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ns Eisler (1898-1962)

<Deutsche Sinfonie> Op.50



 - 한스 아이슬러는 독일의 작곡가로, 독일민주공화국(동독) 국가인 <폐허에서 부활하여>를 작곡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아이슬러는 1898년 라이프치히에서 출생하였는데, 아버지 루돌프 아이슬러(1873-1926)는 칸트 철학을 전공한 명망 있는 지식인이었지만 가족의 생계는 그닥 챙기지 못하는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일찍이 급진적 사회운동에 뛰어든 형과 누나가 있었기 때문에 그도 자연스럽게 급진적 사상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 종전 직후인 1919년 아이슬러는 아르놀트 쇤베르크를 찾아가 제자가 되었는데, 아이슬러는 이 때에야 비로소 체계적인 음악 교육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4년여간 쇤베르크에게 작곡을 사사한 아이슬러는 피아노 소나타 1번으로 비엔나 예술상을 수상, 전문 작곡가의 길을 화려하게 시작하였습니다.


 - 다만 쇤베르크는 음악에 정치색을 넣는 것을 극도로 배척했기 때문에, 급진주의자이며 매우 '정치적'이었던 아이슬러는 스승과 그리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1925년 아이슬러는 베를린 음악원 교수로 초빙되어 독일로 떠났고, 그 무렵 독일 공산당에 입당하였는데 이것이 계기가 되어 두 사람은 크게 반목하게 되었고 사제관계도 사실상 끝장나고 말았습니다.


 - 독일에서 작곡과 정치 활동을 이어가던 아이슬러는 1930년부터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1898-1956)과의 오랜 관계를 시작하였습니다. 본래 쿠르트 바일(1900-1950)과 함께 작업하며 <서푼짜리 오페라> 등을 작업한 브레히트는, 예술관의 차이로 바일과 결별하고 새로운 파트너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예술적, 정치적 지향점이 비슷한 아이슬러는 최고의 파트너였고 두 사람은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직접 부를 수 있는 합창곡과 민중가요를 다수 작업하며 명성을 떨쳤습니다.


 - 아이슬러는 나치의 집권 이후로 큰 위기를 맞게 됩니다. 반공주의와 반유대주의로 무장한 나치 독일에게, 공산당원인데다 유대계 혈통이기까지 한 아이슬러는 최우선 척결 대상이었던 것. 1933년 1월 안톤 베베른의 초청으로 비엔나를 방문 중이던 아이슬러는, 자신의 집이 게슈타포에게 수색당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곧바로 망명길에 오르게 됩니다. 유럽 각지를 떠돌며 활동하던 그는, 1938년 미국으로 망명하여 정착하였습니다.


 - 이 무렵 쇤베르크(이 양반도 유대계)는 이미 미국으로 망명해 있었는데, 같은 망명자 신세였던 사제(師弟)는 미국에서 어느 정도 관계를 회복한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에서 아이슬러는 주로 영화음악 작곡으로 생계를 유지하였고, 두 작품 정도가 오스카상 후보작으로 오르기도 했다는군요(수상은 하지 못했다고). 물론 사회주의자인 그에게 자본주의의 상징이나 다름 없는 미국 생활은 우울하기 이를 데 없었고, 그의 작품세계도 다분히 내면으로 침잠하는 경향을 보이게 됩니다.


 -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냉전이 시작되면서, 이 우울한 망명생활조차도 끝장날 위기에 처했습니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대결이 표면화하면서, 미국 내의 좌파 인사들이 무차별적인 공격을 받게 된 것(그 유명한 '매카시즘'). 1947년에는 '반미 행위 조사위원회' 청문회에 피고발인으로 불려나가기도 했는데, 황당하게도 고발자는 그의 친누나인 루트 피셔(1895-1961)였습니다(루트 피셔는 독일 공산당에서 정치적 논쟁 끝에 제명당했고, 이후 우파로 전향하였습니다).


 - 스트라빈스키, 아인슈타인, 찰리 채플린(이 양반은 자기부터가 매카시즘에 휘말렸는데) 등의 구명운동에도 아이슬러는 1948년 미국에서 추방당하고 말았습니다. 일단 비엔나로 옮겨 활동하던 아이슬러는, 영혼의 단짝 브레히트의 권유를 받아들여 얼마 후 동독에 정착하였습니다. 이후 아이슬러는 동독 국가 <폐허에서 부활하여>를 작곡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나갔습니다.


 - 하지만 동독 정권이 스탈린주의 관료들로 들어차면서 아이슬러의 비판정신은 또다시 비판의 대상이 되고, 그의 작품이 상연 금지되는 일도 벌어집니다. 정치적 압박이 계속되는 와중에 1956년 브레히트가 세상을 떠나자 큰 충격을 받은 아이슬러의 건강은 크게 악화되었으며, 결국 이를 회복하지 못하고 1962년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 <독일 교향곡>은 망명 시기인 1935~39년에 걸쳐 작곡되었습니다. 1936년 첫 두 악장을 파리 만국 박람회에서 초연하려 했지만 나치 독일의 항의로 무산되고(지휘자는 가사를 빼는 타협안을 제시했으나 작곡가 자신이 거부), 그가 동독에서 활동하던 1959년에야 초연될 수 있었습니다. 브레히트의 시에 곡을 붙인 것으로, 전반적으로 반(反) 파시즘 성향을 띠고 있습니다.



롤러코스터 타이쿤 : 어트랙션 팩 - (25) Pickle Park


 "지방 당국에서는 광고나 판촉 행위를 허용하지 않으므로 이 공원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만 알릴 수 있다."

 목표 : 관람객 1400명 (3년) / 놀이공원 등급 600

 제한 : 마케팅 금지



 - 이번 시나리오도 얼핏 보면 평범해 보이지만 제한이 걸려 있습니다.



 - 다름아닌 마케팅 금지. 모아야 하는 관람객 수도 적지 않습니다.



