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x Bruch (1838-1920)

<Kol Nidrei> Op.47

연주 : 한국교사오케스트라 (2016 겨울 연주회)


 - '콜 니드라이'의 어원은 아람어 '콜 니드레(כָּל נִדְרֵי)'입니다. 이는 유대교의 속죄일에 부르는 성가 중 하나로 아람어 단어로는 원래 '모든 서약'이라는 의미이며, '신의 날'이란 '욤 키푸르'라는 속죄일 명칭의 의미입니다. 이 노래는 신(야훼)과 유대인 사이에 맺어진 약속(서약)을 유대인들 자신이 지키지 못한 데 대하여, 신에게 용서를 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 브루흐는 평소 각국의 민속음악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가 지휘하는 합창단의 유대인 단원 하나가 이 성가의 선율을 그에게 알려주었다고 합니다. 속죄일에 부르는 노래답게 전반적으로 차분하고 경건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좋은 협주곡을 많이 남긴 브루흐의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여담으로 브루흐는 유대인이 아닌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 작품 하나 때문에 유대인으로 오인받고 나치 독일 시대에는 그의 작품이 금지곡이 되기까지 했다는군요.


[후기] 소싯적에는 웅장하고 힘차고 신나는 곡을 주로 들었는데, 나이가 조금씩 들면서(물론 지금도 그렇게 나이든 건 아닙니......) 경건하고 차분한 작품에도 조금씩 흥미가 붙더군요. 작품의 배경에서도 알 수 있듯이 대단히 종교적이며 경건한 작품입니다. 이런 작품들을 감상하노라면 듣는 사람의 마음도 차분해지고, 자기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된다는 게 참 좋습니다.




Camille Saint-seans (1835-1921)
Symphonic Poem <Danse Macabre> Op.40
연주 : 한국교사오케스트라 (2016 겨울 연주회)

 - <죽음의 무도>는 중세 말기 이래로 전해진 유럽의 괴담에 기원하고 있습니다. 중세 말기는 흑사병의 대유행 등으로 죽음에 대한 공포가 극에 달한 시기였고, 이 시기의 예술은 죽음을 소재로 한 경우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시체들이 무덤에서 일어나 산 사람을 만나거나 무덤에서 춤추는 모습을 그린 미술작품이 이 시기 이래로 많이 만들어졌는데, 이들을 통칭하여 <죽음의 무도>라고 합니다. 이는 죽음의 보편성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 생상스의 이 작품도 그러한 흐름을 따르고 있는데, 직접적인 소재는 앙리 카잘리스(1840-1909)가 쓴 시에서 따 왔습니다. 시에서 따 온 작품이라 처음에는 성악곡으로 작곡하였는데, 이후 성악 파트를 바이올린 독주로 바꾸어 순수 관현악곡으로 만든 버전이 일반적으로 연주됩니다. '죽음'이 주제이긴 하지만, 해골들이 춤추고 노는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표현한 것이라 곡의 분위기는 어둡거나 슬프지는 않습니다. 생상스는 이 작품의 선율을 <동물의 사육제>에 살짝 인용하여 써먹기도 하였습니다.


[후기] 이 작품을 언젠가 연주해본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모양입니다(이 작품과 헷갈렸던 듯). 이 작품에서 상당히 인상깊었던 점이라면, 솔로 바이올린이 평소와 다른 음으로 튜닝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E현을 Eb로 튜닝해야 하는데, Eb 음을 개방현으로 소리내기 위해서지요(이러한 기법을 '스코르다투라'라고 합니다).




Giacomo Puccini (1858-1924)

"Musetta's Waltz" from <La Boheme>

연주 : 한국교사오케스트라 (2016 여름 연주회)


 - 오페라 <라 보엠>은 푸치니의 네 번째 오페라로 <나비부인>, <토스카> 등과 함께 그의 대표작으로 꼽힙니다. 주세페 지아코자(1847-1906)와 루이지 일리카(1857-1919)가 대본을 썼으며, 원작은 앙리 뮈르제(1822-1861)가 쓴 소설 <보헤미안들의 생활>입니다('보엠(Boheme)'은 '보헤미안'과 동의어). 다락방에서 함께 거주하는 예술가, 철학자들이 겪는 소박한 사건들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 이 작품은 1896년 토리노에서 아르투로 토스카니니(1867-1957)의 지휘로 초연되었는데, 초연 때는 언론과 평론가들에게서 혹평을 받았지만 이후 그 진가를 인정받아, 현재는 이탈리아 베리스모(사실주의) 오페라의 대표작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무제타의 왈츠"는 2막에 나오는 아리아로, 화가 마르첼로 앞에서 그가 사랑하는 무제타가 부르는 노래입니다.


