춘 그럭저럭 무난한 음악을 보여주는데, <불새>의 성공을 바탕으로 3년 후 초연된 <봄의 제전>은 그야말로 전위(前衛)적인 모습을 보이며 음악계를 그야말로 들쑤시는 존재가 되어버립니다.

[후기] 아마도 아마추어에서 전곡 연주는 듣기 어렵겠죠? 당시에 왜 이 곡이 선택되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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