 - 일단 스틸 미니 코스터를 하나 짓고



 - 입구 쪽에는 언제나처럼 점잖은 놀이기구 위주로 채웁니다.



 - 공원이 백지 상태이니 입구 쪽부터 계속 확장해가면 됩니다. 이쪽에는 우든 마우스 코스터를 지었습니다.



 - 이런 빈틈에는 짧은 메이즈를 넣어주면 좋죠.



 - 벌써 돈이 쪼들리는데, 입장료를 너무 낮게 책정해서 그런 거였습니다. 그러니



 - 입장료를 적절하게 올려줍니다.



 - 그렇게 돈이 좀 모이면 대형 롤러코스터를 지을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봅슬레이 코스터입니다.



 - 식상한 구도 식상한 놀이기구......



 - 마우스 코스터를 옆에 짓고 주변에 조경을 떡칠한 결과 흥미도가 매우 높음을 찍었습니다.



 - ?? 관람객 수 증가가 멈추었는데, 이번 시나리오에서는 관람객들이 돈을 적게 들고 옵니다. 그대로 놔두면 돈이 바닥난 관람객들이 공원을 나가버리니



 - 놀이기구의 가격을 최대한 내립니다.



 - 이제 중앙 호수 쪽으로 확장. 호수에 Nice Boat를 하나 설치합니다. 쉼터는 중간중간 적당한 자리에 배치합니다.



 - 여기에도 애매한 공간이 생겨서 메이즈로 채워 넣었습니다. 의외로 메이즈는 크기를 아주 작게 만들어도 그럭저럭 인기가 있습니다.



 - 파워 스타트 모드 트랙도 하나 건설하고



 - 그 옆에는 서스펜디드 싱글 레일 코스터를 짓습니다. 가격에 비해 수치가 잘 나오는 편이지만, 특수 트랙도 없고 급경사도 없고 랙도 잘 걸리기 때문에 건설하기 의외로 까다롭죠.



 - 언덕을 깎아 평지를 만들고 입체 영화관을 짓습니다. 리얼 입체



 - 우든 트위스터 코스터를 건설. 일반 우든 코스터와 차이점이라면, 우든 코스터에 없는 나선형 상승/하강 코스와 급경사 방향전환 코스가 우든 트위스터 코스터에는 있습니다(대신 우든 코스터에 있는 물 튀김 코스가 없음).



 - 마케팅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놀이기구를 부지런히 짓는 것으로 사람을 모아야 합니다. 놀이기구가 들어갈 수 있을 법한 곳에는 최대한 건설을 해 줍시다.



 - 입장료를 $50.00까지 올렸더니 관람객이 잘 늘지 않는데, 돈을 적게 들고 오는 손님은 $40.00만 들고 오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입장료가 너무 높으면 그냥 돌아가기도 합니다. ㅡㅡ; 이번 시나리오도 돈 벌기 참 어렵습니다(아직 빚도 다 못 갚았습니다).



 - 같은 놀이기구를 여러 개 짓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이런 경우에는 어쩔 수 없지요.



 - 공원 자체가 그리 좁은 건 아니지만, 기왕이면 같은 공간에 작은 롤러코스터를 여러 개 짓는 것이 손님 모으는 데 좋습니다.



 - 여타 놀이기구도 개발되는 대로 추가해줍니다. 이전 시나리오들에서도 해 봤지만, 이런 식으로 부지런히만 해 주면 마케팅 없이도 사람 모으는 데는 무리가 없습니다. 물론 그게 귀찮고 힘듭니다.



 - 회전 낙하도 하나 더 지었습니다. 똑같이 지으면 재미없으니 높이를 더 높여서 하드코어 모드로 만들어 보았습니다.



 - 관람객이 순조롭게 모입니다. 이 정도면 클리어하는 데 무리는 없을 것 같군요.



 - 버지니아 릴 역시 평소보다 좀 작게 지었습니다.



 - 관람객 수가 1400명을 넘어 이제 좀 여유가 생겼습니다. 막판에는 돈을 벌어서 남은 빚을 갚기로 하였습니다.



 - 여론조사에 따르면 관람객들은 편의시설 부족을 크게 느끼고 있는 것 같습니다.



 - 한편 입장료를 $50.00으로 올렸는데도 관람객들은 입장료가 싸다고 난리. 그런데 정작 관람객들 중에는 돈을 그만큼도 들고 오지 않는 경우가 허다한데 ㅡㅡ;



 -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놀이기구에 입장료를 걸어놔도 될 것 같습니다.



 - 그렇게 클리어가 눈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롤러코스터 타이쿤 : 어트랙션 팩 - (24) Fiasco Forest


 "위험하고 잘못 설계된 놀이기구로 가득 차 있다. 문제를 수정할 시간과 예산이 매우 한정되어 있다."

 목표 : 관람객 900명 (1년) / 놀이공원 등급 600

 제한 : 마케팅 금지



 - 대놓고 욕나오는 시나리오. 공원 이름에 걸맞게 모든 것이 엉망진창입니다. 뭐가 문제인지 살펴봅시다.



 - 일단 스틸 미니 코스터는 격렬도가 너무 높고, 카 라이드는 너무 짧아서 있으나마나한 수치가 나옵니다.



 - 워터 슬라이드는 보트가 날아가버리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이름부터가 '데스 슬라이드' ㅡㅡ;




 - 우든 코스터는 일단 출구 쪽으로 이어진 길이 없고, 승객이 웬만큼 찬 상태가 아니면 열차가 언덕을 넘어가지 못합니다.



 - 보트 대여는 호수 한 쪽이 막혀 있어 한 번 나오면 다시 들어가지 못합니다. ㅡㅡ;



 - 도로는 아주 복잡하게 깔려 있고, 이렇게 결정적인 부분들이 끊어져 있어 관람객들이 길을 잃습니다.