[후기] 오페라는 평소 잘 듣지 않았기 때문에 특별히 쓸 만한 감상이 별로 없네요. 조만간 여건이 될 때 모차르트와 푸치니, 베르디의 오페라는 꼭 접해볼 생각입니다.



 - 일제강점기 일본에 협력한 자들은 해방 이후 대부분 "먹고 살기 위해 그랬다" "모두가 살기 위한 행동이었다" 등등의 논리로 스스로를 변호하곤 했습니다. 지금까지도 친일파 문제가 제대로 청산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이들이 제대로 대가를 치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자신들의 협력 사실 자체를 반성하지 않고 정당화 · 합리화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 하지만 어디에나 예외는 있는 법, 진심으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공개적으로 참회한 사람들도 있긴 했습니다. 어찌 보면 이쪽이 당연한 것인데도, 공개적으로 반성을 했다는 것 자체가 특별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 자체가 슬픈 현실이겠지요. 이번 글에서는 일본에 굴복하여 협력하였지만, 해방 이후 "나의 사지를 찢어달라"며 대중 앞에서 잘못을 뉘우친 최린(1878-1958)의 일대기를 살펴보겠습니다.


[최린]



1. 민족대표 33인, 천도교의 지도자


 - 최린은 1878년 함경도 함흥에서 태어났고, (당연하게도) 어릴 때는 한학을 배우다가 한양으로 이주한 후에는 개화파 청년들과 어울리며 근대 학문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1902년 길주감리서 주사를 역임하는 등 대한제국의 하급 관료로 일했는데, 이 무렵 개화파 망명자들과 청년 장교들이 주도한 '일심회'어디선가 들어보셨다면 그것과는 다른 단체 관련 사건에 연루되어 잠시 일본으로 피신하기도 했습니다.


 - 이후 1904년에는 황실 유학생으로 뽑혀 본격적인 일본 유학길에 올랐고, 도쿄 제1중학을 거쳐 메이지 대학을 졸업했는데 이 시기에 일본인들의 차별적 행태에 적극적으로 저항하여 퇴학당하거나 체포당하는 일도 겪었습니다. 최린은 당시 일본에 망명해 있던 천도교 교주 손병희(1861-1922)와 교류하였고, 이를 계기로 1909년 귀국 후 천도교에 정식 입교하였습니다.


 - 최린이 귀국한 시기는 대한제국 멸망 직전이었고, 최린은 비밀결사 신민회에 가입하는 등 국권 수호 운동에 참여하였습니다. 병합 이후에는 주로 교육계에서 활동하였는데, 천도교계 재단이 운영하는 보성고등보통학교(現 보성고등학교)의 교장을 맡기도 하였습니다.


[보성고등보통학교 전경. 1917년. 출처]


 - 1910년대 후반부터 주로 해외 교민들을 중심으로 독립선언이 잇따랐고, 이것이 일본의 통제를 뚫고 국내에 전해지면서 국내에 남아있던 지도자들도 한껏 고무되었습니다. 1918년 무렵부터 천도교계의 손병희, 최린, 권동진, 오세창 등은 은밀히 국내에서 대규모 독립운동을 계획하였고, 여기에 불교, 기독교(개신교)계가 합세하면서 소위 '민족대표 33인'이 결성됩니다.


 - 이들은 독립선언서 작성을 최남선에게 맡기고, 때마침 고종이 사망하자 고종의 장례일(인산일)에 거사를 일으키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런데 독립선언서를 인쇄하던 인쇄소가 친일경찰 신철(?-1919)에게 발각되는 일이 벌어집니다. 신철이 독립선언서를 보고도 그냥 돌아갔다는 소식을 접한 최린은 급히 신철을 만나 설득하였고, 신철은 그 설득을 받아들여 입을 다물고 신의주로 출장을 떠나버립니다.


[민족대표가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태화관]


 - 결국 이런저런 이유로 거사일은 이틀 앞당겨져 3월 1일이 되었고, 그 날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다들 아시겠지요? 민족대표들은 '폭력사태를 우려'하여 독립선언서 낭독 장소를 파고다(탑골)공원에서 요릿집 태화관으로 옮겼고, 그곳에서 선언서를 낭독하고 일본 경찰에게 체포됩니다. 한편 최린의 설득을 받아들인 신철은 3·1운동 발발 이후 이를 은폐하였음이 발각되었고,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수사를 받기 직전 음독자살하였습니다.