 - 그리고...... 마케팅 금지. 잘못된 부분들을 수정하고, 추가적으로 개발도 해야 하는데 주어진 시간은 고작 1년이고 마케팅은 할 수가 없습니다. 아주 부지런하게 플레이해야 클리어할 수 있습니다.



 - 일단 잘못된 부분들을 하나씩 고칩시다(역시 이번에도 전부 철거하고 새로 짓는다는 선택지는 있지만 재미없으니까). 일단 워터 슬라이드는 저렇게 트랙에 뚜껑을 씌우면 보트가 날아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늘로 날아가는 곳에 저렇게 천장을 만든다는 건 그 천장에 들이받고 밑으로 떨어지라는 소리인가요? ㅡㅡ;



 - 뭔가 거창한 걸 하고 싶어도 대출을 많이 받을 수가 없습니다. 어차피 이번 시나리오에서는 돈이 많이 드는 거대한 시설을 지을 시간도, 돈도, 필요도 별로 없을 겁니다.



 - 화장실 사용료가 $0.8로 되어 있습니다. 이건 평소 화장실을 유료로 놓고 쓰느냐 무료로 놓고 쓰느냐에 따라 플레이가 달라질 것 같은데, 선택은 플레이어가 알아서 하면 되겠지요.



 - 스틸 미니 코스터의 격렬도가 높게 나오는 건 커브에 뱅킹이 하나도 없고, 위아래로 오락가락하는 언덕이 너무 많아서입니다. 이런 부분들을 적절하게 고쳐주면



 - 크게 재미있는 건 아니지만 무난한 트랙으로 탈바꿈합니다.



 - 초소형 카 라이드는 부수고 새로 지을 게 아니라면 정거장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전부 새로 짓게 될 겁니다. 지하를 적극 활용하다 보니 집 한 채가 만들어졌습니다. 도로를 좀 손봐서 막다른 길도 주변 도로와 연결하면 길 잃었다는 소리가 별로 나오지 않을 겁니다.



 - 일단 급한 부분들을 처리하고 조금씩 공원 개발도 진행해줍니다. 도로를 꾸며주고......



 - 빈 공간에 새로운 놀이기구도 건설합니다. 마케팅도 할 수 없으니 관람객을 계속 끌어모으려면 새로운 놀이기구를 꾸준히 지어야 합니다.



 - 뭐 한 게 있다고 벌써 돈이 쪼들립니다.



 - 공원이 그리 넓지 않으니 지하를 활용할 수 있으면 최대한 활용합시다.



 - 이런 자투리 공간도 놀이기구를 건설하기에는 충분합니다.



 - 우든 코스터를 고치는 걸 깜빡해서 사고를 한 번 냈습니다. ㅡㅡ; 다양한 방법이 있겠는데 일단 체인을 더 높은 곳까지 올리는 식으로 해결. 트랙 아래쪽을 개발하기 위해 새로운 간선도로를 깔았습니다.



 - 아래 호수에 보트 대여를 하나 더 짓고



 - 그 위쪽으로 스틸 코스터를 ATM 모드로 건설. 돈 때문인 것도 있는데 그것보다는 짧은 시간에 빠르게 롤러코스터를 짓기 위함입니다.



 - 놀이기구는 개발이 되는 대로 채워넣습니다.



 - 매우 바쁘게 손을 놀린 결과 관람객 수가 꾸준히 증가합니다. 그런데 어느 새 9월이 되었습니다. ㅡㅡ;



 - ATM 트랙을 구석에 하나 더 짓습니다.



 - 그리고 이쪽에 몇몇 놀이기구들을 추가할 쯤 되면



 - 관람객 수가 900명을 넘어섭니다. 이젠 좀 안심해도 되겠네요.



 - 드디어 엉망진창이던 공원을 정상으로 돌려놓는 데 성공한 것 같습니다. 여담으로 공원 이름에 'Forest'가 들어가는데 실제로 공원 내부를 제외하면 나무 한 그루 없네요. ㅡㅡ;



롤러코스터 타이쿤 : 어트랙션 팩 - (23) Rotting Heights


 "지나치게 성장해서 황폐화되었다. 이곳을 다시 멋진 공원으로 탄생시킬 수 있는가?"

 목표 : 관람객 1200명 (3년) / 놀이공원 등급 600



 - 목표 자체는 크게 어렵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는데 중간에 멍때리다가 목표치 채우느라 고생을 좀 하긴 했습니다). 그런데 이 공원은 무슨 폭격이라도 맞았는지 모든 놀이기구가 파괴되거나 고장나 있고, 도로는 곳곳이 끊어져 있습니다.



 - 가까이서 보면 이렇습니다. 저 관람차 출구에는 심지어 작은 무덤까지 만들어져 있습니다. ㅡㅡ; 저 관람차 역시 고장난 상태라 출입구 위치를 바꿀 수도 없고, 결국 무덤을 철거하든지 관람차를 철거하든지 선택해야 합니다. 도로상의 기물은 전부 깨져 있고, 길바닥은 쓰레기 천지입니다.



 - 모든 놀이기구를 철거해버리는 방법도 있긴 한데(철거비도 들어오고 나쁘지는 않은 선택), 그러면 재미가 없으니까 최대한 기존 놀이기구를 보전하면서 복구를 해보기로 합니다. 일단 깨진 기물을 지울 겸 도로를 다시 깔고 있습니다.



 - 그리고 새로 다시 건설한 도로에 멀쩡한 기물들을 설치합니다. 쓰레기를 치워야 하니 미화원도 고용합시다(공원 전체에 잔디가 없어서 번거로움이 덜합니다).



 - 칙칙한 놀이기구 색깔도 좀 산뜻하게 바꿔주고, 우든 트위스터 코스터의 트랙은 뭔가 연결될 것 같으면서도 상당히 애매합니다. 그래서 일부분은 지우고 연결 가능한 부분 위주로 재건축.



 - 그렇게 나온 결과물은 상당히 훌륭합니다.



 - 사이클 철로는 아무리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아 철거하기로 하였습니다.



 - 카 라이드를 복원해 줍니다. 나쁘지는 않은 수치가 나왔습니다.



 - 우든 트위스터 코스터 옆의 자투리 공간에 카트 트랙을 하나 설치. 이름의 '5'는 트랙의 모양에서 따 왔는데, 설마 저 의미를 알아듣는 분은 없겠지요? 에이 설마



 - 돈도 쪼들리고, 때마침 롤러코스터가 하나쯤 더 필요하기도 하니 스틸 코스터로 ATM용 트랙을 하나 짓습니다.



 - 그리고 거기서 모인 돈으로 옆에 제대로 된 트랙을 하나 더 짓죠. 버지니아 릴이 완성되었습니다.



 - 이제 이런 구도는 식상하실테니 따로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



 - 공원이 그렇게 넓은 것까진 아닌데, 그래도 외곽을 순환하는 모노레일 노선을 지어 놓으니 꽤 쓸만합니다.



 - 공원 반대편 정거장의 모습



 - 뭐, 식상해도 이런 모양으로 건설하는 데 공간 절약에도 좋고 흥미도 높이기에도 좋으니까요.



 - 가운데 호수 부분은 평지처럼 생각해도 무방합니다. 콕스크류 코스터 트랙을 제대로 하나 짓습니다.



 - 그리고 그 밑에 서커스 천막을 하나 짓지요.



 - 이쯤 되니 재정에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 갑자기 관람객 수가 쭉쭉 줄어들기 시작합니다. 여론조사를 해 보니 다들 돈이 없는 것 같습니다.



 - 그래도 일단 짓던 마우스 코스터는 마저 짓습니다.



 - 호수 한 쪽에 나이스 보트(?)를 두려고 했는데 개발이 되지 않습니다. ㅡㅡ; 그래서 이 공간을 어떻게 써먹을까 고민하다가



 - 스틸 트위스터 코스터를 어거지로 끼워넣습니다. 주변 놀이기구와 도로까지 수정해가며 건설했는데 결과물은 매우 성공적입니다.



 - 아무래도 관람객이 늘어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빈털터리 관람객들을 붙잡아두기 위해 대부분 놀이기구들을 무료로 전환합니다.



 - 그러자 공짜 좋아하는 사람들이 무더기로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 인버트 코스터도 파워 스타트 모드를 지원하기 때문에, 짧은 ATM용 코스를 지을 수 있습니다. 물론 지금이야 돈이 부족한 건 아니고, 그냥 건설 공간과 시간이 빠듯해서 이렇게 지었습니다.



 - 그래도 사람이 생각만큼 늘지 않으니 이번에는 먹거리들도 폭탄세일.



 - 엔터테이너들도 풀어놓고......



 - 다음 시나리오가 마케팅 금지라 마케팅을 안 쓰는 연습을 해보려고 했는데, 아직도 불안불안하니 어쩔 수 없네요. 너무 여유 부리면서 플레이한 것 같습니다.



 - 어쨌든 노력의 결과 관람객들이 몰려옵니다. 클리어는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 클리어 직전



롤러코스터 타이쿤 : 어트랙션 팩 - (22) Utopia Park


 "사막 한가운데의 오아시스에 놀이 공원을 건설할 수 있다."

 목표 : 관람객 1400명 (3년) / 놀이공원 등급 600



 - 처음에 주어진 공원의 면적이 매우 좁습니다. 저렴한 값에 확장할 수는 있는데, 그러면 재미 없잖아요?



 - 언제나처럼 입구 쪽부터 개발을 진행. 넓이가 좁으니 최대한 밀집해서 시설을 짓습니다.



 - 당연히 파워 스타트나 역방향 체인 모드 코스터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스틸 미니 코스터는 스핀 카를 쓰기 위해 커브에 뱅킹을 넣지 않았더니 격렬도가...... ㅡㅡ;



 - 결국 스핀 카를 포기하고 뱅킹을 넣었습니다. 공간이 부족하니 지하를 적극 활용합니다.



 - 반대쪽도 개발. 아무튼 이번 공원에서는 입체화를 하면 할 수록 좋습니다.



 - 로그 플럼을 짓다 보니 트랙이 하늘 위를 날아다니게 되었습니다. 흥미도가 낮은 건 길이가 좀 짧아서인 것 같은데, 이 이상 길이를 늘릴 여유가 없기 때문에 ㅡㅡ; 아쉬운 대로 그냥 써먹기로 합니다.



 - 그래도 공간을 아껴 쓰면 이것저것 지을 공간은 나옵니다.



 - 마우스 코스터처럼 좁은 공간에 짓기 좋은 롤러코스터 또한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 공간을 최대한 절약한 결과, 공원 가장 안쪽에 온전한 롤러코스터를 하나 지을 공간이 나왔습니다. 물론 그래도 그렇게 길게는 못 짓습니다.



 - 360도 바이킹. 얼마 짓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벌써 공간이 빠듯해집니다. 이제부터는 중간중간 틈새 공간을 최대한 활용해야 합니다.



 - 전망대나 런치드 프리폴처럼 타워형으로 된 놀이기구는 이렇게 롤러코스터 트랙 사이에 넣는 것도 좋은 공간 활용법이죠.



 - 저 넒은 땅을 전부 사버리면 편하겠지만, 일단 그럴 필요까진 없을 것 같습니다.



 - 공원 넓이가 좁다는 페널티가 있으니, 마케팅 찬스를 좀 써보기로 합니다.



 - 그리고 들어온 관람객이 나갈 필요가 없도록 대부분의 놀이기구를 무료로 전환.



 - 공원 운영에는 별 문제가 없습니다.



 - 이제 별로 빈 틈이 보이지 않는데, 범퍼카를 지을 공간이 나올까요?



 - 요렇게 물 위를 활용해 주면 되겠습니다.



 - 유령의 집이 뒤늦게 나왔는데, 한쪽 언덕을 좀 깎아서 지을 공간을 확보합니다.