2. 민족대표에서 민족반역자로


 - 다른 민족대표들과 함께 체포된 최린은 재판에서 3년형을 선고받고, 만기 얼마 전에 출소하였습니다. 그 무렵 손병희가 (수감 후유증으로) 사망하자 최린은 천도교계의 중심 인물로 활동하며 다양한 사회활동을 벌였습니다. 그런데 수감생활 도중 무슨 심경의 변화라도 있었는지, 1920년대 이후 최린은 다분히 개량주의 성향을 보이게 됩니다.


 - 한편 손병희 사후 천도교는 심각한 내부분열을 겪게 되었는데, 최린은 천도교청년당을 중심으로 한 신파의 중심인물이 되었습니다. 이후 천도교 교단이 봉합과 재분열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최린은 1929년 천도교 도령(교령)에 취임하여 교단의 최고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다만 그가 이미 개량주의와 자치론에 깊이 빠져 있었기 때문에, 이 무렵의 그는 조금씩 친일의 길로 들어서고 있었습니다.


 - 한편 최린은 1927~28년에 걸쳐 미국과 유럽 각국을 시찰하고 외교 활동을 수행하였는데, 이 와중 프랑스 파리에서 여류화가 나혜석(1896-1948)을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그런데 나혜석은 일본의 외교관으로 활동하던 김우영(1886-1958)과 결혼한 상태였으니, 빼도박도 못할 불륜이지요. 결국 둘의 행각이 김우영에게 발각되면서 나혜석과 김우영은 이혼하였고, 불륜의 다른 한 쪽 당사자인 최린은 정작 나혜석에 대한 사랑이 식어버려 그에게 이별을 통보합니다.


[역대급 스캔들의 세 등장인물. 왼쪽부터 나혜석, 김우영, 최린]


 - 이에 나혜석은 '정조 유린죄' 명목으로 최린을 법원에 고소하였고,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소송전이 벌어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나혜석은 당시로서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파격적인 성평등론을 설파한 것으로 유명합니다(여기서는 자세히 다루지 않겠습니다). 소송은 결국 나혜석의 패소로 끝났지만, 이미 최린은 멀쩡한 가정을 파괴한 파렴치범으로 사회의 조롱과 지탄을 받는 신세가 되어 있었습니다.


 - 개인사로 큰 곤욕을 치른 이후, 최린은 본격적으로 친일파가 되어버렸습니다. ㅡㅡ; 1933년 무렵부터 최린은 소위 '대동아공영권'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었고, 1934년에는 일본의 회유를 받아들여 중추원 참의에 임명되면서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걷게 됩니다. 같은 해 천도교 신파 지도자들과 함께 '시중회'를 결성하였으나 이는 말만 종교단체이지 실질적으로 친일단체였습니다. 


[최린이 매일신보(1940년 2월 11일자)에 기고한 글. 내선일체의 실현을 주장하고 있다]


 - 이후 해방 때까지 최린은 '국민총력조선연맹'이니 '조선임전보국단'이니 하는 일본 관제 단체의 대표를 역임하고, 각종 강연회와 언론 기고 활동을 벌이는 등 A급 민족반역자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래도 나름 양심(?)이 남아있었던지 당시 성북동에서 어렵게 살아가던 왕년의 동지 한용운(1879-1944)의 딸에게 생활비를 건네주었지만, 한용운이 이를 알자마자 "더러운 돈은 필요없다"며 내쳤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3. 해방 후의 참회 - "광화문 앞에서 내 사지를 찢어달라"


 - 한반도가 해방을 맞자 최린은 다른 민족반역자들과 함께 거국적 지탄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우선 그가 천도교 지도자였기 때문에 천도교 내부에서 강한 비판이 일었고, 교단 내부에서는 최린이 민족반역자로서 갖은 죄를 범했으니 책임을 통감하고 은퇴할 것을 권고하였지만 최린은 이를 거부하였습니다. 결국 빡친 교단에서는 최린을 천도교에서 영구제명하기에 이르렀습니다. ㅡㅡ;


[반민특위에 체포되어 압송되는 최린(우측). 좌측은 경성방직 사장 김연수]


 - 그렇게 욕을 먹으며 그냥저냥 살아가던 최린은 1949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에 체포되어 조사를 받게 되었는데, 여기서 그는 자신의 친일행각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특위의 조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사면받기를 기대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재판 때 다음과 같은 최후변론을 남겼습니다.