 - 고문기구 스페이스 링은 놀이기구 자체의 높이가 낮아서 요렇게 롤러코스터 아래 공간에 집어넣을 수 있었습니다.



 - 사람이 많아지니 관람객들은 너무 복잡하다고 아우성입니다. 그런데 이건 공원 자체가 작아서 어쩔 수가 없으니



 - 돈벌이용 롤러코스터들을 추가로 무료로 전환하고




 - 엔터테이너(광대)들을 대거 고용해서 불만을 무마시키는 게 좋습니다.



 - 최고의_인구밀도.jpgee



 - 아무튼, 이 좁은 공간으로도 충분히 플레이가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습니다.


롤러코스터 타이쿤 : 어트랙션 팩 - (21) Adrenaline Heights


 "격렬한 스릴을 즐기는 사람들을 위한 공원을 건설한다."

 목표 : 관람객 1600명 (3년) / 놀이공원 등급 600

 제한 : 모든 관람객이 격렬도 높은(9 이상) 놀이기구 선호



 - 겉보기에는 언덕이 좀 있는 아주 평범한 공원입니다.



 - 처음에 건설되어 있는 서스펜디드 코스터는, 롤러코스터 종류를 감안하면 그럭저럭 쓸만한 수치가 나옵니다.



 - 필수 상점이 다 나와 있지 않기 때문에 처음에는 상점 연구를 집중적으로 해야 합니다.



 - 이 평범해 보이는 시나리오에 걸려 있는 페널티는 바로 이것. 모든 관람객이 격렬도가 높은 놀이기구만 탑니다. Gentle Glen 시나리오와는 비슷하면서도 반대인데, Gentle Glen의 경우 그래도 격렬한 놀이기구, 롤러코스터를 어느 정도 쓸 수 있지만 이번에는 점잖은 놀이기구는 아예 못 쓰고 격렬한 놀이기구도 상당수는 못 씁니다. ㅡㅡ; 격렬도가 6만 돼도 거의 안 탑니다.



 - 그래서 난이도가 생각보다 크게 올라갑니다. 일단 격렬도가 너무 높게 나와 평소엔 거들떠보지도 않던 스탠드업 코스터가 이번 시나리오에서는 유용하게 쓰입니다.



 - 런치드 프리폴 역시 평소보다 크고 아름답게 지어줍니다. 시작 속력이 100km/h는 넘어야 관람객이 만족할 만한 격렬도가 나오더군요(물론 이 경우는 조금 속력을 낮춰도 되긴 합니다).



 - 그나마 여유 공간이 많은 건 다행입니다. 공터를 개발하기 위해 도로를 확충합니다.



 - 우든 코스터도 지어 보면 생각보다 격렬도가 높게 나옵니다. 열차 종류 중 역방향으로 달리는 열차가 있는데, 이걸 굴리면 일반 열차보다 흥미도와 격렬도가 조금 더 올라가죠.



 - 그러니까, 이 정도면 격렬도가 결코 낮은 게 아닌데도 관람객들은 재미없다고 타질 않습니다. ㅡㅡ;



 - 일단 격렬도 7 정도까지는 크게 문제는 없습니다. 결국 이번 시나리오는 롤러코스터 위주로 갈 수밖에 없겠네요.



 - 역시 플라잉 코스터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수치가 나옵니다. 제대로 돌릴 수 있는 놀이기구가 한정되어 있다 보니, 이번 시나리오는 만성적인 재정난에 허덕이기 쉽습니다.



 - 360도 바이킹은 회전수를 최대로 늘리고(15바퀴, 격렬도 6,00이 나옵니다) 가격을 공짜로 책정해도 사람이 안 옵니다.



 - 버지니아 릴을 건설했는데, 이 정도 격렬도로는 아무도 타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 트랙을 좀 더 하드코어하게 바꾸었습니다.



 - 결국 이번 시나리오도 마케팅의 힘을 빌려야 할 것 같군요.



 - 최고의 잉여 롤러코스터인 하트라인 코스터도 이번 시나리오에서는 상당히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되면 흥미도는 갖다 버리고 격렬도만 9 전후로 나오면 넙죽 받아먹어야죠.



 - 역시 격렬도가 높게 나오는 인버트 코스터도 필수입니다. 트랙을 좀 짧게 만들어서 흥미도는 생각보다 낮네요.



 - 여기서는 ATM용 코스터도 함부로 짓기 어렵습니다. 트랙이 너무 짧으면 격렬도가 낮아서 아무도 타질 않기 때문. ㅡㅡ; 이런 종류의 트랙도 어느 정도 길고 격렬하게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 버지니아 릴은 다시 아무도 타지 않게 되어서,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드디어 관람객이 좋아할 만한 격렬도를 만드는 데 성공.



 - 이번 시나리오에서는 스틸 트위스터 코스터의 '런치드 리프트 힐'이라는 특수 트랙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한국어 번역이 좀 이상하게 되어 있습니다). 언덕에 체인 대신 설치할 수 있는 유용한 트랙이죠. 속력도 빠르게 만들 수 있는데 너무 길게 이으면 말 그대로 열차가 발사될 기세로 날아가니 적당히 끊어 쓰도록 합니다.



 - 최고 속력을 감안하면 격렬도가 그리 높지 않네요. 그래도 저 정도면 관람객들이 좋다고 탈 겁니다.



 - 아무리 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 360도 바이킹은 그냥 철거합니다.



 - 리버스 프리폴 코스터도 역시 쓸만합니다. 흥미도는 나무 몇 개만 심어줘도 높음을 찍겠네요.



 - 돈이 계속 부족해서 클리어 직전까지 건설을 진행해야 했습니다. 버티컬 코스터는 간신히 완성하긴 했는데, 수치가 뜨기 전에 3년이 끝나 버렸네요. ㅡㅡ;



 - 어쨌든 클리어는 했습니다.