 "민족대표의 한 사람으로서, 한때 독립운동에 몸담았던 내가 반민족 행위에 대한 재판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부끄럽다. 내 사지를 소에 매달아서 광화문 사거리에서 형을 집행해 달라. 그렇게 하여 민족에 본보기를 보여야 한다."


 - 사실 이게 당연한 것이겠지만 이는 다른 민족반역자들이 재판에서 보인 뻔뻔스러운 모습과 대조되는 것이었습니다. 다만 반민특위는 다들 아시다시피 온갖 난리 끝에 흐지부지 끝나버렸고, 최린은 여러 차례 병보석을 신청한 끝에 1949년 4월 병보석으로 석방됩니다. 당연히 처벌은 없었지요.


 - 이후 건강 문제도 있고 하여 최린은 별다른 사회 활동을 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1년 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최린은 서울에 남아있다가 납북당했고, 북한에서 대남 선전기관에 협력할 것을 요구받았지만 이를 거절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후의 행적은 불명이고, 북한 체제에 협력을 거부하였으니 대충 짐작이...... 1958년 사망한 것만 확인되어 있습니다. 1962년 남한에서 최린을 독립유공자로 서훈하려 하였으나, 친일행위가 너무 명백하여 ㅡㅡ; 무산된 바 있습니다.



4. 정리 : 결국 반성한 자는 소수였다


 - 나혜석은 최린과의 불륜과 소송전 이후 사회적으로 완전히 매장당했고, 파격적인 여성해방운동을 벌였지만 사회적인 지지를 전혀 얻지 못했습니다. 일본에 대한 협력도 거부한 나혜석은 완전히 몰락하고, 말년에는 불교에 귀의하였으며 각종 질병으로 고생하다가 해방 직후 무연고자 병동에서 최후를 맞게 됩니다. 반면 그의 남편이었던 김우영이나 불륜 상대였던 최린은 친일파로 변절하여 해방 때까지 잘 먹고 잘 살았으니, 참 얄궂은 운명입니다.


 - 사실 최린이 해방 후에 진심으로 반민족행위를 반성했다지만, 블로거는 최린의 참회를 어디까지 인정해줘야 할지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반민특위 재판에서 자신의 죄상을 자복하기 전 최린은 천도교계의 비판에 정면으로 반발한 적도 있었고, 자신의 죄를 참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여러 차례 병보석을 신청한 바도 있습니다.


 -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최린은 자신의 죄를 입으로 시인하고 자신을 벌할 것을 '공개적'으로 청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의 행적을 살펴보면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이겠지만, 대부분의 민족반역자들이 자신들의 행위를 '어쩔 수 없는 것' 또는 '민족을 위한 것'으로 포장하거나, 심지어 "우리를 정죄하는 자들은 다 빨갱이들"이라며 적반하장으로 나서기까지 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최린의 '소박한' 참회조차도 확실히 눈에 띄기는 합니다.


 - 슬프게도, 이러한 참회를 한 사람조차도 최린을 비롯해 몇몇밖에 없었다는 게 엄연한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들에게 합당한 대가를 치르게 할 방법조차도 사라지는 바람에, 왕년의 민족반역자들은 이후 반공투사니 기업인이니 교육자니 하는 미명으로 그대로 사회 기득권으로 자리잡았고 그 후유증은 그들이 대부분 사망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친일인명사전]


 - 흥미로운 지점이라면 3·1운동 직전에 벌어진 최린과 신철의 일화입니다. 민족대표와 독립운동가였지만 후년에는 친일 민족반역자로 변절한 최린, 친일경찰의 대선배로 한국인 탄압에 앞장섰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독립운동을 지원하고 장렬한 최후를 맞은 신철. 최린은 <친일인명사전>이나 <친일반민족행위 705인>에 모두 이름을 올렸고, 그곳에 신철의 이름은 없습니다.



참고 : 

한글 위키백과

http://egloos.zum.com/history21/v/971195 (최린과 신철)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4/21/2015042104138.html (최린과 나혜석) 댓글은 보지 않기를 권함


롤러코스터 타이쿤 : 어트랙션 팩 - (20) Swamp Cove


 "몇 개의 작은 섬에 부분적으로 건설된 이 공원은 이미 대규모의 롤러 코스터를 갖고 있다."

 목표 : 관람객 1600명 (3년) / 놀이공원 등급 600



 - 쌍둥이 인버트 코스터가 시작부터 버티고 있는 무난한 시나리오......라면 좋겠는데



 - 먹을거리 상점이 없습니다. 그래서 상점을 최우선으로 개발해줘야 합니다.



 - 쌍둥이 코스터는 흥미도가 모두 '매우 높음'을 찍는 훌륭한 놀이기구들입니다.



 - 상점 연구를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 이유는, 먹을거리 상점이 꽤 늦게서야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먹지도 못할 풍선가게가 먼저 나왔네요. ㅡㅡ;



 - 런치드 프리폴은 간만에 지하로 넣습니다. 놀이기구 흥미도와 쉼터를 일거양득할 수 있는 좋은 구도.



 - 일단 핫도그 매점이 나왔습니다. 슬슬 관람객들이 배고플 시점이니 서둘러 공원 전체에 설치해줍니다.



 - 한가운데 섬에는 뭘 넣을까 고민하다가, 제대로 된 메이즈를 하나 넣는 것으로 결정하였습니다.



 - 음료수 가게가 필요한데 아주 늦게서야 나옵니다. 먹거리 상점이 네 개나 뜨는 동안 음료수 가게가 뜨질 않습니다. ㅡㅡ;



 - 음료수 가게를 기다리는 동안, 일단 개발되어 있는 놀이기구를 중심으로 건설합니다. 유령 열차는 오랜만에 등장하죠?



 - 1년이 거의 끝나갈 때쯤 되어야 음료수 가게가 나옵니다(상점 연구를 최대치로 돌려서 이 정도).



 - 이쯤 되면 대부분의 관람객들이 목마른 상태이니 빨리 건설해줍시다.



 - 이번 시나리오는 괜찮은 롤러코스터가 두 개나 주어져 있어서 ATM용 코스터는 별로 필요가 없습니다. 즉 콕스크류 코스터도 제대로 된 트랙을 만들면 된다는 이야기.



 - 그런데 ATM 코스터가 필요없다는 말을 하기 무섭게 돈이 바닥납니다. ㅡㅡ; 대출을 많이 할 수가 없거든요.



 - 그래서 한동안은 돈 부족에 허덕이며 건설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플라잉 코스터를 콕스크류 코스터 트랙을 휘감도록 건설하였더니, 플라잉 코스터 뿐 아니라 콕스크류 코스터의 흥미도가 크게 올랐습니다(처음 지었을 때의 흥미도와 비교해보시죠).



 - 공원이 은근히 크고 길이 복잡해서, 이쯤 되면 길을 잃는 관람객들이 하나 둘씩 나옵니다. 일단 임시방편으로 안내소에서 지도를 무료배포하기로.



 - 롤러코스터 사이의 자투리 공간에 카트 트랙을 넣어보았습니다. 적당히 꾸미니 예쁜 그림이 나왔습니다.



 - 공간 여유가 있으니 버지니아 릴도 한쪽 구석에 건설하고......



 - 높은 언덕의 지하에는 스틸 미니 코스터의 스핀 카를 굴려줍니다. 롯X월드 때문인지 스핀 카는 지하에서 운용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라도 생긴 것 같군요.



 - 바이킹 브라더스(?)는 생각보다 좀 늦게 개발됩니다. 적절한 곳을 찾아 지어줍니다.



 - 이번에는 빙하 컨셉의 봅슬레이 코스터입니다. 언덕 반대편에서 튕겨나가지 않을까 조마조마했는데,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 길 잃는 관람객이 계속 나와서, 결국 지름길을 지었습니다.



 - 입체 영화관은 좀 더 컸으면 간지났을 것 같은데요.



 - 관람객은 열심히 건설을 하다 보면 쭉쭉 늘어납니다. 클리어는 걱정할 필요가 없겠네요.




 - 빈 공간을 적절히 채워놓고......



 - 마지막으로 마우스 코스터를 건설. 우든 마우스 코스터를 어딘가에 지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지난번 시나리오와 헷갈렸던 거였습니다. ㅡㅡ;



 - 이번 화는 클리어 직전까지 계속 놀이기구를 건설해 주었습니다.



롤러코스터 타이쿤 : 어트랙션 팩 - (19) Roman Village


 "몇 가지 놀이기구와 롤러 코스터를 추가해서 로마 스타일의 테마 파크를 건설한다."