0. 서문

 - 게임의 역사를 논하기에 앞서, '게임'이란 것이 과연 무엇인가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국어사전에서는 게임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출처 : 한컴사전]


 - 즉 엄밀히 말하면, 게임은 '누군가와 승패를 겨루거나' '혼자 혹은 여럿이 즐기며' '일정한 규칙을 가진' 놀이를 통칭합니다. 어릴 적 즐기던 팽이치기나 땅따먹기도 게임이요, 혼자서 즐기지만 일정한 규칙이 있는 낱말맞추기 퍼즐이나 직소, 네모로직같은 것도 게임으로 부를 수 있겠습니다.

 - 그런데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에게, 게임이란 단어는 그러한 넓은 의미보다 소위 '비디오게임'을 지칭하는 것으로 더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컴퓨터와 전자기기를 이용하여, 화면 등을 통하여 출력되는 정보를 보면서, 프로그램에 설정된 규칙에 따라 플레이를 진행하는 그러한 형태의 게임 말입니다. 최초의 컴퓨터가 발명된 지 70여 년이 지난 지금, 인류의 거의 모든 것을 바꾼 컴퓨터는 인류의 놀이문화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 비디오게임의 역사는 컴퓨터의 역사와 거의 맥을 같이 합니다. 지극히 생산적이고 실용적인 필요에 따라 발명된 컴퓨터가, 그 자체로는 전혀 실용적이지 않은 용도로 쓰인 것입니다. 어쩌면 인간에게 '유희'라는 것 자체가, 자원을 쓸데없이 낭비함으로써 정서적 만족과 쾌락을 얻는 행위일지도 모릅니다. 물론 그게 무의미하다는 건 절대 아니지요. 이러한 행위는 인간에게 상상력을 더해주고, 이를 바탕으로 인류는 훨씬 더 생산적인 자연의 입장에서는 파괴적인 존재가 될 수 있었으니까요.

[때로는 게임을 현실로 구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롤러코스터 타이쿤> 시리즈에 등장하는 '인버티드 헤어핀(와일드 마우스) 롤러코스터'는 본래 현실에 존재하지 않았지만, 게임이 흥행한 이후 실제로 건설되어 중국에 실물이 존재.]


 - 이제 우리는 인류 유희의 역사에 전례없는 대격변을 불러일으킨 비디오게임의 발자취를 짚어나갑니다. 그리고 이를 통하여, 비디오게임이 인류의 역사에서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우리가 비디오게임을 어떤 존재로 받아들일지 고민해보기로 하겠습니다.



1. (큰 의미 없는) 최초의 게임들 

 - 최초의 컴퓨터는 '컴퓨터'의 정의를 무엇으로 하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콜로서스(1943)와 에니악(1946)을 들고 있습니다(콜로서스는 제2차 세계대전기에 군용으로 쓰였기 때문에 공개가 늦었고, 오랫동안 존재가 알려지지 않았음). 시기가 시기인 만큼 이들은 일차적으로는 군용(미사일의 탄도 계산이라든지), 나아가서는 과학과 수학 계산용으로 쓰였습니다. 


 - 사용 목적이 그러했고, 크기 자체도 워낙 거대했다보니(에니악의 경우 전원을 올리면 주변 동네들의 가로등이 깜빡거릴 정도로 전력 소모가 심했다고) 컴퓨터는 정부기관이나 국책 연구기관 등에 극소수만 존재했고, 당연히 이를 접하고 활용할 수 있는 사람도 아주 적었습니다. 이러다보니 "이것으로 이런 것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나아가서는 이를 사람들에게 홍보하는 목적의 프로그램들이 만들어졌습니다. 여기서 최초의 '비디오게임(이하 게임)'이 출현하게 됩니다.


[OXO]


 - '최초의 게임'이 무엇인가를 논할 때 다양한 게임들이 등장하는데, 일단 음극관 놀이장치(1947)나 튜로챔프(1948, 체스 시뮬레이션) 등이 언급되지만 이들은 실제 프로그램으로 완성된 건 아닙니다. 실제로 완성되어 실행된 게임으로는 '틱택토'를 구현한 <OXO>(1950)과 '님'을 구현한 <님로드>(1952)를 최초로 꼽는데, 이들은 모두 기존의 보드게임을 프로그램화한 것입니다. 둘 다 연구 및 홍보 목적으로 만들어졌고, 게임의 역사에 이렇다할 업적을 남기지는 못했습니다.


 - 1958년에는 브룩헤이븐 국립 연구소의 물리학자 윌리엄 히긴보덤(1910-1994)이 <테니스 포 투>라는 게임을 만들었는데, 이는 연구나 홍보 목적이 아니라 순수하게 '유희'를 목적으로 한 최초의 게임으로 평가됩니다. 오실로스코프(병원에서 심장 박동 표시하는 그런 장치) 화면상에서 일종의 테니스 게임을 플레이하도록 만들어졌는데, 히긴보덤은 어디까지나 '손님들이 가지고 놀며 즐기는' 목적으로 이를 만들었고 그 존재는 한참 후에야 세상에 알려지게 됩니다.


[<테니스 포 투> 플레이 화면]


 - 지금까지 언급한 최초의 게임들은, '최초'라는 것 이외에 역사에 중요하게 언급될 요소가 딱히 없습니다. 이들은 당시 컴퓨터를 접할 수 있는 극소수가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만들었거나 내부적으로만 활용하기 위해 만들었으며, 그래서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았고 이후의 게임들에게도 별 영향을 주지 않았습니다. 역사는 하나의 거대한 흐름이니, 그 흐름과 단절되어 있다면 크게 의미있는 존재라고 보기 어렵겠지요.


 - 그렇다면 지금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흐름의 시작점, 진정한 의미의 '최초'는 과연 무엇일까요? 조금 더 지나서, 1962년으로 가 보겠습니다.




2. 진정한 최초 : <Spacewar!>


 - 1948년 발명된 트랜지스터는 극초기 진공관 컴퓨터보다 훨씬 작은(그래봐야 방 하나에 꽉 차는 수준이었지만) 컴퓨터를 만들 수 있게 해 주었고, 반대로 성능은 크게 향상되어 좀 더 다양한 용도로 컴퓨터를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아가서 1950년대 말부터는 이보다 더 작은(물론 그래봐야 장롱짝 크기는 되는) 컴퓨터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대표적으로 1959년 출시된 PDP(프로그램 데이터 프로세서) 시리즈가 있었습니다.


[PDP-1]


 - 최초 모델인 PDP-1은 입력을 키보드로 하는 최초(!!)의 컴퓨터였고(이전의 컴퓨터는 천공카드와 종이테이프를 사용), 이것이 MIT(매사추세츠 공과대학)에 들어온 것은 1961년이었습니다. 당시 MIT의 학생들은 이 컴퓨터를 가지고 다양한 일들을 했는데, 그 학생들 중에 스티브 러셀(1937-)이라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 러셀은 '화면에 그래픽을 띄우고, 이를 보면서 컴퓨터를 가지고 놀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주변 학우들과 함께 프로그램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에드워드 엘머 스미스(1890-1965)의 우주 SF 소설에서 힌트를 얻어, 우주선끼리 서로 쏘아 맞추는 형태의 게임을 만들었습니다. 러셀은 매우 게으른 사람이었기 때문에 ㅡㅡ; 주변 친구들이 끊임없이 그를 자극하고 의욕을 북돋워주어야 했다고 합니다.


 - 그렇게 완성된 게임은, 처음에는 그저 우주선 두 대가 미사일(로 간주되는 점)을 발사하여 서로를 맞추는 단순한 형태였습니다. 그런데 러셀 일당(?)이 이 게임을 완성하고, 사람들(시대가 시대였으니, 그들 모두 컴퓨터를 다룰 줄 아는 전문가와 학생들)에게 인기를 끌면서 게임에 여러 요소가 추가되기 시작합니다. 게임을 플레이한 사람들이 "이런 게 있으면 더 재미있겠는데?"라며 직접 프로그램을 수정했던 것.


[<스페이스워!> 플레이]


 - 누군가는 우주공간을 연상케 하는 배경을 추가하여, 게임에 사실성을 더했습니다. 다른 누군가는 화면 가운데 별을 놓아서, 거기에 가까이 가면 중력의 영향을 받도록 만들었습니다. 또 다른 누군가는 위기를 피하기 위해 우주선이 순간이동을 할 수 있게 만들었는데, 이동 위치가 랜덤이라 때로는 별 바로 옆으로 이동하여 별에 부딪혀 터질 수도 있었습니다.


 - 게임은 1960~70년대 컴퓨터의 확산과 함께 미국 전체로 퍼져나갔고, 10년을 넘는 기간 동안 다양한 형태로 살이 붙게 됩니다(개중에는 멀티플레이가 가능한 버전, 동전을 넣고 플레이할 수 있는 버전도 있었습니다!). 이 게임의 이름은 <스페이스워!>. 그저 재미로, 아무 경제적 대가 없이 만들어졌으며 프로그램 코드 역시 모두에게 공개되어 있었기 때문에, 최초의 '오픈소스' 게임이라는 타이틀도 추가로 붙습니다.


 - <스페이스워>는 컴퓨터를 '가지고 노는' 용도로 쓸 수 있음을 모두에게 알렸고, 이에 컴퓨터 좀 다룬다는 사람들은 컴퓨터의 발전에 맞추어 다양한 형태의 게임을 연구하고 개발하고자 잉여력 노력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 중에, 유타대학교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한 놀런 부슈넬(1943-)이라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계속)




참고 : 

나무위키, 한글 위키백과, 영문 위키피디아

팟캐스트 <그것은 알기싫다(딴지라디오)> 中 42. "기본교양 게임사의 잉해"



덜 유명한 게임들 - 미르의 전설 1


 장르 

 MMORPG

 출시연도

 1998년

 개발사

 액토즈소프트




 - 독특한 재미가 있었지만 우리에게 잊혀진 추억의 게임들을 조명하는, "덜 유명한 게임들"의 첫 번째 순서는 <미르의 전설 1(이하 미르1)>입니다. 한국 MMORPG 게임의 여명기에 출시되었으며, 액토즈소프트의 데뷔작(<마지막 왕국>보다 한 달 앞서 발매)이기도 합니다. 1998년 11월 출시(출처), 과금방식은 당시에 일반적이었던 월정액제(₩20,000/월)였습니다.


 - MMORPG라는 장르는 1996년 <바람의 나라(이하 바람)>(다만 이쪽은 그 전 단계인 그래픽 MUD로 분류하는 게 일반적), 1997년 <울티마 온라인>이 발매되어 그 개념을 정립한 신생 장르였고, 이를 바탕으로 1998년 그 이름도 유명한 <리니지> 등의 대작이 잇따라 출시되며 한국 게임산업이 일거에 세계의 중심부에 올라서기도 했습니다. 아 옛날이여 미르1 또한 리니지와 같은 시기에 등장한, 한국 온라인게임의 선구자 중 하나입니다.


 - 미르1은 무협 세계관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거의 최초의 온라인게임입니다. 외공/내공 개념이라든지(그런데 이게 정확히 어떤 기능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음), 길드를 '문파'라고 불렀다든지(유저들이 붙이는 문파 이름에 'XX세가'라는 이름이 붙는 경우가 많았지요), 다분히 동양적인 배경이라든지...... 당시의 MMORPG가 대부분 그랬듯 미르1도 MUD 게임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이를테면 NPC와의 상점 거래는 채팅창 명령어 입력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도지삽니다" "그런 물건은 안 팝니다"


 - 미르1의 가장 독특한 시스템이라면 전직 시스템을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미르1의 클래스(직업)개념은 일단 전사/술사/도사를 나누고(각각 물리공격/공격마법/치료마법), 거기서 음양오행스러운 분류에 따라 각각 둘씩 쪼개어 총 6종류의 직업으로 나누는 식이었습니다. 그런데 특이하게 미르1은 이 각 클래스마다 직업레벨(정확한 명칭은 잊어버렸으니 이렇게 부릅시다)이 존재하고, 이 레벨이 가장 높은 직업이 자연스럽게 자기 직업이 되는 식이었습니다.