 목표 : 관람객 1500명 (3년) / 놀이공원 등급 600



 - 이번 시나리오에서 주어진 공원은 고대 로마 스타일의 풍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 일단 입구 바로 앞에 보트 대여 놀이기구가 하나 있는데, 공원을 가로질러 수로가 하나 있기 때문에 그대로 놔두면 탑승자들이 수로를 따라 공원 반대편 끝까지 가버립니다. ㅡㅡ; 당연히 길을 막아주어야 합니다.



 - 조경이 훌륭한 것까진 좋은데, 전체적으로 도로가 중구난방으로 마구 지어져 있어 관람객이 길을 잃기 십상인 것과 동시에 놀이기구를 지을 공간이 부족합니다. 어느 정도 도로를 정리할 필요가 있겠군요.



 - 일단 몇몇 놀이기구와 버지니아 릴 하나를 짓습니다. 이런 테마의 놀이공원에는 왠지 목제 롤러코스터가 어울릴 것 같지요?



 - 조경과 도로를 손보다 보면 금새 돈이 부족해집니다. 공간도 넓지 않으니 좁은 공간에 어울리는 ATM용 코스터 하나를 짓습니다.



 - 뭔가 이번 공원에는 하트라인 코스터를 짓고 싶은데, 돈이 많이 드니 조금만 기다리기로.



 - 그 대신 트위스터 코스터를 우선 짓습니다. 지형을 이용하여 정거장을 큰 건물 비스무리하게 만들어 놓으니 꽤 멋집니다.



 - 걷어낼 지형들을 적당히 걷어내고 빈 자리에 놀이기구들을 채웁니다.



 - 서커스 천막도 빠질 수 없지요.



 - 드디어 고대하던 하트라인 코스터를 건설하였습니다. 흥미도는 기대하지 맙시다. ㅡㅡ;



 - 계속 놀이기구들이 개발 중이니, 빈 땅에 적절히 배치해줍니다. 중심부를 정리하고 나면 의외로 빈 공간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일단 지형 전체가 평지니까요.



 - 그냥 청소 열심히 하면 받는 상을 하나 받았습니다.



 - 이번에는 리버스 프리폴 코스터가 나왔습니다. 등급이 그다지 높은 편은 아닌데, 뭔가 지어놓고 보면 멋있잖아요.



 - 인버트 코스터가 여기에 빠질 수 없지요. 이번 시나리오에서 건설하는 대형 롤러코스터들은 흥미도가 이전 시나리오보다 살짝 낮게 나오는 느낌(일단 '매우 높음'이 아니니까)이긴 한데 그냥 넘어가기로 합니다. 큰 차이도 아니고요.



 - 중간에 딴짓을 하느라 공원을 반 년쯤 놔뒀더니 관람객 수가 빠듯합니다. 시간이 많지 않아 마케팅을 돌리기로 합니다.



 - 하트라인 코스터 뒤편에 빈 공간이 있어서, 버티컬 코스터 정거장을 우겨넣었습니다. 당연히 지하층을 적극 활용하고 있습니다.



 - 풍선 가게가 뒤늦게 개발되어, 시나리오 종료 때까지 무료배급을 하기로 합니다.



 - 버티컬 코스터와 마케팅의 힘으로 관람객 수가 간신히 1500명을 넘었습니다(돈은 넘쳐나는데).



 - 버티컬 코스터는 공원의 지하를 자유롭게 넘나들도록 지었습니다. 지하에서 튀어올라갔다가 다시 지하로 떨어지는 느낌은 어떨까요?



 - 공원 직원 어워드를 수상.



 - 중간에 정신줄을 잠시 놓았음에도 시나리오는 클리어할 수 있습니다.



롤러코스터 타이쿤 : 어트랙션 팩 - (18) Harmonic Hills


 "지방 당국은 이 공원에서 나무 높이 이상의 건축을 허용하지 않는다."

 목표 : 관람객 1200명 (3년) / 놀이공원 등급 600

 제한 : 지형 수정 금지, 풍경 제거 금지, 건설 높이 제한



 - 겉보기에는 (크기가 좀 작을 뿐) 평범한 공원이지만, 이번 시나리오는 단언하건대 어트랙션 팩 최강 최악의 시나리오입니다. 왜냐하면......




 - 지형 변경, 나무 제거가 불가능할 뿐 아니라 나무 높이 이상(대략 땅에서 7칸 정도)으로 놀이기구를 올리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거기에 절벽조차 하나도 없어서 지하를 이용할 수도 없습니다.