 - 이런 시스템이라 전직이 매우 자유로웠지만(다른 직업의 직업레벨만 올리면 되니까), 그 자유로운 만큼 길고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블로거의 기억에 따르면 직업레벨은 보통 그 직업에 해당하는 무공/마법을 마구 쓰면 경험치가 상승하고, 반대로 나머지 다른 직업의 경험치는 조금씩 깎여나가는 시스템이었습니다.


 - 이 때문에 직업 선택의 자유도는 무척 높았지만, 민주적 시스템이다 반대로 그만큼 관리해주기 까다로운 시스템이기도 했습니다. 전사가 술사나 도사의 마법을 배워 쓰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이런 것에 너무 맛들리면 정작 자기 직업의 직업레벨은 제대로 오르지 않는 사태가 벌어지거든요. 당시 유저들 사이에서는 캐릭터 레벨에 비해 직업레벨이 너무 낮은 캐릭터를 통칭 '허접'이라고 불렀습니다.


 - 미르1은 당시로서는 독보적인 세계관에 여러 특이한 시스템을 가진, 상당히 재미있는 게임이었습니다. 그런데 미르1은 그 가능성에 비해 흥행에 그닥 성공하지는 못했습니다. 왜냐고요? 앞 글을 다시 보시면 알겠지만 같은 해, 그것도 바로 몇 달 전에 리니지가 나왔거든요. ㅡㅡ; (블로거의 사견임을 전제로) 이 게임은 다분히 리니지의 폭발적 인기에 묻혀버린 비운의 게임이라 하겠습니다.


 - 그런데 미르1은 희한하게 몇몇 지역에서는 리니지도 능가하는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대표적인 지역이 경기도 구리/남양주시 일대였습니다. 당시 블로거는 이 지역에 거주하였고, 구리시 일대의 PC방에는 스타크래프트, 포트리스2, 미르1 세 게임밖에 없다시피 했습니다(그래서 블로거는 리니지라는 게임의 존재를 상당히 늦게서야 알았습니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블로거는 집에서 모뎀(!!!)으로 게임에 접속하기도 했는데, 전화요금+종량제 과금으로 플레이하는 방식도 있었지요.


 - 2000년경 대규모 업데이트 개념으로 <미르의전설 : 패왕전>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게 유저들의 기대와는 달리(미르1은 그래픽이 상당히 뒤처지는 편이었기 때문에 유저들은 그래픽의 업그레이드를 매우 기대하고 있었음) 내부 시스템 일부만 교체하는 수준이라, 분노한 유저들에게 바가지로 욕을 먹기도 했습니다. 당시 바뀐 것 중에 유일하게 기억나는 게, 게임상의 모들 마을들을 '성'으로 바꾼 것 정도네요(ex. 비천마을 → 비천성).


 - 이 때문인지는 모르겠는데, 미르1의 인기를 떠받치던 구리남양주 권역에서도 미르1의 인기는 시들기 시작합니다. 물론 생각해보면 이것보다는 사람들이 다른 게임 쪽으로 더 몰리게 된 게 크다고 봐야겠지요. 당시는 스타크래프트와 포트리스2의 인기가 절정에 달했고, 앞선 게임들의 성공에 자극받아 수준급의 온라인 게임들이 쏟아져나오던 시기였습니다.


 - 그리고 미르1의 후속작(이지만 미르1과 시스템은 상당히 다른)인 미르2, 미르3가 잇따라 출시되면서 미르1은 사람들에게서 점차 잊혀지게 됩니다. 블로거가 미르1을 떠났다가 다시 게임에 접속해본 게 2004~5년 경이었는데, 당시 게임은 완전무료화 상태로 운영되었고 극소수의 초고렙 유저들 위주로 남아 활동하고 있었습니다(블로거가 새 캐릭터를 만드니까 몇 명의 초고렙들이 격하게 환영하면서 도와주겠다고 했던 기억이 나네요).


 - 물론 이런 상태로 돌아가는 건 큰 의미가 없지요. 그 해를 넘기지 못하고(2004년인지 2005년인지 2006년인지 불분명) 미르1은 서비스 종료를 선언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집니다. 이후 몇몇 유저들이 프리서버 형태로 부활시킬 시도를 했던 모양이지만 성과는 없었습니다. 액토즈소프트(+위메이드) 입장에서는 후속작인 미르2가 중국 시장에서 거의 레전드급으로 활약하고 있었으니, 실질적으로 망한 게임에 더 이상 신경 쓸 이유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 그러다보니 미르1은 일세를 풍미한 미르의 전설 시리즈의 첫 작품임에도, 스크린샷 하나 제대로 찾기 어려울 만큼 철저히 잊혀지고 말았습니다. 물론 이는 액토즈-위메이드 분사, 샨다의 액토즈 인수, 그 후 지금까지(글 쓴 날 기준으로 바로 3일 전에도 이와 관련한 가처분 판결이 있었음) 이어진 기나긴 저작권 분쟁을 거치며 여기에 신경쓸 주체가 사실상 사라져버린 것도 한 몫 할 것입니다.


 - 그래도 미르1은 기억될 가치가 충분히 있는 게임입니다. 무협 MMORPG의 효시라는 점, 중국 시장을 지배한 미르의 전설 시리즈의 첫 작품이라는 점만 해도 이 게임은 게임의 역사에 당당히 이름을 올릴 가치가 있거든요. 한국 온라인 게임 초창기에는 독특한 매력을 가진 게임들이 참 많았는데, 요즘의 게임들은 과연 이 시절 만큼의 독창성이라도 따라가고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 Recent posts