 - 그런 주제에 기본으로 주어지는 놀이기구는 또 너무 적습니다. 롤러코스터는 한 종류에, 격렬한 놀이기구는 아예 있지도 않습니다. ㅡㅡ; 심지어 상점도 화장실과 안내소 뿐이라 초반에는 놀이기구만 집중 개발할 수도 없습니다. 이런 조건에서 플레이를 해야 합니다. ㅡㅡ;;



 - 그래도 어떻게든 일단 있는 것부터 깔아줍니다. 나무 제거가 불가능하니, 나무를 피해서 트랙과 도로를 짓다 보면 모양이 아주 이상해지기 쉽습니다.



 - 그래서 이번 시나리오에서는 이런 유형의 놀이기구에 많이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 칸 커브가 되는 놀이기구는 그나마 트랙을 짓는 데 제약이 덜하거든요. 역시 마우스 코스터는 이렇게 짧게 만들어도 흥미도가 잘 나옵니다.



 - 아오 지형이라도 조정할 수 있었다면 ㅡㅡ;



 - 건설 가능한 놀이기구가 워낙 적으니 되는 대로 지어줘야 합니다. 평소 잘 짓지 않았던 카 라이드가 빛을 발하는 시나리오입니다.



 - 일단 상점 연구부터 진행 중인데 나오라는 건 안 나오고 뭔 쓸데없는 상점들만 자꾸 나옵니다. ㅡㅡ;



 - 출구 쪽 도로가 길어서 사람들이 그 쪽으로 들어가기를 원하지 않으면 배너를 활용하면 됩니다. 저렇게 한 쪽을 막아놔도 반대쪽으로는 지나갈 수 있기 때문에, 출구 쪽에서 나오는 사람은 통행에 지장이 없습니다.



 - 여기서 제대로 된 로그 플럼을 건설한 것은 거의 기적이나 다름없습니다. ㅡㅡ; 높이 제한이 있기 때문에 제한 높이가 높은 놀이기구는 거의 무용지물이 되고, 어차피 3년간 연구를 때려도 거의 나오지도 않습니다.



 - #@$%@#$%@!#$!@#%@#$!@#!@#



 - 하여튼 뭔가를 지을 수 있는 공간은 다 활용합시다.



 - 평소 마케팅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시나리오 자체에 걸린 핸디캡이 너무 강력하니 마음놓고 마케팅을 때리기로 합니다.



 - 그래도 언덕과 빈틈을 활용하면 어떻게든 롤러코스터를 지을 수는 있습니다.



 - 이번 시나리오에서는 사이클 모노레일도 아주 강력한 놀이기구가 됩니다.



 - 적당한 놀이기구가 개발되지를 않아서 고 카트 트랙을 하나 더 만들었습니다. 트랙이 지나치게 짧아보이는 건 기분 탓입니다(그래도 여러 바퀴 돌림).



 - 한 가지 더 주의해야 할 점이라면, 플레이어가 깔아놓은 나무도 제거가 불가능합니다. 혹시 나무를 심을 생각이 있다면 철저히 주의해야 합니다(다른 조경물은 제거가 가능).



 - 억지로라도 지으면 지어지긴 합니다. 롤러코스터 트랙을 까는 데 이골이 난 분들이라면, 차라리 도로를 까는 것보다 롤러코스터 짓는 게 더 쉬울 수도 있습니다.



 - ATM 코스터도 짓기 어렵습니다. 일단 스틸 코스터의 버티컬 루프도 높이 때문에 지을 수가 없습니다. ㅡㅡ;



 - 이 때 구세주 등판...... 버티컬 코스터는 평지에 터널을 뚫을 수 있기 때문에, 이번 시나리오에서는 유일하게 지하에 건설할 수 있는 놀이기구입니다. 물론 다시 지상으로 올라오는 게 문제라서, 건설 난이도는 만만치 않습니다.



 - 그래도 일단 건설해놓기만 하면 (탑승 시간과는 관계없이) 높은 흥미도를 보장합니다.



 - 격렬한 놀이기구는 이렇게 세 개 개발되고 끝나버렸습니다. ㅡㅡ;



 - 발진 모드 코스터는 어떻게든 지을 수 있는데, 특수 트랙을 활용하기 어렵기 때문에 흥미도는 반쯤 포기해야 합니다. 그래도 길이를 좀 늘렸더니 흥미도가 쓸만한 정도로는 나오네요.



 - 광고와 롤러코스터(들)의 힘으로 시나리오 목표는 어떻게든 채웠습니다.



 - 빈틈에 건설하기에는 역시 메이즈겠지만, 여기서는 메이즈 하나 짓기도 결코 쉬운 게 아닙니다. ㅡㅡ;



 - 그래도 3년 내내 투덜거리는 사이에 시나리오 클리어가 눈앞에 있습니다.



롤러코스터 타이쿤 : 어트랙션 팩 - (17) Thunderstorm Park


 "날씨가 너무 습해서 커버를 씌우고 대규모의 피라미드에 몇 개의 놀이기구를 건설해야 한다."

 목표 : 관람객 1400명 (3년) / 놀이공원 등급 600



 - 이번에는 공원 한가운데에 아주 인상적인 피라미드가 하나 있습니다. 피라미드는 그냥 지형을 위로 올려놓은 것이라, 트랙형 놀이기구 외에는 내부에 설치할 수 없지요(2편에서는 가능한데, 1편에서는 불가능).



 - 다만 시작 때 미리 주어진 런치드 프리폴 하나는 피라미드 내부에 있습니다. 당연하게도 저걸 철거하면 다시 저 자리에 런치드 프리폴을 짓지 못합니다. ㅡㅡ;



 - 공원 넓이 자체는 좁은 편은 아니지만, 피라미드 때문에 외부에 놀이기구를 지을 공간이 은근히 부족합니다. 지형도 딱히 평평한 건 아니라 골이 좀 아플 수 있습니다.



 - ATM 코스터 하나를 짓습니다. 제대로 된 롤러코스터 트랙을 지으려면 피라미드 내부로 들어가야 합니다.



 - 이번 시나리오의 최대 페널티는 바로 날씨. 비가 굉장히 자주 내리기 때문에, 실내 놀이기구가 아닌 경우 관람객이 잘 몰려들지 않습니다. ㅡㅡ;



 - 피라미드 주변 지형이 둥글게 있으니 이런 걸 지어보고 싶지요. 공원 외곽을 한 바퀴 도는 모노레일입니다. 모노레일은 천장이 있기 때문에 날씨의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 공원 주변을 둘러가며 놀이기구들을 지어 줍니다.



 - 그리고 반대쪽으로 확장. 피라미드 내부로 통하는 길도 사방으로 이어 줍니다.



 - 지하에 롤러코스터를 지으면 아무래도 비용이 더 많이 듭니다. 관람객들이 배고프고 볼일이 급하지만 상점을 확충할 돈이 부족합니다.



 - 천신만고 끝에 콕스크류 코스터를 완공하였습니다. 밖에서 시작해서 피라미드 내외를 넘나드는 코스입니다.



 - 한쪽에는 호수가 있는데, 호수가 있는 쪽은 땅이 굉장히 비좁습니다. ㅡㅡ; 놀이기구를 깔기 위해서는 머리를 잘 써야 합니다.



 - 지금부터 롤러코스터의 정거장은 지하에 지어야 공간이 날 겁니다. 새로 지은 트위스터 코스터는 매우 빠른 속력과 높은 흥미도를 자랑합니다.



 - 그 옆으로 스틸 미니 코스터를 짓습니다. 뱅킹을 넣지 않으면 스핀 카를 쓸 수 있다는 건 아시죠? 롯X월드의 '혜성특급' 컨셉으로 만들어 보았습니다.



 - 하필 지하에는 상점도 지을 수가 없습니다(역시 2편에서는 가능). 좁은 외부 공간에 틈틈이 상점들을 확충해 줍니다.



 - 저런 식으로 롤러코스터 두 개를 엇갈리게 만들면 양쪽 다 흥미도가 크게 오릅니다. 아래 자투리 공간에는 역시 메이즈가 제격.



 - 마우스 코스터를 하나 지으니 이제 피라미드 내부는 공간이 없습니다. 역시 지하에 짓는 롤러코스터는 전반적으로 등급이 높게 나옵니다.



 - 슬슬 개발이 완료되어 갑니다.



 - 크게 신경쓰지 않는 사이에 관람객은 꾸준히 늘어서 클리어 조건을 넘어섰습니다.



 - 어중간하게 남은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까 하다가 사이클 모노레일을 넣었더니 사이즈가 딱 맞습니다. 점잖은 놀이기구이니 등급은 크게 기대하지 맙시다.



 - 작은 놀이기구들로 틈새를 메워 나갑니다.



 - 아놔 ㅁ넹ㄹ미ㅠ남ㄴㅇㄻ넹ㄻㄴ아럼ㄴ이라ㅓㄴㅇㄹ!!!



 - 그러거나 말거나 시나리오는 끝나갑니다.



 - 피라미드 내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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